164화
…카이사르 제국의 6황자.
로이든 카이사르.
본래라면 죽었어야 할 인물이 당당히 내 앞에 서 있다.
아마 이 또한 나라는 변수가 이 세계에 개입된 영향이겠지.
원작에 스토리 흐름대로라면 로이든 카이사르는 아카데미에 들어오기도 전에 황궁 암투에 휘말려 사망하게 된다.
그는 다른 형제들과 다르게 아무런 지지기반도 없는 천대받는 황족이었으니까.
황궁 내부에서 그를 지켜줄 사람은 그 누구도 없었다.
그의 아버지인 황제도 그저 씨를 뿌리는 것에 그쳤을 뿐.
자식의 얼굴을 단 한 번도 보러오지 않는 인물이었다.
어쩌면 그가 자신의 자식인지도 기억하고 있지 못할 지도 모른다.
그 정도로 관심이 없었다.
애초에 황제가 그의 어머니를 품게 된 것 또한 애정 따위가 아닌 한낱 호기심에 불과했으니까.
로이든 카이사르의 어머니는 인간이 아닌 이종족이었다.
……종족은 마족.
그것도 흡혈귀의 일종이었다.
말이 되냐고 묻고 싶은 사람들도 많겠지만 이건 진실이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다름 아닌 내가 직접 짠 설정이었으니까.
제국의 황제는 아무리 좋게 포장해줘도 절대 정상적인 인물은 아니었다. 오히려 광인(狂人)에 가까웠지.
대륙의 패자로 군림한 그는 ‘참는다’라는 것을 배우지 못했다.
그와는 가장 먼 단어.
갖고 싶은 것이 갖고, 원하는 것이 있으면 쟁취한다. 그것이 자신에게 없으면 뺏어서라도 말이다.
인간과 마족이 결실을 맺는 것은 대외적으로도 금기에 가까운 행동이지만 그렇다고 아예 없는 일들은 아니다.
허나 대부분은 종족의 한계를 초월한 만큼에 사랑을 지니고 있기에 이 세상에 시선들과 풍파를 견딜 각오로 맺어지는 것이지만 황제는 그저 자신의 성적 호기심을 충족하기 위해 그러한 결정을 내린 것이었다.
막말로 내가 하고 싶다는데 너희들이 어쩔 건데? 라는 마인드.
몇몇 신하들의 입만 단속시킨다면 평범한 인간과 외형상으로는 전혀 구분할 수 없었기에 별 문제가 없었다. 아니, 오히려 외적인 면에서는 일반적인 인간들을 압도했다.
평범한 흡혈귀도 아닌, 진조(眞祖)의 피를 계승한 흡혈귀였으니까.
그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이 바로 로이든 카이사르였다.
황제는 흡혈귀를 자신의 여섯 번째 부인으로 받아들였으면서 대외적으로는 다른 왕국의 귀족이라고 공표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의 어머니가 죽었다.
사인은 병사(病死).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보여주기 위한 것일 뿐.
진짜 이유는 자신의 비밀 중 하나가 탄로 나기를 두려워했던 황제가 그녀를 죽인 것이었다.
두려워서 죽였다기보다는 후환을 대비하기 위함이 컸다. 이미 그의 호기심은 충족되었고, 흡혈귀는 그 가치를 다했으니 굳이 살려둘 이유가 없었다.
로이든 또한 그러한 이유로 죽을 뻔 하였으나 그의 목숨을 살려준 것은 이번에도 황제의 호기심 때문이었다.
황가의 핏줄과 흡혈귀의 핏줄을 이어 받은 이 아이는 어떤 능력을 보여줄지가 궁금했기 때문이다.
크게 관심을 갖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직접 죽이기에는 아까웠다.
그래서 내린 결론은 방치.
성인이 될 때까지 방치해둔다면 알아서 두각을 드러내겠지 라고 생각한 것이다.
그냥 딱 그 정도의 가치였다.
황제에게 그는 자식이라기보다는 자신의 씨앗으로 태어난 일종의 실험체에 불과했다.
황제의 취급이 그러하니 자연스레 그를 노리는 이들의 먹잇감이 되었고.
그는 그렇게 죽어야만 했다.
그랬는데…….
‘그런데 대체 어떻게 살아있냐는 거지.’
“말이 황족이지. 사실상 그냥 평범한 인간과 다를 바가 없습니다. 저는 어린 시절 제 스스로 황궁을 뛰쳐나왔거든요. 아마 아바마마께서도 저를 이미 죽은 사람으로 취급하고 있을 것입니다. 제 형제들 또한 마찬가지일 테고요.”
“황궁을 뛰쳐나왔다고?”
“그렇습니다.”
“어째서지? 황족으로서의 삶을 포기할 만한 이유가 있었나?”
이든, 아니 로이든이 방긋 미소를 지었다. 웃고 있었지만 어쩐지 씁쓸해 보인다는 느낌이 들었다.
“……살기 위해서죠.”
이제야 알았다.
그가 어째서 살아남을 수 있던 것인지.
‘황궁을 뛰쳐 나올 거라고는 상상도 못했는데 말이지.’
그를 죽인 것은 그의 형제들.
그와 피가 섞인 형제들에게서 벗어났기 때문에 살아남을 수 있던 것이다.
“살기 위해서 황실을 나왔다는 말씀인가요?”
“네. 제가 살기 위해서는 그 방법 밖에 없었거든요.”
어느새 프레이는 그를 향해 말을 높이고 있었다.
백작가의 자제인 그녀가 그를 황족으로 인정했다는 뜻이었다.
그의 신분을 증명한 것이라고는 말 뿐이었지만 외모에서 개연성이라도 찾은 것일까.
“…어머니도 없는 그곳에서 저를 지켜줄 수 있는 인간은 아무도 없었으니까요. 위대하신 아바마마는 저에게 관심도 없을 뿐 더러 왕권다툼에 예민한 형제들은 언제든 저를 죽일 생각 밖에 없었거든요.”
“…….”
“그래서 저는 황궁을 나왔고, 6황자라는 신분을 버리고 평민 ‘이든’으로 살아왔습니다.”
아마 그 삶도 순탄치는 않았을 것이다.
이 세계에서의 평민의 삶은 내가 살던 세계에서 일반적인 사라들의 삶과 동일하지 않으니까.
폭력과 죽음이 근접한 세상이다. 선의보다는 악의가, 지성보다는 무력이 가까운 세계니까.
거기에 그는 보호자도 없다.
자신을 지켜줄 사람도, 자신을 증명할 신분도, 아무것도 없는 세상에서.
아직 다 자라지 않은 어린 아이가 삶을 헤쳐 나가기라는 건 쉽지 않겠지.
그런 그가 어떻게 아카데미에 들어올 수 있었을까. 또한 내 예지에서 보았던 그를 따르는 세력들.
궁금한 것이 한 두 가지가 아니었다.
“그러니까 너는 스스로 ‘황자’의 신분을 버리고 평범한 인간으로 살아왔다는 건데……. 대체 어떻게 살로몬 아카데미에 입학할 수 있었던 것이지?”
“그것이 궁금했던 것이었군요. 하긴 그렇겠죠. 애초에 황족의 이름을 버리고 밖에서 살아온 제가 살로몬 아카데미에 들어갈 수 있다는 것부터가 말이 안 되니까요.”
“그래. 솔직히 지금도 너의 말들을 전부 믿을 수 없을 것 같다. 그러니 내가 네 기억들을 좀 봐도 되겠나?”
“……제 기억들을 직접 보시겠다고요?”
한층 경계심이 드는 목소리.
사실 내 입장에서는 그의 입으로 듣는 것보다 직접 보는 것이 훨씬 더 편했다.
“제게 다른 선택지가 있나요?”
나는 굳이 대답하지 않기로 했다.
“…하긴. 교주께서 마음만 먹는다면 제 의견 따위와는 상관없이 얼마든지 보실 수 있겠죠.”
“너도 마음만 먹는다면 이 상황을 모면할 타개책 몇가지 정도는 갖고 있을 텐데?”
“…쉽지 않을 테니까요. 또 여기까지 몰린 이상 외통수나 다름없기도 하고. 다만 후회는 하지 마십시오.”
“후회? 내가 왜 후회를 할 거라고 생각하지?”
“판도라의 상자는 열기 전까지가 더욱 가치 있는 법이니까요.”
그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주변 공간이 일그러졌다.
* * *
…뭐지? 마법인가? 흑마술은 아닌데…….
혹시 권능인가?
“프레이…?”
“자일…? 대체 이게 어떻게 된 거죠?”
“……마법이나 흑마술은 아닌 것 같고 아마 권능 같은 걸로 추정─.”
잠깐.
아, 이제야 알았다.
“어쩌면 황제의 핏줄을 이은 황족들만 발현되는 이능(異能)의 일종인 것 같습니다.”
“……황족들만 발현되는 이능이요? 그런 게 있었나요?”
“아……. 제국에서도 극히 일부의 귀족들만 알고 있는 비밀사항일 겁니다. 아마 알리지 않았을 거에요. 굳이 알릴 필요도 없고요. 제국의 초대 황제인 발데른 카이사르의 핏줄을 이은 후예들, 즉 황족들은 대대로 이능을 지니고 있습니다. 능력의 종류나 크기, 발현되는 것들도 전부 제각각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그런 비밀이 있었다니……. 이 세계는 알면 알수록 더욱 놀랍네요. 아직도 제가 모르는 비밀들이 많이 있겠죠?”
“그럴 겁니다. 저조차도 아직 파악하지 못한 것들이 있으니까요.”
“그렇겠죠…. 그래서 어쨌든 지금 이 현상은 이든, 아니 로이든 황자가 일으킨 거라는 얘기죠? 그 또한 황제의 핏줄을 이은 황족이니 이능을 다룰 수 있을 테고.”
“네. 그렇습니다.”
확실히 마법과 흑마술과는 느낌이 달랐다. 마력도 마기도 느껴지지 않았으니까.
‘대체 어떤 종류의 이능(異能)인 거지?’
또한 프레이와 나는 일종의 영체와 같은 형체가 되어 있었다.
주변에 보이는 것들을 만지려 해도 그대로 투과해버리는 것을 보니 아마 확실한 것 같다.
‘마기나 권능은 멀쩡한 거 같고, 뭐 일단은 지켜보기로 할까…….’
그도 그럴 것이 지금 우리가 있는 곳은 다름 아닌 황궁(皇宮)이었으니까.
“아무래도 우리에게 자신의 과거를 보여주려고 하는 것 같네요.”
우리는 일단 잠자코 지켜보기로 했다.
그가 얘기한 판도라의 상자 속을.
* * *
“유모. 어머니는 어디 있어?”
“……마님은 잠시 여행을 떠나셨습니다.”
“여행? 언제 오는데? 이대로 안 돌아오는 건 아니지?”
“……걱정 마세요. 도련님. 며칠 밤만 기다리면 곧 오실 겁니다.”
“빨리 오셨으면 좋겠다. 어머니 보고 싶어.”
어린 소년과 늙은 노파.
노파는 칭얼거리는 소년을 품에 안은 채 천천히 등을 토닥여주었다.
시간이 흘렀다.
노파가 얘기했던 시간은 한참이 지났지만 여전히 그의 어머니는 돌아오지 않았다.
-사랑한다. 아가.
-비록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갖게 된 너이지만……. 너를 내 품에 안은 순간, 내가 지금까지 살아있는 건 너 때문이라는 걸 깨닫게 되었단다.
-……엄마는 항상 네 곁에 있을 거야.
-꼭 살아야 한다. 우리 아가.
소년은 그저 자신의 어머니가 자신에게 해주었던 말들을 머릿속으로 반복해서 재생할 뿐.
낡고 녹이 슨 카세트의 재생 버튼을 매일 같이 눌렀다.
그럴수록 어머니의 빈자리는 더욱 커져만 갔고, 아무런 힘도 뭣도 없는 6황자를 위해 만들어진 작은 궁궐은 유배지와 다를 바 없는 꼴이 되어갔다.
황족이 머무는 곳이라고는 상상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처참한 환경이었지만 그는 그곳이 좋았다. 어머니와 유모, 자신 셋 뿐 밖에는 없더라도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이 함께하는 곳이었으니까.
“……유모.”
그러나 이제는 유모도 움직이지 않는다.
언제나 날 보고 따뜻하게 웃어주던 그 미소도 지어주지 않는다.
-이든 도련님. 이곳에서는 절대 그 누구도 믿으시면 안 됩니다.
-제 말을 명심하세요.
-죄송합니다. 도련님이 멋진 청년이 되는 날까지 곁에 있어드리고 싶었는데…….
-반드시 살아남으셔야 합니다.
이제 그는 혼자가 되었다.
더 이상 이곳에는 사랑하는 어머니도, 사랑하는 유모도 존재하지 않는다.
사용인 한 명 존재하지 않는 곳에서 그는 그저 살아 숨 쉬었다.
어머니와 유모가 했던 말처럼 살아남기 위해서…….
하지만 어느 새벽.
저택에 들어선 다섯 명의 암살자를 마주한 순간.
더 이상 이곳에 있어서는 안 되겠다고 생각했다.
“…어머니 다음은 유모, 그 다음은 나인가.”
그의 나이 11살 때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