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6화
“일단 거기 서 있지 말고 들어오시죠.”
“네, 네!”
이든이 오두막 안으로 들어갔다.
무슨 마법적 장치가 되어 있는 건지 신기하게도 내부는 딱 적당한 온도를 유지하고 있었다.
아슈타르를 똑 닮은 여인이 탁자에 앉은 이든을 향해 차 한 잔을 건네주었다.
“가, 감사합니다.”
황급히 차를 마시던 이든이 향과 맛을 느끼기도 전에 고통을 호소했다.
그 모습을 본 여인이 피식 웃었다.
“천천히 드세요. 누가 뺏어가지 않습니다.”
호로록.
맛을 음미하는 여인.
이든의 눈에는 그 모습마저도 매혹적이었다. 허나 금세 고개를 젓는 이든.
‘저 아름다운 외모에 속아 넘어가면 안 된다. 분명 저 외모를 이용해 나를 현혹하려는 게 분명해.’
“제 모습이 그렇게까지 예쁘게 보이는 건가요? 그렇게까지 노골적으로 말해주시면 저도 부끄럽답니다. 아, 그리고 딱히 남을 유혹하기 위해 이런 외모가 된 게 아니랍니다. 아직 팔팔한 사춘기 소년이라 욕정이 들끓는 것은 이해하지만…….”
“아! 잠시, 잠시 만요!”
“…왜 그러시죠?”
“당신이 정말 대가의 악마가 맞습니까?”
“묻고 싶은 게 정말 그건가요?”
그제야 자신이 말하려고 했던 것과 머리로 생각만 하고 있던 걸 착각했다는 사실을 깨달은 이든.
“어떻게 제 생각을 읽을 수 있는 겁니까?”
“……악마가 그 정도도 못할 거 같나요?”
멍청한 질문.
모든 소원을 이뤄주는 악마를 찾아와서 이딴 질문을 하는 자신이 한심하게 느껴졌다.
“후후. 그럴 수 있습니다. 저를 처음 본 이들 대부분이 다들 비슷한 반응을 보이곤 하니 너무 침울해 하실 필요 없어요.”
그녀의 시선이 이든에게로 향했다.
이 세상 모든 남자들을 현혹시킬 것만 같은 아름다운 외모.
그 외모를 이루는 정점인 몽환적인 눈동자가 가늘어졌다.
마치 저 아이의 진의(眞意)를 파악하려는 것처럼.
“…….”
그 눈동자를 마주한 이든은 전신의 소름이 돋는 기분이 들었지만 그럼에도 물러서지 않았다.
여기서 자신이 시선을 돌리면 영영 이 기회를 얻을 수 없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안간힘을 다해 참아냈다.
나름대로 산전수전을 다 겪었다고 자부했지만 눈앞에 존재는 차원이 달랐다.
뭐랄까.
말로 형용할 수 없는 그런 불가해한 분위기.
독이 든 성배처럼.
아름다운 가시를 가진 장미처럼.
결코 거부할 수 없지만 그것을 마주하게 되면 파멸하게 될 것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는 그러한 존재였다.
“……황제의 핏줄과 마족의 핏줄이 섞였다라. 이거 오랜만에 재미있는 손님이 오셨네요?”
순식간에 자신의 정체를 맞춘 그녀를 보며 이든이 화들짝 놀랐다.
‘속마음까지 읽는 게 아니라 내 기억까지 볼 수 있는 건가?’
이제 그의 머릿속에서 눈앞에 여인은 아예 이치를 초월한 존재가 되어있었다.
“힘을 원합니다. 아주 막대한 힘을.”
“으음…‥. 그럼 당신은 그 대가로 저에게 무엇을 줄 수 있죠?”
이든을 바라보는 여인의 눈빛은 마치 먹잇감을 앞에 둔 뱀 같았다.
탐욕과 호기심이 한데 어우러져 일렁이는….
“뭐든. 드리겠습니다.”
“뭐든이라……. 진부하게 뭐 목숨을 내놓겠다 이런 건 아니죠?”
“원하는 게 제 목숨이라면 목숨을 내놓겠습니다. 단, 제 복수가 이뤄지고 난 뒤에 거둬 가시지요.”
“당돌해라……. 그런 것 없이 여기서 제가 강제로 가져간다고 하면 당신은 뭘 할 수 있죠?”
분위기가 급변했다.
시종일관 호기심이 가득했던 그녀의 눈빛에서 노골적인 살기가 일렁거렸다.
그것을 마주한 이든의 몸이 바들바들 떨렸다.
그의 의지와는 한 없이 무관한 반응. 그저 피식자가 포식자를 만났기에 본능적으로 떠는 것과 진배없는 반응이었다.
‘참아야 돼. 참아야 돼.’
그의 이마에서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어떻게든 정신을 잃지 않으려고 발버둥치는 이든. 어차피 더 이상 물러설 곳도 없었다.
잃을 게 없다면 두려울 것도 없다.
그제야 다시 미소를 짓는 여인.
“합격.”
이든 또한 자신의 몸을 옥죄이던 살기가 사라짐을 느꼈다.
“미련하지만 뭐 나쁘지 않네.”
“……제 부탁을 들어주시는 겁니까?”
그녀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다만 대가는 네 목숨이 아니야.”
“그렇다면…?”
“네 영혼. 너는 죽어서도 평생 내 노예로 살게 될 거야. 죽음이 너의 해방이 아니라는 거지. 영겁의 시간 동안 내게 영혼을 붙잡힌 채 살아가게 될 텐데 그럼에도 소원을 이루고 싶니?”
이든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물론입니다.”
자리에서 일어난 여인이 이든에게로 다가갔다.
그러더니 그의 이마에 입을 맞추었다.
쪽.
당황한 이든이 그녀를 멍하니 올려다보았다.
그녀의 입에서 흡사 주문 같은 말들이 쏟아져 나왔다.
“아이야. 내 이름은 대가의 악마 같은 것이 아니란다. 그 또한 나를 부르는 수많은 명칭들 중 하나일 뿐이지. 나는 그 외에도 수많은 이름을 갖고 있단다. 지식의 마녀, 사막의 수호신, 대가의 악마, 초월자 아슈타르 등등 말이지. 허나 이것들은 전부 내 유희를 위한 이름일 뿐. 내 진명은 따로 있단다.”
“진…명…?”
“그래. 나의 이름은 시트리(Sitri). 쾌락과 지혜를 담당하는 지옥의 12번째 마신이지.”
“마, 마, 마신(魔神)……?”
시트리는 싱긋 웃는 걸로 대답을 대신했다.
‘마신이라는 게 실제로 존재하는 거였다고……?’
그의 어머니 또한 마족이었기에 마신의 존재에 대해서는 들어본 적이 있었지만 자세한 얘기는 들은 적이 없었다.
애초에 마족인 그녀의 어머니 또한 제국 내에서 마신에 대해 언급하는 것이 어떤 여파를 불러올지 알고 있었기에 구태여 얘기 하지 않았다.
그렇기에 이든이 알고 있는 것은 제국 내부에는 마신이라 불리는 외신(外神)을 숭배하는 이교도 무리가 존재한다는 것 정도가 전부.
그것들 또한 일종의 미신 같은 것이라고 치부했었다.
이 세상에 실존하는 신들은 당연히 라파엘과 12신들 뿐이라고 여긴 것이다.
“그렇게 놀랄 거 있나요? 이 제국의 인간들이 그토록 숭배하는 라파엘과 다른 신들도 떡하니 존재하는데 마신이라고 존재하지 못할 것도 없죠. 당신이 알고 있지 못할 뿐. 이 세상에는 아~주 다양한 것들이 존재한답니다.”
그녀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이마에서 불타는 통증이 느껴졌다.
치이이익.
“끄으으으윽!!”
“그건 이제 당신이 저의 것이 되었다는 증표입니다. 일종의 낙인이라고 볼 수도 있고, 좋게 말하자면 마신의 사도가 되었음을 증명하는 성흔(聖痕)이라고 할 수도 있죠. 오랜 세월을 살아오며 인간을 사도로 들인 것은 처음이니 잘 부탁드려요. 로이든 카이사르.”
* * *
허…….
이사장 아슈타르의 정체가 마신이었다니….
그것도 서열 12위의 시트리라고…?
그러니까 살로몬 아카데미의 이사장이 마신이라는 얘기였다.
어쩐지 이상하다 했다. 나에게 너무 우호적인 것도, 아카데미 내부에 마신 숭배자들이 그렇게 득실거리는데도 불구하고 액션만 취할 뿐.
방치하는 것도.
‘진즉에 내가 흑마술사라는 사실을 알고 있음에도 지켜본 거였구나…….’
이사장 아슈타르의 정체는 나조차도 알지 못하고 있던 것이었다.
처음 이 소설의 설정을 구상할 때 그녀는 그저 제국 최고의 아카데미의 이사장이자 가장 강력한 마법사라는 설정을 부여한 게 전부였다.
그녀가 어째서 초월자가 될 수 있었는지, 어째서 대마도사의 경지에 도달할 수 있었는지 등에 자잘한 설정들은 아무것도 구상하지 않았었다.
‘하긴……. 그 정체가 마신이라면 초월자가 되는 것 따위야…….’
내심 고위급 악마나 마신숭배자들과 관련된 인물이 아닐까 하고 생각했었는데 설마하니 마신이었을 줄이야.
그것도 초 고위급의 마신.
“……이, 이, 이사장님이 마, 마신이라니. 자, 자일도 알고 계셨나요?”
“아뇨. 저도 처음 안 사실입니다.”
“이든이 황족이었다는 것보다 이, 이사장님이 마신이었다는 사실이 더 충격적인데요? 아니. 솔직히 말하면 이제는 머리가 터질 것 같습니다. 저 아직도 놀랄 일이 더 남아있나요? 그러면 미리 좀 얘기해주세요. 이러다 심장마비로 죽을 것 같아요. 이 세계는 대체 어떻게 되어먹은 건지……. 주변에 죄다 마족, 흑마술사, 마신이라니……. 아아, 라파엘이시여!”
“…크흠.”
프레이의 적나라한 말에 찔리는 건 마음 한 구석이 불편한 것은 어쩔 수 없는 것이겠지.
【이거 재미있구나. 시트리 이 영약한 마신이 어디로 사라졌나 했더니 인간계에서 유희를 보내고 있었을 줄이야! 푸하하하하하! 이 사실이 지옥에 퍼지면 한바탕 난리가 나겠군.】
“유희? 아스모데우스 너도 이사장의 정체가 시트리라는 사실을 모르고 있던 거야?”
【그래. 그 영악한 년이 작정하고 속이면 바알이나 아가레스 정도가 아닌 이상 알 방법이 없지. 어쩐지 지옥에서 한동안 시트리의 모습이 보이지 않아 많은 마신들이 의아해했던 일이 있었다. 허나 워낙 종잡을 수 없는 년이기에 크게 신경을 쓰지 않았지. 이번에도 그 호기심을 주체하지 못해 어디 다른 곳으로 유희를 떠났다 했더니 인간계. 그것도 아카데미의 이사장 노릇을 하고 있을 줄이야! 푸하하하하! 진짜 골 때리는 년이군.】
생각해보면 마신들은 우리와 시간 개념이 다르기 때문에 그들의 입장에서 아주 짧은 시간이라 불리는 것도 몇 백 년 정도 일 것이다.
‘잠깐. 그러고 보면 이든은 이걸 보여주면 이사장의 정체가 시트리라는 사실이 들통 나게 될 걸 알고도 내게 보여준 것인가? 어째서…….’
숨겨진 의도가 있다는 생각 밖에 들지 않았다.
자신의 정체와 자신이 모시는 마신의 정체. 그것을 내게 밝히면서까지 얻게 될 이득이 대체 뭐가 있을까.
아무리 생각해봐도 감이 잡히지 않았다.
【그렇게 머리 싸매도 소용없다. 계약자여. 시트리 그년은 원래 교묘하게 상대를 자극하는 게 특기니까. 영악한 걸 따지면 지옥 전체를 따져도 그 년 만한 마신이 없을 것이다. 그래도 하나 알게 된 것이 있지 않느냐.】
“알게 된 것…? 뭘 말이지…?”
【쯧. 평소에는 잘만 돌아가던 머리통이 이럴 때는 또 쓸모가 없구나. 레메게톤 말이다, 레메게톤! 이사장의 정체가 시트리라는 것이 밝혀졌는데 설마 그 간악한 년이 자신의 구역 내에 숨겨진 레메게톤의 위치를 모르겠느냐?】
“!”
내가 왜 이 생각을 못했을까…….
그래.
이사장의 정체가 지혜의 마신 시트리라면 레메게톤의 위치를 모를 리가 없다.
* * *
살로몬 아카데미의 어느 방안.
“……자일 지그하르트.”
입학생 명부를 보고 있던 감독관 레이첼은 표독스러운 얼굴로 입술을 짓이겼다.
눈 밑까지 깊게 내려온 다크서클.
붉게 충혈 된 눈동자.
그 사건 이후로 레이첼은 잠도 제대로 자지 못한 채 하루 종일 머릿속으로 자일 지그하르트만 떠올렸다.
“그 망할 놈이…….”
그녀의 직감은 분명 그를 흑마술사라고 가리키고 있었다.
신성석이 검게 물들다 못해 폭발한 것 또한 그녀의 두 눈으로 목격했다.
이교도는 죽여 마땅할 쓰레기.
자신의 행동은 전혀 잘못된 게 없었다.
허나 이사장의 등장과 함께 도리어 자신이 죄인으로 몰렸다.
“죽여 버릴 거야…….”
그 순간.
그녀의 뒤편에서 늘리는 낯선 음성.
“정말요?”
그 목소리의 주인은 이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