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7화
갑작스레 들려온 목소리에 레이첼이 화들짝 놀라 소리쳤다.
“누구냐!”
아무리 심신이 지쳤다고는 하지만 지척까지 다가오는 것조차 눈치 채지 못했다.
“너는 신입생……?”
이든의 얼굴을 확인하자 그녀의 얼굴이 위기감에서 의아함으로 바뀌었다.
“학생이 어째서 이곳에 있는 거지?”
그러면서 서서히 전신에 마력을 끌어올리기 시작했다.
상대가 학생이건 어떤 이유가 있든 간에 기척조차 내지 않은 채 자신의 방안에 침입한 이상 괴한과 다름이 없었다.
레이첼은 명색이 아카데미의 교관.
교수급은 아니지만 그럼에도 상당한 무력을 지닌 기사였다.
“대답하지 않으면 억지로 입을 열게 만들어주겠다. 교관의 방안에 함부로 침입한 것은 명백한 교칙위반이라는 사실을 너도 알고 있겠지?”
“풉.”
“뭐가 웃기지?”
“아, 미안합니다. 이 상황에 교칙 위반이라는 말을 꺼낼 줄은 정말 상상도 못했거든요.”
악의(惡意)가 없는 웃음.
순수하게 그녀의 말이 어이가 없어서 튀어나온 웃음이었다.
허나 그것은 명백히 그가 그녀를 자신보다 아래로 보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했다.
어찌됐건 이런 상황에서 웃음이 나오려면 대가리가 완전히 돌아버렸거나 혹은 웃음이 나올 정도로 여유가 있어야 하니까.
그는 후자였다.
불길함을 느낀 레이첼이 먼저 그에게 달려들었다.
안타깝게도 무기는 차고 있지 않았기에 마나를 실은 주먹을 힘껏 뻗었다.
그 순간.
“흡!?”
마치 몸이 굳어버린 것 같은 감각.
그녀의 주먹은 이든의 코앞에서 멈출 수밖에 없었다.
이어서 곧장 뒤바뀌는 풍경.
그것은 자일 지그하르트의 입학시험이 치러지던 그 날이었다.
“미안합니다.”
그 말을 끝으로 이든은 손을 뻗어 그녀의 몸 안에 강제로 마기를 주입했다.
그녀의 머릿속에서 펼쳐지는 그 날의 기억.
육체는 마기와 싸우고 있었고, 정신은 트라우마와 싸우고 있었다.
하얗게 질린 그녀가 침을 질질 흘렸다.
그 모습을 본 이든은 씁쓸한 얼굴로 방을 나와 문을 닫았다.
* * *
똑똑.
“들어오세요, 이든.”
노크소리와 함께 문을 열고 들어온 이든이 살짝 고개를 숙인 뒤 자리에 앉았다. 그의 맞은편에 앉아있는 여인.
살로몬 아카데미의 이사장, 대마도사 아슈타르.
“보고 하러 오셨나요?”
“……예. 살펴본 결과 자일 지그하르트는 고위급 마신의 사도인 것으로 추정됩니다. 마기를 자유자재로 다루며, 신성력을 사용하는 환상종을 사역마로 다루는 모습으로 미뤄 보았을 때 상당히 강력한 마신의 사도가 아닐까 싶습니다.”
그 또한 안드로말리우스의 사도였기에 알 수 있었다.
고작 안드로말리우스의 사도가 된 것만으로 마기를 저렇게 자유자재로 다룰 수 없다는 것을.
거기에 신성력을 사용하는 사역마를 다뤘다. 그건 이든이 알고 있는 이치를 벗어난 존재였다.
“그 외에도 이것저것 숨기는 것이 많아 보입니다. 차라리 제가 처리 할까요……?”
섬뜩한 말을 쉽게 내뱉는 이든.
진심이 담긴 말이었다.
수라의 길을 걷기로 결심한 뒤로 사람의 생명을 빼앗는 것조차 쉽게 입에 올리게 되었다.
“아니요. 그럴 필요 없습니다. 그 자에게는 몇 가지 확인할 것이 있으니 그저 지금처럼 행동해주시면 됩니다. 이든.”
“알겠습니다. 아, 그리고 이블 건은…….”
“청십자회가 들이닥치면서 마무리 됐다고 하였죠?”
“…그렇습니다.”
“그쪽은 제가 알아서 처리할 테니 걱정 마세요. 잘해주었어요. 이든.”
“감사합니다.”
아슈타르가 이든의 얼굴을 빤히 바라봤다.
평소와 다름없는 얼굴이었지만 아슈타르는 그곳에서 미세한 변화를 찾아냈다.
“이든.”
“네. 이사장님.”
“…죄책감을 느끼고 있군요? 레이첼 교관을 이블로 만들었다는 것에서 오는 죄책감인가요? 아니면 죄 없는 이를 이블로 만들어 죽게 만들고, 거기에 이제 갓 아카데미에 들어온 신입생들마저 위험에 처하게 만들었다는 죄책감인가요?”
정곡을 찔린 듯한 표정을 짓는 이든.
잠시 멈칫하던 그가 이내 고개를 저었다.
“……아닙니다. 이제 그런 죄책감 따위는 버린 지 오래에요. 당신의 사도가 된 그날부터.”
“뭐, 그것도 당신의 선택이겠죠. 그 모든 감정들을 안고 나아갈 것인지, 아니면 지금처럼 스스로를 세뇌할 것인지. 앞으로 기대가 되네요. 복수를 이루기 전에 망가지는 건 이든 본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본래 인간은 망가지기 쉬우니까요.”
그 말에 이든이 눈을 빛내며 대답했다.
“절대 그럴 리 없습니다.”
“어머. 뜨거워라. 그래서 그 복수를 이루기 위한 세력은 착실히 모으는 중인가요?”
“네.”
“그래야지요. 제가 준 권능과 인재들을 가지고도…….”
그 말을 끝으로 공간이 점차 무너져 내렸다.
다시보기가 끝이 난 것이다.
* * *
주변을 둘러보니 원래 있던 풍경이 눈에 들어온다.
돌아온 것이다.
나는 눈앞에 이든을 노려보며 말했다.
“내가 봤던 것들이 전부 조작하나 없는 진짜 기억인가?”
“예. 제가 겪었던 기억을 제 이능을 이용해 그대로 보여준 겁니다.”
“네가 장난질을 치지 않았을 거란 장담을 어떻게 하지?”
“그거야 믿는 사람 마음이지요. 뭐가됐건 저는 아무 짓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막말로 장난질을 할 거라면 제가 무엇하러 저런 기억들까지 보여주겠습니까?”
저런 기억들.
아마 이사장의 정체와 레이첼을 이블로 만든 장본인이 이든이라는 사실이겠지.
“……어, 어떻게 그런 짓을. 이든. 정말 당신이 그런 거에요? 정말 당신이 레이첼 교관을 이블로 만든 겁니까?”
아직 충격이 덜 가신 건지 손을 바들바들 떨며 믿을 수 없다는 얼굴로 이든을 바라보는 프레이.
이든은 그런 프레이를 바라보며 담담하게 말했다.
“네. 제가 그런 겁니다.”
그리고는 방긋 미소를 지었다.
프레이의 동공이 가파르게 흔들렸다. 떨리고 있는 건 비단 그녀의 눈동자만이 아니었다.
부들부들.
검을 쥐고 있는 그녀의 팔이 가장 크게 떨렸다. 이윽고 피어오르는 살기.
“어째서……. 그런 짓을 한 것이지요? 그저 명령 때문이었습니까? 명령 때문에 아무런 죄도 없는 인간을 이블(evil)로 만든 것입니까?”
“명령 때문에도 있지만 더 정확히는 제가 살기 위해서입니다.”
“살기 위해서?”
“네. 그도 그럴 게 자일 지그하르트도 본인이 살기 위해서 그녀를 이상한 시험관으로 몰아가지 않았습니까? 거기에 더불어 죽음을 선고하는 흑마술까지 걸어두었고요. 제가 한 짓이 그의 행동과 무엇이 다르지요?”
“……그건.”
프레이는 말문이 막혔다.
억지논리라는 건 알고 있었지만, 문득 이제 와서 이런 도덕심을 논하는 것 자체가 아무런 의미도 없다고 느껴진 것이다.
내가 살기 위해 누군가를 죽인다.
이런 논리로 그녀 자신 또한 대체 몇 명의 인간들을 죽여 왔던가.
“그래도 꼭…….”
“그래도 꼭 그녀를 이블로 만들었어야 했냐고요? 꼭 만들 필요까지는 없었겠죠. 허나 가장 적합한 인물이었습니다. 그렇기에 그녀를 선택했던 것이고요. 아, 교주님과 프레이님을 지금까지 속인 건 미안합니다. 다들 비밀 하나 씩은 가지고 있는 법이잖아요?”
“비밀이라…….”
“그래요. 비밀. 교주님도 많이 가지고 계시잖아요?”
“그렇지. 나도 많이 가지고 있지.”
“그래서 어떻게 하실 건가요? 제 모든 기억을 보고서도 여전히 저를 ‘이든’으로서 봐주실 겁니까? 아니면 저를 죽이실 건가요?”
담담하게 자신의 죽음에 대해서 얘기하는 이든.
그의 기억을 들쳐보아 새로운 진실을 알게 되었지만 변하는 건 없다.
애초에 나는 그를 믿은 적이 없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감정적으로 서운하다거나 충격을 받았다거나 하지도 않는다.
그저 이용할 건 이용한다.
‘이든’이라는 인간이 내 목표를 이루는 데에 있어 이용가치가 있다면 그저 이용할 뿐이다.
“다만 계산은 확실하게 하고 가야겠지?”
그게 갑자기 무슨소리냐는 듯 되묻는 이든.
“……계산이요?”
“네놈이 지금까지 날 속이고 기만한 죄. 거기에 레이첼 교관을 이블로 만들어 나와 내 동료들을 위험에 빠트린 죄.”
“갑자기 그게 무…….”
그와 동시에 나는 빠르게 마기를 끌어올리며 권능을 발동시켰다.
──무의 경계(境界).
촤아아아아아악!
급속도로 퍼져나가는 영역.
당황한 이든이 마기를 사용하려고 했지만 당연히도 사용할 수 없었다.
내가 무의 경계를 발동한 이유는 간단했다.
그의 기억을 통해 알게 된 바 그 또한 시트리의 사도인만큼 내가 모르는 권능을 다룰 수 있을 것이다. 그렇기에 그 변수를 미리 봉인해둔 것이었다.
이어서.
권능을 해체함과 동시에.
“──집어삼켜라. 레비아탄.”
포식의 권능을 발동했다.
대상은 이든, 이 아닌 그의 이마에 새겨진 시트리의 성흔(聖痕).
꿀꺽.
즉, 시트리와 사도로서 이어진 연결고리를 끊어버리는 것.
그것이 내 목적이었다.
“쿨럭!”
말도 안 되는 권능을 사용한 여파일까.
장기가 찢기는 듯한 통증과 함께 검붉은 피와 살점 같은 것들을 뱉어냈다.
“하아… 하아….”
이든에게 다가간 나는 그의 머리칼을 걷어 이마를 확인한 뒤 씨익 미소를 지었다.
성흔이 흐릿해져있기 때문이었다.
‘반쯤 성공인가…….’
지금은 이걸로 만족해야만 했다. 제 아무리 포식의 권능이라 할지라도 상대는 시트리다.
다행히 마신의 권능 같은 것이 아닌 사도로서의 힘이 담긴 성흔을 삼킨 것이기에 이 정도라도 할 수 있던 것이었지 만약 그녀의 본래 힘이 담긴 마기를 가지고 이 짓거리를 했다가는 내가 먼저 골로 갔을 것이다.
그나마 반쪽짜리 신격을 지니고 있었기에 이러한 기행이 가능했다.
“대, 대체 이게 무슨……!”
“아직 안 끝났다.”
그의 몸을 구속한 나는 희미해진 시트리의 성흔 바로 옆을 손가락으로 눌렀다.
치이이익.
살이 익는 소리와 함께 그의 이마에 새로운 성흔이 새겨진다.
“끄으으으아악!!!!”
이 광경을 지켜보던 프레이 또한 경악한 얼굴로 소리친다.
“자, 자일!?”
【푸하하하하하! 역시 내 계약자다! 이런 짓거리를 할 줄이야! 이건 이 몸 또한 상상치 못했다! 이 사실을 시트리 그 영악한 년이 알게 되면 대체 어떤 표정을 지을지 그거 참 기대되는 구나! 아주 잘했다! 계약자여!】
혹시나 하는 마음에 실행해봤지만 진짜 될 줄이야.
반쪽자리 신격도 신격이니까.
그럼 나도 반쯤은 마신이니까.
저 싸가지 없는 놈을 사도로 만들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내가 줄 권능도, 흑마술도, 마기도 없지만…….
말이 사도지.
사실상 그냥 강제 노예다.
“이게 되네?”
아직 급이 낮아 영혼 자체를 종속하는 것은 할 수 없었지만 그래도 어느 정도의 지배권은 획득했다.
이든 본인 또한 자신의 몸에 일어난 현상을 이해했을까.
“시, 시트리님의 마기가 느껴지지 않아…….”
정확히는 희미하게 느껴지는 것일 테지만 그걸 가늠할 정신이 없어 보였다.
“축하하네, 이든. 자네는 나 허세와 잔머리의 마신 자일 지그하르트의 사도가 되었네!”
“이 미친 인간이……!”
“그러니까 네 복수도 이루기 전에 지옥가고 싶지 않으면 빨리 네 주인에게 가서 레메게톤 위치 찾아와.”
너만 마신 있냐?
나도 마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