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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카데미 흑마술사로 살아남기-168화 (168/180)

168화

넋이 나간 이든은 황급히 자리를 떴다.

역시 예상했듯이 품에서 꺼낸 공간 스크롤 주문서를 찢고서.

상당히 당황한 얼굴이었다.

지금껏 단 한 번도 보여준 적 없는 표정.

어차피 이대로 잠적할 리는 없다.

그러려면 내가 새긴 성흔도 해결해야 할 테고.

그리고 이 일 또한 이사장, 아니 시트리의 귓가에 들어가게 되겠지.

“자일……. 이렇게 해도 괜찮은 거에요?”

나는 솔직하게 말했다.

“솔직히 말해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괜찮을지는…. 근데 까놓고 얘기해서 이든 그 자식이 좀 괘씸하잖아요? 처음부터 목적을 가지고 접근해서 지금까지 이렇게 연기를 하고 있었던 것들 전부.”

“그렇죠……. 설마 레이첼 교관을 이블로 만든 것도 이든이었을 줄이야…….”

“아마 이 이후에는 더 충격적인 것들도 많이 알게 될 겁니다. 그러니 마음을 단단히 잡으셔야 합니다.”

“네.”

적지 않은 충격을 받은 듯한 프레이였지만 이내 결연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하긴.

돌이켜보면 이제 그녀 또한 절대 평범한 사람이라 볼 수 없었다.

본래도 평범한 삶을 살아갈 운명은 아니었지만 나와 함께 다니면서 더더욱 기상천외한 경험을 했기에.

상황이 전부 종료됐으니 우선은 교단부터 수습하기로 했다.

다행히 드래곤의 기습에 잘 대처한 덕분에 교단 내에 피해는 그리 크지 않았다.

허나 문제는 이 이후로도 이러한 일들이 발생할 수 있을 것이라는 사실.

게티아에서 본산의 위치를 알고 있는 것이 가장 큰 걸림돌이었다.

‘어떤 식으로든 해결을 하긴 해야 하는데 말이지…….’

장로들을 불러들여 본산 내에 결계를 강화하기로 했다.

내가 직접 힘을 보탰으니 아마 쉽게 뚫리지는 않을 것이다.

상당한 마기를 투자해 결계를 이중, 삼중으로 겹겹이 만들었다.

또한 주변에 있던 시체들을 이용하여 본산을 수호하기 위한 골렘들을 배치했다.

제사장인 이든의 자리가 비어있었지만 딱히 큰 문제가 될 건 없었으니 일단은 공석으로 놔두기로 했다.

이쯤 되면 말이 교단이지 사실상 내 휘하에 있는 비밀조직과 다름이 없다.

예전처럼 안드로말리우스가 신도들의 부름에 적극적으로 답해주는 것도 아니고, 또 그럴 만한 상황도 아니었기에 그들은 전적으로 내게 의지할 수밖에 없었다.

“이 정도면 충분할 것 같군. 내가 없는 동안 장로들이 교단을 열심히 보호할 수 있도록.”

“네! 교주님!”

“아, 그리고 데이지.”

“네?”

“너는 나를 따라와라.”

의아한 얼굴로 나를 바라보던 그녀가 이내 아무런 말없이 내 뒤를 따라왔다.

그녀 또한 장로로 임명하기는 했지만 사실 다른 장로들에 비해 하는 일은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했다.

명예 장로 정도 같은 느낌이랄까.

본래는 그녀의 판단력을 높게 사서 정말 교단의 장로로서 키우려고 했지만 로만과의 관계를 알고 난 뒤에는 과감히 그럴 생각을 접었다.

장로직을 계속 유지하고 있던 것은 일종의 혜택이었다.

내가 로만의 소원을 들어주기 전까지 교단 내에서 차별 받지 않고 편히 살아가기를 바라며 해준 배려.

그러나 그것도 이제 끝이었다.

이번 사건을 통해서 깨달았기 때문이다.

이곳에 그녀를 계속 두었다가는 내가 해준 약속조차 지키지 못하게 될지도 모른다고.

내 안일함이 그런 참사를 불러올 수 있었기에 당장 실행에 옮기기로 결심했다.

로만은 나에게 신의를 보여주었고, 그의 주인 된 자로서 나 또한 그에게 내 신의를 보여주어야 한다.

“이곳은…….”

“저번에 나랑 같이 들린 이후 또 온 적이 있나?”

“아니요. 이번이 두 번째입니다.”

절그럭. 절그럭.

쇠사슬이 바닥에 긁히는 소리가 울려 퍼진다.

그리고 이어지는 절규.

“끄으으아아아악!!!”

처절하다 못해 마치 짐승이 비명을 토하는 것 같은 끔찍한 소리.

“이히히히! 이히히히히! 으히히히!”

뒤이어 이어지는 웃음소리.

“……죽여줘.”

이러한 소리들이 10분 간격으로 계속해서 반복됐다.

나와 일행들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은 채 가만히 이 소리를 듣고 있었다.

보다 못한 프레이가 인상을 찌푸리며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자일……. 이곳은……?”

“감옥입니다.”

“감옥이요……? 대체 누가 여기 갇혀있는 거죠?”

“재활용도 안 되는 구제불능의 쓰레기가 갇혀 있지요. 이곳은 오직 그를 위한 감옥입니다.”

나는 데이지를 바라봤다. 그러자 데이지가 선두에 서서 걷기 시작했다.

쇠창살 사이로 기레스 하르만의 모습이 보인다.

허나 그 외형은…….

“끔직한 몰골이로군.”

더 이상 기레스 하르만이라고 부를 수 없을 정도로 처참했다.

앙상한 나뭇가지처럼 말라비틀어진 팔과 다리.

볼살은 전부 빠져 튀어나온 광대.

정돈되지 않은 수염과 머리칼.

그리고 썩은 동태눈깔 같은 눈동자.

“히히. 죽여줘. 제발. 죽여줘. 응?”

철창 밖에 선 데이지가 허리를 숙인 채 그를 물끄러미 바라봤다.

“…….”

그제야 데이지를 발견한 기레스 하르만이 엉금엉금 기어와 소리쳤다.

“데…이…지……?”

“오랜만이네요. 기레스 하르만님.”

쾅!

“데이지! 데이지! 데이지! 데이지! 데이지! 데이지!”

흰자만 남은 기레스가 미친 듯이 소리쳤다.

그러나 데이지는 아무런 표정의 변화도 없었다. 그저 그를 바라보다가 딱 한 마디를 내뱉을 뿐.

“……꺼내드릴까요?”

그 말을 들은 순간.

씨익.

기레스 하르만이 입꼬리를 올렸다.

“……아니. 죽여줘.”

의외에 반응.

허나 그 대답에서 나는 알 수 있었다.

지금껏 그가 ‘희망’이라는 이름에 얼마나 고통 받아왔던 것인지.

이곳에서 빠져 나갈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

언젠가 다시 재기할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

이 모든 것들이 내 상상이 아닐 것이라는 희망이.

그를 완전히 망가트린 것이다.

“죽여 달라……. 안타깝네요.”

“죽여줘. 제발.”

“아직도 희망을 품고 계시네.”

그 말을 끝으로 데이지는 자리에서 일어나 출구를 향해 걸었다.

마지막 남은 희망마저 포기한 줄 알았지만 그게 아니었다.

기레스 하르만은 마지막으로 이 모든 고통에서 해방될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을 품고 있던 것이었다.

죽음이라는 이름에 희망 말이다.

허나 그것마저 헛된 꿈이라는 사실을 방금 데이지가 눈앞에서 확인시켜주었다.

문을 열고 나가려는 찰나, 저 멀리서 기레스 하르만의 절규가 들려왔다.

“제발 죽여줘!!!”

덜컥.

문이 닫혔다.

“데이지. 혹시 마지막으로 인사를 나누고 싶은 사람이 있나?”

“아뇨. 딱히 없습니다.”

“그럼 바로 가도록 하겠다.”

나와 데이지, 그리고 프레이는 공간전이를 이용하여 원래의 장소로 돌아왔다.

그리고 곧장 우리가 향한 곳은 하르만 백작가였다.

“저번에 말했던 건 전부 준비됐나?”

“그래. 네가 말한 대로 전부 처리했다.”

“고맙다.”

“별 말씀을.”

뢴달 하르만과 짧게 대화를 나눈 뒤 그가 붙여준 사용인의 안내를 받아 우리는 하르만 백작가 근처에 있는 시내로 향했다.

터벅. 터벅.

데이지는 여전히 조용했다.

그저 말없이 주변 풍경을 눈에 담는 것이 전부였다.

프레이에게는 이미 사전의 전부 얘기를 해놓았기에 별 다른 의구심을 갖기 않고 나를 따라주었다.

아니, 어쩌면 데이지보다도 더 설레하고 있는 것이 그녀였다.

자신을 억누르던 무거운 짐을 내려놓은 뒤에 프레이는 한층 더 자유로워보였다.

예전에는 언제나 강직하고, 우직하며, 스스로를 옥죄이는 느낌이 강했지만 지금은 한창 때 소녀로서의 느낌 또한 같이 풍겼다.

바로 지금처럼.

잔뜩 들뜬 얼굴의 프레이가 내 귓가에 속삭였다.

“……꽃집이 자기 거라는 걸 알고 나면 데이지 씨도 정말 좋아하겠죠?”

“그랬으면 좋겠지만 또 모르죠.”

“아마 그럴 거에요! 그게 또 자신의 오빠가 해준 거라는 걸 알면 더 기뻐할 겁니다!”

하르만 백작가의 영지는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욱 잘 꾸며져 있었다.

주변 시민들의 표정도 활기 차 보였고, 치안이나 그런 것들도 크게 나쁘지 않았다.

‘뢴달의 수완이 상당한가 보군.’

그렇게 한 10분 여 정도를 더 걷자, 사용인이 한 건물 앞에서 멈추었다. 2층으로 이루어진 작은 집이었다.

“이곳입니다. 자일 지그하르트님.”

“고맙습니다. 이만 가보세요.”

“네. 그럼 이만.”

예의바르게 고개를 숙인 사용인이 자리를 떠났다.

나는 작은 건물 앞에 선 채 데이지를 바라봤다.

“데이지.”

“네.”

“이제부터 이곳이 너의 집이자, 일터이다.”

데이지가 건물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여전히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지 알 수 없는 무표정으로.

“이곳이 저의 집이라는 건…. 저는 더 이상 72교단의 교인이 아니라는 건가요?”

“그래. 너는 이제 72교단의 교인이 아닌 평범한 여인으로서 이곳에서 살아가게 될 것이다.”

“……그건 명령인가요?”

“아니. 네 오빠의 부탁이다.”

“…오빠의 부탁이요?”

내가 말하는 것보다는 로만이 직접 얘기하는 게 나을 거라 생각했기에 나는 망설임 없이 로만을 소환했다.

부끄러운 것인지 어둠 속에 계속 몸을 숨기고 있는 로만을 향해 내가 말했다.

“……빨리 안 나올래?”

“크흠.”

그늘 속에서 우물쭈물 걸어 나오는 로만.

“오빠…?”

“오, 오랜만이구나. 데이지.”

잠시 멈칫하던 로만은 이내 그녀에게 모든 얘기를 털어놓았다.

내게 했던 부탁부터 어째서 그것이 꽃집이 되었는지까지 전부.

모든 얘기를 들은 데이지가 납득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우선 이 말부터 먼저 해야겠지.”

로만이 긴장한 얼굴로 그녀를 바라봤다.

“고마워.”

“…….”

“죽어서까지 나를 생각해주는 건 오빠 밖에 없네. 나는 오빠한테 아무것도 해주지 못했는데…….”

“괜찮다. 그저 네가 평범하고, 행복하게 살아간다면 나는 더 이상 바랄 것이 없다.”

“그게 오빠의 소원이라면 전력으로 들어줘야지. 고마워, 오빠. 열심히 운영해볼게. 마침 나도 꽃을 키워보고 싶었던 참이야. 오빠가 지어준 이 이름. 꽤 마음에 들었거든.”

데이지의 꽃말은 사랑과 희망.

앞으로 그녀는 이 자그마한 공간에서 사랑과 희망을 피워낼 수 있을까.

그럴 수 있기를 난 진심을 다해 기도한다.

그리고 내가 그렇게 만들 것이다.

‘뢴달에게 말해서 호위를 더 붙여달라고 해야겠군.’

건물을 통째로 인수했기 때문에 돈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이제 그녀는 이곳에서 꽃집 주인으로서 새로운 삶을 살아가게 되겠지.

아직은 미소조차 부드럽게 짓지 못하는 그녀지만, 언젠가 활짝 웃으며 손님들에게 꽃을 건네줄 미래를 상상해본다.

“아, 그리고 교주님.”

로만과 대화를 끝마친 그녀가 나를 불렀다.

내가 그녀를 바라보자, 그녀가 황급히 자신의 짐 보따리가 있는 곳으로 향했다.

대체 뭘 하려는 건지 잠자코 지켜보고 있자 그녀가 이내 작은 화병 하나를 들고 내게 다가왔다.

“이거 받아주세요.”

“이게 뭐지…?”

“꽃이에요.”

아니. 꽃인 건 나도 알고 있다만…….

“제가 드릴 수 있는 건 꽃 밖에 없어서요. 제 감사의 표시입니다.”

“아……, 그래. 고마워.”

그녀가 내게 건네준 꽃은 아네모네.

꽃말은…….

‘당신을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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