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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카데미 흑마술사로 살아남기-170화 (170/180)

170화

공기를 가르며 나아간 창끝이 내 머리통을 스쳐 지나갔다.

고개를 젖히는 게 조금만 늦었더라면 그대로 머리의 구멍이 뚫릴 뻔 했다.

‘이 미친놈이…….’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쉴 틈을 주지 않으려는 것인지 곧장 이어지는 두 번째 공격.

빠르게 강화마법을 두른 뒤, 지축을 박차고 거리를 벌렸다.

투둑.

그리고는 곧장 악시온을 소환했다. 그것을 본 아르스 디에고가 감탄하듯 내뱉었다.

“호오……. 그게 마창 악시온인가? 창천문의 잃어버린 성물을 여기서 보게 될 줄이야.”

뭐, 성물(聖物)…?

그게 뭔…….

“컥!”

다른 생각을 할 틈도 주지 않고 이어서 날아오는 발차기를 맞고 날아갔다.

그 위력이 어찌나 센지 강화마법을 썼음에도 불구하고 장기가 찢어지는 듯한 통증이 느껴졌다.

“비록 반쪽이라도 신격(神格)을 얻었으면서 고작 이 정도야? 너무 실망스러운데…?”

실망은 무슨 놈의 실망이야. 말도 없이 선빵 친 건 본인 아닌가?

그리고 지가 괴물 같이 강한 거면서 객관화도 안 되나?

막말로 이 세계에서 저 인간을 이길 수 있는 인간이 몇 명이나 있을까.

“……음. 그래 생각이 바뀌었다. 여기서 너를 증명하지 못하면 조사께서 너를 위해 남긴 책을 넘기지 않을 것이다.”

갑자기 짜증이 확 났다.

하지만 아는 얘기를 하다가 느닷없이 선빵을 치는 것부터 자기 성에 안 찬다고 선조가 나를 위해 남겨 놓은 물건까지 주지 않는다는 얘기까지.

“그 책이 대체 뭔데요?”

“모른다 나도. 책을 펼쳐 봐도 내 눈에는 하얀 백지로 밖에 보이지 않았으니까. 그러나 이 책이 너에게 있어 무척 귀중한 것이라는 사실 만큼은 알고 있지. 이 책의 이름이 뭐라 그랬더라……. 아르스 알마델……? 뭐, 그런 요상한 이름이었던 걸로 기억…….”

“무슨 수를 써도 상관없죠?”

“뭐?”

“마기든 권능이든 제가 가지고 있는 모든 걸 활용해도 상관없냐고요.”

그제야 만족스럽다는 듯 미소를 짓는 디에고.

“이제야 불이 붙었나 보군. 그래, 뭐든 해봐라.”

“……후회하지 마시죠.”

시온 지그하르트가 나를 위해 남겨 놓았다던 저 책.

그것은 다름 아닌 마신서의 사본 중 하나였다. 이걸 알게 된 이상, 어떻게든 얻어야만 했다.

그리고 솔직히 말해 궁금하기도 했다. 지금 내 수준이 과연 어느 정도인지 말이다.

신격을 얻었다고 하지만 반쪽에 불과하다.

허나 반쪽이어도 신은 신. 반신의 경지에 이른 지금, 마신들의 권능도 지니고 있는 나와 인간의 경지를 넘어 초월자가 된 자가 싸우면 어떤 결과가 나올까.

“후회? 근래 들어본 말들 중에 가장 재미있구나.”

* * *

꼬박 하루를 지새며 싸웠고.

결과부터 말하자면 내 패배였다.

비록 전력을 다한 것은 아니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압도적인 수준 차이를 느꼈다.

지니고 있는 잠재력과 힘은 내 쪽이 훨씬 우월할 지라도 그것을 활용하는 측면에서 비교가 안 됐다.

숙련도. 기술. 노련함. 경험.

이 모든 것들이 부족했다.

‘창천(槍天)’이라는 이명이 붙은 이유를 이번에 제대로 실감했다고 해야 하나.

물론, 내가 전력을 다하지 않았던 것도 있겠지만 그렇게 따지면 아마 아르스 디에고 또한 전력을 다하지 않았을 것이다.

나를 테스트하기 위해 적당히 봐주면서 한다는 것이 티가 났었으니까.

“뭐 그래도 이 정도면 아슬아슬하게 합격이다.”

“……후우. 감사합니다.”

“그럼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수련을 시작하지.”

“……네?”

* * *

하루가 한 달.

아니 1년처럼 느껴지는 시간들이었다.

초월자인 그가 직접 만든 독립된 공간.

로키 산맥에 위치해있지만 사실상 분리된 영역이었다.

그가 괜히 초월자라 불리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다시금 실감했다. 그곳에서의 시간은 바깥과는 다르게 흘러갔다. 비유적인 표현 따위가 아니라 말 그대로 ‘다르게’ 흘렀다.

어떻게 그런 사기적인 공간을 만들 수 있었는지에 대해서 물었지만 그저 우연히 얻은 몇 가지 기연 덕분이라는 얘기 밖에 하지 않았고, 이마저도 무한한 것이 아닌 소모성이라는 걸 알아내는 것이 끝이었다.

“내가 폐관수련을 하기 위해 직접 만들어낸 장소지. 아마 다른 초월자들 중에서 이런 장소를 만들 수 있는 건 나밖에 없을 거다. 뭐…… 굳이 이런 장소가 필요하지도 않을 테지만.”

허나 어쨌든 그곳은 내게 있어 앞으로의 계획을 크게 앞당길 수 있는 기연(奇緣) 집합체와 다른 없는 공간이었다.

내가 지닌 그릇과 내가 지닌 힘에 비해 다루는 능력이 너무나도 보잘 것 없던 숙련도를 극한으로 끌어올릴 수 있는 곳.

나에게 있어 가장 필요한 ‘스승’과 ‘시간’이 전부 존재하는 장소였다.

“너는 지니고 있는 힘에 비해 활용하는 능력이 너무 떨어진다. 굳이 비유를 하자면 어린 아이가 명검을 들고 다니는 꼴이지. 검은 이 세상 그 어떤 것도 벨 수 있을 정도로 예리하고 날카롭지만 정작 그 검의 주인인 아이가 휘두르는 방법을 모른다는 것이다. 그러니 이제부터는 그 힘을 어떻게 사용하는지에 대해 알려주겠다.”

이곳에서의 1년은 바깥에서의 하루에 해당했다.

믿기지 않겠지만 전부 사실이었다.

처음에는 나도 이 사실을 믿지 않았다.

그렇기에 정확히 1년의 시간을 보낸 뒤 확인을 위해 바깥으로 나갔고, 그제야 그의 말이 전부 진실이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쯧. 의심은.”

……어린 시절 만화 속에서만 보던 정신과 시간의 방이랑 다를 게 없는 것이다!

그 사기성을 진즉 알고 있던 나는 절로 굴러들어온 이 기연을 결코 거절할 수 없었다.

이곳에서의 시간이 아무리 힘들어도 결국에는 강해지기 위한 것들이니까.

“스승님! 이 불초 제자의 절을 받아주시옵소서!”

“그래. 이제야 이 몸의 위대함을 좀 알았느냐.”

힘든 건 한 번 뿐 이지만 강한 건 영원하다.

머리가 멍청하면 몸이 고생한다?

아니, 몸이 멍청하면 머리가 고생하는 법.

머리가 고생하지 않게 만들려면 내 몸을 머리보다 강하게 만들면 되는 일이다.

‘죽을 만큼, 아니 그보다 더 힘들지도 모르겠지만 다시는 찾아오지 않을 기회다.’

이후,

나는 아르스 디에고와 정식으로 사제(師弟)의 연을 맺었고,

창천문(槍天門)의 새로운 후계자답게 지옥 같은 훈련을 시작했다.

1년차 때까지는 죽어라 창만 휘둘러댔다.

너무도 지루하고 끔찍한 훈련이었지만 그럼에도 나는 꿋꿋이 해냈다.

아, 오해할까봐 미리 얘기하지만 그것은 내가 성실하고 끈기 있어서가 아닌 우리 훌륭하신 스승님의 매타작 덕분이다.

역시 제자를 교화시키는 데에는 사랑의 매 만큼 훌륭한 게 없다고 했던가.

이 지루한 훈련을 견디다 못해 몇 번 승질을 내었더니 우리 스승님께서 몸소 나를 가르쳐주셨다.

그렇게 몇 번 교육을 받고 나니 나는 군말 없이 이 훈련들을 이행하게 되었고, 3년이 되던 차에 찌르기 지옥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이 우매한 제자야. 모든 무술의 근간(根幹)은 인내와 끈기다. 멍청한 네놈 눈에는 전부 다 의미 없는 행동들로 보여도 이 기본기가 중요하단 말이다. 이놈아.”

그 말대로 매일 같이 가상의 적을 상상하며 창을 찔러대던 나는 그제야 창이란 무엇인지에 대해서 알 것 같았다.

지금까지 내가 휘두르던 창은 그저 무술도 뭣도 아닌 흉내내기에 불과했다.

아니, 그 마저도 좋게 포장해주는 수준이었을 것이다.

경지에 이른 이들이 왜 입에 근본이라는 말을 달고 사는지를 이해했다.

처음에는 그저 꼰대 같은 말이라고 치부했었지만 1만 번을 찌르고 난 뒤 보는 세상과 10만 번을 찌르고 난 뒤 보는 세상이 달랐다.

“조금 더 힘을 빼고, 정교하게 찔러라. 시온 지그하르트 류(流) 창술은 훨씬 더 냉정하고, 차가우며, 날카롭다.”

4년차부터는 창천문의 식(式)과 형(形). 그리고 절기(絶技)와 심법(心法)을 배웠다.

처음 배워보는 형태의 무공이었기에 많은 시행착오를 겪었지만 결국에는 내 것으로 만들어냈다.

스승의 도움과 완성형의 육체가 없었다면 아마 결코 도달하지 못했을 것이다.

이번에 수련을 하며 새삼 느낀 것은 이 육체의 원주인인 아벨 크로이도 아벨 크로이지만 나 또한 정말 무(武)에 재능이 없다는 것이었다.

그것을 알기에 더욱 노력해야만 했다.

“스스로의 방식으로 내질러라.”

5년차와 6년차는 내가 익힌 것들을 토대로 창술 안에 나를 녹여내는 과정이었다.

내가 가진 이점들이 무엇인지 생각하며 그것을 최대한 살리려고 노력했다.

무한에 가까운 마기와 세계의 법칙을 찬탈하는 권능.

초월자와 비교해도 결코 뒤지지 않을 육체.

그리고 이 세계의 정보들까지.

“마창 악시온. 그 창은 주인의 기운을 양분으로 성장한다. 대충 보아하니 지금까지 그 창이 어떤 물건인지 제대로 알지도 못하고 사용한 것 같더군. 내가 도와주마. 그 창의 진정한 힘을 끌어낼 수 있게끔.”

스승인 아르스 디에고의 말에 의하면 지금까지 내가 사용했던 악시온은 본래 힘의 10분의1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하고 있었다고 한다.

악시온은 본디 자아를 지니고 있는 창으로서 본인 스스로가 주인이 될 자를 고르는데 나는 아직 악시온에게 제대로 된 선택을 받지 않았고, 그로 인해 창 본연의 힘을 제대로 내지 못했다는 얘기다.

그 얘기를 듣고서 악시온의 진정한 선택을 받기 위해 걸린 시간이 정확히 1년이었다.

최대한 시간을 단축시키기 위해서 부단히 노력을 했지만 이 콧대 높은 창은 반신이 된 나로서도 쉽게 성에 차지 않는 듯 했다.

하긴 원 주인이 시온 지그하르트였으니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그래도 결국에는 악시온의 본래의 힘을 끌어내는데 성공했으니 나로서는 정말 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엄청나게 성장한 셈이었다.

사실 얼마나 강해진 것인지조차도 제대로 실감이 안 났다.

그저 10년이 되던 해.

흑마술과 권능을 사용하지 않고도 스승과의 대련에서 1시간 이상을 버틸 수 있게 되었다는 것 정도.

“그동안 고생했다. 이제 마지막 수련이다.”

“후우……. 드디어 이 날이 오는 군요. 그래서 이제 뭘 하면 되는 겁니까?”

“나를 죽여라. 그리고 창천문의 문주가 되어라.”

“……네? 에이 또 장난치지 마세요. 스승님. 매번 뭐만하면 죽여야 된다고 하는 게 한 두 번인줄 압니까?”

이곳에서 행해지는 마지막 수련.

그것은 바로 내 손으로 나를 가르친 스승을 죽이는 것이었다.

일인전승(一人傳承).

말 그대로 한 사람에서 한 사람에게만 전해진다는 뜻이었다.

“그렇지 않으면 네가 죽게 될 것이다.”

여느 때와 같이 농담으로 받아들였던 나였지만 10년이라는 세월을 그와 함께 먹고, 자고, 생활했기에 알 수 있었다.

어째서 그가 자신의 스승과 관련된 얘기는 하지 않았던 것인지.

“설마…….”

그 또한 자신의 스승을 죽이고서 창천문의 문주가 되었던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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