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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카데미 흑마술사로 살아남기-171화 (171/180)

171화

동굴 밖으로 나온 내리쬐는 햇빛을 손으로 가리며 주변을 둘러봤다.

“후……. 이게 얼마 만에 밖이냐.”

이곳 시간으로는 10일 정도가 지났을까.

허나 내가 보낸 시간은 10년이었다.

꼬박 10년을 저 동굴 안에 갇혀있었다는 뜻이다.

“그럼 가보겠습니다. 그동안 감사했습니다, 스승님.”

나는 동굴 쪽을 바라보며 절을 올렸다.

“쩝.”

무심한 양반.

그래도 그간 함께한 정이 있는데 자기 소원을 들어주지 않았다고 삐져서 얼굴조차 내밀지 않는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나는 그를 죽이지 않았다.

그러니까 아직까지는 창천문의 문주가 아닌 계승자 신분인 셈이었다.

아르스 디에고는 여전히 문주인 셈이고. 아마 그가 죽게 되면 내가 자연스레 문주가 되겠지.

허나 이것은 그가 원하는 결말이 아니었다.

웃기지도 않은가? 스승이 세대교체를 위해 제자의 손에 죽음을 맞이하는 것이.

그리고 그것을 아무렇지도 않게 여긴다는 것이.

나는 이 세계에서 살아남기 위해 끈질기게 발버둥쳤는데 정작 이 세계의 초월자라는 사람은 고작 문파를 계승한다는 이유로 자신의 목숨을 허무하게 놓아버렸다.

그 사고방식이 나는 이해가 가지 않는다.

목숨이란 게 그렇게 쉽게 놓아버릴 수 있을 정도로 가치가 없는 것인가? 그렇게 덧없는 것이냐는 말이다.

일인전승이면 일인전승이지.

꼭 자기가 죽고, 제자만 남겨놓아야 할 이유가 있을까?

아마 시온 지그하르트도 결코 그런 걸 바라지는 않았을 것이다.

어쨌든 그러한 이유로 나는 그를 죽이지 않았다.

창천문의 문주? 그딴 거는 안하면 그만이다. 내게 필요한 것은 스승이었지. 문파가 아니었으니까.

그 덕분에 내 스승인 아르스 디에고는 제자의 출가 날 배웅도 해주지 않을 만큼 단단히 삐진 상태였지만 뭘 어쩌겠는가.

“꼽으면 다른 제자 구하던가.”

안 그런가?

“날씨 좋다.”

덕분에 창술도 배웠고, 오러도 다룰 수 있게 되었으며, 마신서의 두 번째 사본까지 얻게 되었다.

‘솔직히 말해서 이제 누구한테도 질 것 같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천재 중의 천재이며, 아카데미 최강의 전투인력인 요한 크루이프 교수에게조차 질 것 같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그러고 보니 새로운 교수로 린 메이지가 온다고 했지?”

아카데미는 이미 개강을 한 상태일 테지만 며칠 늦는다고 해서 문제 될 건 없었다.

혹시 모를 상황을 대비해 프레이에게는 미리 귀띔을 해 놓은 상황이었고.

앞으로 해야 할 일들을 정리하며 산을 내려갔다.

마신숭배자들의 연합인 게티아와의 접선.

이사장 아슈타르와 마신서 레메게톤의 위치.

‘아. 요한 교수님도 한 번 찾아 봬야지.’

* * *

용사파티의 전(前) 마법사.

린 메이지.

그녀는 따분한 표정을 감추지 못한 채 억지로 수업을 진행하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아무리 임시라고 하지만 이번에 자신이 맡게 된 클래스가 'A'가 아닌 ‘S’였기 때문이었다.

제 아무리 아버지의 명령이라고는 하지만 어떻게 자신과 같은 인재가 듣도 보도 못한 S 클래스의 담당으로 편성된단 말인가!

심지어 이곳은 그녀의 모교였다.

재학생 시절에도 그녀는 단 한 번도 A 클래스 이외에 반에 편성된 적이 없던 엘리트였기에 더욱 자존심이 상할 수밖에 없었다.

-어, 어, 언니! 오, 오, 오랜만이여요. 마왕 토벌을 위해 떠나신 이후로…….

-샬럿…? 네가 설마 S 클래스에 배정됐다던 1학년들 중 한 명이니?

-네, 네…….

-아무리 무능한 너라지만 설마하니 A 클래스에도 못 들어갔을 줄이야……. 너는 참 기대를 져버리지 않는구나. 샬럿. 그래, 앞으로도 지금처럼 그렇게 조용히 살려무나. 그리고 당연한 거지만 학교에서는 아는 척 하지 말았으면 한다. 나는 교수고, 너는 일개 학생이니까. 알았지?

-……네.

-쯧. 유서 깊은 메이지 가문의 어디서 저런 천한 게 들어와서는.

더욱 짜증나는 것은 바로 그녀의 여동생인 샬럿 메이지가 소속되어 있다는 점이었다.

자신과는 달리 천박한 핏줄을 이은 멍청한 년과는 같은 공간에서 숨도 쉬기 싫었다.

‘하. 내가 어쩌다 이런 취급을 받게 된 건지……. 그 머저리 같은 용사 새끼랑 엮이고 난 이후부터는 되는 게 없단 말이지. 진짜.’

그녀의 시선이 학생들에게로 향했다.

멍청한 여동생.

칼리고 백작가문의 자제. 생긴 건 꽤 곱상했지만 그래봤자 어차피 무식하게 칼만 휘두르는 놈들이 아닌가.

…하이 엘프. 저 콧대 높은 종족이 왜 여기에 있는지는 알 수가 없었지만 그래봤자 S 클래스 소속인 걸 보니 별 볼일 없는 놈일 것이다.

그리고 평민 한 명과 배경을 알 수 없는 음침한 여자애.

그들을 보고 있자니 절로 한숨이 나왔다.

‘하필 맡아도 이딴 쓰레기들을 가르치게 되다니.’

거기에 한 자리는 벌써 3일째 비어있었다.

살다 살다 아카데미 개강 첫날부터 지금까지 무단으로 결석하는 학생은 처음 본다.

이런 데서 천한 것들의 수준 차이가 드러나는 것이다.

조금이라도 위로 올라가기 위해 발버둥을 쳐도 모자를 판에 수업조차 듣지 않는 학생이라니…….

탁!

교탁 위에 책을 내려놓은 린 메이지가 크게 한숨을 내쉬었다.

“오늘 수업은 여기까지 하도록 하지. 어차피 여기서 더 설명해봤자 너희 수준으로는 이해하지 못할 게 뻔하니……,.”

드르르르륵.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린 메이지의 시선이 문 쪽으로 향했다. 그곳에는 처음 보는 남학생이 자신을 바라보며 공손히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아, 죄송합니다. 강의실이 바뀐 터라 길을 조금 헤맸네요.”

자수정을 연상케 하는 신비한 눈동자.

흑단처럼 짙은 검은 머리칼.

날렵한 턱선.

솔직히 말해 꽤 마음에 드는 얼굴이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저 아이가 지금껏 나타나지 않은 빈자리의 주인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얼굴은 뭐 제법 괜찮게 생겼네.’

허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감상평일 뿐.

린 메이지라는 여인은 본디 예쁘게 말을 하는 법을 알지 못하는 인간이었다.

“대체 넌 누군데 내 수업 도중에 이렇게 함부로 들어오는 거지?”

자일 지그하르트는 공손하게 그녀를 바라보며 인사했다.

“아! 임시로 저희 반을 담당하게 되셨다던 교수님이신가보군요. 안녕하세요, 저는 자일 지그하르트라고 합니다. 개인적인 사정이 있어 며칠 동안 수업에 참석하지를 못 했습니다.”

“하, 개인적인 사정? 지금 고작 그깟 이유 때문에 무단으로 수업을 빠졌다고 얘기하는 건가?”

“……하하, 죄송합니다.”

이때다 싶어서 확실하게 본보기를 보여주려는 린 메이지.

“그래? 미안한데 나는 너 같은 애를 가르칠 마음 없어. 수업이 애들 장난도 아니고 자기 멋대로 오고 싶을 때 오고, 가고 싶을 때 가는 애를 내가 왜 가르쳐야지? 그러니까 지금 당장 나가. 넌 내 수업에 들어로 자격이 없어.”

“……음. 용사 파티의 일원이었던 마법사께서 새로운 교수로 부임하신다길래 꽤 기대했는데 솔직히 좀 실망스럽네요. 이 정도까지 막 나가는 사람이었을 줄이야.”

“…뭐?”

* * *

폐관 수련을 끝난 아르스 디에고가 지친 몸을 이끌고 동굴 밖으로 나왔다.

“쯧. 그 고얀 놈. 결국 끝까지 지 고집을 꺾을 맘은 없던거지. 어휴, 어쩌다 내가 그런 놈을 제자로 거둬가지고 말이야. 이게 다 내 팔자지, 내 팔자야. 아고고. 삭신이야.”

뜨거운 햇빛 아래에서 크게 기지개를 펴는 아르스 디에고.

“몸이 회복되려면 조금 걸리겠구만.”

자신의 제자에게 내려준 마지막 숙제.

그것은 스승인 자신의 목숨을 빼앗는 것이었다.

허나 제자는 스승의 마지막 부탁을 들어주지 않았다. 처음부터 끝까지 지 마음대로 하는 놈.

자유분방한 놈.

영악한 놈.

뭐든 자기가 정한 대로 해야 분이 풀리는 놈이었다.

또 그럴 만한 능력과 재능을 지니고 있었고.

그렇기에 결과적으로 자신은 패배했다.

허나 제자의 고집 덕분에 이 목숨은 유지할 수 있게 되었다.

“……이제야 끝나나 했는데 말이지.”

아르스 디에고가 본인의 두 손을 바라봤다.

굳은살이 덕지덕지 붙어있는 투박한 손.

남들이 보기에는 딱 그 정도로만 보일 것이었다.

그러나 아르스 디에고의 두 눈에는 그렇게 보이지 않았다.

살점과 피로 얼룩진 붉은 손.

문득, 그의 머릿속을 스쳐지나가는 과거의 기억.

-왜 그런 표정을 짓는 것이냐. 너도 알고 있지 않았느냐. 언젠간 이런 날이 올 것이라는 사실을. 그러니 그런 표정 짓지 말거라. 그래야 나 또한 편해지지 않겠느냐. 스승이 가는 날까지 속을 썩이고 싶더냐. 그래, 그렇게 웃는 것이다. 웃어라. 제자야. 그래야……그래야……

-스승님…….

-사…랑한…다.

자신의 손으로 부모와도 같던 자신의 스승을 죽였던 그 날의 기억.

그 날 이후로 단 한 번도 제대로 잠을 자지 못했다.

초월자가 된 이후에도 말이다.

결코 끊을 수 없는 죄악감의 족쇄가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그의 몸을 속박해갔다.

“결국 끝이 날 수 없는 건……. 이 또한 운명일까…….”

그런 상념에 젖어있을 때.

그의 목덜미를 타고 아주 소름끼치는 기운이 느껴졌다.

이 정도 기운은 최소 같은 초월자들을 만났을 때나 느끼는 것이었다.

허나 그들과는 어딘지 모르게 이질감이 든다.

“대체 누가…….”

“드디어 만났군. 초월자라는 놈들은 왜 그렇게 꽁꽁 숨어 있는 것인지 알 수가 없단 말이지.”

“그쪽은 누구지?”

아르스 디에고는 어느새 자신의 눈앞에 모습을 드러낸 사내를 바라봤다.

붉게 물든 눈동자.

마주하는 것만으로도 전신의 솜털이 서게 만드는 오싹오싹한 존재.

“이 몸말인가? 음……. 이름 정도는 괜찮겠지. 소천마(小天魔) 천악천(天惡天)이라고 한다.”

“소천마……. 나는 창천(槍天), 아르스 디에고다.”

그 말을 들은 천악천이 호쾌하게 웃어댔다.

“창천(蒼天)…? 흐하하하하! 이곳에서도 그 오만한 이명을 달고 있는 이가 있었군. 이거 꽤나 그리운 기분이야. 남궁세가의 그 괴팍한 놈이 떠오르는구나.”

“도통 뭔 소리를 하는지 모르겠군, 당신은 누군데 이토록 진한 살기를 내뿜으며 이곳에 온 거지? 대체 목적이 무엇이냐.”

“목적? 그야……. 너를 죽이러 온 게 목적 아니겠느냐. 초월자라 불리는 오만한 이들을 하나, 하나 짓밟아 죽이는 것이 내 목적이다. 이 세계의 강자들을 보면 피가 끓어오르거든. 그대도 그러지 않는가? 인간은 강해지기 위해 만들어졌다. 그렇기에 더욱 남을 짓밟고 더 높은 경지까지 올라가야 하지. 그것이 내가 이 빌어먹을 세계에 온 이유라고 나는 생각한다.”

“이제 보니 정신이 멀쩡하지 않은 사내였군. 마음의 병을 얻은 이가 이만한 힘을 지니고 있다니. 어쩌면 이블보다도 더 위험한 존재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드네.”

소천마 천악천이 입꼬리를 씨익 올렸다.

“…실망시키지 말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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