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아카데미 흑마술사로 살아남기-172화 (172/180)

172화

아, 실수했다.

싸가지 없는 년.

오랜만에 저 재수 없는 면상을 보자니 차오르는 화를 주체할 수가 없었다.

대체 어떻게 복수를 해줘야 상당히 고통스러울까. 여러모로 고민을 해보았지만 이거다! 할 만한 생각들이 떠오르는 게 없었다.

그래도 속은 좀 후련하네.

“다시 한번 말해봐.”

샬럿 만큼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것은 아니지만 이마에 곤두 선 핏줄을 보아하니 상당히 화가 난 것처럼 보였다.

당연하다.

저 년의 병신 같은 성격을 누구보다 잘 파악하고 있는 건 나였으니까.

‘이기적이다’라는 말로도 형용할 수 없는 인간이 린 메이지다.

오로지 본인 밖에 모르는 구제불능의 쓰레기.

자기애적인 성향이 병적으로 강하며, 자신 이외에 모든 이들은 대부분 쓰레기로 보는 사고방식을 지니고 있다.

그것은 자신의 여동생인 린 메이지도 예외가 아닐 테지.

“……솔직히 ‘마도사’라는 칭호를 얻었다고 하길래 나름대로 기대를 했었는데 실제로 보니 제가 예상했던 것보다 더 별로인 거 같더라고요. 실력도 없고, 그렇다고 제자들을 가르치겠다는 의지도 없어 보이고, 아무리 임시 교수라고 하시지만 좀 너무한 거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참나, 별 거지 같은 게……. 야, 너 이름이 뭐라고? 자일 지그하르트? 아……. 그래. 네가 그 영웅의 후예인가 뭔가 하는 애지? 그래서 지금 네 가문의 후광 믿고 그렇게 까불거리는 거니? 말하는 걸 보아하니 내가 누군지는 잘 알고 있는 것 같은데 너 그거 선 넘는 거야. 뒷감당 할 수 있니?”

입술이 미세하게 떨리는 것이 그녀가 얼마나 이 상황에 분노하고 있는지를 여실히 보여주었다.

나의 첫사랑.

정확히 말하면 이 몸의 원주인인 아벨 크로이의 첫사랑이었던 인물이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아벨 크로이라는 인간을 더욱 흑화 시키게 될 인물이기도 하고.

용사 파티에서 아벨 크로이를 그 누구보다 혐오하고, 증오했던 인간이 바로 저 년이었다.

이유? 천박하고, 역겹게 생긴 인간이 자신을 향해 호감을 갖고 있다는 것 하나 때문에.

그게 전부였다.

-역겨우니까 꺼져. 감히 누구한테 호감을 표해? 그 구역질나는 얼굴을 내 앞에 들이 대지마. 불태워 죽여 버리고 싶으니까.

-네가 나를 정말로 사랑한다면 내 눈앞에서 꺼져줘. 그거야 말로 정말 나를 위하는 길이니까? 아, 죽어주면 더 좋고. 굳이 너 같은 게 살아있어야 할까?

“요한 크루이프 교수님이 계셨다면 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을 텐데 말이죠. 애초에 저희는 아직 주 전공을 정하지도 않은 1학년생입니다. 아직 다양한 미래의 가능성을 품고 있죠. 그런데 임시 교수님이라는 분이 학생의 사정도 제대로 듣지 않고, 이러한 처우를 내리시는 것은 불합리하다 생각합니다.”

‘요한’이라는 단어에 그녀의 미간이 일그러졌다.

그녀의 전신을 휘감고 있는 강렬한 마나가 요동친다.

슬슬 입질이 온다.

“……이 내가 요한 크루이프 교수보다 못하다는 건가?”

“적어도 제 생각은 그렇네요. 요한 크루이프 교수님이야 말로 아카데미 최고의 전투인력으로 손꼽히시는 분이니까요. 용사파티의 일원으로서 대단한 마법사라는 건 알지만 전투 능력은 솔직히 요한 교수님보다 떨어지는 게 당연한 거 아닐까요? 요한 교수님은 마법 뿐만 아니라 무예와 무기술에도 능합니다. 그게 그분이 마투사라고 불리는 이유죠.”

“주제도 모르고 아가리를 놀리는구나. 그래. 지그하르트의 꼬맹아. 네놈은 요한과 겨뤄봤다고 했지? 그리고 그 요한이 나보다 강할 거라고 생각한다는 거고.”

“네.”

이마에 핏줄이 곤두 선 그녀가 억지웃음을 지었다.

“……그래, 어디 한 번 보여주마. 요한 크루이프 보다 나 린 메이지가 훨씬 더 강하다는 것을. 네 몸에 똑똑히 새겨주도록 하겠다.”

나 또한 씨익 웃었다.

“좋습니다.”

이미 머리끝까지 화가 난 린 메이지의 눈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오직 이 분노를, 이 수치를, 이 모멸감을 해소해야 된다는 생각 뿐.

그리고 그 대상은 당연히 나였다.

‘그래. 저 미친년의 성격이라면 진짜 나를 죽이려 들지도 모르지. 아니, 이 참에 반병신으로 만들 속셈일수도 있겠군.’

우리는 근처 연무장으로 향했다.

물론, 우리 반 학생들도 함께였다.

안절부절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는 샬럿.

호기심 어린 눈으로 조용히 나를 관찰하는 아리아 발렌타인과 실프.

마지막으로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내가 아닌, 린 메이지를 바라보는 프레이.

내 진정한 힘을 알고 있는 프레이는 당연하게도 린 메이지를 걱정하고 있었다.

촤악!

린 메이지가 공간 전체의 소음을 차단하는 마법을 발동시켰다.

투명한 막이 연무장 전체를 뒤덮었다.

화르르륵!

린 메이지의 전신에서 불꽃처럼 피어오르는 붉은 마력.

“임시교수로서 제자인 너에게 가르침을 주겠다. 스승이 얼마나 위대한 인간인지, 또 네가 얼마나 우매한 생각을 갖고 있는지를 말이다. 이 대련을 양분삼아 다음부터는 그 썩어빠진 사고방식을 고치길 바란다. 지그하르트의 아이야.”

“가르침이라……. 그러면 우리 내기 하나 할까요?”

“내기…? 내기라고? 으하하하하하! 네놈이 정녕 정신이 나간 것…….”

“쫄리십니까?”

“이 개 버러지가 감히…….”

“이 대련에서 제가 지게 된다면 교수님께서 하시는 그 어떤 말씀도 따르겠습니다. 아카데미를 자퇴하라면 자퇴하고, 당신의 시종이 되라면 시종이 되고, 노예가 되라면 노예가 되도록 하죠. 그 무엇을 명령하든 전부 이행하겠습니다. 제 가문의 이름에 걸고 맹세하죠.”

내 얘기를 들은 린 메이지의 눈동자가 탐욕으로 반짝였다.

구미가 당기는 제안일 것이다. 승리를 확신하는 상황에서 말도 안 되는 내기를 제안하는 내가 그저 황금 고블린 정도로만 보였을 테니까.

“……내가 시키는 그 무엇도 따르겠단 얘기인가?”

“예. 맞습니다. 그 무엇이든 하도록 하겠습니다. 설령 그게 누군가의 목숨을 빼앗는 일일지라도요. 허나 만약 제가 이기게 된다면 제 소원 한 가지를 들어주셨으면 합니다.”

“그래. 내 가문의 이름을 걸고 맹세하지.”

‘걸렸다.’

“약속하신 겁니다.”

입꼬리를 주체할 수가 없었다.

자꾸 웃음이 실실 흘러나왔다.

어차피 지금의 나로서는 마음만 먹는다면 어떻게든 그녀를 망가트릴 수 있었다.

이 정도 힘을 지닌 내가 그녀를 망가트리는 건 일도 아니었으니까.

그러나 중요한 건 어떤 식으로 그녀를 절망에 빠트릴 거냐는 얘기다.

저 오만하고 자기애가 강한 나르시스트년을 대체 어떻게 조져야 할까.

어떤 식으로 망가트려야 ‘내가’, 그리고 ‘아벨 크로이’가 만족할 수 있을까.

그것이 관건이었다.

내가 자꾸 히죽이죽 웃어대니 결국 참다 못한 린 메이지가 선공을 가했다.

“타올라라.”

화르르륵!

마땅한 영창도 없이 바닥에서 솟아오르는 불기둥.

어마어마한 열기를 품고 있었지만 딱히 위협적이지는 않았다.

무영창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뻔하고, 너무 느렸으니까.

“전신복합강화(全身複合强化).”

몸을 틀어 가볍게 회피한 뒤, 지면을 박차고 공중으로 뛰어올랐다.

펑!

반동으로 인해 바람이 불었고, 공기를 가르며 나아간 나는 그대로 린 메이지의 면상을 향해 주먹을 뻗었다.

“…….”

쩍!

무엇인가 갈라지는 소리가 들린다.

린 메이지가 펼친 마나 실드가 깨진 것이다. 그것도 단 한 번 주먹을 뻗은 것만으로.

그녀가 경악한 얼굴로 나를 바라본다.

“이, 이게 무슨…….”

참 보기 좋은 얼굴이다. 나만 보기는 아까울 정도로.

그래도 나름 용사파티의 짬이 있는지 당황하지 않고 금세 거리를 벌리는 린 메이지.

마법사의 생명은 거리조절이다.

나나 요한 같은 마투사 계열이 아닌 이상. 근접에서 싸움은 불리할 수밖에 없다.

그렇기에 마법사들은 혹시 모를 상황을 대비하여 마나실드를 익힌다.

자신의 마력을 강도 높은 결계로 치환하여 물리력을 상쇄하는 얇은 막을 만들어내는 것인데 결국에는 자신이 보유한 마력과 마법 수준의 비례하기 때문에 한계 이상의 공격을 받게 되면 이처럼 부서지게 되는 것이다.

“공간폭발(空間爆發).”

펑!

이번에는 나도 좀 놀랐다.

화속성 마법 중에서도 8서클 이상만 사용할 수 있다는 마법.

그것도 단순히 높은 경지에 이르렀다고 사용할 수 있는 것이 아닌, 공간 계열 마법의 응용법을 알아야 사용할 수 있는 절정의 마법이었다.

자신이 지정한 좌표에 공간에 인위적으로 폭발을 일으키는 무지막지한 마법.

콰과과광!

연무장이라는 한정된 공간에서 사용하기에 아주 적합한 마법이었다. 그러나 상대가 좋지 않았다.

“아그니.”

[기다리고 있었다고, 주인!]

상급 정령 그 이상의 힘을 지니게 된 아그니 앞에서는 무용지물일 뿐.

어느덧 청년의 모습을 한 아그니가 동시다발적으로 쏟아지는 불꽃을 전부 집어삼켰다.

[크. 이 불꽃 맛이 상당한데? 더 없어?]

“부, 불의 정령을 다룬다고? 그, 그것도 상급 정령을……? 대체 어떻게! 대체 어떻게 네놈 따위가 불의 정령과 계약을 맺은 거지?”

그녀 또한 불 속성을 타고났기에 불의 정령 아그니가 보이는 듯 했다.

그러나 내가 다룰 수 있는 건 불의 정령 뿐만이 아니다.

“르네. 얼려버려.”

[네. 주인님.]

순식간에 모습을 드러낸 르네가 손짓을 하자 공간 전체에 엄청난 한기가 휘몰아쳤다.

휘이이이잉!

[영구동토(永久凍土).]

연무장 전체가 피부를 찢어버릴 듯 강렬한 한기에 얼어붙었다.

그리고 그것은 린 메이지 또한 마찬가지였다.

자신의 발아래에서 부터 천천히 집어삼키고 있는 한기에 강렬히 저항하고 있었지만 꽤나 힘에 부치는 듯 했다.

“끄으아아아악!!! 이게 대체 무슨 일이야! 어떻게 이만한 정령을 다룰 수 있는 거냐고! 고작 학생 따위가!”

쉴 새 없이 마력을 끌어올리고 있었지만 그녀의 발목에 깃든 한기는 어느새 무릎까지 차올라 있는 상태였다.

“감히…. 감히……. 네놈 따위가! 이 린 메이지님을……!!!”

결국 본인의 전력을 전부 드러내기로 결심한 린 메이지.

메이지 가문의 비전마법중 하나인 ‘홍염(紅焰)의 구’를 발동시켰다.

강제로 강력한 마법을 발동시킨 반동 때문인지 눈과 입에서 핏물이 흘러내렸다.

그리고 그녀의 머리 위에 떠 있는 거대한 불꽃의 구체.

마치 작은 태양을 바라보는 듯 했다.

제자와의 대련이라는 명목 아래 절대 사용할 만한 마법이 아니었다.

그 위력은 가히 천재지변에 버금갈 정도였으니까.

‘아예 눈이 돌아가서 날 죽이려는 거군. 그래. 메이지 가문과 용사파티로서의 업적이 있으니 뒷일 따위 어떻게든 될 거라고 보는 거겠지.’

이글거리는 작은 태양이 나를 향해 다가온다.

“죽어!!!!!”

나는 담담히 선 채 그 광경을 그저 지켜볼 뿐이었다.

솔직히 말해 강력한 마법인 건 맞지만 완성도가 너무 떨어져 크게 위협이 될 정도도 아니었고, 두 번째는…….

“집어삼켜라, 레비아탄.”

꿀꺽.

자신의 비전마법이 허무하게 소멸되었을 때 튀어나올 린 메이지의 허무한 표정이 보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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