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4화
잠에서 깬 요한이 천장을 바라보며 한숨을 쉬었다.
“하아……. 이번에는 또 얼마나 잔거지.”
시계를 보아하니 이틀은 꼬박 잠에 든 것 같았다.
마력이 늘어나면 늘어날수록 잠자는 시간도 길어지고 있다.
“이 빌어먹을 저주…….”
차라리 잘 됐다.
정직을 먹은 이 참에 저주와 관련해서 자료조사를 할 생각이었다.
교수직의 크게 미련을 갖고 있지는 않았지만 S 클래스의 아이들을 배정받고 난 뒤에는 생각이 바뀌었다.
처음으로 받은 제자들은 그에게 있어 새로운 감정을 느끼게끔 해주었다.
누군가를 가르친다는 것이 이런 기분이었을까.
“이럴 줄 알았으면 진즉에 아이들을 가르쳐 볼 걸 그랬군.”
그들이 성장해나가는 것을 지켜보는 것 또한 요한에게는 커다란 즐거움이었다.
대부분의 교수들이 그 강함을 인정하고 있는 천재.
사실상 살로몬 아카데미의 사냥개로 살아온 그였다.
나태의 저주에 걸리고 난 이후부터는 뭐에 홀린 것처럼 전장을 배회했다.
그보다 어린 시절에는 용병으로 살아왔었고. 평생 전쟁터를 전전하며 살아왔다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허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저주를 풀 단서를 찾지 못했다.
신전을 방문해보았지만 고위급 성직자들조차도 그가 가지고 있는 저주가 무엇인지 알지 못했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며 요한은 자신에게 저주를 건 마신의 이름이 무엇인지 알아냈다.
그리고 그 이름을 안 순간, 왜 고위급 성직자들조차 이 저주를 해주하지 못했는지도 알 수 있었다.
7대 죄악 중 ‘나태’를 담당하는 마신.
“벨페고르.”
그가 자신에게 저주를 건 것이다.
이 빌어먹을 저주가 시간이 갈수록 몸을 좀먹고 있었다.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이 좁아지고, 모든 일들을 무의미하게 느껴진다.
무기력하고, 귀찮으며, 의욕이 없다. 그리고 미친 듯이 잠을 자게 된다.
허나 잠을 자면 잘수록 몸 안에 깃든 마력은 폭발적으로 성장한다.
왜 마신이라 불리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었다.
신은 신이라는 얘기다. 그렇다면 그가 원하는 것은 무엇일까.
대체 어떤 목적을 가지고 자신에게 이러한 저주를 건 것일까.
마신과 관련된 문헌들은 이 세계에서 거의 없다시피 했다.
요한조차도 용병시절부터 아카데미의 교수가 된 지금 이 시점까지 이곳저곳을 전전하며 조금씩 찾아낸 게 전부였으니까.
우연히 찾은 문헌에서 7대 죄악을 상징하는 마신들에 대해 알게 되었다.
그리고 그 마신들 중 하나가 자신에게 저주를 건 나태의 마신 벨페고르라는 것도.
그러나 그게 지금까지 얻은 정보의 전부일 분. 그 이상은 어떤 것도 알아내지 못했다.
결국 더 많은 정보를 알게 되려면 흑마술사들과 접촉을 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렇기에 요한은 적극적으로 마신숭배자들을 토벌하며 다녔다.
아카데미 내에서도 교수들이 토벌을 나가는 일은 상당히 빈번했지만 마신숭배자들을 죽이러 가는 것은 별로 없었다.
왜냐하면 대부분의 교수들은 흑마술사를 상대하는 것을 꺼렸기 때문이다.
어찌 보면 당연한 이유. 그들이 지닌 개개인의 무력은 불가해하고, 비합리적이며, 패도적이다.
피나는 노력과 재능으로 하나, 하나 올라가는 자신들과는 다르게 마신을 섬기는 것만으로도, 마신에게 선택받는 것만으로도 커다란 힘을 손에 넣는다.
요한 본인이 그 사실을 가장 잘 알고 있었다. 원래도 자신이 가진 재능이 남들과는 비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나태의 저주를 받고 난 이후에는 현상을 규명할 수 없을 정도로 나날이 마력이 늘어만 갔으니까.
그건 말 그대로 신이 내려준 권능과도 같은 일이었다.
30살이 채 되지 않은 시점에서 요한의 마력양은 이미 10서클 수준에 도달한 상태였으니까.
같은 마법사들이라면 알 것이다. 이게 얼마나 비합리적인 현상인지.
그가 매일 같이 차고 다니는 두 개의 반지.
어마어마한 마나를 억제해주는 아티팩트가 없었다면 그는 일상적인 생활을 하기도 힘들었을 것이다.
또한 요한과 같이 천재적 재능을 지니고 있는 이가 아닌, 평범한 이가 나태의 저주에 걸렸다면 아마 그만한 마력을 다루지 못하고 죽어버렸을 것 또한 명백했다.
어찌됐건 그의 목표 중 가장 우선순위는 바로 살아남는 것이었다.
그렇기에 자신의 몸을 점점 옥죄이는 이 빌어먹을 저주를 해주해야 했다.
그렇지 않으면 머지 않아 자신은 곧 죽게 될 테니까. 그렇게 될 것이라는 것을 본능적으로 깨닫고 있었다.
어쩌면 나태의 마신이라는 작자는 요한이 살기 위해 끝없이 발버둥치고 괴로워하는 것을 보며 낄낄거리다가 마지막에 그의 영혼을 회수하는 것으로 자신의 욕망을 해방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요한에게는 살아남아야만 하는 이유가 있었다.
마도(魔道)의 극의(極意).
아슈타르와 같은 대마도사가 되어,
아니 그 이상의 마법사가 되어 인간을 초월하고, 마법이라는 개념의 끝을 보고 싶었다.
그는 자신이 이 세상에 태어난 이유 자체가 오로지 마도의 극의를 보기 위해서라고 생각했다.
아카데미의 교수가 된 것도, 군말 없이 흑마술사들을 사냥해 나간 것도.
결국에는 저주를 풀고, 마도의 극의를 보기 위해서라고 봐도 무방했다.
또한 아카데미에 남아있다 보면 현 시점에서 마도의 극의를 이룬 초월자를 가장 가까이서 볼 수 있으니까 라는 이유도 있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요한이 모르고 있는 것이 한 가지가 있었으니 살로몬 아카데미의 이사장이자 대마도사라고 불리는 초월자 아슈타르는 인간이 아니라는 점이었다.
그녀의 진짜 정체는 마신.
쾌락과 지혜를 담당하는 지옥의 12번째 마신인 시트리였으니까.
애초에 유희를 위해 준비한 화신체를 사용하며 역할놀이를 하고 있는 것과 다름이 없었다.
본래 지고한 마신인 그녀였기에 초월자가 되는 것 따위는 숨 쉬는 것과 진배없었고.
아이러니하게도 인간 중에서도 손에 꼽히는 재능을 지닌 요한이, 가장 존경하며 자극을 느끼는 초월자는 애초에 인간이 아닌 마신이었던 것.
인간으로서 마도의 극의를 본 게 아닌, 본래부터 초월적 존재였다는 것이다.
이 사실을 요한이 알게 된다면 아마 상당히 실망할 테지만 아직까지는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다.
-상당한 재능을 지니고 있네요. 아마 저와 비슷하거나 혹은 그 이상의 재능이겠죠. 인간의 몸으로 이 정도의 마법을 다룰 수 있다니……. 기대되네요. 10년 뒤에 당신은 어떤 모습일지. 후후.
“후우……. 슬슬 가볼까.”
침대에서 일어난 요한이 마력을 끌어올리며 머릿속으로 계산식을 그렸다.
잠시 후.
그의 눈앞에 공간이 일그러지기 시작하더니 균열이 생겨났다.
공간전이(空間轉移).
목적지는 제국 서쪽에 위치한 작은 마을.
마신숭배자들의 연합, 게티아(GOETIA)의 수많은 아지트들 중 하나였다.
* * *
입구에서 마을을 바라보고 있는 요한이 이내 걸음을 뗀다.
“…이곳인가.”
저 멀리서부터 거대한 마기가 느껴진다.
마을 전체가 마신숭배자들의 소굴이라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었지만 실제로 마주하니 그 위압감은 상상 그 이상이었다.
‘이런 곳들이 제국만이 아닌 대륙 곳곳에 퍼져 있다는 거지. 심지어 규모가 작은 공국은 이미 그들의 꼭두각시가 된 지 오래고…….’
아카데미 내부에도 이놈들의 끄나풀들이 얼마나 들어와 있을지 가늠이 안 됐다.
허나 지금은 적으로서 온 게 아니었다.
만약 그런 목적이었다면 마을에 들어서기 직전 이미 대규모 마법으로 마을을 초토화시켜 버렸을 것이다.
뭐, 그렇게 쉽게 당해주지는 않을 테지만.
요한이 이곳에 온 목적은 간단했다.
과거, 우연히 토벌하러 간 흑마술사 교단에서 게티아에 관련된 정보를 입수했고 그들의 말단과 접촉한 결과 요한이 지닌 저주를 풀 수 있다는 얘기를 들었다.
물론. 그 말 자체가 거짓일 가능성도 있고, 애초에 흑마술사라는 놈들 자체를 신뢰하지 않는 요한이었지만 그럼에도 이곳에 온 것은 지푸라기라도 잡고자 하는 심정이었다.
그를 초대한 것 자체가 함정일 가능성도 있지만 그래도 저들이라면 저주를 해주하는데 필요한 아주 조금의 정보라도 얻어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그런 심정.
그만큼 지금 요한에게는 아주 작은 정보 하나라도 간절한 상황이었다.
벌써 대륙 곳곳을 꽤 돌아다녔지만 아직까지 해주와 관련하여 이렇다 할 정보를 얻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이곳에서도 얻지 못한다면 역시 남은 건…….’
그쪽은 최후의 수단이었다.
신분이 신분이기도 하고, 여러모로 풀어야 될 매듭이 있었기에…….
마지막에 마지막으로 남겨둔 것이다.
“어서 오십시오. 그 유명하신 학살의 마법사님을 뵙게 되다니 이것 참 영광입니다.”
“……인사치레는 됐으니 안내나 하시죠.”
“아, 예예.”
말단 흑마술사의 안내를 받아 마을 깊숙이 향하는 요한.
낡고 허름한 집들이 줄지어 서 있었는데 창문 사이로 불쾌한 시선들이 느껴졌다.
‘숫자가 꽤 되는 군. 저들도 다 흑마술사들이겠지.’
느껴지는 마기는 크게 보잘 것 없었지만 흑마술이라는 것 자체가 까다로웠기 경계할 필요성은 있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요한 본인이 상당히 많은 흑마술사들을 상대해보았다는 것.
경험만큼은 이단심문관들과 비교해도 절대 밀리지 않을 수준이었다.
마을 안쪽에 위치한 가장 커다란 집.
딱 봐도 이곳이 우두머리가 있는 장소로 보였다.
“들어가시지요.”
안내역을 맡은 흑마술사는 문 옆에 선 채 요한이 들어가기를 기다릴 뿐이었다.
끼이익.
문을 열고 들어가자 검은 로브를 뒤집어 쓴 한 사내가 책상에 앉아있었다.
“만나서 반갑군. 요한 크루이프.”
“용건만 간단히 하지. 그래서 내게 깃든 저주를 해주할 방법을 알고 있나?”
“성격이 급한 친구군 그래. 뭐, 좋아. 당신에게 깃든 저주. 나태의 마신 벨페고르님의 것이라고 했나?”
“그렇다.”
“우리들 입장에서는 엄청난 가호를 받은 셈인데……. 그걸 굳이 해주해야 하는 건가?”
“쓸데없는 소리는 집어치우고 대답부터 하지 그래.”
“쯧…. 그래, 가능하다.”
요한의 눈이 서서히 커졌다.
“……가능하단 말인가?”
“그래. 칠죄종의 마신이 직접 건 저주이기에 당사자인 벨페고르님께서 직접 해주하지 않는 이상 어렵겠지만……. 서열 한 자리대의 최상위 마신들의 힘을 빌린다면 가능하겠지.”
“물론 아무런 대가도 바라지 않고 공짜로 해주지는 않을 테지. 바라는 게 뭐지?”
“이야기가 빨라서 좋군. 네 저주를 해주해 줄 테니 우리 연합에 들어와라. 요한 크루이프.”
“나보고 마신숭배자가 되란 말인가?”
“그렇다. 우리와 함께 하는 것이다. 이 썩어빠진 세상을 변화시키는 것. 그것이 우리의 목표다.”
잠시 고민하던 요한이 물었다.
“그 외에 선택지는 없는가?”
“없다. 애초에 최상위 마신들의 힘을 다룰 수 있는 분들이 한낱 연합원을 위해 힘을 써주실 것 같은가? 네가 우리와 함께한다는 조건이 있기에 그분들의 힘을 빌릴 기회라도 얻는 것이니 영광인줄 알아라.”
피식.
요한이 저도 모르게 입꼬리를 올렸다.
“뭐가 웃기지?”
“저주를 풀기 위해 또 다른 마신을 섬기라고 하는 것이, 독을 해독하기 위해 새로운 독을 집어삼키라는 것과 무엇이 다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