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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카데미 흑마술사로 살아남기-175화 (175/180)

175화

오랫동안 내 몸을 좀먹던 독을 해독하기 위해 또 다른 독을 마시라는 얘기.

결국 조삼모사(朝三暮四)가 아닌가.

힘을 얻는 건 좋다. 허나 어디까지나 자신의 능력으로, 자신의 힘으로, 나 스스로 개척해나가고 싶은 것이다.

누군가에게 속박당하는 것이 아니라.

그렇기에 저주에서 벗어나고 싶었던 것인데, 그걸 위해 새로운 마신을 숭배하는 것은 결국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는 것과 다름이 없었다.

요한은 이제 더 이상 그 누구에게도 속박당한 채 살고 싶지 않았다.

본인만의 힘으로 자유로이 날아서 마법의 극의(極意)를 보고 싶다.

‘그래. 방법이 아예 없는 것도 아니고, 결국에는 마지막 남은 수단을 사용해야겠군.’

오히려 마지막 남은 방법이 더욱 확실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상 가장 마신에 가까운 존재가 지근거리에 있었으니.

“어차피 이 세상은 지옥으로 변모할 것이다. 우리가 그렇게 만들 거니까. 라파엘의 개들, 제국의 머저리들이라고 다를 거 같은가? 너희들이 아무리 발버둥 친다 한들 이미 대륙 전역은 우리의 영역이 되었다.”

“……그거야 아직 모르는 일이지. 너희들이 파악하고 있는 게 정말 이 세상의 전부라고 생각하나? 이 세상에는 너희들이 계산하지 못한 변수들이 차고 넘친다. 그렇기에 삶이 재밌는 것이지.”

“아쉽게 됐군. 너라면 우리를 이해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말이지.”

“마찬가지다. 이번에야 말로 지긋지긋한 저주를 해주할 수 있을 줄 알았건만 결국 제자리걸음이군. 협상은 결렬이다.”

검은 로브를 입은 사내의 전신에서 짙은 살기가 서서히 뿜어져 나왔다.

당연하게도 이 상황에서 요한을 살려 보낼 만큼 친절한 이들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대륙 곳곳에서 모습을 드러내고, 그 활동범위를 넓히며 세력을 키우고 있다고는 하지만 아직은 비밀결사와 같은 형태를 표방하고 있다.

그렇기에 자신들의 아지트 중 하나가 노출됐으니 요한을 살려 보낼 이유는 더더욱 없었다.

또한 이런 사태가 있을 거라는 것도 이미 예견된 상황.

“공간지배(空間支配).”

그러나 그것은 요한 또한 마찬가지였다.

마나를 억제하고 있던 반지 두 개를 손에서 빼냈다.

가공할만한 마력이 사방을 뒤덮는다.

맞은편에 있던 검은 로브의 사내도 지금껏 느껴보지 못한 압도적인 기운의 몸을 움츠린다.

‘이, 이 정도 마력을 지니고 있었다고? 이게 정녕 인간의 마력이란 말인가?’

본래 지니고 있던 마력도 가히 드래곤과 비교해도 밀리지 않을 정도였지만 정직 이후 집에서 칩거생활을 하는 동안 나태의 저주로 인해 훨씬 더 많은 마력을 얻게 된 요한이었다.

“나의 아버지, 데카라비아이시여!”

검은 로브의 사내가 마기를 끌어올렸다.

그의 정체는 서열 69위이며, 식물과 광물을 상징하는 마신 데카라비아의 사도였다.

바닥에 새겨진 오망성.

마을 전체를 아우를 정도의 크기였다.

그의 외침과 동시에 사방에서 마기가 느껴졌다.

처음 마을에 들어설 때 보았던 시선들.

줄지어서 있는 집안에 있던 흑마술사들이 모두 마기를 흩뿌리고 있었다.

거대한 마법진을 향해서.

“크아아아아악!!! 힘이 들어온다!!! 강렬한 힘이!!!”

이 마을의 책임자이자, 연합 간부 최말석에 소속된 사내. 비록 간부들 중에서는 그리 좋지 않은 평가를 받는 인물이었지만 객관적인 힘의 그릇은 괴물이라 봐도 무망했다.

더군다나 지금처럼 다른 흑마술사들의 마기와 마을 전체에 새겨진 마법진의 힘까지 받은 상황에서는…….

“아아──!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것 같은 이 기분……. 이것이 아버지가 지닌 진정한 힘의 일부분 밖에 되지 않는다는 것인가……. 그야 말로 전지전능(全知全能)하구나.”

부분마신화(部分魔神化).

마신강림(魔神降臨)과 비슷한 종류의 것이지만 지금의 그가 처한 상황과는 조금 결이 다른 것이었다.

현재의 그는 압도적인 마기와 권능을 통해 자신의 근간이 되는 마신의 힘을 일부분 빌려와 몸에 받아들인 것.

그 결과, 그가 추앙하는 마신과 비슷한 형태로 진화하게 된 것이다.

마신의 일부분을 흉내 내는 것이라고 볼 수 있었다.

“키야아아아아악!!”

흡사 별과 같은 형태가 되어버린 검은 로브의 사내.

더 이상 인간이라고는 볼 수 없는 외형이었다.

검은 별.

이것 이외에 그를 표현할 방법이 있을까?

윗부분에는 커다란 눈동자가 달려있었는데 힘이 강해질수록 그것이 빠르게 깜박거렸다.

그 비명소리는 이 세상의 것이 아니었다.

끔찍한 포효가 사방에 퍼지자 식물들이 생기를 잃고 죽어가기 시작했다. 또한 집안 곳곳에 있던 흑마술사들은 그대로 핏덩어리가 되어 사라졌다.

인간의 모습이 아닌 살점과 장기가 한데 뒤섞인 듯 끔찍한 모습이었다.

처음에는 마을 전체에 새겨진 오망성의 마법진을 발동시키기 위해 마기를 건넨 것이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자신들의 의지와는 일절 상관없이 마기를 소모하게 된 것이다.

이미 한계치 이상의 마기를 끌어주었음에도 불구하고 소모되는 마기는 멈출 생각을 하지 않았고, 그 결과 모든 생명력까지 빨려 지금과 같은 형태가 된 것.

마신의 힘을 일부분 빌려오는 것만으로도 이 정도 희생이 따른 것이었다.

“죽어라.”

검게 물든 별이 허공 위로 날아올랐다.

손가락으로 보이는 검은 형체가 움직이자 직선 방향에 있던 모든 것이 소멸했다.

콰과광!

그 모습을 본 요한은 자신이 예상했던 것보다 더욱 뛰어난 파괴력에 뒷덜미에 소름이 돋는 것을 느꼈다.

그러나 질 것 같다는 생각은 결코 들지 않았다.

이미 아스모데우스와 이블화 된 자일 지그하르트를 만난 적이 있던 그였다.

그 뿐 만일까.

인간의 한계를 넘어 초월자가 된 이들과도 안면이 있다.

그들 모두가 눈앞에 있는 저 불가해한 별보다 강할까?

대답은 아니었다.

초월자들을 마주했을 때는 결코 넘을 수 없는 산을 들여다보는 것 같은 기분이었고.

이블화가 된 자일 지그하르트와 마신 아스모데우스를 마주했을 때는 그 끝이 보이지 않는 심해를 들여다보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그러나 눈앞에 존재를 마주했을 때는 위기감은 느낄지언정 두려움을 느끼지는 않았다.

“칼날비.”

웅혼한 마력이 깃든 외침.

동시에 벌어지는 현상의 변화.

요한이 지배하고 있는 공간은 이 마을 전체.

즉, 이 마을 전체가 요한의 손아귀 안에 있다는 것과 다름이 없었다.

이 넓은 공간의 유일한 지배자는 요한 크루이프 단 한 명.

날카로운 마력으로 벼려진 수 천 개의 검들이 상공 위에 떠오른다.

후웅!

요한의 손짓 한 번과 동시에 수 천 개의 검들이 일제히 낙하한다.

콰과광!!!

“끄아아아아악!”

“막아! 막아라!”

“살려줘어어어어!!!”

압도적인 마법에 의해 살아남은 흑마술사들마저 전부 고깃덩어리가 되어버렸다.

작은 마을 하나가 단 한 명의 마법에 의해 순식간에 폐허가 되어버린 것이다.

“……대단하군. 마법으로만 이 정도의 경지에 올랐다는 것이 믿기지가 않을 정도다. 대체 네놈의 정체는 무엇이지. 요한 크루이프? 어떻게 한낱 인간이 이 정도 마법을 부리는 것이냐!”

“신에게 의지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것들.”

“대단한 건 인정하마. 허나 인간으로서의 한계는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지금 바로 증명해주마!”

일직선의 광선.

아주 원초적이고 간단한 기술이었다.

흑마술 중에서도 가장 기초적인 흑마술.

마기를 한 곳에 응축해서 입자의 형태로 발사하는 것이었지만 그 위력은 사용자에 따라 천차만별이었다.

지금처럼 아주, 아주 강력한 마기를 지니고 있는 이가 사용한다면 더욱 폭발적인 위력을 낼 수 있는.

“압축(壓縮).”

말도 안 되는 일이 벌어졌다.

그 짧은 사이에 요한이 마법을 사용하여 응축된 마기를 또 한 번 압축해버린 것. 허나 그건 시작에 불과했다.

“공명(共鳴).”

압축된 마기와 요한의 마력이 반응하기 시작했고.

“소멸(消滅).”

이내 되돌아간 에너지가 검은 별의 신체에 닿는 순간, 그의 전신이 흔적도 없이 소멸했다.

너무도 허무한 결과.

공간을 지배하는 마법자체가 얼마나 비합리적인 결과를 도출해낼 수 있는지 여실히 보여주는 광경이었다.

이것은 마법이라기보다는 권능이라는 말이 어울리는 결과.

그러나 요한에게는 지극히 당연한 결과였다.

자신이 언제나 만들어내는 것이었고, 본래 이러한 원천 속성을 지니고 태어났기에 자신의 마법은 본래 비합리적이고, 불합리적이며, 이지를 초월한 것이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마력을 거둔 요한이 차갑게 가라앉은 눈빛으로 주변을 둘러봤다.

칼날비에 의해 폐허가 된 마을.

탐지를 해보아도 생존자는 존재하지 않았다.

비록 마신숭배자들이라고는 하지만 수 백 명의 인간들을 순식간에 죽여 버린 것이다.

그러나 그 어떤 죄책감도 들지 않았다. 이미 그에게 그런 류의 감정은 사라진지 오래였으니까.

“맥 빠지는 군.”

몇 가지 정보를 얻기는 했지만 이러한 광경을 보면 힘이 빠지는 것은 어쩔 수가 없었다.

“그럼 가볼까…….”

다시 공간을 열어 자리를 옮기려는 순간.

상당히 떨어진 거리에서 인기척이 느껴졌다.

‘…생존자는 분명 한 명도 없었는데 어디서 튀어 나온 거지?’

말 그대로 튀어나왔다.

방금까지 공간 전체를 지배하고 있던 요한이 다른 인간의 기척을 느끼지 못했을 리가 없었으니까. 또한 상대도 요한을 파악하고 있다는 사실이 느껴졌다.

저벅. 저벅.

요한은 다시 마력을 끌어올리며, 전신의 강화된 결계마법을 겹겹이 둘렀다.

혹시 모를 상황을 대비하기 위해 자연스럽게 습관처럼 행동한 것.

저벅. 저벅.

걸음이 점차 가까워진다.

잠시 후.

자신에게 다가오고 있는 상대를 발견한 순간, 요한의 얼굴이 분노로 일그러졌다.

“……당신이 왜 이곳에 있는 거지?”

“그건 내가 묻고 싶은 말인데 말이지. 요한 크루이프 교수.”

평온한 어조.

여유가 넘치는 표정.

요한도 익히 알고 있는 중년의 사내.

“그 사건 이후로 어디로 사라졌나 했더니 이런 곳에서 몸을 숨기고 있던 건가? 역시 당신도 게티아의 끄나풀 중 한 명이었군.”

“끄나풀이라……. 그렇게 말하니 어감이 좋지 않지 않은가. 그들과 나는 그저 협력관계라고 해두지. 나는 내 목적을 위해, 그들은 그들의 목적을 위해 뜻이 맞아 잠시 손을 잡고 있을 뿐이라네.”

살로몬 아카데미 기사학부의 학부장.

검귀(劍鬼) 맥도웰.

그가 지금 요한을 바라보고 서있었다.

예전과 달라진 게 있었다면 지금 그의 눈동자에는 귀기(鬼氣)가 흐르고 있다는 것.

어쩌면 이 모습이 진짜 그의 모습에 가까울 지도 모르겠다고 요한은 생각했다.

자신이 알던 그의 모습 역시 가짜 가면이 만들어낸 모습일 테니까.

폐허가 된 마을을 둘러본 맥도웰의 시선이 요한에게로 향했다.

“새로운 제물을 구하기 위해서 잠시 들린 곳에서 그대를 볼 줄이야……. 이 또한 기회일지도 모르겠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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