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6화
‘기회……?’
기회라는 그의 말이 그 어떤 말보다 거슬렸다.
처음 그를 만났을 때부터 느꼈던 위화감.
무어라 딱 정의 내려 말할 수는 없었지만, 본능적인 직감에 가까웠다.
살아남기 위해, 살아가기 위해 대륙 곳곳을 전전하며 거칠고 끈질기게 잡초처럼 버텨왔던 육감이 발휘된 것이었다.
사람의 감정을 읽는 것은 크게 어렵지 않다고 자부하던 요한이다.
그런 그가 맥도웰의 감정은 전혀 읽을 수 없었다.
그것이 오히려 그의 본능이 옳았음을 증명한다고 요한은 굳게 믿었다. 딱히 이유는 없다.
마땅한 이유는 없다. 그럴싸한 이유도 없다.
그저 꺼림직하다. 그게 전부였다. 저 가증스런 웃음이, 저 위화감 넘치는 미소가, 억지로 만들어낸 친절함이 역겨웠다.
누군가 이 애기를 들으면 요한보고 미친 사람이냐고 얘기할 수도 있을 것이다.
아무런 증거도 없이 그저 자신의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뭔가 꺼림직하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일방적인 매도를 하는 거니까.
그러나 요한은 그 사실을 알고 있었기에 겉으로는 티를 내지 않았다.
만약 티를 냈다면 요한은 정말 자신만의 선입견에 사로잡힌 편협한 인간이 되었을지도 모르지만, 속으로 생각하고 있다가 그것이 진실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면 역시 이번에도 자신의 본능이 옳았음을 확인하게 되는 것 뿐일 것이다.
다만 그 시간이 너무 오래 걸렸다는 게 문제였다.
그리고 그로 인해 자신이 아끼는 제자들이 피해를 볼 뻔 했다는 것도.
그럴 바에는 차라리 편협하고, 선입견에 사로잡힌 인간이 되는 게 나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 처음 내가 당신을 만났을 때 느꼈던 그 위화감의 정체는…….’
“위선(僞善)이었군.”
“무엇을 말하는 것인가?”
어깨를 으쓱하는 맥도웰.
마치 그게 무슨 말이냐는 듯한 태도였다.
“……그저 혼잣말이다. 당신이라는 인간은 처음 봤을 때 느꼈던 내 감정의 정체가 무엇인지 이제야 좀 알 것 같았거든.”
“흐음……. 요한 크루이프. 그러보면 당신은 처음 저를 봤을 때부터 별로 고깝게 보는 눈치는 아니었죠. 그렇습니다. 생각해보니 그때도 당신은 제게 미약하지만 적의를 지니고 있었어요. 당시에는 그저 뛰어난 재능을 지닌 마법사가 혈기를 주체 못해 그런다고 생각했었지만 지금 보니 그런 이유가 아니었나 보군요?”
“그래. 당신은 그곳에 있던 다른 인간들과 다르게 위화감이 느껴졌거든. 그 가증스런 미소로 포장하고 있지만 탐욕으로 번들거리는 그 추악한 눈빛은 가려지지 않더라고.”
“하하. 제 나름대로 가면을 쓴다고 했건만 그게 요한, 당신의 눈에는 전부 다 보였나 보군요? 이거 참 대단합니다. 괜히 천재라고 불리는 게 아니에요. 당신 정도의 재능을 지닌 이라면 그 대단하신 이사장님께서 그렇게 아끼고 감싸는 게 이해가 갈 듯 합니다. 그쵸. 천재라는 것들은……. 그 정도 재능이라면 말이죠…….”
이상했다.
전보다 상태가 더 좋아 보이지 않는다.
위화감은 여전히 느껴지고, 겉으로도 멀쩡하다.
아니, 오히려 그가 지닌 힘의 한계가 어디인지는 요한조차도 제대로 알 수가 없었다.
본래도 자신의 힘을 숨기는 데에는 상당히 능한 인간이었으니까.
그러나 그 모든 것들을 제쳐두고도 이상한 점이 하나 있다.
‘표정.’
감정의 동요?
뭐랄까. 자신의 감정, 자신의 힘, 자신과 관련된 모든 것들을 숨기고 통제하는 데에는 일가견이 있는 그가 지금 이 순간 보여주는 감정의 동요는 이제 막 검을 잡은 초보 검사처럼 불규칙했다.
더 이상 자신에 관해서 숨기지 않아도 된다는 걸 알기에 그러는 걸까?
아니.
그렇다고 하기에는 너무 이질적이다.
마치 스스로의 감정이 통제가 되지 않는 듯한…….
“넌 모르겠지. 범재의 심정을…….”
“!”
끓어오르는 듯한 살기가 스멀스멀 피어오르더니 날카롭게 솟구쳤다.
수많은 인간들과 괴물들을 상대한 요한조차도 일순 움찔하게 만들 정도로 농도 짙은 살기.
‘이 인간이 이렇게까지 살기를 드러내다니……. 그간 대체 무슨 일이 있던 거지.’
“아마 영원히 알지 못할 것이다. 재능이라는 바다를 지니고 있는 너로서는. 아무리 노력하고, 또 노력해도 결코 올라설 수 없는 벽에 부딪치는 무력감을.”
“자신의 한계에 부딪혀 자포자기한 패배자들의 말을 그대로 따라 뱉는군. 맥도웰 학장. 아니, 검귀(劍鬼).”
“하하하하하! 으하하하하하하하!”
돌연, 미친 듯이 광소를 퍼부어대는 맥도웰.
요한은 이 대화의 흐름과 그의 감정의 동요를 결코 따라갈 수 없어 당황하고 있었다.
그의 웃음에 깃든 수 십 가지의 감정들. 그리고 번들거리는 광기 어린 눈빛.
이제는 인정해야 했다. 저건 그가 알고 있던, 그가 조금이라도 얻어낸 정보 속 인물과는 완전히 다른 인간이라는 것을.
“그래. 네 말이 맞다. 내가 방금 내뱉은 말들은 한계에 부딪힌 패배자들이나 하는 말이지. 그러니 너는 영영 모를 거라는 것이다. 너나 이사장과 같은 인간의 탈을 뒤집어쓴 천재들은, 하해(河海)와도 같은 재능을 지닌 너희들은 평생 느껴볼 리 없을 테니까.”
분노. 슬픔. 무력감. 상실감. 패배감. 증오 등.
온갖 종류의 감정들이 느껴지는 어조.
“내가 왜 검귀라고 불렸는지 아나?”
“…….”
“재능의 벽을 뚫기 위해, 내가 가진 한계를 넘어서기 위해, 검의 모든 것을 받친 귀신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 모습을 본 이들이 경외심을 담아 내게 붙여준 이명이지. 이것이 단순 비유일 거라고 생각하는가?”
“…….”
“나 같은 범재(凡才)가 너와 같은 괴물들을 넘어서기 위해서는, 아니 너희들이 바라보는 그 시야에 들어서기 위해서는 뼈를 깎는 노력이 필요하다고들 하지. 허나 그것은 틀린 말이다. 그것은 단순히 노력으로 되는 영역이 아니야. 모든 것을 내버리고, 포기하고, 희생하고도, 물고 늘어질 수 있는 집착. 그것이 원동력이다. 그리고 나는 그걸 해냈다.”
호기심 때문일까. 아니면 동정? 그것도 아니면 어떤 실마리를 잡을 수 있을 것이라고 판단한 걸까?
모르겠다.
나도 잘 모르겠다.
허나 어째서인지 그의 이야기를 듣는 것을 멈출 수가 없었다.
번들거리는 눈빛으로 요한을 바라보던 맥도웰이 섬뜩하게 웃었다.
“검에 미친 악귀(惡鬼)가 되어 나를 무시하던 스승과 사형들을 전부 죽였지. 그때 처음으로 알았다. 내가 가진 재능이 무엇인지를 말이야.”
“그게 무엇이지?”
“죽이고, 내 걸로 만드는 거다.”
요한은 그 말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검의 재능이 없는 사람이, 죽이는 걸 잘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 아닌가?
“검을 잘 휘두르는 것과 죽이는 것. 어찌 보면 같은 선상에 놓여있는 것처럼 보이겠지. 허나 그건 아주 일차원적인 생각에 불과하다. 검을 빼어나게 잘 휘두르는 자도 죽인다는 행위에 재능이 없을 수도 있는 것이지. 그러나 나는 그 반대다. 검을 빼어나게 잘 휘두르지 못하지만 누군가를 죽이는 것에는 뛰어난 재능을 지니고 있었지.”
“…….”
“그래서 죽였다. 그리고 가슴을 파내 심장을 씹어 삼켰지. 아드득. 아드득. 나보다 한 수 위의 실력을 지닌 사형의 심장을 처음 먹었을 때 그 감각은 아직도 잊지 못한다……. 그의 정수가, 그의 노력이, 그의 재능들이 내 안에 흘러들어오는 듯한 기분이었지. 그게 내 착각이라 해도 좋다. 나는 그로서 강해졌으니까.”
“…미친놈.”
단단히 미친놈이다.
제정신이 아니다. 그러니까 저 미친 인간이 지닌 검에 대한 집착은 이 아카데미의 오기 전부터 가지고 있었다는 것이다.
내가 듣기로 저 인간은 대륙 변방에 위치한 소수민족 출신.
거기서부터 그는 인간의 탈을 쓴 악귀였다는 얘기가 된다.
“죽이고, 빼앗아 내 걸로 만들었다. 이제 알겠나? 너 같은 괴물들은 결코 나와 같은 범재들을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을?”
“대체 너 같은 미치광이가 어떻게 아카데미에 들어올 수 있게 된 거지?”
이야기를 들으면 들을수록 더욱 의아했다.
저 정도의 광기를 지닌 검귀를 이사장은 어째서 이 살로몬 아카데미에 교수, 나아가 학장으로 임명한 것일까.
“푸흐흐. 나는 더 강해지기 위해 대륙 곳곳을 떠돌았다. 그리고 내가 죽인 검사들의 심장을 파먹었지. 아마 멍청한 내 형님은 모를 것이다. 자신의 아우가 어떠한 삶을 삶아왔는지를….”
그러고 보면 맥도웰 학장과 맥스웰 학장은 형제관계였다.
특이하게도 둘은 전혀 닮은 곳이 없었고, 대외적으로도 상당히 사이가 좋지 않다고 알려져 있었다.
외형이나 고압적인 성격 때문인지 대부분 맥스웰 학장에 대한 안 좋은 얘기가 많았었는데…….
직접 경험해 본 바로는 오히려 소문 때문에 그 사람의 이미지가 망가지고 있었을 뿐.
제법 괜찮은 사람이었다는 걸로 기억한다.
심지어 그 소문들도 본인의 능력이면 충분히 억제할 수 있을 테지만 일부러 놔두는 것을 보면 정치적인 수완마저 상당했다.
“그 마녀……. 그 마녀와의 만남이 내 삶을 바꾸어놨지. 내 마음 속에 꿈틀거리던 욕망에 다시 한 번 불을 붙인 것이 바로 그녀였다. 검귀라는 이명으로 악명을 떨친 나는 대륙 곳곳을 떠돌며 죽이고, 죽이고, 또 죽였다. 그렇게 죽여대니 어느새 이 행위에도 흥이 식더군. 벽을 만난 나는 더이상 강해지지도 않았다. 내가 사람을 죽이는 이유는 강해지기 위해서였건만 더이상 강해지지 않으니 죽일 이유 또한 없어진 것이지.”
“…….”
“나는 확신했다. 이제 더 이상 강해질 수가 없을 것이라고. 내가 만난 벽이, 내 재능과 내 경지의 끝일 거라고. 아니 더욱 솔직하게는 그 이상의 경지가 있다는 것을 납득할 수가 없었다. 보이지도, 느껴지지도 않았으니까. 그때 그 마녀를 만났고, 처음으로 압도적인 패배를 경험했다. 내가 그 어떤 수를 써도 결코 죽일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지. 그녀가 거대한 산이라면, 나는 그 산봉우리를 바라보고 있는 개미에 불과했으니까. 하지만 포기하지 않았다. 내가 잘하는 거라고는 죽이고, 빼앗는 게 전부니까. 저 괴물을 죽이고 내 것으로 만들 수만 있다면 나는 이제 새로운 영역에 도달할 수 있을 거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저 늙은이가 미친 건 확실하지만 그보다 더 대단한 건 집착이었다.
검과 강함에 대한 집착.
어째서 그렇게 되어버린 건지는 알 수 없었으나 그 집착만큼은 인정했다.
그러한 집착이 있어야만 강해질 수 있다는 것을 요한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어찌 보면 그가 지닌 ‘마도(魔道)’에 대한 집착과 크게 다를 바가 없었다.
“그러나 결국 죽이지 못하게 되었고, 이사장의 제안에 따라 그 밑에 들어와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던 것인가?”
맥도웰이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언제든 그녀를 죽여도 된다는 것이 조건이었다. 오로지 그녀를 죽이는 것만이 내 유일한 목표였으니까. 그 마녀가 이렇게 얘기하더군. 그렇게 나를 죽이고 싶다면 더 이상 짐승처럼 살지 말고, 학생들을 가르쳐 보는 게 어떻겠냐고. 그럼 네놈도 새로운 경지에 도달할 수 있을 거라고 말이지.”
“…….”
“사실이었다. 그 마녀의 말대로 누군가를 가르친다는 행위는 나에게도 새로운 경험을 선사했지. 보이지 않는 것들을 보게 되었고, 내 부족함이 무엇인지 깨닫게 되었어. 나는 전보다 더욱 강해졌고, 더욱 높은 경지에 올라갔다. 그러나 강해지면 강해질수록 느껴지는 게 있었지.”
“무엇이지?”
“내가 아무리 강해져도 결코 저 괴물의 발밑에도 닿을 수 없다는 걸 말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