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8화
그것은 기괴한 광경이었다. 평범한 인간, 아니 숙련된 기사와 경지 높은 마법사라도 눈앞에서 이 현상을 목도했다면 결코 이해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인간의 이지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있는 광경이 아니었으니까.
맥도웰이 있던 공간 자체가 잘려나갔다.
마치 종이를 접어 가위를 자른 것처럼 문자 그대로 삭제됐다.
“아쉽군……. 쿨럭.”
살점과 뒤섞인 핏덩이를 토하는 요한.
무리하게 마법을 사용한 대가였다.
허나 아쉬운 건 저 쓰레기 같은 놈이 너무도 쉽게 죽었다는 것.
본인의 죄를 반성하고, 뉘우치지는 못하더라도 최소한 고통스럽게 갔으면 했다.
하지만 초월형 공간마법을 직격으로 맞았은 고통조차 느끼지 못하고 절명했을 것이다.
말 그대로 공간 채로 존재가 소멸된 것과 다름없었다.
“이제 남은 건 역시 그 놈 밖에 없는 건가…….”
제자로 들어온 주제에 사사건건 대형사고만 치는 놈. 어쩌다가 첫 제자로 이런 사고뭉치를 받았을까. 그러나 능력 하나만큼은 인정해야 한다.
이제 그는 단순히 재능 있는 인간 따위가 아닌, 그야말로 반신(半神)의 영역에 들어섰으니까.
‘이제 마신숭배자들의 연합과는 돌이킬 수 없는 강을 건넌 셈이다. 이제부터는 그쪽에서도 나를 철저히 적으로 분류하겠지.’
또한 이번 사건으로 인해 그는 게티아와 완전히 척을 지게 되었다.
요한 본인도 그 사실을 똑똑히 인지하고 있었고, 그렇기에 앞으로는 더욱 적극적으로 그들과 맞설 셈이었다.
비록 요한이 아무리 뛰어난 무력을 지니고 있다 한들 게티아와 같은 거대한 연합체에 홀로 맞서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곳에는 어쩌면 요한보다도 더 강력한 무위를 지닌 괴물들이 득실거릴지도 모르니까.
그렇기에 그 또한 아군을 구할 생각이었다. 홀로 맞서는 것만큼 멍청한 짓도 없다는 걸 알고 있으니까.
자신만큼 강하고, 또 믿을 수 있으며, 많은 사람들을 규합할 수 있는 그런 인재들.
“우선은 돌아가자.”
주변은 이미 폐허라고 부르기도 애매했다.
거의 한바탕 재앙이 들이닥친 수준. 이미 이곳이 마을이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을 만한 흔적이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요한이 펼친 ‘멸화폭우(滅火暴雨)’로 인해 대부분이 잿더미로 변모해버렸기 때문.
공간의 틈을 만들어낸 요한이 그 안으로 들어갔다.
잠시 후.
검은 로브를 걸친 몇 십 명의 무리가 잿더미가 된 자신들의 영역을 바라봤다.
“…….”
* * *
연무장에서 걸어 나오는 린 메이지와 나.
그녀는 내가 준 상급 회복약으로 인해 겉으로 보이는 상처는 전부 깔끔하게 회복된 상태였다.
다만 나와 그녀의 대련을 지켜보던 아이들의 눈빛에는 의아함이 가득했다.
린의 마법으로 인해 도중부터 무슨 일이 생긴 건지 알 수 없게 되었기 때문이다.
저벅. 저벅.
똥 씹은 표정으로 걸어 나오는 린 메이지.
나는 친절한 얼굴로 그녀를 바라보며 미소를 지었다.
“대련의 결과에 대해서 말씀해주셔야죠. 린 메이지 교수님?”
“……크흠.”
쉽사리 입이 떨어지지 않는 모양.
그러나 나는 너그러운 마음으로 그녀의 입이 열리기를 기다렸다.
프레이와 눈이 마주쳤는데 그녀는 또 저질렀냐는 듯 나를 타박하는 눈빛이었다.
린 메이지를 볼 때는 동정 어린 시선마저 느껴졌다.
이곳에 있는 이들 중 가장 나에 대해 잘 아는 그녀였기에 처음부터 이런 결과를 예상했을 것이다.
“교수님?”
“……내가 졌다.”
그 충격적인 발언에 모두가 침묵했다.
아니, 정확히는 입을 열 수가 없었다. 본인들의 귀로 들어도 결코 믿을 수 없는 발언이 아닌가.
상식적으로 생각해보아라.
최연소 마도사의 칭호를 하사받고, 마왕을 토벌한 용사파티의 대마법사가 제 아무리 영웅의 후예라고 불린다고 하지만 이제 갓 아카데미의 들어온 신입생과의 대련에서 졌단다.
그걸 누가 믿을 것인가.
가장 먼저 입을 연 것은 아리아 발렌타인이었다.
평소 입도 잘 열지 않고, 표정 변화도 별로 없던 그녀조차도 놀라 입을 열게 된 것.
“정말 교수님이 패배하셨다는 말입니까?”
“……그래.”
분한 듯 입술을 짓이기며 고개를 끄덕이는 린 메이지.
실프 또한 믿을 수 없다는 얼굴로 힐끔힐끔 내 쪽을 곁눈질하다가 나와 눈이 마주치자 휙 고개를 돌리며 작게 중얼거렸다.
“……그래. 내가 약한 게 아니었다. 저 인간 놈이 괴물 같이 강한 것이지.”
샬럿 메이지의 시선이 내게로 향했다.
온갖 종류의 감정이 뒤섞인 눈빛.
분함과 슬픔.
…결코 믿을 수 없어! 이번에는 또 무슨 술수를 부린 것이냐! 자일 지그하르트!
라는 목소리가 들려오는 듯 했다.
안타깝지만 이미 벌어진 일.
나는 그저 어깨를 으쓱하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샬럿이 자신의 언니인 린 메이지에게 다가가며 다급히 물었다.
그녀의 표정이 뭔가 괴상했는데 당장이라도 울 것 같으면서도, 한 편으로는 기쁜 듯 웃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어, 언니. 괜찮으시죠? 저놈이 또 무슨 술수를 부린 게 틀림없죠?”
“……쯧.”
“그럴 리가 없잖아요. 언니 같은 천재 마법사가 자일 지그하르트한테 질 리가 없잖아요? 그쵸? 언니는 언제나 멋있고, 강하고, 아름답고……. 또 매우 완벼….”
짝!
강렬한 소리와 함께 샬럿의 고개가 격하게 돌아갔다.
잠시 후.
붉게 부풀어 오르는 샬럿의 뺨.
‘오우. 힘이 장난 아닌데?’
“……어, 언니?”
“내가 뭐라고 했지. 샬럿 메이지? 이 아카데미에서는 나를 ‘언니’가 아닌 ‘교수님’이라고 부르라고 하지 않았나? 그런데도 정신 못차리고 계속해서 나를 언니라고 불러대는 거는 타고난 네 지능에 문제인가?”
“……죄, 죄송해요. 저도 모르게 언… 아니 교수님이 너무 걱정돼서.”
“걱정? 네 따위 게 나를 걱정? 하. 웃기지도 않는 군. 샬럿 메이지. 나를 걱정할 시간에 네년의 앞길이나 걱정하는 게 좋을 것이다. 그리고 한 번만 더 이런 일이 발생하게 되면 그때는 손찌검으로 끝나지 않을 거야. 메이지 가문의 이름을 달고 있다면 메이지 가문의 인간답게 굴어라. 더 이상 우리 가문의 이름에 먹칠하지 말고.”
“…….”
“부끄러운 줄 알아라. A 클래스에도 들어가지 못한 버러지가 대체 무슨 낯짝으로 다니는 건지……. 내가 다 수치스럽군.”
“죄송합니다.”
“오늘 수업은 여기까지다.”
그 말을 끝으로 린 메이지는 등을 돌린 채 자리를 빠져 나갔다.
‘자신의 실력에 대한 분풀이를 여동생한테 하고 있군.’
망부석처럼 굳어버린 샬럿.
눈치를 보던 학생들도 하나 둘 자리를 떠났고, 남은 건 나와 프레이 뿐이었다.
샬럿은 복잡미묘한 표정으로 린 메이지가 있던 자리를 바라봤다.
정확히는 그녀의 발자취를 쫓고 있는 거처럼 보였다.
허무? 공허? 분노? 증오?
…모르겠다.
보다 못한 프레이가 조심스레 말을 건넸다.
“샬럿. 괜찮습니까?”
예상과는 달리 샬럿은 미소를 지었다.
애써 웃는 것이었지만 그래도 의외였다.
“……괜찮아. 언니가 저렇게 반응하는 것도 이해해. 언니에 비하면 나는 한참 모자란 걸. 메이지 가문의 장녀로서 내가 부끄러울 법도 하지. 그리고 아카데미 내에서 교수님을 언니라고 부른 것도 내 잘못이고. 전부 다 내가 자초한 일이야. 그러니까 괜찮아.”
“……샬럿.”
“나 먼저 갈게.”
저벅. 저벅.
샬럿 또한 점점 시야에서 사라졌다.
프레이가 걱정 어린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며 물었다.
“샬럿. 괜찮을까요?”
“……괜찮다고 말하면 거짓이겠지. 그래도 어쩌겠어. 본인이 극복해야 될 문젠데. 아마 저 녀석은 우리가 모르는 많은 짐을 떠안고 있을 거야.”
“…….”
“걱정 마. 네 친구는 이런 걸로 무너지지 않을 테니까. 결국 최후의 승자는 샬럿이야.”
물론, 내가 그렇게 만들 거니까.
라는 말은 굳이 하지 않았다. 그녀 또한 내가 뒤에 무슨 말을 하려고 할지 이미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린 메이지가 어떤 인간인지는 이미 알고 있지만 그래도 후회하지는 않으시겠어요?”
“후회? 나는 지금껏 그 쓰레기 같은 놈들에게 복수를 하면서 단 한 번도 후회를 한 적이 없어.”
“…당신이 어떤 선택을 하든 전 언제나 당신을 응원해요. 자일.”
“고마워, 프레이.”
기대해라.
린 메이지.
진짜 복수는 지금부터가 시작이니까.
* * *
침대에 드러누운 요한이 방 천장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린 메이지……. 그 인간이 S 클래스를 담당하고 있다니 참 세상일은 알다가도 모르겠단 말이지.”
그 날 이후로 시간이 흘러 마력과 기력은 전부 회복되었지만 나태의 저주는 더욱 더 악화되고 있었다.
잠자는 시간이 더욱 길어진 것이다.
그렇기에 몇날 며칠을 고민한 요한은 결단을 내렸다.
더 늦기 전에 자일 지그하르트를 찾아가야겠다고.
스승이 제자를 찾아가 무언가 부탁하는 것 자체가 상당히 모양 빠지는 꼴이지만 이번에는 스승으로서 찾아가는 것이 아닌 인간 대 인간으로서, 마법사 대 흑마술사로서 마주하는 것이라고 합리화를 하는 요한이었다.
그러나 그런 요한의 마음을 눈치라도 챈 것인지 누군가 먼저 그의 방문을 두드렸다.
똑똑.
“누구십니까.”
“교수님. 자일 지그하르트 학생이 교수님을 뵙고 싶답니다.”
목소리의 주인은 다름 아닌 그의 조교 무명(無名).
컨셉충이라고 요한이 놀리지만 사실은 그 누구보다 뛰어난 재능과 성실함을 지니고 있는 인물이었다.
그리고 괴짜라고 소문난 요한을 누구보다 잘 따르기도 하고.
처음에는 당황했지만 이내 평정심을 되찾은 요한이 목소리를 다듬고 말했다.
“들어오라고 하세요.”
“네. 들여보내겠습니다.”
끼익.
문이 열리며 자일 지그하르트가 그의 방으로 들어왔다.
무명은 그저 방 안내를 해준 게 전부인 것인지 보이지 않았다.
“오랜만입니다. 교수님.”
“오랜만이네요.”
“…….”
“편한 데 앉으세요.”
대충 의자를 빼서 앉은 자일 지그하르트가 그를 빤히 바라봤다. 그러나 먼저 입을 연 것은 요한이었다.
“이 시간에 따로 보자고 하는 걸 보니 무슨 용무가 있으신가요?”
“아……. 저번에 교수님이 많은 도움을 주셨는데 오히려 저희 때문에 징계를 받게 되어 마음이 편치 않았습니다.”
“괜찮습니다. 자일 군과 프레이 양 때문에 징계를 받게 된 것이 아닌, 순전히 제 의지로 벌인 일들이었으니까요. 그러니 마음 쓰지 않으셔도 됩니다.”
“……감사합니다.”
“……별 말씀을요.”
평소와는 달리 둘 사이의 어색한 기류가 흘렀다.
방 안에 무거운 정적이 흐르고, 양쪽 모두 속으로는 숨 막힐 것 같은 분위기에 괴로워하고 있었다.
‘그래. 계속 고민하고 있어봤자 바뀔 건 없지. 속 시원하게 말을 꺼내자.’
‘대체 뭔 말을 하려길래 저렇게까지 뜸을 들이는 건지 속이 타는 군.’
“교수님.”
“네.”
“혹시 마신 벨페고르를 아십니까?”
그 말을 들은 요한의 눈동자가 서서히 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