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회
신세계
3
장마는 그대로 나흘을 더 끌었다.
이러다가 홍수라도 나는 게 아닌지 사람들의 염려가 커질 즈음이었다. 먹구름은 왔던 날처럼 돌연히 떠났다.
짧지 않은 기간 동안 테사는 공방에 틀어박혀 미뤘던 아공간 정리를 했다. 비가 멎으면 꽤 바빠질 것임을 알았던 탓이다.
예상대로 날이 갠 날을 기점으로 못 보던 유형의 손님들이 공방을 드나들기 시작했다. 해적들이었다.
소금내 섞인 해풍을 두른 시대의 무법자들.
그들은 좋게 말하면 호기심이 넘쳤고, 달리 말하면 제법 귀찮았다. 대부분이 보기 드문 사교성을 지녔는데, 하나같이 사적인 거리를 지키는 데엔 별 관심 없었기 때문이다.
“테사, 텟사 이건 뭐지? 은색으로 반짝이는데.”
“죽은 별의 시체 가루. 미량이라도 들이마시면 바닥에 등 붙이고 자는 건 평생 포기해야 할 거예요. 그리고 반말하지 마.”
“헉 굉장히 멋진 걸 머리맡에 두고 사네!”
“단돈 천만 베리에 드리죠. 헐값입니다.”
“응. 고맙지만 사양할게.”
호기심들도 어찌나 대단한지.
사지도 않을 물건들에 대해 일일이 알려주는 것도 하루 이틀. 원래부터 상재는 별 없던 차다. 운영 방침에 다소 변화를 주기로 마술사는 결심했다. 바로 정찰제를 시행한 것이다.
모든 물건들에 즉시 희고 작은 가격표가 붙었다. 테사는 구매 의사 없는 자 묻지도 말라 엄포했다.
의외로 반발은 없었다. 진귀한 건 구경만 해도 만족한다나.
험악한 야만인들 주제에 낭만이 있다고 테사는 생각했다. 사실 요즘은 살짝 김샌 감도 없잖아 있었다. 암만 둘러봐도 마르코만한 인물은 뵈기 힘든 탓이었다.
제법 솔직한 성격의 이 마술사는 대놓고 말하기에 주저 않았다. 대체 누굴 말하는 거냐 귀 기울이던 해적들은 이름을 듣자 구김 없이 웃었다. 이봐, 그야 당연하지!
1번대 대장 마르코. 흰 수염의 오른팔.
해적단의 창단 멤버로 부선장 역할까지 겸하는 사내였다.
이 남자의 시작이 언제였는지 기억하는 자들은 이제 많이 남아있지 않다. 셋 중 하나였다. 모두 죽거나, 사라지거나, 또는 그처럼 살아남아 이름을 날리거나.
살아남아 항해하는 것만으로도 일생의 훈장이 되는 위대한 항로.
이곳에서 오래된 명성이란 곧 증명과도 마찬가지다. 먼 훗날 이 시대를 기억할 때 회자될 이름 중 하나라고.
마르코에 준하는 강자는 세계를 다 끌어 모아도 손에 꼽힌다고 그들은 입을 모았다. 형제를 말하는 얼굴엔 신뢰와 자부심이 가득해서. 이미 아는 답을 테사는 확인 받은 기분이었다.
하긴…… 다른 것도 아니고 세계가 긴장할 만한 무게의 존재감이다. 그런 괴물이 여기저기 널려있는 것도 좀 웃기지 않은가. 몹시 기이한 이계이긴 하나 그 정도로 밸런스가 엉망일 리 없었다.
그러나 이 대단한 자도 타이밍의 예외는 못 되시는지.
떠드는 해적들을 구경하던 테사가 손목을 휘저었다. 활짝 열리는 공방, 문 앞에 선 이가 멋쩍게 손을 내린다.
“이건 영 적응이 안 되는구만…….”
“그럼 그 시끄러운 존재감 좀 어떻게 해보든가요.”
“어떻게 하는 건데?”
“나한테 물으면 어떡해?”
마르코가 살짝 미간을 좁혔다. 여전히 턱을 괸 채로 테사는 그를 바라봤다. 오늘은 셔츠를 입었군. 해적 주제에 흰 셔츠가 어울리잖아.
“뭐, 그냥 익숙해져요. 당신도 비슷한 거 한다면서. 견문색이니 뭐니. 근데 같이 온 분은 밖에서 뭐 해요? 안 들어오고.”
“덩치가 좀 큰 녀석이라.”
“그래?”
확실히 문은 마르코의 키에도 아슬아슬해 보인다. 테사의 일반적인 기준에 맞춘 탓이다.
잠시 가늠하던 마술사는 허공에 간단한 수식을 그린다. 금속성의 은백색이 나부끼고 어떤 형태의 망가짐도 없이 문이 부피를 키웠다.
옆에서 낮은 휘파람을 분다. 보기 드문 구경을 한 자들도 좀 떨어진 곳에서 박수를 보냈다.
갑자기 커진 문에 바깥의 손님이 고갤 내민다. 그와 동시였다. 테사는 기민하게 공방의 이상을 눈치 챈다.
“들어와라 죠즈. 여기 주인장 솜씨니까.”
말하면서도 마르코는 옆을 보고 있었다. 집중한 테사의 눈이 순간 빛을 발하는 게 보였다. 그녀에게 듣기로 저건 <마술사의 눈>이라 했다. 범인의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을 보고 읽는 신비의 영역.
“저번에 말한 악마의 열매를 먹은 형제여요이. 이번에도 틀려먹으면 그땐 내 손밖이고. 우리 배엔 능력자가 그다지 많진 않아서 말이지.”
“아니에요. 충분해. 인상 깊어, 정말로. 흥미로운걸.”
테사가 중얼거렸다. 시야의 죠즈는 정말로 컸다. 고갤 꺾어 봐야 할 정도로.
마르코 쪽이 기세 죽여 접근하는 맹수라면 이쪽은 상대에게 대놓고 위압감을 선사하는 타입. 짙게 그을린 피부의 해적을 테사는 조심스럽게 뜯어본다.
비가 멎은 뒤, 마르코는 말한 대로 테사를 자주 찾았다.
짧으면 하루 간격, 보통은 이틀이나 사흘의 간격으로. 한 번 들를 때마다 그들은 적잖은 대화를 나눴는데 가장 최근의 주제가 바로 <악마의 열매>였다.
테사에겐 마르코 곁에 설 때마다 뒤바뀌는 마력 흐름이 읽혔다. 그건 존재감과는 약간 다른 얘기였다. 딱히 비밀도 아니라 의견을 묻자 마르코는 두 가지 설을 제기했다. 패기 또는 악마의 열매.
엊그제는 그래서 5번대 대장이란 사람도 보았다. 마르코와 동일하게 견문색, 무장색 패기를 둘 다 지닌 자였다. 하지만 테사는 그에게서 별 이상을 발견하지 못했고, 오늘 죠즈를 만남으로써 답을 찾았다.
“정답인 거 같아.”
죠즈와 악수하며 테사가 또 중얼거렸다. 마르코보다야 덜하나 분명 흐트러지는 흐름이 있었다.
여긴 정말…… 테사는 혀를 내둘렀다. 정말이지, 비바 신세계! 얼마나 많은 미지가 숨겨져 있을지 가늠조차 안 된다.
미지를 앞에 둔 마술사가 취하는 태도야 사실 고루한 얘기다. 피가 고조된 테사. 단서를 잡았으니 오랜 습관대로 연구 자세에 들어갔다. 아마 마르코가 제지하지만 않았어도 그리 했을 것이다.
“오라힐리.”
“응?”
깜짝 놀라 테사는 눈을 치켜떴다. 마르코가 잡은 테사의 손을 천천히 놓고 한 발짝 물러났다. 갑자기 뭐지…… 황당했지만, 더 당황한 죠즈를 보고 매만지고(더듬어대고) 있었음을 깨닫는다.
“아? 아. 아…… 아 미안. 내가 집중하면 주변이 잘 안 보여서.”
“괜찮다. 그래도 다음부턴 조심해주면 좋겠군.”
대수롭지 않게 테사가 끄덕인다. 그러나 빨개진 귀 끝까지 감추긴 무리였다. 멀끔한 흰 얼굴 덕에 유독 도드라지기도 해서. 마르코는 생각했다. 저런 면도 있구만. 제법 귀여운데.
인사를 나누고 죠즈는 먼저 돌아갔다. 공방은 슬슬 한적해짐에도 마술사는 끊임없이 무언가를 해댔다.
제 팔보다 두꺼운 서적에 고갤 파묻기도 하고, 순서 없는 양피지들을 끼적이기도 한다. 마르코는 남아 그 모습들을 모두 지켜보고 있었다.
이유야 물론 있다. 여긴 요주의 대상이니까.
암묵적으로 마술사는 마르코의 관할이었고, 관찰 대상에서 신뢰할 만한 인물로 승격하기까지 지속적인 주의를 필요로 했다. 하지만…… 문득 마르코는 궁금해졌다.
“불편하진 않아요이?”
“뭐가?”
“여기. 딱히 여는 시간도, 닫는 시간도 없고. 누구나 왔다 갔다 하지. 게다가 나 같은 놈도 계속 들락거리면서 지켜보고.”
해가 저무는 시간. 내부엔 이제 남은 이가 손에 꼽힌다. 테사 근처에 앉은 마르코와 좀 떨어진 곳의 몇 명뿐.
테사는 질문의 요지를 파악하는 눈치다. 불편? 마르코의 중저음을 곱씹으며 머릴 올려 묶었다. 해적의 시선이 가지런한 목선을 쫓다가 금세 떨어진다.
“글쎄요. 음…….”
“…….”
“별로? 무슨 의민지 잘 모르겠지만. 여는 거야 내 마음이고…… 닫는 시간은 굳이 정해두지 않아도 내 눈엔 그들이 떠날 때가 보이니까.”
덧붙이자면 마술사들은 시간관념에 얽매이지 않는 편이기도 하고. 물론 거기까지 이해시킬 필요는 없어 테사는 보다 표면적인 답을 잇는다.
“여길 찾는 사람들은 저 문을 넘는 순간 내게 목적과 시간을 알리게 되어 있거든요. 불순한 목적을 가진 이들은 알아서 걸러지기도 하고.”
“그거 놀랍긴 한데. 예외가 있으면 어쩌려고.”
“없어요. 마술사의 공방은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아.”
“…….”
“아 물론 당신 같은 사람만 빼면.”
생각에 잠기던 마르코가 고갤 들었다. 무슨 말을 하려는 눈치였으나 테사가 막는다. “쉿. 한번 볼래요?” 장난기를 담아 속삭였다. 2분 뒤예요.
“지금 공방 안에 남은 세 명, 전부 나갈 테니까.”
그리고 아주 느린 초침이 흐른다. 마르코는 무의식적으로 테사를 쫓았다.
일 초, 가만히 울리는 작은 맥박. 십 초, 둥글게 접힌 긴 눈매 사이 영민한 눈동자. 삼십 초, 가까이서만 보이는 오른쪽 뺨 위 매우 희미한 주근깨…….
일 분이 지나고 약속한 이 분이 지난다.
마술사가 장담한 대로 공방 안에는 둘밖에 남지 않았다. 어떠냐며 돌아보는 자신만만한 얼굴. 노련한 해적은 능숙하게 모든 걸 갈무리한다.
“대단하네. 그런데…… 난 안 읽힌다 이거지?”
“네. 아까 그 사람도 그렇지만, 왜인지 당신 쪽이 훨씬. 이유는 나도 아직 모르고. 음…… 그래도 일단 들어와 머물다보면 또 보이기도 해요. 여긴 내 공간이니까. 제대로 눈을 떠야 하지만.”
“제대로? 아, 마술사의 눈.”
“응.”
저물기 직전 석양이 창가로 기운다. 해가 퇴장하는 시간은 세계가 달라져도 비슷하게 고요했다.
태만한 자세로 앉은 해적. 그 옆에 허릴 펴고 선 마술사.
충분히 달랐지만, 서로에게 내려앉는 일몰 정도는 충분히 볼 수 있었다. 침묵하던 마르코가 말한다.
“한 번 떠보겠어? 그 눈.”
“갑자기?”
“내 목적이 뭔지 나도 궁금해서.”
“당신 소원은 아직 때가 아니라면서. 그리고 해봤자 남들처럼 잘 읽히지도 않는데.”
마르코는 더 말이 없었다. 가만 보면 이 해적은 재촉하는 법이 없다. 단지 기다릴 뿐. 사람을 움직이는 방법을 아는 자였다. 의도를 모르겠으나 어차피 대수로운 일도 아니라고 테사는 생각했다.
그리고 가까이서, 마술사가 눈을 뜬다.
이처럼 가까이 정면은 단연코 처음. 그건 말로 형언하기 힘든 경험이었다.
청회색 눈동자 안에서 빛이 발하자 시작이었다. 매우 작은 기하학적인 도형들과 알 수 없는 문자들이 원과 열을 갖춰 마력을 뿌린다.
순간 마르코는 언젠가 들렸던 외진 겨울 섬을 떠올린다.
빙하와 설산이 솟고 해가 숨은 그곳에선 늘 별들이 쏟아졌다. 무수히, 또 영원히. 아버지가 말했다. 저것이 바로 은하수…….
이 시대의 해적은 낭만을 쫓을 때 가장 위대해졌다.
테사 역시 지금 해적의 혼을 바라보던 중이었다.
역사가 되어가는 기록, 은밀하게 속삭이는 수레바퀴 뒤 운명 등등.
인간 영역에서 드러나지 않는 것들이 수초의 망막을 스치고. 더 깊이, 무심코 들여다본 곳에…… 필멸자가 죽이지 못할 청염이 불타오르니. 젊은 마술사는 놀라 눈을 닫는다.
아주 찰나였으나 두 명의 초인에겐 짧다고만 말할 수 없었다. 테사가 먼저 운을 뗐다.
“목적은 읽지 못했어요.”
“…….”
“하지만 다른 걸 봤어.”
“…….”
“당신 지금 가면 우린 보름 뒤에 보겠군요.”
보름이나? 내내 무던하던 마르코의 얼굴에 비로소 웃음기가 비쳤다. 물론 기뻐서는 아니었다.
“다른 영해에 사소한 문제가 생겨 잠깐 들르게 됐는데… 그게 보름이나 걸린단 말이지…… 덕분에 좋은 정보를 얻었구만.”
일어나려는 어깨를 테사가 누른다. 마술사의 손에는 전부 잡히지 않는 크기다. 테사는 찡그리며 말했다.
“정확히 읽진 못했지만, 큰 싸움일지도 몰라. 피 냄새가 지독해.”
“조언 고맙게 듣지요이.”
“뭐? 이건 조언 같은 게 아니라.”
그럼 뭘까. 이 젊은 마술사가 하고자 하는 얘기는.
마르코는 알 수 없으나 사실 또 알 것도 같아서. 고요한 눈빛으로 해적은 제 어깨 위의 손등을 덮는다.
“오라힐리.”
“…….”
“난 해적이야.”
“…….”
“현명한 네가 그걸 모른다고 생각하진 않는데.”
바다의 대해적과 이계의 마술사.
이 선상은 결코 쉽게 좁히는 성질이 아니다. 겹친 두 손은 어떤 치열함도 없이 떨어졌다. 테사의 온도가 가라앉는 속도와 비슷했다.
다시 평소처럼 테사가 묻는다.
“청염은 뭔가요. 악마의 열매를 먹었다더니 그거?”
그런 것도 보이는 모양이지. 마르코는 웃었다. 목안으로 낮게 울리는 웃음이었다.
“내가 말 안 했나? 이미 다 한 줄 알았더니.”
“안 했어요.”
“새새 열매를 먹었지. 동물계 환수 종. 모델은 불사조.”
“돌아오면 내게 보여줘야 할 거예요. 오늘 봐서 알겠지만, 연구해야 할 이유가 생겼으니까.”
부탁보다는 요구에 가깝고, 요구보다는 명령과 비슷했다. 마르코는 미묘한 기분으로 테사를 쳐다봤다. 어떻게 반응해야 될 지가 난감했다. 그러나 이쪽도 당당한 이유가 있다. 한쪽 눈썹을 치켜든 테사가 말했다.
“해줘야 할 거야. 열흘 뒤가 내 생일이니까. 모르는 사이도 아닌데 그 정도 선물도 못 해요?”
시큰둥한 아래 쓸쓸함을 못 볼 정도로 마르코는 어설픈 어른이 아니다.
공교롭게도 현재 오라힐리 테사에 관해 누구보다 잘 아는 것도 그였고, 매번 묘한 공기를 나누던 것도 마르코 그였다.
참 어려운 관계다.
아니면 아니고, 맞으면 맞고의 그 단순한 게 안 돼서. 나이를 먹을수록 왜 풀리지 않고 더 꼬이는 것만 같은지.
제 감정 하나, 상대 감정 하나 파악 못 할 만큼 미숙하지도 않은 주제에.
분명 어떤 사이라고 정의할 만한 관계는 아니나 아예 부정할 수만도 없다는 얘기였다. 시작이 없다고 나는 장담할 수 있나? 눈앞의 이 젊은 마술사와 정말 아무것도 나누지 않았다고?
테사가 그를 보고 있었다. 방금 마르코가 살면서 목격했던 가장 아름다운 광경에 빗대었던 눈이었다.
여기서 모른 척하면 그야말로 쓰레기 확정이겠지…… 마르코는 쓰게 웃으며 항복한다.
“열흘이라. 꽤나 촉박한 타임리밋이구만. 지나기 전에 돌아오도록 해볼게.”
“불가능한 약속은 안 하느니만도 못하다는 말 못 들어봤어요?”
“처음 들어보는데. 누군지 몰라도 한 멍청 하는 놈인걸.”
“장난치지 마. 운명을 바꾸는 일이 그렇게 만만해 보여?”
“글쎄…… 슬슬 해적이 뭔지 익숙해져야 할 거야.”
이들이 나약해지는 순간은 오직 제 사람의 앞.
그 외 운명, 바다, 세계 등등. 모든 거대한 것을 향해 부딪치고 투쟁함이 이 시대 해적의 삶이다.
더 말하려다가 이내 테사는 관둔다. 그저 다만 조용히 바라보았다. 마르코가 망설이다가 그 뺨에 손을 얹었다. 거친 손이 아주 잠깐 어루만지고 떨어진다.
“조심히 지내요이. 우리 깃발 아래라고 반드시 안전한 건 아니니까.”
왜 얘 앞에선 이토록 말을 고심하게 되는지.
해도 될지, 하지 말아야 할지 제대로 된 판단이 어렵다. 그래도…… 어둑해진 바깥을 한번 보고 마르코는 다시 테사를 본다. 마지막은 역시 해적답게. 나지막한 중저음으로 속삭였다.
“특히, 들었을 때부터 생각했지만…… 불순한 것들을 거른다는 말.”
아무래도 영 틀려먹은 것 같으니 참고하고.
/
그날 새벽 해적은 조용히 출항했다.
누구에게도 일러준 적 없는 시간이었으나 누구의 도움 없이도 알 수 있는 단 한 명은 떠나는 배 뒤편으로 작은 목소리를 냈다.
고대부터 이어온 신화, 그리고 인간의 소원들을 빌려 운명이 응하도록 하는 마술사의 진 언령.
영창에 의해 구현된 것은 떠나는 이의 무사 귀환을 기원하는 6계급 수호 술식. 나머지는 이제 해적의 몫일뿐이다. 마술사는 미련 없이 뒤 돌았다.
미지의 땅에 불시착한 이래, 처음으로 고위 마술사의 진짜 마술이 바다 위에 내린 순간이었다.
[작품후기]
(저도 제가 이걸 왜 쓰고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이유를 찾는 중이니 우리 사이좋게 고민해볼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