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회
신세계
4-1
월요일에 태어난 아이는 아름답고, 화요일의 아이는 주의 은총으로 가득하며 수요일의 아이에겐 슬픔이 따른다네.
목요일의 아이는 멀리 떠나야 하고, 금요일에 태어난 아이는 사랑하고 베풀 줄 알지. 토요일의 아이는 삶에 충실하며 마지막으로 일요일, 안식일에 태어난 아이. 그는 어여쁘며 즐겁고 선하고 명랑할지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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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사가 태어난 나라에는 <마더 구스>란 게 있었다.
고약한 거위 할멈의 이야기는 아이들이 따라 부르며 힘을 갖게 되었고 결국 세계의 근간 중 하나로 자리 잡았다.
부인들은 제 아이가 수요일과 목요일에 태어나지 않길 기도했으며, 만약 그리 된다면 마술사가 되길 소원했다. 그들은 슬픔과 방랑의 운명을 받은 대신 강력한 마술의 힘을 타고나기 때문이었다.
테사는 수요일에 태어났다. 예상했겠지만.
무수한 마술사들이 비슷한 요일에 탄생했고 또 자랑스럽게 여겼으나 테사는 썩 달갑지 않았다. 마음이 고꾸라질 때마다 이것이 운명이니 체념하는 것이 좋은 일이라 확신할 수 없어서였다.
날씨는 화창하고 타운은 평화롭다.
스물일곱이 된 수요일. 감상은 그게 전부였다.
물론 재밌는 우연이라 생각은 했다. 이계에서 맞이한 첫 생일이 수요일이라니. 마술사신이 여기서도 오라힐리를 굽어 살피는 걸지도.
“생일에 아프다니 어떻게 이런 불행이 있을 수가!”
“그웬. 네가 거창하게 부르는 그 불행이 내겐 일상이거든? 자제해주겠니?”
“로즈 힐에도 가고, 바인브릿지 수목원에도 들리고 오늘 해야 하는 일들이 얼마나 많았는데! 생일에마저 이 칙칙한 공방이라니!”
“칙칙하다니 하 참, 마술사의 역작이나 다름없는 공방에 대고…… 지금 네가 침해한 마술사 매너가 몇 가지인지 난 셀 수조차 없어.”
“너무나 불행해!”
“야!”
보통의 마술사들은 성년이 되는 시기에 마술회로의 성장도 마친다. 인간 육체의 성장과 비슷하다고 볼 수 있겠다.
다만 몇몇 <특별>한 마술사들. 즉, 테사와 같이 강력한 혈통과 각인을 물려받은 자들은 그 끝이 언젠지 스스로도 알지 못했다.
어쩌면 성년이 된 직후일 수도, 노년일 수도, 혹은 죽는 순간까지도 그 끝에 닿지 못하거나.
저마다 다 달랐다. 마술회로는 탄생일을 기점으로 해마다 해금되듯 주인의 한계를 넓혀갔다.
그러니 그와 동반하는 통증도 이젠 익숙한 일상일 뿐. 테사는 관자놀이를 꾹꾹 누른다.
올해는 두통. 견디기 힘든 정도라 공방 문도 닫았다. 어차피 상점이 본래 목적도 아니므로 상관없다.
“괜찮아, 테사? 너무 놀렸나.”
“됐어. 너 그런데 바쁜 거 아니었니? 그 해적이랑 노닥거리느라 공방도 잘 안 오더니.”
그웬은 멋쩍은 기색이다. 입가를 매만지는 손은 손톱 끝까지 다듬어져 있었다. 타운 사람들은 모르는 듯했지만, 친구의 눈까지 피하긴 요원했다.
“알고 있었어? 얘기 못 해 미안해.”
“자세한 건 몰라. 그러니 구구절절한 연애 사정에 대해 떠들고 싶다면 딱 오늘만 허락하겠어.”
“얘는…… 연애까진 아니야. 그냥 만나는 거지.”
타인에게 해본 적 없는 얘기라 어색했다. 만약 테사가 아닌 다른 이였다면 계속 비밀이었을 터다. 그웬은 눈앞을 바라본다. 팔짱 낀 테사가 말하라는 듯 턱짓 했다.
차가운 인상의 젊은 미인. 긴 흑발은 칼에 잘린 듯 깔끔하고 눈빛은 엄정해서. 처음 본 이는 말조차 함부로 붙이기 어렵다.
척박한 섬에서 태어나 그렇노라 테사는 우스갯소리로 받았지만, 사실 그웬은 믿지 않았다. 고생한 태가 없는 손과 몸에 두른 고압적인 분위기는 감출 수 있는 게 아니니까.
그러나 저 냉랭한 눈동자 뒤에 어떤 온기가 서리는지도 그웬은 알아서. 이런 사람에게 이름 정도야 내주지 못할 것도 없다고 생각했다.
“말하기 싫음 말 안 해도 돼. 억지로 들을 생각은 없으니까.”
테사가 손을 휘두른다. 저절로 차오르는 찻잔을 보며 그웬은 웃었다.
“너 생각보다 어설픈 거 알고 있지? 그 점이 귀엽다는 것도.”
“마술사에게 그따위로 말하는 건 너밖에 없어. 크라이튼 그웬. 중세 시대였으면 개구리가 아니라 개구리밥으로 만들어 던져줬을 거야.”
“응 그거 좀 무섭네. 미안.”
열린 창가에선 기분 좋은 미풍이 불어온다. 날이 좋아 멀리까지 보이는 바다. 그웬은 그 어디쯤에 시선을 둔다.
“보고 싶었대, 내가.”
“…….”
“만나면 변명부터 할 줄 알았거든. 결국 날 기만한 거였잖아. 해적이라 말 한 마디 없었고, 어디냐고 묻거나 그냥 자잘한 일상 얘기들 전부가. 다 거짓이었는데. 당연히 사과부터 나와야지. 핑계나 변명이나 되는 대로 갖고 와야 될 거 아냐.”
“…….”
“근데 보자마자 하는 말이. 너무 보고 싶었대. 그 말만 해. 울면서. 진짜 얼간이 같은 꼴로…….”
왜 사람들은 사랑에 빠지면 다 멍청해질까. 한심하고 뭐 이딴 게 다 있냐 싶은데 진짜 어이없게도 내가 같이 울고 있는 거야.
“결국 배신감보다 그리움이 컸어.”
뭐 하나 잘난 거 없는 얼빠진 꼴에 불과한데도 이게 보고 싶었어서. 이럼 안 된다는 걸 알면서도 그웬은 용서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좋으면 여기서부턴 내 능력으로 어쩔 수 없는 거잖아. 안 그래?”
얘기는 그걸로 끝인 것처럼 보였다. 가만히 듣기만 하던 테사가 말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다지 행복한 얼굴은 아닌걸.”
“…….”
“…….”
“……넌 정말 모르는 게 없구나.”
그웬은 탄식했다. 혹은 감탄처럼도 보였다.
말없이 서로를 응시하는 두 친구.
작은 테이블 하나만을 두고 전부 치워진 백색 공방은 오늘따라 더욱 비현실적인 풍경이다. 탄생일을 맞아 힘이 남아도는 마술사의 공간은 머리 위로 시계가 회전하고, 나무와 꽃들이 피었다가 지기를 반복했다.
근처로 떨어지는 요정의 등불에 그웬은 손을 대었다. 어린 웃음소리가 울려 아스라하게 퍼진다. 테사가 무덤덤하게 말했다.
“운이 좋네. 그웬. 너 방금 진짜 요정과 닿았어. 진짜는 이 수천 개 중에 하난데. 얼마간 금운이 따를지도.”
“마술사들은 다 이래? 너처럼…….”
“내가 유달리 빼어난 편이긴 하지.”
“맞아. 넌 정말, 특별해. 다 아는 것 같아. 똑똑하고 뛰어나고…… 너 같은 사람이 어쩌다가 내 주변에 있을까? 넌 마치 해적처럼….”
약간은 횡설수설이었다. 테사는 그제야 그웬의 상태를 깨닫는다. 인외의 것에 평범한 사람이 너무 노출되어 있었을까. 게다가 무슨 연유인지 몰라도 평소보다 취약한 정신 덕에 금방 한계치가 온 듯했다.
“차가 식겠어. 그웬. 일단 그거부터 <마셔>.”
살짝 힘을 담아 테사가 말했다. 안정의 술을 거는 것도 잊지 않았다. 차를 마신 그웬은 금방 다시 침착해졌다.
“미안, 테사. 내가 좀 정신없지.”
“알고 있으니 다행이네. 그 해적과 안 좋기라도 해? 역시 해적 따위와 얽혀봤자 좋은 게 없는 거지?”
“아냐, 그런 건 아냐. 결국 다 알면서도 좋아하는 건 나니까. 다만 행복하지만은 않은 이유는…… 왜일까. 아무래도 현실?”
낭만은 짧고 삶은 지속된다.
대단한 흰 수염 해적단이라고 해도 예외 될 순 없었다. 그들이 결국 바다에서 살고 바다에서 죽는 한. 땅에 발붙이며 사는 자들은 엮여봤자 비극이 약속될 뿐이다.
해적을 사랑하면서도 그웬은 내일이 두려웠다.
타운 사람들의 시선. 가족과 친구들의 실망.
어디에서도 남편의 이름을 댈 수 없으며 자식은 아비를 모르고 자랄 것이다. 그리고 그림자 없는 바다를 바라보며 홀로 늙어가던 어느 날, 사랑하는 이의 죽음을 통보 받겠지.
“끔찍해. 그렇지?”
“그웬, 기억 안 나? 해적은 해적이라고. 그 얘길 나한테 누가 했는지. 넌 얼마든지 다른 선택을 할 수 있어.”
“알아. 할 수 있어. 힘들 뿐이지.”
“길게 말해봤자 결국 문제는 해적인 거네.”
“어쩔 수 없지. 근데 아이러니한 얘기지만, 생각해보면 또 그런 애라서 좋아하지 않았나 싶어. 테사 네가 말했듯이 이 시대에서 꿈을 가진 자들은 모두 바다로 나가니까.”
“…….”
“나처럼 평범한 사람이래도…… 꿈을 가진 사람한테 끌리는 건 불가항력이잖아.”
죽을지언정 뒤 돌아보지 않는 자들. 사람의 꿈은 결국 그런 이들로 인해 이어진다.
제한된 세계에서 그 너머를 좇는 그들을 누가 진심으로 경멸할 수 있을까.
그건 보다 문명화된 세계에서 건너온 마술사에게도 마찬가지인 얘기라서. 생각에 잠긴 테사를 보고 그웬이 웃는다.
“사실 너도 나한테 그래. 넌 마술사라 다르다고 하지만, 내 눈에는 너나 해적들이나 다 똑같이 특별한 사람들이니까.”
“웃기지 마. 나 같은 지식인을 그런 무법자들 따위와…….”
“화내는 거야? 이상하다. 오늘 유독 해적 얘기에 까칠한 거 같아 너. 아파서 그런가.”
“기분 탓이겠지.”
뭐 그럼 말고. 박수와 함께 그웬은 분위기를 환기했다. 자, 그럼 드디어 케익 차례인가? 직접 구웠다며 그녀는 즐겁게 재잘거렸다. 초콜릿은 티모시 부인이 직접 만든 수제야. 저 체리들 익은 것 좀 볼래. 우리 이모네 과수원에서 따온 건데. 멋지지.
체리로 장식된 진한 초콜릿 케이크. 한눈에 봐도 달았다.
‘정말 아무도 부르지 않아도 돼?’ 촛불을 끄기 직전 그웬이 물었다. 테사가 긍정했다. ‘어차피 친구는 너 하나밖에 없어.’ 감동한 얼굴을 무시하고 초를 분다. 작은 폭죽이 터진다. 생일 축하해 테사!
천장 위 시계가 정각 괘종을 울린다. 테사는 잘라진 케이크를 먹으며 생각했다. 그웬, 하나도 특별하지 않아.
난 그냥…… 수요일이 슬프고, 기다림에 실망하는 보통 사람일 뿐이야.
머리가 아프다. 초콜릿 케이크는 너무 달다 못해 썼다. 친구도 돌아가고 홀로 남은 공방. 지나치게 남은 케익을 보며 테사는 시계를 없앴다. 공방 안이 순식간에 고요해진다.
오후 여덟 시. 마술사의 스물일곱 번째 생일은 이제 네 시간도 남아있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