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우짖는 야만의 발톱 아래-7화 (7/29)

7회

신세계

5-2

‘수많은 마술사들이 타고난 것 이상의 마술을 다루길 원했지. 넌 그런 이들이 시기할 만큼의 재능을 지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욕심은 사그라질 기미가 없구나.’

‘하지만 스승님, 욕심만이 마술사를 높은 곳으로 데려간다 하셨어요.’

‘불필요한 욕심은 탐욕에 가깝다. 탐욕은 높은 곳이 아니라 마술사를 수렁으로 이끌어. 어리석은…… 아직도 그 차이를 모른단 말이냐.’

‘제가 <쓸데없는> 것에 매달려 위대하신 갈라가르스의 연구 시간을 빼앗는 게 아까운 건 아니시고요?’

‘테사 키안드라 오라힐리.’

‘…….’

‘내 누누이 말했거늘. 아무리 강한 척해도 요정 족의 피를 이어받은 자는 유혹에 빠지기 쉬우며 남들보다 위기에 심약하다. 제 몸과 정신 상태 하나 똑바로 가누지 못하고, 안중에도 없이 매달리는 것이 네 어미의 죽음과 상관없다 말할 수 있느냐.’

‘…….’

‘마술사답게 살아라. 슬픔한테 내주기엔 너무나도 찬란한 재능이니.’

치유 마술은 대대로 천시 받았다. 마술사의 소중한 시간을 들이기엔 이미 주인 된 자가 따로 있었기 때문이다.

성령 계열 마술사들. 달리 말해 교회의 성직자들은 신의 은총을 업고 숨 쉬는 것보다 간단하게 기적을 베풀었다.

병든 자를 걷게 하며 죽은 자를 되돌리고…… 기적은 교회의 전유물이었으며 불가침 성역과도 마찬가지였다.

세계의 축인 그들이 주장하는데 반발할 자 감히 없었고 권위 또한 날로 높아갔다. 그리고 테사의 모친은 그 거만함으로 인해 사망했다.

요정의 피를 유독 짙게 물려받았던 모친.

그로 인한 유전병은 일정 주기로 발작을 일으켰다. 뜨겁게 날뛰는 혈맥은 오로지 성령의 힘으로만 다스릴 수 있었는데, 온몸을 뒤틀 만큼 고통이 격렬해 단기간에 처치 받지 못하면 내일을 장담하지 못했다.

그날은 부활 대축일. 총본산에 지상 위 모든 성자가 집결하던 날.

오라힐리에서 수백 번 주교의 파견을 요청했으나 교회는 응하지 않았다.

부친이 이건 파워게임 따위가 아니라 절규해도 소용없었다. 모친은 고통 속에서 천천히 죽어갔다. 수십 명의 강력한 마술사들을 눈앞에 두고.

당시 교회와 학회 사이 항쟁이 어쨌든 테사는 관심 없다. 사촌들이 보복의 일환임이 분명하다 이를 갈아대도 관심 없었다.

어머니가 죽었다. 단지 그뿐. 테사 나이 단 열두 살이었다.

고작 5계급 성령 치유술에 불과했다. 필요한 건 그게 전부였다. 테사 주위 오라힐리들, 전부 4계급 이상의 성인 마술사들이었다. 결국 스스로 힘을 포기한 주제에 무엇도 하지 못했고…….

어른이 된 마술사는 먼지 쌓인 로사리오를 꺼낸다.

오로지 주께서 택한다는 성령계. 분명 테사는 선택받지 못했다. 역사에 남을 재능이라 해도 그까진 허락하지 않은 모양인지. 그러나 악착같이 매달리고 매진한 끝에 사제급 만큼은 가능하게 되었다.

그리고 오늘 오라힐리의 테사가 최초로 행하려는 것은…… 주교급 성령 마술.

동이 트기 전에 모든 게 끝나야 한다. 테사는 찬장 한쪽의 성수를 쓸어 담았다. 현재 시각은 새벽 두 시 반. 여유가 많다고 볼 순 없었다.

잦은 공간 이동은 잊었던 두통을 상기시켰다. 허공을 찢어 나타난 테사가 이마를 부여잡는다. 동시에 쇳소리가 들렸다. 철컥, 테사는 이 소리를 안다.

“누구지?”

“여긴 왜 올 때마다…… 다른 대장은 어디 갔어요?”

“다시 묻는데 답이 아니면 즉발한다. 누구냐.”

식은땀을 흘리면서도 앉은 허리가 꼿꼿하다. 이조가 창백한 낯으로 총구를 겨눴다. 테사는 그게 제 왼쪽 가슴에 정확히 조준됐음을 인지한다.

말해두지만, 마술사임을 제외하면 오라힐리 테사는 평범한 일반인이다.

이 마술사는 전쟁 없는 시대에서 태어나 평생을 살았으며, 귀족 가문의 직계로 총과 칼 앞에 선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따라서 실질적인 위협과는 별개로 불안했으며 또 불쾌했다.

물론 마술사인 이상 즉사할 리는 없겠지만…… 그래도.

“오라힐리 테사. 바인브릿지 타운의 마술사. 1번대 대장 마르코의 소개로 16번대 대장 이조의 구명을 위해 임시 승선했어요. 지금은 그를 위해 내 공방에 다녀오는 길이고요.”

“마르코?”

“알아들었으면 그 거칠고 야만적인 물건 좀 내게서 치울래요. 환자분의 경계심을 이해 못 하는 바는 아니나 상당히 불쾌… 하네.”

“경계가 다 풀린 건 아니다. 마르코라면 조타실에 갔으니 확인될 때까지 협조해줬으면 좋겠군. 사과는 그때 가서 하지.”

“내가 그걸 치우지 못해서 참는 게 아니란 걸 아나요?”

테사의 건조한 물음에 이조 역시 무덤덤하게 답했다.

“내가 들은 마술사라면 충분히 그렇겠지. 협조에 감사한다.”

“알았으면 그를 기다릴 게 아니라 선실 밖에 아무나 불러서 확인 끝내. 이 인내심이 바닥나기 전에.”

그러나 말을 마치며 그럴 필요가 없음을 테사는 깨닫는다. 아닌 척 곤두섰던 신경이 금세 힘을 뺐다. 순식간에 바뀌는 기세에 이조가 눈썹을 치켜들고…… 동시에 선실 문이 열린다.

“귀한 구세주 대접이 꽤 험하잖아. 이조.”

마르코는 눈가를 긁적이며 덧붙인다. 그것도 이쪽은 네 구세주라고.

건성으로 미는 힘에 이조가 총을 내렸다.

사실 마르코의 등장은 그로서도 한숨 돌릴 일이다. 아직 무리인 몸을 억지로 움직였으니. 게다가 주고받는 말이 차분했어도 기세의 공방까지 썩 평화롭진 않았어서. 늦지 않게 이조는 목례했다.

“실례했다. 살려주러 온 의사에게 총을 겨눈 셈이군. 목숨을 건지게 되면 은혜는 이 몫까지 쳐서 갚지.”

“됐어. 그쪽 부탁으로 구하는 것도 아닐뿐더러…… 환자에게 화내는 일만큼 멍청한 짓도 없죠. 내가 안일했던 것도 사실이니까.”

언제 죽어나가도 놀랍지 않은 세상. 그토록 곱씹었으면서도 경솔했다. 테사는 스스로에게 혀가 썼다.

총에는 눈도 귀도 없다. 해적선에 오르는 이상 번거롭더라도 마르코와 늘 동행했어야 옳았을 터다.

차게 얼굴을 굳힌 마술사. 대화를 지켜보던 마르코가 내심 한숨 쉰다. 아무리 냉랭한 척해도 그의 눈에는 이젠 다 보였다.

“아니지, 아냐. 틀렸어. 잠깐 다녀온다고 했으니 이조에게 말 안 전한 내 잘못이고, 의사에게 총을 겨눈 이조 잘못이구만.”

“…….”

“넌 잘못 없어. 그러니까 사과를 받아주면 그걸로 충분해. 답지 않게 웬 자책이야.”

마르코의 검지가 테사의 턱을 부드럽게 스쳤다. 이쪽을 보라는 제스처. 물끄러미 그를 바라본다. 그 이상은 필요 없었다. 잠시 뒤, 테사가 짧게 고갯짓했다.

“알았어요. 사과를 받아들이죠.”

“좋아. 준비는 끝났나?”

“응. 다만 물을 받을 공간이 있으면 좋겠는데…….”

“어느 정도?”

“저 사람이 담길 정도.”

“욕실이면 적당하려나.”

“충분해.”

혹자는 마술사를 예술가에 비유한다. 고도로 제련된 인간의 마술, 그리고 필멸자의 기준으로 헤아릴 수 없는 인외 너머의 경지.

둘을 다루고 조율하는 일은 지극한 섬세함을 요하며 그건 곧 예민함과도 직결된다.

그들은 자비로우나 까다롭고, 단순하나 복잡했다. 특히 고등 마술을 앞둔 마술사는 누구도 건드리지 않는 게 불문율인데…… 테사는 너무도 손쉽게 자신을 다루는 해적을 본다. 시선을 느낀 마르코가 눈을 마주쳤다.

“음? 더 필요한 거 있나.”

“아니야. 옮기죠 그럼.”

로사리오를 움켜쥐어도 아무렇지 않다. 모친의 죽음도, 총구 앞의 날카로움도 모두 잔파도 없이 사라졌다. 지금 딱 적절한 정도로 테사는 평온하다.

마술사의 준비가 다 끝났다.

마르코는 이조 쪽으로 고갤 돌렸다. “움직일 수 있겠냐?” 이조가 두 손 들었다. “지금 상황에선 뭐든 해야겠지.”

결국 타고난 것의 싸움이다.

오로지 혈통과 재능만이 마술사의 한계를 정하므로. 뛰어난 이들은 보다 간단히 익숙해지고, 숨 쉬듯 이를 다루게 된다.

그 행함에 있어 요구되는 것은 육신, 혈계, 신경, 회로, 각인, 눈, 언령, 연산 그리고 허락 받은 영혼.

때마다 반드시 모든 조건을 충족할 의무는 없다. 영창 없이도, 연산 없이도 능란한 계열 관련은 신경과 회로만으로도 구현 가능하다.

다만 오늘은 필수 조건에 더해 매개체와 영창까지 필요했다.

건식의 대욕탕에는 세 사람만이 남았다. 테사에게도 익숙지 않은 의식이라 더 늘어봤자 방해될 뿐이다. 이조는 뭘 시켜도 군말 없이 따랐다.

“옷도 다 벗는 편이 나을 거예요.”

“관계가 있나?”

의사의 말에 따르지 않을 정도로 멍청하진 않다. 그래도 보수적인 섬에서 태어나고 자란 이조는 묻기라도 해야 했다. 심드렁하게 테사가 말한다.

“모든 독소를 뺄 거니까. 옷이 아주 엉망진창이 돼도 상관없다면 입어도 되고.”

“그럼 그냥 입는 게 좋겠군. 나체인 꼴은 피하고 싶으니.”

해적들을 수치심 없는 야만인 무리 비슷하게 보고 있던 마술사로서는 좀 의외였다. 상의라니 그게 뭔데 하고 다니던 낯짝들…… 바로 옆에 있는 자만 봐도 첫 만남부터 가슴팍을 자랑해대지 않았나. 테사가 비식거렸다.

“왜 날 보면서 웃는 거요이.”

“아니에요. 안 추운 거잖아? 그렇게 다녀도.”

“……그보다 독소를 다 뺀다는 말, 내가 이해한 게 맞다면 지금 중독된 독만 제거한다는 뜻이 아닌 듯한데.”

마르코가 턱을 긁적이며 말했다. 정답이라고 테사는 긍정했다.

“사람이라면 살아가면서 응당 쌓여있을 체내의 모든 독소를 뺀다는 얘기예요. 예외 없죠. 지병이 있다면 사라질 거고, 노화도 느려질 거야. 아마 몸 자체가 예전보다 훨씬 가볍고 건강한 걸 느낄걸.”

마술사의 대수롭지 않은 설명. 두 명의 대장은 순간 시선을 교환한다. 동요 없는 얼굴이지만, 서로 동시에 생각한 게 무엇인지쯤은 알아보기 어렵지 않다.

이조가 고개 숙여 기침을 터트렸다. 다른 생각에 버티던 집중이 풀린 탓이다. 손가락까지 마비가 퍼져 혈흔은 주먹으로 문질러 닦았다. 테사가 미간을 좁힌다.

“일단 서두르는 게 좋겠어요. 그쪽한테도, 나한테도.”

슬슬 밤이 물러가는지 이 시간제한의 힘도 기미가 보이기 시작했다.

신경의 감도를 높이자 각인이 발한다. 테사 고유의 금속성 백은색이다.

그 뒤 무엇도 없는 허공에 하나씩 병들이 일렬로 나타났다. 교회 인장이 새겨진 성수들.

테사가 이조에게 누우라 일렀다. 찰박일 만큼만 채워진 욕조 가운데 대상이 눕는다. 성수 담긴 병들이 그를 중심으로 둥글게 감싸 부유했다.

마술사는 다소 오래 눈을 감았다가 뜬다. 수십만의 찰나 사이, 연산은 이미 끝났다.

술식의 모든 요소가 정확한 제자리에 배열된다. 가는 손가락 사이로 로사리오가 횡을 그리며 떨어졌다.

모친의 유산. 신실했던 종으로부터 평생의 기도가 담긴 로사리오는 오차 없이 좌표를, 제물 없이 은총을 약속한다.

이 다음은 마술사의 영혼을 실은 진 언령. 테사가 중얼거렸다. 이하 바칩니다.

“육신은 위대한 어머니의 것. 피와 영은 용맹한 조상의 것.”

그리하여 나, 인간의 딸. 지존하신 당신의 가여운 종임을 고하매. 울어라 굴레. 한탄하라 부정한 그림자여.

본연의 힘보다 위로부터 빌려오는 성령 마술.

나팔수가 울고 희미한 서광이 내려앉는다. 마술은 요란함 없이 시작되었다.

성수들이 동시에 입구를 기울였다. 타고 흐르는 물은 이미 빛이 다르다. 로사리오를 움켜쥔 테사가 차분히 왼손으로 성호를, 오른손으로 수식을 긋는다.

“가장 거룩한 시종들의 이름을 빌려 말하건대 이 심연 속 백성을 구하리다. 칠 개의 천국, 지상에서 가장 가까운 곳, 제1천의 수장이시여. 그대 든 물병에 모든 원죄가 씻기나니.”

약속된 매개체, 존재의 증명, 그리고 부름으로 충분하다. 많은 말은 무가치했다.

테사가 명령한다. “사라지고 흘러가거라.” 그에 모든 독이 씻겨 나가고, “그리고 또 돌아오라.” 가장 최적의 상태로 인간이 환원한다.

물은 모두 흔적 없이 증발했다.

서광이 사라지며 진도 이내 흩어지듯 없어진다. 턱 끝을 타고 흐르는 땀을 마술사가 닦아냈다. 돌아온 혈색으로 이조가 일어선다. 그에 로사리오를 집어넣는 테사. 마르코가 읊조렸다.

“멋지구만.”

“그게 다야?”

살면서 들은 칭찬 중 가장 담백하다. 믿기지 않는다는 테사의 눈길에 해적이 어깨를 으쓱한다. 태연한 얼굴이 뭐가 더 필요하냐 묻고 있다.

어쩔 수 없이 웃음이 터졌다. 처음으로 성공한 주교급 성령 마술. 눈을 접어 웃는 마술사를 보고 마르코도 입가를 휘었다. 그래. 정말, 그게 다였다.

한 번, 부른다면 무엇이든 이유 불문하고 따르겠노라.

차가운 인상만큼이나 깔끔한 투로 이조는 인사했다. 대장을 떠나 그 태도만 봐도 이 총사의 말은 신용할 가치가 있었다. 테사는 마주 목례했다.

돛이 완만한 곡선을 그린다. 새벽의 범선은 지체 없이 나아간다.

잔잔한 파도를 스치는 해풍에 옷깃이 흔들렸다. 섬의 자력 범위 안에 들어온 배에선 이제 타운의 끄트머리가 보인다. 그 뒤로 밤의 청색도 퇴장하고 있었다.

흰 수염 해적단이 정박하는 거점은 외진 해안가.

일찍 깬 크루 몇 명이 방향을 조종했다. 멀리 보이는 대선단의 위용에 테사가 감탄했다.

“이 배도 크다고 생각했는데, 착각이었네요.”

“본선과는 비교가 불가하지.”

마르코가 난간에 팔을 걸쳤다. 마치 소년이 자랑하는 모습 같다고 테사는 생각한다. 날 때부터 나 어른이요, 주장했을 것 같은 남자에게선 흔치 않은 면이다.

“오라힐리. 아까처럼 돌아갈 건가?”

“아마도? 뭐 다르게 갈 수도 있고. 왜?”

“굳이 그렇게 안 가도 된다면 내가 데려다줄까 하고.”

“해적 치고 썩 매너가 있단 말이지…… 좋아. 오랜만에 좀 걷지 뭐.”

무던한 얼굴로 수락하는 테사. 마르코는 느긋하게 대꾸했다.

“글쎄. 걷는 건 아니고.”

탄생일에 연연하는 해적 같은 건 없지만…… 고작 축하한다는 말 한 마디에 보답한답시고 대가 없이 따라 와준 이였다.

해줄 수 있는 일이라면 이쪽에서도 기꺼이 해주고 싶어서.

두 발자국 마르코가 물러난다. 테사는 잠자코 지켜보았다.

그리고 청색의 바다, 청색의 하늘 아래 그보다 푸른…… 청염으로 불타며 금색의 깃을 휘날리는 불멸의 영수.

테사가 저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불사조…….”

이전 세계에선 오로지 전설상으로만 존재했다.

이 환상 종은 때로 신에 가깝게 묘사되기도 했으며 많은 신화 속에서 현자와 왕들을 도와 옳은 길로 인도했다.

지나치게 뜨겁지도, 과도하게 눈부시지도 않다.

그저 감춰지지 않는 존재감으로 불사조는 그 자리에 서서 은은히 주변을 밝혔다. 테사가 다가서자 몸을 숙인다.

“타라고?”

홀리듯 테사는 손을 뻗었다. 분명 마르코임을 아는데도 사람 모습이 아닌 탓인지 닿기에 망설임 없었다. 조심스러운 손끝으로 눈가를 매만진다.

“신기해……. 알아요? 눈매가 똑같아.”

“내 모습이니까 당연하지.”

다시 한 번 마르코가 고갯짓했다. 권유하는 눈빛이고, 거절할 이유도 없다. 누군가를 태우는 건 처음이라 했었지.

지저귀듯 테사가 속삭였다. 바다에 떨어뜨리면 같이 죽을 줄 알아요. 마르코는 웃었다. 무서운 라이더구만.

/

크레타 섬의 이카로스.

그 비극적인 날개가 태양에 꺾인 이래, 비행은 늘 인간의 정복하지 못한 갈망이었다. 하늘을 향한 그들의 집착은 엄청나서 결국 나무를 띄우고, 강철을 띄우며 끝내 비슷해지길 성공했다.

테사는 바람의 냄새를 맡는다. 자신의 세상에서, 무수한 조상들이 오래 꿈꾸던 그 바람을.

이 광활한 영공은 모든 날개달린 이들의 소유.

불사조가 능숙하고 우아하게 날았다. 청과 금의 불꽃이 바다와 하늘 사이를 경계 없이 누비고.

“기분이 어때.”

“황홀해.”

이 이상의 표현이 불가하다.

표정을 볼 수 없어도 마르코는 알 듯했다. 웃음기 어린 목소리로 그가 부른다.

“테사.”

“응.”

“내 아버지를 만나보겠어?”

“감시는 이제 다 끝난 거예요?”

“역시 불편했던 모양이구만.”

짐짓 난처한 어조에 테사가 소리 내어 웃었다.

낯선 땅, 낯선 사람들. 불현듯 추락한 이방인에겐 인연 하나 남아있지 않아서.

닫힌 마음만큼이나 타인의 마음도 열기 어려웠다. 경계와 신뢰 사이. 어중간한 곳을 줄곧 부유하며…….

저 먼 수평선을 테사는 바라본다. 동이 트고 있었다. 지극히 마술적이었던 탄생일이 비로소 끝났음이다. 재촉하는 법 없는 불사조가 유유히 그 위를 비행한다.

시야 가득한 세계의 풍경. 해, 별, 바람, 바다……

그리고 해적.

“그래. 좋아. 마르코.”

만나자. 한번 당신의 선 안쪽으로 들어가 볼게.

바로 이 순간 오라힐리 테사는 마침내 받아들인다. 제대로 부딪쳐 살아보기로 결심한다.

소망도 기원도 모두 다른 이곳. 위대한 바다 위로 더 위대한 자들이 우짖는 새로운 세계. 바야흐로 이 신세계에.

[작품후기]

1장 신세계, f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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