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우짖는 야만의 발톱 아래-17화 (17/29)

17회

무기여 잘 있거라 上

13

바인브릿지 타운의 상징은 누가 뭐래도 바인브릿지다. 섬 전체를 양분하는 거대한 강 위에 세워진 이 금색 다리는 사람들이 정착할 무렵부터 존재했다고 전해진다.

그리고 이 오래된 다리 아래 신세계 전역에 이름난 명물이 존재했는데, 바로 <세파돔>이란 물고기가 그것이다. 북상하는 해류와 강의 담수가 섞이며 조성된 특이 환경에서만 자생하는 고급 어종으로 도련님이라 이명 붙은 별미였다. 실물로 보는 건 삿치 역시 이번이 처음이다.

원래 이만큼 잡히는 어종이 아닌데 운이 좋았다나. 장사치 하는 말이 빤하나 이번만큼 와 닿은 적도 없어 삿치는 계산서에 팁까지 추가해 사인해주었다. 회계 쪽에서 필히 말나올 테지만, 뭐 내 알 바인가? 지들도 주면 잘 처먹을 거면서.

아버지의 병세가 악화되며 알게 모르게 식단을 제한했던 4번대다. 마술사란 기적 같은 이의 등장으로부터 세 달.

며칠 전 드디어 의료팀이 식단에서 손을 뗐다. 키친 전체로 육수 담긴 냄비들이 진한 향신료 냄새를 피워 올린다. 삿치는 섬세한 손길로 세파돔의 뼈와 살을 갈랐다.

“삿치 대장! 대장!”

“……야 이 새끼야. 내가 칼 들고 있을 때 건드리지 말랬지.”

“아 미안, 삿치! 내가 불러 달라 한 거야.”

“하루타?”

바깥 조리대 쪽에서 하루타가 손을 흔든다. 삿치는 그와 세파돔을 번갈아 보다가 혀를 찼다. 이내 피 묻은 손을 닦아내며 소리친다. 개빈! 이쪽으로 와서 내 대신 마무리해.

“여기까지 웬일이야?”

“좋은 냄새 나는데. 메뉴 뭐야?”

“부야베스.”

“오…… 아쉬워라. 하필 이걸 놓치게 되다니.”

그제야 하루타의 무장한 차림이 눈에 들어온다. 삿치가 눈썹을 들어올렸다.

“오늘 외부로 나가는 부대가 있단 얘긴 못 들었는데.”

“방금 정해졌거든. 어인 섬 일. 우리 몫은 빼줘.”

“뭐야, 꽤 잦은 거 아니야?”

“음, 아무래도 요즘 분위기가 좀 그러니까?”

조리대를 사이에 두고 할 얘긴 아닌 듯하다. 기다리라 손짓하고 삿치는 앞치마를 풀었다. 수셰프에게 짧게 언질 주고, 바삐 움직이는 요리사들 사이를 지나 빠져나온다.

어인 섬. 샤본디 제도 아래 위치한 해저의 섬으로 흰 수염 해적단의 대표 영역들 중 하나였다. 또 거의 유일하다시피 보호세를 받지 않는 곳이기도 했다. 다른 영토들과 달리 오로지 친분에 의한 관계이기 때문이다.

조리실을 나온 삿치가 복도 난간에 기대섰다. 하루타는 장난스럽게 발을 까딱거린다. 피터 팬을 닮은 이 12번대 대장은 무거운 얘기도 곧잘 가볍게 꺼내는 재주가 있었다.

“심각한 정도는 아니고. 번번이 부딪쳐서 그래.”

“아버지가 직접 가셔야 될 정도는 아니겠지.”

“아직은 글쎄. 왕가에서도 따로 얘기 없고. 괜히 들쑤시는 게 될 수도 있잖아? 어쨌든 오토히메 왕비가 그런 식으로 죽었으니.”

인간과 어인 간의 우호 협정을 추진하던 오토히메 왕비가 암살당한 일이 바로 작년.

범인이 인간이라는 사실이 드러나며 어인 섬은 내외부적으로 어수선해졌다. 왕가에서 왕비의 유언을 앞세워 분위기를 정리하곤 있지만, 사건 당시 목격자들이 적잖은 만큼 간단치 않았다.

어인 섬을 보호하는 입장인 흰 수염 해적단으로서도 제법 골 아픈 상황이었다. 간섭하자니 내부 일이고, 손 놓자니 반 인간파인 어인 우월주의자들과 섬을 거치는 해적들이 지속적으로 충돌했다. 담당인 12번대 대장 하루타가 직접 가는 일도 최근에만 벌써 네 번째다.

“루키들이 문제라니까, 루키들이. 가뜩이나 날서있는 곳에서…… 왜 있잖아, 이번에 신세계로 넘어오는 녀석들 말야. 하나같이 질이 별로던데 아버지 영역인 걸 알고 일부러 건드리는 녀석도 있더라.”

“오 저런, 굳이 명을 재촉하는군.”

실소한 삿치가 부드럽게 빈정거렸다. 하루타도 순간 사나운 웃음을 비친다. “배워야 알 테지, 이 바다에서 멍청한 대가를 어떻게 치르는지.”

“아무튼 그 덜 떨어진 루키가 일을 친 바람에 용궁 쪽 손이 비나봐. 왕가에서 만약을 대비해 와줬으면 하는 눈치라.”

“가여운 루키는 데비 존스의 곁으로 갔고?”

“도주했대. 다행히도.”

“럭키! 편안하게 갔을까봐 걱정했네.”

신인의 이름이 뭔지 두 대장에겐 관심사가 아니었다. 수장될 놈의 이름을 일일이 기억해봤자 삶만 번거롭다. 해적에게 중요한 것은 이 놈이 내 적인지 아닌지. 적이라면 살았는지 죽었는지. 오직 그뿐.

풀어진 소매를 접어 올리며 삿치가 킬킬 웃었다. “혹시나 가다가 마주치면 선배로서 배웅 잘 해주라고, 하루타.” 하루타는 그걸 말이라고 하냐 일갈하곤 이내 품을 뒤적거렸다.

“잡담은 여기까지고, 내 용건은 이거.”

“호오, 웬 편지? 봐도 되나?”

“뭐 상관없지 않을까. 명왕이 아버지께 전해 달라 한 건데, 말이 레일리지 사실 샤쿠야쿠 쪽이라고 보는 게 맞아.”

“샤키인가. 그럼 대충 짐작은 가는데…….”

샤본디 제도의 정보통 샤쿠야쿠. 일명 샤키.

위대한 항로에서 가장 정보가 빠른 인물이라 봐도 좋았다. 수십 년 전 은퇴한 대해적으로, 현재는 제도에서 바를 운영하며 명왕 실버즈 레일리와 사실혼 관계로 살고 있다.

편지 내용은 예상과 별 다르지 않았다. 삿치가 끝을 잡고 흔든다.

“이걸 근데 왜 나한테 줘? 아버지는 뭐라시는데.”

“‘마르코에게 갖다 줘라, 하루타.’ 하셨지. 관여 안 하시겠다고.”

“하루타, 너 내가 마르코로 보이냐. 꽤 기분 나쁘다?”

“아니! 그게, 이미 다녀왔는데 배에 없어. 기밀로 분류돼서 다른 크루한테도 못 전하고…… 삿치 네가 대신 좀 전해주라고.”

삿치가 눈을 가늘게 좁힌다. 호남형인 이 해적은 웃을 때와 웃지 않을 때의 인상 차가 제법 컸다. 눈가의 커다란 흉터도 분위기를 일조하는 데에 한몫 두둑이 했다. 물론 하루타가 그에 쫄만한 인물은 절대 아니나 지금 같은 땐 예외로 봐야 한다.

“인마, 장난해? 요리 중인 요리사한테 찾아와선 뭐? 해보자 이거냐. 마르코 자식이라면 있을 곳 뻔하잖아.”

“뻔해서 문제라고!”

“뭔 소리 하는 거야, 이 자식 진짜. 너 저 세파돔이 얼마짜리 귀한 몸인지 알기나 해!”

답지 않게 군다. 살짝 짜증나는 한편 삿치는 의아했다. 하루타는 비유하자면 날카로운 칼끝 같은 녀석이다. 실없이 웃다가도 언제든 예리하게 상대를 베어낼 줄 알았다. 같은 검사인 비스타는 모비딕에서 소리장도에 비견될 인물이 있다면 아마 하루타일 거라 평하기도 했다.

하루타가 제 갈색 머릴 헝클인다. 일단 참을성 있게 지켜봤다. 무거운 말문은 삿치의 팔짱이 풀릴 때쯤 열렸다.

“역시 그 둘이 그런 사이인 거지?”

무슨 뜻이냐 되물을 만큼 삿치는 이해력이 딸리지 않는다. 어떤 예기치 못한 상황에도 태연할 수 있는 연륜과 순발력 또한 있었다.

“뭔가 했더니…… 실없는 소리나 하고.”

“와, 그렇게 말하는 걸 보니 삿치는 진작 알고 있었구나.”

“아니, 하루타 너 지금 대단한 오해를 하나본데.”

“마르코가 비밀로 하래? 뭐 이해 안 되는 건 아니지만.”

역시 그래도 수십 년간 함께한 가족이자 엇비슷한 대장에겐 무리였나. 하루타가 발끝으로 바닥을 두드린다. 삿치는 더 피할 방도가 없음을 인정한다.

“……젠장, 됐어. 마르코도 이쯤은 예상했겠지. 무신경한 편도 아니고, 너처럼 예민한 녀석을.”

“나도 설마 했다고. 그 마르코니까 지금껏 의심만 했지. 어딘가 이상하다 싶어도 결정적인 티가 안 나니…….”

것도 가족이라 이쯤에서 눈치 챘지, 마술사 쪽은 아예 감도 못 잡았다. 마르코를 대할 때 묘하게 부드러워지는 것쯤은 봐서 알았지만, 그 냉랭한 인상은 도통 뭘 읽어내기 쉽지 않으니까.

실로 대단한 한 쌍이구나 싶다. 대체 몇 개의 눈을 가리고 있는 건지. 하루타는 내심 혀를 내두른다. 그런 그에게 삿치가 사뭇 단호한 투로 일렀다.

“모르는 척해, 하루타. 사적인 부분이니까.”

“알아. 내가 그 둘이 있는 데를 꺼리는 것도 그 탓인데. 난 이런 쪽은 젬병이야. 내 형제의 남녀 문제라니. 끝까지 모르는 걸로 할래.”

마르코는 1번대 대장이자 이 배의 암묵적인 부선장이다. 만에 하나 선장이 잘못 되면 그들 모두는 마르코의 명령을 따라 항해할 것이다. 같은 대장이고, 형제여도 그런 사람을 완전한 동급으로 볼 순 없었다.

특히 하루타처럼 마르코보다 훨씬 입단이 늦은 편인 경우, 더욱 그런 경향이 짙었다. 예컨대 태산 같은 형의 약점을 알고자 하는 동생은 없지 않겠는가.

지켜본 세월이 있어 삿치도 그 심리를 눈치 챈다. 연하의 형제들에게 유독 관대한 셰프는 투박한 손길로 하루타의 머릴 두드렸다.

“나 참, 귀찮지만 어쩔 수 없네. 알았어. 편지는 내가 전하마.”

“……부야베스 진짜 아쉬워. 또 해줄 거지.”

“장담 못 하거든, 인마.”

한 번 더 뒤통수를 거칠게 쓰다듬고 삿치가 뒤 돌았다. 이 놈들, 손질은 제대로 했을지 모르겠다. 세파돔의 살은 세심하게 다뤄야 하는데. 그 등에 대고 하루타가 마지막으로 묻는다.

“삿치. 진지한 건가, 그 둘?”

조리실 문이 열린다. 건성으로 알감자를 까는 막내들도 보인다. 발을 들어 엉덩이들을 걷어찼다. “똑바로 안 해? 네가 깎은 걸 눈알 대신 박아줘야 정신 차리지!” 화드득 다시 자세 잡는 요리사들. 지켜보며 삿치는 중얼거린다. 틀려. 심각한 거지, 진짜로.

/

흰 수염 해적단이 정박한 지 세 달.

달력을 넘긴 지 얼마 되지도 않은 듯한데 벌써 또 한 장을 넘길 시기가 다가온다. 하루가 길다고 느끼던 때가 있었다는 게 잘 믿기지 않는 요즘이다.

대체 이게 뭐라고 사람을 이리도 통속적으로 만드는지. 무심코 지나쳤던 신파 속 온갖 케케묵고 고루한 대사들이 입안에서 맴돈다. 시간이 이대로 멈췄으면 좋겠어요, 따위의 것들 말이다.

둘만 남은 순간, 마술사는 문득 토로하기도 했다. ‘당신이 내 첫 사랑인 거 같아.’ 스스로 뱉었다고 믿기지 않을 만큼 유치해서 곧바로 후회하면 마르코가 말했다. ‘나도 처음인데.’

‘농담해요? 거짓말 집어 쳐. 모르시나 본데, 그쪽 과거 화려한 티 되게 많이 나요.’

웃었지만, 해적은 웃지 않았다. ‘십 년 뒤, 이십 년 뒤였어도 그때가 처음이겠지.’ 그저 사실을 고지하듯 바라봤다. ‘너 비슷한 이전은 없을 테니.’

‘어떻게 확신하죠?’ 조용히 묻거든 그제야 웃었다. 어린 걸 보는 표정으로. ‘확신일까.’ ‘그럼?’ ‘아는 거지.’

깊다 못해 어두운 눈빛으로 마르코가 드러난 어깨에 입 맞췄다. ‘내 한계도, 그 너머도 다 너라서.’ 잠긴 목소리로 속삭인다. ‘이보다 애틋한 게 있다면 또 너, 다음의 너, 그 다음의 너라고. 널 겪은 내가 알아.’

믿음 따위가 아닌 지독한 현실일 뿐이다.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노련한 수완가인 이 해적은 밑바닥을 내비칠 때가 드물었다. 둘 사이엔 흔한 고백의 말조차 없었다. 그러나 어쩌면 사랑한다는 말이 더 가벼웠을지도 모르겠다.

‘……시간관념이 마술사보다 더 형편없잖아.’ ‘그것만 엉망일까.’ 마르코가 나른하게 웃었다. ‘내가 언제 제정신이었는지도 기억 안 나.’ ‘한 마디도 안 져, 정말.’ 테사는 그의 목 뒤로 팔을 둘렀다. 정해진 수순처럼 키스가 내려앉았다.

모든 성숙한 관계들이 대개 그러하듯 선은 머지않아 사라졌다. 테사가 기다릴 줄 안다고 여겼던 연상의 해적은 생각보다 인내심이 없었고, 손도 빨랐으며, 결코 봐주는 일도 없었다.

긴 밤들은 흐느끼고 애원한 끝에서야 지나곤 했다. 아무리 등을 긁어대도 초재생이 패시브인 사내는 다음 날 매끈한 등으로 다시 위를 짓눌러왔다.

이루 말할 수 없을 만큼 지배적이었다. 땀에 젖어 뭐가 뭔지 분간 안 되는 순간이 되면, 테사는 마르코가 숨 쉬란 말에 숨 쉬고, 날 보라는 말에 보고, 잡으라는 대로 잡아야 했으며, 느끼라는 대로 느껴야만 했다.

끝나면 온몸이 얼얼해 손 하나 까딱할 수 없었다. 전투가 곧 삶인 남자가 몇 시간이고 눈이 돌아 몰두했으니 당연했다. 그럼에도 모자란 눈으로 한참을 매만지고선 땀이 식을 때쯤 다시 목에 입술을 묻어왔다.

짐짓 밀어내면 더운 목소리가 농밀하게 속삭였다. 너 알고 있잖아요이. 네 말, 내가 잘 들어주지 않는다는 걸.

‘진짜…… 당신, 정말로…….’

‘알아. 나쁘지.’

‘진짜로요.’

등을 들어 올린 마르코가 테사의 옆을 짚었다. 테사는 이럴 때마다 그에게 갇히는 기분이 들었다. 견고한 어깨 위로 월광이 걸린다. 웃지 않는 얼굴로 내려다보던 마르코가 이내 천천히 뺨에 입을 맞췄다.

‘안 그래도 매일 빌고 있으니…… 용서하지 않아도 돼.’

신조차 믿지 않는 이 사내는 과연 어디를 향해 빌고 있을까.

젊은 마술사에게 그는 여전히도 어려운 사람이었다.

/

재료만 잘 준비하면 부야베스는 비교적 까다롭지 않은 편에 속한다. 풍미에 비해 누구나 가능한 난이도로, 바다 사람들에게 특히 사랑받아왔다. 바다를 담았다는 이 요리를 테사 역시 선호한다.

테사가 나고 자란 섬은 날씨가 안 좋기로 유명했다. 스코틀랜드 땅은 말할 것도 없고, 런던도 마찬가지였다. 유학 온 친구들은 이 땅의 음식이 별로인 건 전부 환경 탓이라 투덜거렸다. 공감하는 바여서 테사도 제 나라보다는 다른 나라의 음식들을 자주 찾곤 했다.

이웃나라의 것인 부야베스도 그런 경우다. 이 다르고 낯선 세계는 왜 음식마저 같은지. 테사는 유래를 묻는 대신 손가락을 흔든다.

“마음 같아선 당장 고용하고 싶은걸.”

손짓 한 번에 최적의 온도라니. 김이 나는 바게트를 들며 삿치가 감탄했다.

“고마워요. 평생 들은 스카웃 제의 중 가장 하찮은 이유예요.”

“이봐, 요리사에겐 전혀 그렇지 않거든?”

동의 구하듯 마르코를 보지만, 이쪽은 이미 관심 없는 표정으로 조갯살만 발라내고 있다.

무슨…… 조개 바르는 것도 저렇게 야하지? 테사는 잠깐 기가 막혀 바라보다가 환기했다. 맛이 어떠냐 삿치가 묻고 있었다.

“고용은 이쪽에서 해야 될 것 같아요.”

“오, 진심인 거 같으니 기쁘게 듣지.”

“요리사들은 표정만 봐도 아나 보죠?”

“내가 내 음식 먹은 얼굴만 몇 개를 봤다고 생각해, 마술사.”

마술사들이 보는 세계가 다른 만큼, 요리사들도 보이는 그들만의 세계가 있는 거겠지. 별말 없이 테사는 수긍한다.

해적 요리사의 음식은 말하자면 딱 그다웠다. 약간 투박하나 심심한 점 없이 깊고 강하다. 배려 없이 맛있는 요리라고 마술사는 결론지었다. 허기의 타이밍까지 아주 적절했다. 부야베스를 든 삿치의 방문은 정확히 저녁때였으니까.

마르코를 부르며 등장한 요리사는 일단 배부터 채우자고 씩 웃었다. 공방 내에 다른 손님은 없었다. 타운 주민들은 이미 다녀갔고, 마르코가 일부러 테사의 경계 등급을 낮추지 않은 탓에 새로운 해적들의 유입도 뜸했다.

“이렇게 들어와 저녁까지 먹다니. 마술사네 간다는 말에 우리 부대 녀석들이 얼마나 아우성치던지.”

“음, 왜요?”

“왜긴, 1번대 대장님께서 접근 제한을 안 풀어주시니까.”

삿치의 말에 마르코가 대수롭잖은 투로 입 열었다. 랍스터 껍질을 발라내는 손길은 군더더기 없이 깔끔했다.

“올 녀석들은 어차피 와. 굳이 물길 터줄 필요 없지.”

“굳이 막을 필요는 있나봐.”

“그럼 뭐 소개라도 할까, 삿치? 관둬요이.”

짓궂게 웃어 보인 삿치가 고갤 저었다. “나 참, 나한테는 감출 생각도 안 하네.” 테사가 실소한다. “발 빼기엔 다소 늦었죠.”

저녁 자리는 슬슬 끝에 접어들었다. 속도에 맞춰 와인 잔들도 비어간다. 엊그제 마르코가 두고 간 제도산 빈티지로 혀에 묵직하게 감기는 품종이다.

바닥이 훤히 드러난 와인 잔. 그 표면을 쓸다가 삿치가 불쑥 말한다.

“하지만 세상에는 트거나 막을 수 없는 물길이 있어 문제거든.”

해적보다 그걸 잘 아는 인종도 없다. 그렇기에 이들은 그저 항해하는 거니까. 흐르는 해류를, 또 흐르는 시류 위를. 무엇도 방해하지 못하는 이 흐름에 올라 퇴로 없는 전장으로.

세상의 큰 흐름은 누구도 거스를 수 없을 터. 삿치는 품에서 편지를 꺼내 마르코에게 던졌다. 마르코가 굳은 표정으로 겉면을 확인한다. 발신인은 불명. 그러나 이 서명은…….

해적단 내부 일이다. 테사는 외면했다. 그러나 맞은편의 두 눈은 그쪽으로 박힌다. 편지를 읽는 마르코. 삿치가 마술사를 보며 말했다.

“선택해야 되는 순간이 올지도.”

“……어떤 선택이요?”

“글쎄다. 솔직히 나도 잘 모르겠어.”

“…….”

“그런데 좀 살아보니 패턴들이 엇비슷하더라고. 큰 파도를 넘었다고 생각하면 불시에 다른 파도가 덮쳐오고, 정신 차리고 보면 남은 자들은 다 뭔가를 제대로 꽉 붙든 놈들뿐이지.”

뱃사람들이 인생에 대해 논하는 것은 흔한 일이다. 매순간 생과 사를 오가기 때문이다. 해적들 또한 뱃사람이었다. 테사가 깊은 눈으로 삿치를 마주본다. 그녀는 비슷한 맥락의 얘길 언젠가 스승에게 들은 적 있다.

스스로를 똑바로 쥐지 않거든 세계는 네 편이 아닐 거라고…….

생각에 잠긴 테사. 옆에서 마르코는 편지를 접어 넣는다. 삿치가 이걸 아예 넘겨주는 걸 보면 아버지 뜻은 명확했다. 분명 네 마음 가는 대로 하라, 이거겠지.

이날 저녁의 대화는 그대로 마무리됐다. 떠나기 전, 마르코가 평소와 다름없이 테사의 입술에 짧게 키스한다.

테사는 못 본 척하는 삿치를 잡아 요리와 얘기에 대한 답례로 간단한 마술사의 축복을 걸어주었다. 이 사람 그림자가 왜 이리 어두운지 모르겠다고 생각하면서.

마술사의 공방을 벗어나는 두 해적. 곧 일몰 너머로 사라진다. 늘 그렇듯 방향은 같은 곳, 그들의 배가 기다리는 바다 쪽으로.

/

친애하는 에드워드 뉴게이트 귀하.

불로불사의 키가 흰 수염에게 있다는 소문을 들으셨나요?

오늘도 신비한 바다에서,

당신의 옛 친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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