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우짖는 야만의 발톱 아래-29화 (29/29)

29회

종결부

♬ I Am Going Home (feat. Ben I'Oncle Soul) - Roseaux

24

수개월이 흘렀다. 사람들은 한 억대 루키의 데뷔를 잊어갔다. 커닝엄 수요일의 학살 이후 어떤 신문에서도 그 이름을 찾아볼 수 없었기 때문이다.

묘연한 <사도>의 행방은 오직 군과 정부의 요직에서만 회자되었다. 불로불사의 키를 놓친 천룡인들은 분개했고, 사황 흰 수염과 해군은 전보다 자주 마찰을 빚었다. 그 여파로 흰 수염의 건재는 확신되었고 그가 와병 중이란 설은 뜬소문으로 여겨져 점점 사그라졌다.

날로 강맹해지는 사황의 위엄 속에서 시대는 질주하고 있었다. 그 사이 신세계, 한 작은 섬의 공방이 사라진 것은 별로 주목할 만한 얘기도 아니었다. 주변 섬사람들만이 종종 술안주 대신 입에 올리곤 했다.

그 공방이 있었을 땐 좋았는데 말이야. 작은 상처가 바로 낫지 않는 일이 영 낯설게 될 줄 누가 알았겠소. 좀 더 잘해줄걸 그랬어. 빈 사람의 자리를 보고 가치를 안다고 하잖아요. 그 자도 그런 거겠죠.

생각해보면 참 묘한 곳이었지. 그곳 주인도요. 묘한 사람이었어요. 우리와는 많이 달랐다니까요. 이상한 건 막상 떠올려보면 얼굴이 잘 기억나질 않아. 그쪽도 그래요? 나도 그래서 그때마다 수배지를 다시 봐요. 이런 외모를 가진 사람이 왜 곧잘 떠오르지 않는지 정말 신기한 일이에요.

가만히 듣던 꽃집 주인이 부정했다. 얼마 전, 주인의 은퇴로 가게를 물려받은 젊은 처녀였다. 인상적인 바랜 적발을 넘기며 또렷이 말한다.

아니요, 부인. 그건 <신비>한 거예요.

/

이름 없는 겨울 섬이었다. 척박한 환경이지만, 항해의 중간 거점으로 기항하게 되었다. 사황의 대선단이 빙하 사이를 고요히 가로지른다. 멀리 늑대들이 소리 높여 하울링 했다.

극지방의 밤은 서늘한 북풍과 함께 갈수록 깊어졌다. 이윽고 누군가 탄성 지르자 모두 머릴 들어 하늘을 바라봤다. 쏟아지는 성운 위로 나타난 빛의 장막이 온 세상을 적시고 있었다. 은하수와 오로라였다.

별, 바람, 우주…… 한때 가졌고 이젠 전부 상실한 것들.

해적은 술잔을 들고 잠시 감상했다. 시린 것이 무엇인지 잘 알 수 없었다. 동료들의 소란을 뒤로하고 그는 선실로 돌아왔다.

잘 정리된 그곳은 일견 쓸쓸히도 느껴졌다. 선실 한 켠 놓인 횃대도 텅 비어 있었다. 주인이었던 별빛의 불사조는 긴 울음을 마지막으로 사라졌다. 잿더미 대신 백은색 깃털 하나를 남기고.

애도하여 해적은 서랍 가장 깊은 곳에 그걸 두었다. 거기에는 깨진 안경 하나밖에 들어있지 않았지만, 얼마 뒤 가장 무거운 자물쇠가 달렸다. 누구도 함부로 열지 못할 만큼. 설사 해적 그 자신이라도.

/

넘나드는 경계에는 더 이상 제약이 없다. 세계가 허락한 독주였다.

지친 대마술사가 문을 연다. 순간 든 생각은 오직 하나였다.

가장 멀리, 가장 평화로운 곳으로.

질문 받은 세계는 생각했다. 판단은 찰나로 길지 않았다. 당연했다.

무대가 시작되기 전 <주인공>의 곁보다 적절한 데도 없을 테니.

/

한가로운 한낮의 평화. 갈매기들이 항구에 앉아 졸음을 참는다. 상대 없는 장기판 곁에서 노인도 졸고 있었다. 왕국 중심에서 동떨어진 마을은 인구가 협소했다. 젊은이들은 일거리를 찾아 도시로, 바다로 모두 떠났다.

하루들은 날짜를 세는 것이 무의미할 만큼 대동소이했다. 짧은 오침 속에서 노인은 잃어버린 자식들을 만나는 중이었다. 따라서 갑자기 나타난 문은 누구도 알아차릴 새 없이 열리고 닫혔다.

마술사는 어렵지 않게 노인을 발견했다. 가까워진 인기척에 노인이 깨어났다.

시선이 천천히 아래서부터 올라간다. 고급스러운 모직에 감싸인 긴 다리부터 구김 없이 빳빳한 흰 셔츠, 어깨 위 걸친 체스터필드 코트. 단정한 단발 사이 화려한 귀걸이와 정리된 목선이 보였다.

마지막으로 눈을 마주하며 노인이 생각했다. 오묘한 이방인이로군.

“누구시오?”

“마술사.”

듣기 좋은 미성임에도 불구하고 어조가 건조해 잘 와 닿지 않았다. 노인은 찡그리며 지팡이를 잡았다.

“해적이 아닌 건 알겠군. 이 외진 데까지 무슨 연유인지 몰라도 아무것도 기대 않는 게 좋을 거요. 워낙 변경이거든.”

“그렇다면…… 내가 잘 찾아온 거 같은데.”

노인은 높아진 경계심을 굳이 감출 뜻도 없어 보였다. 마술사가 주위를 둘러본다. 항구 근처의 마을. 한적하고, 정말로 조용했다. 마술사는 나쁘지 않다고 판단했고, 그래서 눈앞 태도가 살짝 곤란했다.

짧은 순간 마술사는 고민했지만, 이내 사라진다. 더 이상 하찮은 데에 신경 쓰고 싶지도 않고 또 그럴 필요도 없었다. 마술사가 손가락을 흔들었다.

“실례. 아무래도 그쪽이 생각을 너무 많이 하셔서.”

“무슨…….”

경계와 현기에 찬 눈동자가 흐려진다. 마술사는 동시에 주변을 차단했다. 이쪽으로 접근하려는 사람들은 깜빡 잊었던 일이 떠올라 스스로 발길을 되돌리게 될 것이다. 누군가 원하는 정보를 다 얻을 때까지.

이 세계 유일의 대마술사. 무게감 없는 흑발이 나부꼈다. 젊은 마술사가 시니컬하게 웃는다.

“자, 그럼 첫 번째 질문을 하죠. 노인장.”

“…….”

“이곳은 어디지?”

하늘은 높고 대양은 푸르다. 날은 지극히 화창하여 전경이 훤했다. 한쪽으로는 산을, 한쪽으로는 바다를 낀 섬은 동화의 배경 같기도, 어떤 전설의 발원지 같기도 했다.

바람이 분다. 마술사가 이끈 미풍에 일렬로 선 풍차들이 돌기 시작했다. “이스트 블루 돈 섬.” 노인, 촌장 우프 슬랩이 답했다.

“여긴…… 고아 왕국의 후샤 마을이오.”

우짖는 야만의 발톱 아래,

1부 딛고 선 이곳 나의 정원인가 무덤인가 終

[작품후기]

감사합니다.

p.s. 완결 마크는 2부 시작될 때 뗍니다.

#_우야발 플레이리스트 공지에 추가했습니다 들으면 좋은 추천곡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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