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화
“반지를 사용하는 요령은 간단합니다. 가고 싶은 세계를 떠올리고 게이트 오픈이라는 주문을 외우시면 됩니다. 물론 저희 세계는 오신 적이 없으니, 제가 열도록 하지요. 게이트 오픈”
발키리의 말과 함께 게이트가 열렸다. 걸어서 통과할 수 있는 형태의 세워진 둥근 차원의 문이라고 할 수 있었다.
스타게이트, 혹은 온라인 게임의 포탈 같은 느낌이라, 그는 별 망설임없이 앞으로 걸어갔다.
“바람이 선선해서 좋은걸.”
무의식적으로 그렇게 말한 후, 박원기는 소스라치게 놀랐다. 후각, 미각을 떠나 촉각이 활성화되리라고는 상상도 못했기 때문이었다.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러자, 곧 박원기는 자신이 있는 곳이 결코 게임 속일 수는 없다는 것을 인식할 수 있었다.
가상현실이라고 하지만, 현실과는 명백한 차이가 있었다. 이건 업그레이드 따위로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와주었는가, 이계의 여신이여.”
당황하고 있던 그의 눈앞에 나타난 것은 더할나위없이 아름답지만, 투명한 유령과 같은 형체였다.
“프레이아 여신님이신가요?”
박원기의 말투가 저절로 조심스러워졌다. 도무지 영문을 알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신이라니. 정말 신이라는게 존재했단 말이야?’
“그대가 다스리는 아름다운 세상을 내 아이들을 통해서 볼 수 있었네. 게다가, 신성력을 소모하지도 않고 누군가의 몸을 빌린 것도 아닌데 이렇게 실체화할 수 있다니 그대야말로 우리보다 상위의 존재일지 모르겠군.”
‘어라? 좀 이상하네. 지금 이게 게임 캐릭터라는 사실을 모르나? 그리고 조작하는게 남자라는 사실도 모르는 건가?’
“나는 무력한 존재야. 이미 내 존재를 이 세상에 유지하는 것조차 어려울 지경이 되어버렸지. 그렇다고 내 자녀들을 버리고 근원으로 돌아갈 수도 없다네. 부탁이니, 날 대신해서 내 자녀들을 보호하고 이끌어 줄 수 있겠나? 그대의 세상은 이미 평화롭게 완성되어 있으니, 그대의 손이 많이 필요하진 않을걸세.”
프레이아 여신은 간청하듯 말했다. 실제로 그녀의 존재감은 대단히 희박해있고, 마치 바람앞의 등불처럼 느껴졌다.
“제가 이 세계에 대해서 잘 모르겠군요. 프레이아님이 어떤 존재인지도 잘 모르겠습니다. 선뜻 결정을 내리기가 어렵군요.”
“그렇겠지. 하지만, 내게도 시간이 없네. 그대를 믿고 결단을 내려야겠지. 모든 것은 그대에게 맡기겠네. 내 감정과 이성, 추억은 나와 함께 가야겠지만, 내 지식만은 그대에게 전해줄 수 있지.”
그렇게 말한 프레이아 여신이 내 아바타를 끌어 안았다. 동시에 내 머리속으로 많은 것들이 흘러들어왔다. 그녀가 말한대로의 지식이었다. 하지만, 그 지식은 엄밀히 말하면 ‘내 것’은 아니었다. 마치 머리속에 거대한 백과사전, 아니 지식 위키가 들어앉은 느낌이었다. 검색하면 떠오르지만, 검색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았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공부해야 한다는 뜻이었다. 젠장.
막연히 느껴지는 느낌으론 내 머리속에 존재하는 이 거대한 지식 덩어리를 다 읽는 것만으로도 수백년은 걸릴 듯 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무리였다.
‘필수적인 것만 우선 읽어보고, 그때그때 필요한 지식을 검색해서 활용하면 되는거겠지.’
그리고 곧 그녀는 사라져갔다.
프레이아 여신의 지식을 통해서 본 이 세계의 신들은 내가 생각해오던, 지구에서 흔히 생각하는 영원한 존재, 불멸자가 아니었다.
그들은 이성과 감정을 갖고 있는, 인간을 넘어선 상위 정신체에 지나지 않았다. 수명도 가지고 있고, 서로 싸우기도 하고 죽이기도 하는 존재였다.
“미친 놈들이 판을 치고 있군.”
나는 저도모르게 혀를 찼다. 여기에 있는 것은 북구신화의 신들이었다. 그리고 그들에 대해 내가 느낀 것을 한마디로 표현하면 정신에 기생하는 기생충들이었다.
불멸의 존재, 영원한 존재가 아니면, 신으로 받아들일 수 없다는 인간들의 인식의 전환 탓에, 이들은 천사, 혹은 악마나 요괴로 전락했다. 그리고 그런 상황을 되돌릴 수 없다고 여긴 이 상위 정신체들은 자신들의 추종자들을 이끌고 이 미드가르드라는 세상으로 도망쳐온 것이었다.
문제라면, 이 기생충들이 이 세계를 유지하는 존재라는 사실이었다. 인간이 살수 없는 불모의 공간에 결계를 쳐서 만들어진 미드가르드라는 세상은 이 정신체들의 힘이 없이는 유지될 수 없었다.
결계가 사라지면 이 안에서 살아가는 모든 생명들은, 아니 이 세상은 무로 돌아가게 되는 것이다.
이 실체를 갖지않은 정신체들을 유지해주는 것은 바로 인간들이었다. 그들의 신앙심과 기도가 그들에게 정신적 에너지를 보급해주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일부를 이용해서 세상을 유지하고, 기적을 행하며, 자신의 힘을 키워나가는 것이었다.
“그나마 날 불러준게 프레이아였던 것이 다행스럽군.”
그녀의 소멸과 함께, 발키리들 역시 사라졌다. 물론 그녀의 지식과 그녀의 역할은 나, 아니 내 아바타에게 이어진 상태였다.
그리고 마음만 먹으면, 발키리들은 쉽게 만들 수 있었다.
문제라면, 남아있는 신앙 포인트가 얼마 되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세상을 유지하는데 사용되는 정신력만으로도 거의 대부분이 소모된 것이었다. 한가지 다행이라면, 프레이아 여신을 유지하는데 소모되던 신앙심이 고스란히 남게 되었다는 것이었다.
물론 지금 상태가 유지된다는 것을 전제로 할 때였다. 프레이야가 급하게 내게 모든 것을 맡기고, 소멸된 것도 한계에 달했기 때문이었다.
‘이게 신이야? 악마야?’
신들에 대한 지식을 간단하게 요약해서 확인해본 나는 혀를 찼다. 프레이아를 제외한 다른 신들이라는게 내 기준으로 보면 죄다 미친놈들이라는 사실이었다. 아니, 신보다는 악마들에 가까운 것들이었다.
내가 아는 북구신화의 지식은 꽤 단순했다.
용맹히 싸운 용사의 영혼을 발키리라는 천사가 나타나서 발할라라는 이름의 천국으로 데리고 가서, 신의 전사로 만들어 준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그게 전부가 아니었다.
발할라라는 이름의 천국이 있으니, 당연히 지옥도 있었다. 그 이름은 니블헤임. 나도 몇차례인가 어렴풋이 들어본 기억이 났다.
이 지옥에는 그럼 누가 떨어지는가.
싸우지 않고 죽은 사람들이 떨어지는 것이었다.
평생 착한 일을 하고, 남을 다치게 하지 않은 사람들은 이 세계에서는 모조리 지옥행인 것이다.
늙어죽거나 병들어 죽는 사람들은 그가 어떤 사람이건 다 지옥에 떨어진다. 그래서 이 세계에서는 노인이나 병자를 가족들이 칼로 쳐서 죽여버린다.
그래야 지옥에 떨어지지 않는다고 믿기 때문이었다.
전쟁터에서 부상자가 나오면, 그들을 돌보기 위해 멈추지 않는다. 더이상 싸우기 어렵다고 생각되면 가차없이 죽여버린다. 실제로 부상을 입을 자들도 자신들을 죽여달라고 부탁한다.
이미 이런 신앙을 가진 인간들은 인간이 아니라, 아귀, 수라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런 점에서, 프레이아 여신은 내 마음에 들었다.
그녀는 싸움을 원치 않았다. 평화와 조화, 그리고 미를 추구했다. 상위 정신체들의 수명은 정해져 있지 않지만, 대게 300년 정도 지나면, 한계를 느끼고 후계자를 키운다음 근원으로 돌아갔다.
몇대를 이어서 프레이아 여신은 평화와 조화를 추구해왔다. 그리고 그 때문에 다른 신들에게 배척을 받았다.
그녀가 다스리는, 그녀를 믿는 인간들은 그녀의 가호 덕분에 날로 아름답게 변했지만, 전쟁을 원치 않았기 때문에 그들은 갈수록 척박한 북쪽의 숲속으로 쫓겨갔다.
그리고 그들은 엘프라는 아름답고 가련한 종족이 되어갔다.
이미 삼만 정도의 소수만 남아있었고, 그 숫자도 날로 줄어가고 있었다.
그리고 이건 내게 있어서, 아주 소중한 기회였다.
화상을 입고, 눈도 제대로 안보이고, 손도 제대로 못쓰는 장애를 갖게 되면서, 나는 남의 돌봄을 받았지 누군가를 돌볼 수는 없었다.
그 무력감이 너무도 슬펐다.
죽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을 때, 나는 이 세상에 아무것도 남기지 못하고 떠나게 될 거라는 두려움에 떨었다.
그리고 구사일생으로 목숨을 건진 다음에는 나는 누구에게도 필요치않은 짐덩어리로 전락했다는 사실에 절망했다.
그리고 그것을 게임속 캐릭터들을 도와주는 것으로 대리 만족해왔지만, 동시에 너무나 허무한 것이기도 했다.
나만을 의지하는 이들, 내가 아니면 지켜줄 수 없는 이들, 내가 행복하게 만들어줄 수 있는 이들이 있다는 사실에 나는 온 몸에 이는 전율을 느꼈다.
“발키리 창조.”
내 가벼운 하지만 더할나위없이 무거운 선언에 발키리들이 탄생했다. 이들은 내게서 탄생한 존재이기 때문에, 내 기본지식을 공유하고 있었다. 감정이 없으니, 로봇이나 아니 육체가 없으니 단순한 프로그램이나 다름 없었다.
이 세계의 사이비 잡신들은 실제로 천국이나 지옥을 소유하고 있진 못했다.
이들은 정신체인 만큼, 잠시 영혼을 구속할 수 있을 뿐이었다. 그것도 극히 소수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창조한 발키리는 고작 열마리.
내가 잠시 억류할 수 있는 영혼의 수도 최대 열명에 불과한 것이다.
오딘과 로크는 만마리 단위의 발키리를 갖고 있었다. 그들은 용감한 전사들에게 발키리를 붙여두고는 그들이 죽을 때 영혼을 붙잡아 신성력으로 만들어낸 육체에 다시 집어넣어서 재활용한다.
그것이 에인페리아였다.
그리고 일부는 자신을 거스르는 자들을 벌하기 위해서, 죽은 영혼을 구속해서 고통을 주면서 즐기는 용도로 사용했다.
그것이 발하라와 니블헤임의 실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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