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화
라그나로크.
신들의 최종전쟁으로 널리 알려져있었다..
북구 신화에서 신들은 다수의 종족으로 나뉘는데, 주가 되는 종족은 셋이다. 반 신족, 아스 신족, 거인족.
그 가운데 북구 신화의 주축을 이루는 것이 아스 신족이다. 그들은 전쟁을 통해서 반 신족과 거인족을 제압하고 그들이 지배하는 세상을 만들었다.
거인족은 반 신족이나 아스 신족과 대등한 존재들이었지만, 신으로서 추앙받을 만한 능력이 없었기 때문에, 신족이라는 이름으로 불리지 못했다.
반 신족은 자연과 조화를 이루고 풍요를 가져오는 힘을 가졌기 때문에 인간들에게 신으로 추앙을 받았다. 북구 신화에서 가장 먼저 신족이 되고, 조금은 신다운 종족이 바로 반 신족이라고 할 수 있었다.
그리고 아스 신족은 본래 거인족과 다름없는 포악하고 교활한 야만적인 악령에 가까운 이들이었으나, 그들은 발키리라는 인간의 영혼을 구속할 수 있는 하위 정신체를 소환하는 능력을 얻었다.
그리고 그것을 이용해서, 인간들 가운데 자신들의 마음에 드는 자를 골라서, 자신들의 뜻에 거스르지 않는 한 발키리를 붙여주었다.
발키리가 붙은 상태에서 죽은 자들의 영혼은 가야할 곳으로 가지 못하고, 발키리의 주인에게 끌려갔다.
그들은 자신들의 종에게 새로운 육체를 주고 다시 전쟁터로 내보냈다. 용자를 부활시키고 영원한 생명을 주는 아스의 정신체들은 곧 열광적인 추앙을 받으며 신족으로 등극하게 되었다.
그리고 순식간에 거인족을 학살하고, 반 신족을 노예로 거둬들였다.
그리고 그들의 세상인 아스가르드를 만들었다.
살아남은 반 신족들과 거인족은 아스 신족의 비기인 발키리를 손에 넣기 위해서, 그들에게 굴복했고 그 가운데 선택된 반 신족의 두 존재가 프레이와 프레이야의 재능있는 쌍둥이였다. 그들은 반 신족의 능력인 정령술을 가르치는 조건으로 발키리의 기술을 얻을 수 있었다.
그리고 거인족에서 아스 신족에게 보내진 자객이 바로 변덕과 폭풍의 신 로키였다. 그는 지극히 교활하고 야비한 자로, 교활하고 잔인하기로 이름높은 오딘과 죽이 잘 맞았다.
그는 발키리의 기술을 얻은 뒤, 니블헤임이라는 지옥을 만들고 자신의 딸인 헬에게 맡겼다.
오딘의 전략이 용감하게 싸운 자에게 영생을 주고 천국에 불러들이는 당근 정책이었다면, 로키는 싸우지 않고 평화롭게 죽은 자들을 지옥에 떨어뜨려서 영원한 고통을 줌으로써, 사람들은 공포로 싸움에 몰아세우는 한층 더러운 책략이었다.
그로 인해서 로키는 오딘의 의형제이자 측근이 되었다.
‘한마디로 미친 놈들끼리 죽이 맞았지.’
교활하고 비겁한 신들끼리 의형제를 맺어서 최고신과 형제신이 되었다. 북구신화의 세계가 얼마나 끔찍한지는 두말하면 잔소리였다.
남을 속이는 것이 미덕이고, 싸우지 않는 것은 죄악이다. 가족이 지옥에 떨어지지 말라고 제 손으로 쳐 죽인다.
이건 이미 인간이라고 말하기가 어려울 정도였다.
그렇게 공포와 계략으로 인간을 지배하던 아스 신족들이 현세에 한계를 느끼자, 자신들만의 새로운 세상을 만들기로 마음먹고 현세를 떠나게 된 사건이 바로 라그나로크였다.
유그드락실을 태우고 아스가르드를 붕괴시키고, 새로운 세상으로 옮겨가는 과정에서 로키가 반란을 일으켰다.
그 와중에 많은 신들이 죽음을 당했다. 오딘과 로키도 수차례 죽음을 당했다. 그들의 세력이 약화된 틈에 반 신족도 독립을 시도했다. 그리고 새로운 세상에 와서도 아스 신족과 거인족, 반 신족은 싸움을 거듭해 온 것이었다.
그리고 반 신족은 프레이야와 굴베이그, 아에기르를 제외하고는 모두 멸망해버렸다. 인간들을 이끌고 저항하던 뇨르드는 수하의 인간들이 모두 죽어버림으로써 더이상 스스로를 유지하지 못하고 근원으로 되돌아 간 것이었다.
발하라라는 이름의 천국도, 니블헤임이라는 이름의 지옥도 소유하지 못한 반 신족들의 몰락은 예견된 것인지도 몰랐다.
바다에 자리를 잡고 인어족을 다스리는 아에기르와 숲속에 숨어서 엘프족을 다스리는 프레이야만이 반 신족으로서 긍지를 이어가고 있었다. 인간들의 신인 굴베이그는 거인족들에게 의지해서 가까스로 연명을 하고 있었다.
결국 굴베이그도 프레이야도 아에기르도 모두 멸망 직전이었다. 프레이야가 엘프를 위탁할 반 신족을 찾을 수 없었기에 최후의 희망으로 도박과도 같은 여신찾기에 나선 것이기도 했다.
‘상황은 꽤 좋지않군. 하지만 나쁘지만도 않아.’
원기는 프레이야의 의도를 쉽게 알 수 있었다. 그가 이 세상의 엘프들을 보호하고 키워준 다음, 후계 정신체에게 프레이야의 좌를 넘겨주는 것이었다.
물론 그것을 탓할 마음은 없었다. 반 신족과 자신의 백성인 엘프들을 사랑한 그녀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원기가 지배하는 백성들, 행복하게 살아가는 이들이 있기에 원래 자리로 돌아가길 원할거라고 착각한 것이었다. 게임속에 존재하는 세상은 그만한 가치가 없었다.
사실 프레이야는 원기가 엘프들을 원치 않을거라고 믿었기에 새로운 프레이야를 새워주길 원한 것일 뿐, 원기가 엘프의 신으로 남는다면 그것도 나쁘지 않다고 받아들였을 것이었다.
'죽음을 넘어선 집념인가. 오딘이라는 놈도 대단하긴 대단하군.'
오딘은 발키리의 능력을 얻기 위해서, 스스로 세계수에 목을 매고 자신의 창으로 자신을 마구 찔러서 죽음의 기로에 빠진 상태에서 오랜 시간을 보내서 발키리의 능력을 얻었다고 한다.
그리고 지혜의 샘에 자신의 한쪽 눈알을 바쳐서 마법을 얻었다고 한다.
이 세상의 마법, 발키리의 권능, 그리고 반 신족의 정령술까지 모두 손에 넣은 것이 오딘이었다.
비정상적인 강한 집착, 그것 때문에 오딘은 다른 수많은 신들이 전생이라는 이름으로 후계자들에게 역할을 넘기고 근원으로 돌아갔음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수천년을 살아온 상태였다.
‘무서운 놈이야. 저런 놈이 적이라니.’
그리고 로키, 감언이설로 사람을 속이는 것이 장기인 교활한 괴물이었다. 자신의 적이자 최고신인 오딘의 의형제가 되었을 뿐만 아니라, 거인족을 깔보는 아스 신족의 여신들을 몽땅 꼬셔서 잠자리를 안한 여신이 없을 정도로 유명한 바람둥이이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딘에 대한 증오가 대단한 탓인지, 그도 아직까지 전생을 한 적이 없이 수천년간 오딘과 싸움을 계속하고 있었다.
지옥을 손에 넣은 그가 공포의 힘으로 인간들을 싸움으로 몰아가고 있기 때문이었다.
‘우선 살아남기 위해 쓰러뜨려야 할 상대는 프레이로군.’
아스 신족이 지배하는 세상에서 살기 위해 변절하는 자들도 있었다. 그리고 그들 중 하나가 프레이야의 쌍둥이 신 프레이였다.
풍요와 엘프의 신인 그가, 결국 라그나로크 이후에도 아스 신족의 휘하에 남아서, 반 신족들과 싸우는 길을 택했다.
그리고 그가 이끄는 엘프들은 다크 엘프가 되어 인간 이상의 공격성과 비열함을 지닌 추한 존재로 변해 버렸다.
프레이와 프레이야 두 쌍둥이 신은 반 신족 출신이지만, 아스 신족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맡은 신들이었다. 프레이는 그것을 믿고 오딘에게 의지했지만, 라그나로크 이후로 오딘은 반신족 출신인 그를 신뢰하지 않았고, 프레이야를 압박하는 도구로 사용해서 공멸시키려고 들었다.
하지만 오딘에게 굴복해버린 프레이는 그것을 알면서도 거스를 수가 없었다.
아스 신족이나 거인족과 싸워나갈 힘이 없는 프레이야의 생존 전략은 아주 간단했다.
남는 신성력의 대부분을 몬스터들을 창조하는데 사용한 것이었다. 거대한 침옆수림 안에는 드레이크, 트롤, 오우거라는 식인 몬스터들과 맹수들이 득실거렸다.
이 몬스터들은 실질적으로 적의 공격을 막는 지뢰나 다름 없었다.
통제 불가능한 몬스터로 만듬으로써, 들인 신성력에 비해 강력한 몬스터들로 만들어 낼 수 있었다.
지뢰가 피아를 식별하지 못하듯, 엘프의 민첩한 몸놀림과 예민한 청각 덕분에 숲 속에서 살아갈 수 있긴 했지만, 가끔씩 몬스터에 잡아먹히는 사고가 벌어지는 것도 감수할 수 밖에 없었다.
문제는 엘프들 이상으로 다크 엘프들도 숲속에서 자유롭다는 사실이었다. 불을 뿜을 수 없고 날 수도 없는 드레이크들이나, 몽둥이를 휘두르는게 고작인 트롤, 오우거등 엘프들에게 큰 위협이 되지 않으며 강력한 변종 몬스터들은 나무 가지위를 가볍게 뛰어다니며 화살을 쏘는 다크엘프들에게도 큰 위협이 되지는 않았다.
그렇기에 프레이는 다크 엘프들을 이용해서, 프레이야의 엘프들을 사냥하고 있었다. 그로 인해서 엘프들의 수가 계속 감소하고 있었고, 프레이야는 자신의 영체를 유지하기 힘들다는 사실을 깨닫고 이계의 여신에게 모든 것을 맡긴 것이었다.
‘우선은 이 세상을 돌아보는게 중요하겠지.’
운명 게임에서는 신이 현신용의 실체를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현신용의 육체를 사용하지 않을 경우에는 위에서 자신의 영토를 내려다보는 단일 시점으로 고정되어 있었다.
따라서 정신체만 있는 전임 프레이야처럼 자유롭게 장소를 옮겨 다닐 수는 없었다.
게임 화면 곧 시뮬레이션 화면을 벗어나려면 인간형 육체로 걸어다니면서 확인해야만 했다.
물론 프레이야의 궁전인 세스룸니르에는 발키리들의 눈을 통해서 주변을 볼 수있기는 했지만, 직접 만나서 이야기를 나눠볼 필요성이 있었다.
원기는 발키리들을 보내서 엘프들에게 집합 명령을 내렸다. 생각을 정리하는 데만도 꽤 많은 시간이 지났다는 것을 깨달았기에 슬슬 게임을 종료해야 했다. 누나가 돌아올 시간이 되어가고 있었다.
“로그 아웃.”
역시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궁전에 있는 오브는 원기에게 맞춰서 익숙한 방식인 운명 게임과 비슷한 방식으로 세상을 보여주긴 했지만, 역시 게임은 아닌 것이었다.
설정이라든가, 계정 관리 같은 항목이 전혀 없었다.
“집에 가야지. 게이트 오픈.”
원기는 게이트를 열고, 로그아웃하기 위해 게이트 안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게임을 통해서 다른 차원과 연결되리라고는 상상도 못했던 탓에 두근거리는 흥분을 진정할 수 없었다.
“에? 이게 어떻게 된거지?”
원기는 순간적으로 당황해서 할 말을 잃었다. 눈 앞에 바로 그가 누워있었기 때문이었다. 마치 유체이탈을 한 듯 원기는 자신의 육체를 바라보고 있었다.
원기는 무의식적으로 손을 보았다. 거기에는 여전히 아름다운 여성의 손이, 아니 여신의 손이 존재하고 있었다.
원기는 손을 뻗어서 내 몸을 만져 보았다. 확실히 누군가의 육체를 만진다는 촉감이 느껴졌다. 하지만 자신의 몸이 누군가에게 만져진다는 느낌은 없었다.
‘내 영혼이 게임 캐릭터로 옮겨가서, 게임 캐릭터와 같은 세상에 존재하는 건가? 희안하군.’
그리고 순간적으로 흠칫 놀랐다. 자신이 쓰다듬은 목 부분의 흉터가 사라진 것이었다. 화상의 끔찍한 흉터가 쓰다듬은 것 만으로 사라질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흉터를 마저 지우고 몸을 낫게 만들 생각을 하며 손을 뻗던 그는 황급히 손을 멈췄다. 그의 누나가 문을 열기 위해 번호키를 누르는 소리가 들렸기 때문이었다.
“게이트 오픈. 이번에야말로 게임 세계로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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