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잊혀진 신의 세계-5화 (5/497)

5화

로그 아웃을 한 원기는 누나인 승희가 차려준 식사를 하면서, 머리속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조금씩 실감이 나기 시작했다고 할까? 아무리 생각해도 말이 안되는 소리였다.

너무 엄청나서 믿기 힘들어졌다.

‘내가 게임에 너무 환장해서 꿈을 꾼건가?’

원기는 그렇게 생각하며 목을 쓰다듬었다. 그리고 거기에는 그가 여신 캐릭터 상태로 쓰다듬은 손자국이 느껴졌다. 극히 일부분만 매끈매끈한 피부가 되어 있었다.

주위를 둘러보았다. 여전히 부옇게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코앞에 있는 것도 제대로 보이지 않는 그의 시야를 생각하면, 사고난 후 이사온 이 집 벽에 있는 얼룩을 봤을리가 없다.

컴퓨터의 헤드셋을 끼고는 볼 수 없는 곳의 얼룩을 분명히 그는 보았다. 그래서, 가까이 가서 얼굴을 들이대고 보니, 과연 얼룩이 보였다.

여신 캐릭터로 현실 세계에 올 수 있다는 사실은 분명했다.

‘정말로 실감이 나지 않는군.’

원기의 머리속은 벌어진 일의 의미를 생각하느라 복잡한 상태였다. 자신이 처한 상황이 너무 엄청나고 무거운 것이 되었다.

'이제는 프레이야가 되어버린 내 여신 캐릭터를 이용해서 내 상처를 모두 고쳤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그는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두려워졌다.

생각해보면, 가장 먼저 하고 싶은 일이지만, 주위 사람들에게 설명할 방법이 없었다. 이세계의 여신이 되었다? 믿어줄 사람도 없을 듯 하지만, 믿어준다고 해도 골치아플 터였다.

로또 복권에 맞아서 사람들에게 시달려서 야반도주 했다는 이야기도 흔히 듣는 이야기였다.

그리고, 생각해보면 지금 여신의 자리도 위태롭기는 매한가지였다. 엘프들의 숫자가 조금만 더 줄어들어도, 결계는 물론이고 프레이야의 신성을 유지할 수 없게 될 터였다.

다크엘프들을 지배하는 프레이라는 놈과 빨리 결판을 낼 필요가 있었다. 형제신이라든가 같은 반족 출신이라든가 하는 것은 의미가 없었다.

발등에 떨어진 불이라고 해도 과언은 아니었다. 그들을 제거하지 않으면 존속할 수는 없었다. 전대 프레이야 여신을 유지하던 신성력만큼 여유가 생겼다지만 현실을 타개할 만큼 대단한 것은 아니었다.

‘내가 프레이야가 되어서 뭘 할 수 있지?’

원기는 잠시 생각해 봤지만, 문제는 그리 간단하지는 않았다. 일단 존재하는데 유지비가 안드는 여신이 되었다고 하지만, 실제로는 그렇게만볼 수도 없었다.

게이트를 열고 닫는데도 여신의 힘이 사용되는 것이다.

집세가 없어진 대신에, 교통비가 들어가는 꼴이라고 할까.

적어도 두번, 현실 세계에 들렸다가면 세번은 사용해야 하는 것이다. 그에 사용되는 신성력은 결코 적지 않았다. 전대의 프레이야 여신이 자신의 존재를 유지하는데 하루 일만 포인트를 사용했다는 것을 생각하면 1/5정도로 저렴하긴 하지만, 그렇다고 유지비가 전혀 안든다고는 할 수 없었다.

여신이 사용할 수 있는 기술은 모두 신성력을 소모하게 되어 있었다. 생각하는 것만으로 무엇이든 이룰 수 있는 전지전능한 존재와는 전혀 달랐다.

연료가 없이는 움직이지 않는 자동차와도 비슷했다.

그의 여신 아바타는 힘도 민첩도 마력도 배정되어 있지 않은 그런 존재였다. 사람의 모습을 하고 사람들이 사는 곳을 둘러보는 역할만을 하는 캐릭터였다.

싸우는 것은 불가능할 것은 틀림없었다.

게다가 여신이 소비하는 신성력은 너무 낭비가 심했다. 아니 엄밀히 말하면, 종류가 달랐다.

인간의 육체를 창조하는데 드는 신성력을 1이라고 하면, 인간을 치료하는데 드는 비용은 10이었다. 그것도 죽기 직전이나, 아주 작은 상처에도 똑같았다. 물론 쓰다듬는 것만으로 표면의 흉터가 지워지는 놀라운 능력이 있긴 했지만 어디까지나 표면에 지나지 않았다.

상처를 치유하고자 의지를 갖고 그 힘을 발휘하려고 들면 막대한 신성력이 소모되었다.

차라리 죽은 다음, 육체를 새로 만들어서 거기에 넣어주는게 더 경제적이었다.

여신의 치유는 딱 한 종류였다. 몸 전체를 완벽하게 새로운 육체로 재구성하는 것이었다. 사고난 자동차의 경우, 수리하는 것보다 새로 사는게 싼 경우가 있다. 그와 비슷하다고 할수 있었다.

신체의 자연치유력을 높여서 치료하는 성직자의 치료와는 달리, 완벽하게 효율을 무시한 것이라고 할 수 있었다.

물론, 효과는 발군이었다. 죽어가던 사람도 순식간에 팔팔해지니까. 하지만 가격대 성능비가 너무 무서웠다.

사람을 치료하는데 드는 신성력의 십분의 일만 가지고도 하루동안 자신을 믿는 이들 전부의 능력치를 대폭 올려주는 대규모 축복이 가능했다. 질병에 대한 저항력이나 자연치유능력을 높여주기 때문에 필수라고 해도 과언은 아니었다.

큰 일을 하는데는 적게 소모되고, 사소한 작은 일에 사용하면 엄청나게 낭비되는 것이었다.

치료하는 능력의 백분의 일만 가지고도 믿음과 충성수치가 높은 신자 하나를 성기사나 사제를 만들 수 있으니, 그들을 이용해서 치료를 하는 것이 정상적인 판단이 될 터였다.

일단 지금은 신성력이 극히 부족한 상태였다. 그걸 생각한다면, 사적인 일은 뒤로 미루는 편이 좋았다.

‘그렇다고는 해도 내 몸을 치료하는 것만큼은 꼭 해야 하는데...’

원기가 생각하는 최악의 시나리오는 엘프들을 지키지 못해서 신의 자격을 상실하고, 나아가 미뤄둔 자신의 치료도 못하는 것이었다.

신의 자격을 유지하는게 우선이지만, 실패한다면 적어도 자신의 육체 만큼은 낫고 싶은게 솔찍한 마음이었다.

‘우선은 생존인데...역시 전투가 필요하겠지.’

원기는 그다지 많은 소설을 읽지는 않았지만, 게임 소설을 떠올렸다. 적을 죽이면 죽인만큼 강해지는 게임의 캐릭터는 현실에 있어서는 그 존재만으로도 반칙이라고 할 수 있었다.

그리고, 마침 운명게임과 연결된 블러드라인은 전형적인 온라인 알피지 게임이었다. 블러드라인에서 캐릭터를 가지고 운명의 세계에 방문한다음, 게이트를 통해서 그쪽 세계로 갈 수 있을 터였다.

‘그렇군. 혼자보다는 여럿이 가면 더 좋을 것 같아.’

게임의 능력치를 가진 인물들이 대거 그쪽 세상에서 활약한다면, 그거야말로 대단할 터였다.

‘하지만, 누구를 데려가지?’

순간적으로 마음이 확 식어버리는 느낌이었다. 뉴스에서는 언제나 경기가 나쁘다고만 떠든다. 훗날 돌아보니 훌륭한 대통령이라고 여겨지던 사람의 집권 시기에도 늘 경제가 죽었다고 난리였다.

지금도 그런 상황은 변함없었다. 그때문일까, 부모님이 돌아가시고 보험금 문제로 친척들과 많은 다툼이 벌어졌다.

누나가 자신을 안고 서럽게 운 일도 많았다. 친척들은 그를 좋게 말하면 환자취급이고 솔찍히 말하면 병신취급하며 무시했고, 덕분에 그의 누나만 고군분투해야 했다.

친척이야말로 정말 무서운 괴물이라는 사실을, 인간은 쉽게 믿어선 안될 존재라는 사실을 뼈저리게 알게 해줬다. 아니 친척이 나쁜 것은 아니었다. 이해관계가 얽히면 누구라도 그렇게 변할 수 있었다.

친구간에 돈거래하지 말라는 소리가 괜히 나온 것은 아니었다.

병원에 젊은 레지던트 중 한 사람이 그의 누나에게 호의를 표시하고 있지만, 누나 역시 인간 불신에 빠진 터라 마음을 열진 않고 있었다.

그의 개인적인 의견이라면, 꽤 괜찮은 사람이었다.

다만, 원기가 생각하기에 결혼이라는 건 집안과 집안이 하는 것이니, 그쪽 집안을 모르는 이상 쉽게 판단할 수는 없을 것 같았다.

친척들에게 한번 크게 데어보니, 세상이라는게 그리 쉬운 것은 아니라는 사실도 알 수 있었다.

아버지가 암에 걸려 죽어가는데, 친척들이 그게 다 어머니 탓이라며 가뜩이나 힘든 집안을 쑥대밭을 만들어놓았다는 이야기도 인터넷에서 흔히 볼 수 있었다.

아니, 남 이야기만은 아니었다. 실제로 그에게 와서도 불쌍한 것이라고 안됐다는 듯이 쳐다보면서, 운전한 아버지가 평소에 주의가 산만하고 불성실했다는 식으로 떠들고 간 친척도 있었다.

제딴엔 위로라고 했을지 모르지만, 두들겨 패고 싶었던 것도 사실이었다.

‘살의’라는 것이 어떤 것인지, 그때 정말 실감할 수 있었다.

인간만큼 믿기 힘든 것이 없었다. 만약 누군가가 그에게 떨어진 행운에 대해서 눈치 챈다면, 가로채려고 들지 말라는 법은 없었다. 이건 로또 정도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이 큰 행운이었지만, 그만큼 곤경에 빠질 수도 있는 위험성을 안고 있었다.

때론 큰 행운이 불운을 가져오기도 했다.

‘신중히 결정해야 해.’

식사가 끝나고, 잠시 누나와 그날의 일과 이야기를 나눈 다음 원기는 방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블러드라인에 접속해서 캐릭터를 만들었다.

성별은 당연히 남자였다.

그리고 외모는 최대한 자신과 비슷하게 만들었다. 물론 화상으로 일그러지기 전의 자신이었다.

종족은 엘프. 인간들과 적대하고 전쟁중이니 다른 종족으로 만들면 이모저모 불편할 것이 틀림없었다.

‘엘프치고는 그다지 잘생긴 편은 아닌가? 아니 엄청 못생긴 것일지도...’

원기는 무의식적으로 미소를 지었다.

이름을 정하는 곳에서 잠시 망설였다. 실제로 자신의 이름을 쓰기는 좀 쑥쓰러웠다. 하지만 남에게 불리울 걸 생각하면 역시 자기 이름이 좋았다.

원기라는 이름으로 등록을 하니, 다음은 클래스를 정해야 했다.

전사, 궁사, 법사 등등이 눈 앞에 펼쳐졌다. 여기서 잠시 고민했다. 검을 휘두르는 검사 혹은 전사가 멋있다고는 하지만, 그곳은 이곳과 극히 비슷한 실제 세상이었다.

적이라고는 해도, 눈 앞에서 인간이 자신이 휘두른 칼에 맞아 죽는 모습은 상상만 해도 불쾌했다. 조금 큼직한 벌레를 죽일 때도 기분이 찜찜한데, 인간이라면 어떻겠는가.

모기라면 몰라도, 파리만 되어도 손으로 눌러서 터쳐 죽이는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이건 도덕성의 문제 이전의 생리적인 혐오일 것이다.

‘역시 궁수나 마법사가 좋을까?’

망설이던 원기의 눈앞에 몬스터 조련사라는 직업이 보였다. 그리고 그 순간, 그는 바로 이거다하는 생각이 들었다.

직접 싸우지 않으니, 조금은 비겁하다는 생각도 들었지만 그만큼 마음의 부담은 덜할 것이었다.

그는 조련사를 택하고 블러드라인에 접속했다. 조련사라는 직업은 다른 게임의 사냥꾼과 좀 비슷했다. 활과 총 둘 중 하나를 사용할 수 있었다.

‘활과 총이라, 이거 과연 어떤 효과가 날까. 총을 가져가도 괜찮을까?’

프레이야가 준 정보는 그의 머리 속에 완전히 녹아있다고는 할 수 없었다. 그가 집중하면, 마치 인터넷 검색처럼 그 부분에 대해서 자세한 내용이 떠올라서 머리 속에 직접 전해지는 방식이었다. 그것도 여신 아바타로 존재할 때에만 가능했다.

물론 머리 속에 직접 전해진다고 해도, 세부적인 것은 곧 잊어 버렸다. 머리 속에 새겨지는 것은 아닌 듯 했다.

프레이야의 정보에 의하면, 마법은 있지만 화약은 존재하지 않는 세계였다. 총이나 대포는 있을리 없었다.

‘총의 보급이 정말 현명한 일일지 모르겠는걸.’

아스가르드는 인간들의 신앙에 의해서 유지되는 세상이었다. 잘못해서 과학 문명이나 문화가 유입되어 신앙심이 줄어든다면, 세상 자체가 붕괴되어버릴 수도 있었다.

‘아냐, 총까지는 어떻게 가지고 들어가 보자.’

증기 기관 정도는 아스가르드에도 알려져 있었다. 물론 실용화와는 아주 거리가 먼 장난감에 지나지 않았다. 증기 기관차가 있는 것은 아니고, 고대 그리스 철학자들이 가지고 놀던 장난감 정도로 존재하고 있었다.

내연기관이나 전기만 알려지지 않는다면, 급격하게 문명이 뒤바뀌는 일은 없을터였다.

원기는 자신의 장점이 현대 문물을 알고 있다는 것이라고 인식하고 있었기 때문에 아스가르드의 문명 상황에 대해서 알아보았다. 중세 수준에도 채 못미치는 발전을 거두고 있었다. 아스가르드는 척박한 세상이라 인구가 절대적으로 부족한 것이었다. 대륙 전체에 천만명을 넘었던 적이 없었다.

게다가 전쟁을 중시하는 야만적인 신들 덕분에 전쟁이 이어졌고 문명 수준이 발전할 상황은 만들어지지 않았다.

‘적어도 몇십년은 현 상태를 유지시켜야 하지 않을까.’

그렇게 생각하던 원기는 쓴 웃음을 지었다. 잘못하면 일년 안에 엘프들이 일정 수 이하로 감소할 상황이었다. 수호신인 프레이야를 잃는다면, 엘프들의 멸종은 막을 수 없었다.

당장 급한 불은 꺼야 했다. 나중에 시간이 지나면, 뭔가 방법이 나올 것이었다.

────────────────────────────────────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