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화
게임 상의 캐릭터가 지닌 총은 화승총이었다. 물론 장전할 필요성은 없고 그저 쿨타임이 존재할 뿐이었다. 엘프족이라고 총보다는 활쪽에 더 장점이 있는 듯 했지만, 총보다 활에 능숙하다는 것 뿐이지, 총을 못다루는 것은 아니었다.
조련사는 기본적으로 원거리 공격 캐릭터다. 그리고 상황에 맞춰서 몬스터를 소환해서 사용하게 되어 있었다.
동시에 부릴 수 있는 몬스턴는 한 마리 뿐이지만, 레벨이 높아질수록 여러마리를 키울 수 있게 되어 있었다.
몬스터 보관 마법통이 있어서, 그 안에 보관하게 되어 있었다. 부릴 수 있는 몬스터의 종류는 특별히 제한이 없었다.
일본에서 인기있던 XX몬이라는 게임들의 영향을 받은 탓에, 조련사를 제외한 다른 직업들도 대부분 몬스터를 부릴 수 있었다.
물론 트레이너만큼은 부리는 몬스터의 능력을 향상시켜주는 능력 위주로 되어 있었다.
게임의 시작은 보통 평범한 게임들과 별반 차이가 없었다. 마을을 지키는 민병대 대장에게 가면 간단한 사냥 기술을 습득할 수 있는 퀘스트를 제공한다.
토끼와 여우, 들개를 상대하면서 초반 렙 업을 하는 것도 역시 일반적인 게임과 다를 바가 없었다.
이 게임에는 히든 클래스도 특별한 스킬도 존재하지 않았다. 만약 그런 것들이 존재한다면, 밸런스가 어쩌고 형평성이 어쩌고 하면서 게시판이 터져나갈 터였다.
현질을 하는 사람들도 없진 않지만, 아이템 매매로 큰돈 버는 사람도 없는 그런 평범한 게임이었고, 어차피 적당한 수준의 캐릭터로 성장하면 충분했기 때문에 별로 어려울 것은 없었다.
‘적당한 수준만 되어도 충분히 현실 세계에서는 사기적인 능력일테니까.’
세시간 가량 지나자, 레벨 10에 달했고, 몬스터 테이밍을 배울 수 있었다. 조련사는 두가지로 나뉘는데, 하나는 테이머이고 하나는 트레이너였다.
테이머는 야생 몬스터를 잡아서 부리는데 유리했고, 트레이너는 몬스터의 경험치와 성장에 특혜가 있었다.
이 게임에 등장하는 테이밍 몬스터들은 진화라는 개념이 장착되어 있어서, 보통 3단계까지 진화시킬 수 있었다.
길바닥에 있는 토끼도 잘 키워서 최종단계인 3단계까지 진화시키면 보스급의 험악한 외견을 가진 ‘만렙 토끼’가 만들어질 수 있는 것이다. 물론 날카로운 이빨과 발톱, 박쥐의 날개를 가진 거구의 야수를 ‘토끼’라고 부를 수 있는지는 의문이긴 하다.
잠시 망설인 원기는 테이머를 택했다. 작은 몹을 성장시키는 것도 재미는 있겠지만, 당장 써먹을 전력이 필요하기 때문이었다.
진득하게 게임 속에서 놀고 있을 수는 없었다.
게임 속에서야 적을 죽이면 죽일수록 레벨 업이 되지만, 과연 아스가르드에 가서도 그렇게 될지는 의문이었다. 아니 사람들에게 레벨이 존재하지 않는 만큼, 레벨업은 없을 것이다.
만렙까지 키우는 것도 좋겠지만, 저렙 상태에서 먼저 아스가르드에 가볼 예정이었다. 아무리 만렙이 쉽다지만, 광렙해도 한달은 걸린다. 자칫하면 그 전에 엘프들이 줄어들어서 여신 자리가 날아갈 수도 있었다.
우선은 게임의 능력치가 과연 아스가르드에서 반영될 것인가.
게임 속의 아이템들을 아스가르드의 엘프들이 사용할 수 있을 것인가.
아스가르드에서 게임처럼 경험치를 얻을 수 있을 것인가.
단순한 레벨 노가다를 하면서도 머리속은 이런 저런 생각으로 복잡하기 짝이 없었다. 원기는 웹 페이지를 참고해서 최단 코스로 기본 능력만 갖추면서 렙 업을 해나갔다.
‘역시, 권력자를 하나 꼬셔야 하지 않을까?’
원기는 별 생각 없이 캐릭터를 움직이면서, 생각에 잠겼다. 가상현실 게임은 마우스로 클릭하는 것과는 다르지만, 현실적으로 움직이는 것과도 역시 달랐다.
느낌은 마우스 클릭질에 더 가까울지 몰랐다. 대충 생각하면, 알아서 움직이고 알아서 싸우고, 알아서 아이템을 주웠기 때문이었다.
반면 아스가르드에서 프레이야를 움직이면서 느낀 것은, 실제로 자신이 움직이지 않으면 움직여주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원기가 검사나 궁사가 아닌, 테이머와 총을 택한 것은 바로 그때문이었다.
검사나 마법사는 몬스터를 한마리만 기를 수 있지만, 나중에 가면 몬스터와 합체할 수 있었다. 테이머나 트레이너는 그런 능력이 없기 때문에 사람들에게 은근히 소외받는 직업이기도 했다.
알아서 몹에게 싸우라고 지시하고, 총을 쏘라고 타겟을 지정하면서 생각을 정리해 나갔다.
‘함부로 사람을 끌어들일 수는 없어. 하지만 나와 같은 운명공동체가 된다면 어떨까? 사랑하는 사람들이 여신의 궁전에서 머무르게 된다면, 이야기는 달라지겠지. 인질을 잡아? 그건 말도 안되는 짓일테고...’
그때 퍼뜩 떠오른 것은 부활, 아니 영혼을 잡아서 새로운 육체에 집어넣는 기술이었다.
오딘이 얻어낸 죽음을 초월하는 기술.
그게 있다면, 죽기전에 발키리를 붙여서 그 영혼을 일시적으로 붙잡은 다음 새로운 육체에 넣어줄 수 있을 것이다.
에인페리아는 보통 신을 위해 싸울 용사를 확보하기 위한 것이었지만, 인질에 쓰지 말라는 법은 없었다.
‘그래. 그렇게 되면 자연스럽게 인질을 확보할 수 있겠지.’
이미 죽은 사람을 다시 되살려 주는 것이다. 그리고 그들이 여신의 궁전에 머무를 수 밖에 없다고 말한다면, 별 문제는 없을 것이다.
가족들과 만날 수 있고, 가끔은 바깥 세상을 보게 해주면 별 문제는 없을 것이다.
이쪽 세계에서는 어차피 죽은 사람들이니까.
그는 프레이야의 기억을 참조해서, 실현 가능성을 점검해 보았다. 발키리는 엄밀히 말하면 천사가 아니라, 사신에 가까운 존재였다.
특정 조건을 갖춘 이들이 죽음을 맞는 순간, 그들을 찾아내서 그 영혼을 거두는 것은 그들의 특기였다.
실현 가능성은 확실해 졌다.
조폭은 신뢰할 수 없고, 정치가도 그다지 신뢰할 수 없었다. 재벌가의 인물들은 능력이 있는지도 불분명하거니와 가족들이 권력을 분담하고 이쪽저쪽 혈연으로 얽혀 있으니 접근하기 어려울 터였다.
정직하게 사업으로 자수성가한 인물 가운데, 가족을 극진히 사랑하는 사람.
그런 사람을 찾을 필요가 있었다.
‘하아. 이런 사람이 세상에 있기는 할려나.’
원기는 내심 한숨을 쉬었다. 하지만, 찾아볼 수 있을 만큼 찾아볼 필요는 있었다.
우선 레벨 10짜리 보스 몹인 리저드 나이트를 테이밍했다. 블러드라인 최초의 보스몹이고, 드래곤 나이트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만큼 멋지게 생긴 놈이었다.
첫 보스와 최종 보스를 가장 멋지게 만든다는 게임 제작의 원칙을 충실히 따른 놈이었다.
트레이너라면 레벨 20이 넘어야 테이밍이 가능했겠지만, 테이머로 전직한 덕분에 레벨 15를 가지고도 충분히 테이밍을 할 수 있었다.
그리고 원기는 플러그인을 실행시켜서, 자신이 만든 여신의 세계로 들어섰다.
퀘스트고 뭐고 아무것도 안남은, 몬스터가 완전히 멸종된 세계에 평화가 충만한 세상이 눈앞에 펼쳐졌다.
그렇다고 호화로운 궁전이 있는 것도 아닌만큼, 볼거리도 없고 놀거리도 없는 재미없는 세상임엔 틀림없었다.
“이런. 생각해보니 반지를 넘겨받을 수가 없군.”
동시에 두 캐릭터로 접속할 수는 없었다. 반지를 넘겨줄 중간 매개체가 필요했다.
여신 캐릭터에는 인벤토리조차 없고, 일반 캐릭과 아이템을 주고받는 우편 기능도 존재하지 않았다.
‘발키리들을 불러들여야 겠군.’
발키리들은 감정을 갖지 않고, 이성만 갖고 있는 정신체였다.
그 때문에 이들은 로봇이나 컴퓨터 프로그램같은 느낌의 존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육체를 만들어 부여하면 로봇이요, 육체가 없으면 인공지능 프로그램이었다.
물론 감정을 부여할 수도 있었다. 그 경우 생산비와 유지비가 압도적으로 상승하기 때문에, 꼭 필요한 경우가 아니면 삼가하는 편이 좋았다.
차기 여신이 될 후계자로 하나 쯤 만들어 둘 필요성은 있지만, 현재로서는 신앙 포인트가 부족했다.
물론 감정을 갖는다고 해도, 자신을 만든 존재를 거스를 수는 없다는 점에서는 감정을 갖게 되면 로봇은 아니지만 노예에 가까운 존재가 된다고 해야할 것이다. 아니, 자발적이라는 점에선 노예라기보다는 맹목적인 광신자가 어울릴 것이다.
‘육체를 가진 발키리를 하나, 창고 관리용으로 두면 되겠지.’
생각은 다시 인질 확보로 흘렀다. 인질을 만드는 것은 간단한 문제는 아니었다.
한명만 죽으면, 혼자서 낯선 세계에서 견디기 힘들 것이고 세명이상은 너무 많았다. 소모될 신앙 포인트도 문제가 되지만, 동시에 세명 이상이 죽는 건 상당히 드물 터였다.
‘이렇게 자꾸 조건이 좁혀지면 정말 대상자 찾기가 쉽지 않겠는걸.’
일단 블러드라인에서 로그아웃을 한 뒤 운명으로 재로그인을 했다.
‘생각해보니 인벤토리도 없는데 반지를 끼고 있는걸. 아, 당연한건가.’
현실의 인간도 인벤토리와 같은 편리한 존재는 없지만, 물건을 걸치거나 들고 다닐 수는 있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무기라도 하나 떨궈 놓는건데 그랬군.’
시험삼아 들고 가볼 수 있었을거라는 생각에 조금 아쉬운 감이 들었다. 여신이 총을 들고 돌아다닌다는 것도 좀 웃기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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