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화
“이 사람들이 용병 후보라는 건가?”
조제성을 통해서 도착한 이메일을 검토하면서 박원기는 쓴 웃음을 지었다. 조제성의 조사 결과 나름 신뢰할 수 있을만한 사람들로 되어있었지만 부담스러운 면면들이 눈앞에 자리잡고 있었다.
군 경험들이 충만한 얼굴들을 보고 있으니, 저 사람들을 과연 제대로 부릴 수 있을지 걱정스러웠다. 나이들도 많고, 결정적으로 험상굳어 보였다. 당장 전력은 될 수 있지만, 그 이상으로 위험부담이 존재했다.
‘왠지 똘끼들이 충만해 보이는게...’
그리고, 발키리가 모아온 이들의 정보도 함께 메일에 실려있었다. 발키리가 대상을 지정하면, 조제성이 검색해서 리스트를 만들어 온 것이었다.
발키리들에게는 특별히 조건을 부여하지 않았는데, 왠지 전부 젊은 여자로 이루어져 있었다.
‘내 내심을 읽은 건가?’
그들이 조사해 온 대상의 경우, 나이는 원기보다 많아봐야 한두 살 위에, 대부분 미모의 여성이었다.
망해가는 검도 도장의 장녀라든가, 훈련중에 팔을 다쳐서 재기 불능이 된 양궁 소녀를 비롯해서, 아스가르드에 가더라도 쓸만한 특기를 가진 여성들이었다.
PTSD라는 전쟁 증후군이 좀 걱정되긴 하지만, 가장 큰 원인은 죽음의 공포이고, 게임 캐릭터로의 참전은 죽음의 공포가 없는만큼 위험성은 대폭 감소하는 편이었다.
프레이야의 기억을 통해서 살펴본 인간들은 판타지 소설에 나오는 오크 수준의 야만적이고 흉폭한 생물이라, 마음의 부담도 그리 크진 않을터였다.
갑옷을 입고, 무기를 쓰고, 놀랍게도 말도 하지만, 인간이긴 하지만 문명인으로 보기엔 심히 부담스러운 존재들이었다. 한마디로 그냥 야만인에 가까웠다. 마법사와 기사들이 존재한다곤 해도, 그들 역시 그다지 아름다운 모습은 아니었다. 영화에서 나오는 무식하고 야만스러운 산적들은 비교할 수도 없었다.
원기는 모니터의 프로필들을 보면서 고민했다. 과연 어느쪽을 선택해야 할 것인가.
넘치는 전투 경력을 자랑하는 군경험자들을 사용할 것인가, 푸릇푸릇한 미소녀들을 고용할 것인가.
‘생각해 보니, 망설일 필요가 없군.’
원기는 결단을 내리기 위해 냉정하게 상황을 고려했다. 미소녀들이 좋다고는 해도, 즉시 전력이 되기는 어려웠다.
하지만 즉시 전력이 되는 이들을 원기가 통솔하는 것은 무리였다. 전투 경험도 없고, 능력도 없는 원기는 그들을 통솔하기는 커녕, 똘마니가 되기에 딱 좋았다.
무리해서 여신의 권력을 이용해서 그들 위에 선다고 해봐야, 그들의 발목을 잡거나, 비웃음을 당할 것이 틀림없었다.
‘주도권을 양보할 수는 없지.’
반면, 전투 경험이 없는 미소녀 군단은 원기가 충분히 통솔할 수 있을 터였다. 어차피 불사의 군단이니, 몇차례 혹은 몇십차례 죽으면서 인간을 통솔하는 것도, 전투 경험을 쌓는 것도 가능할 터였다.
전투 경험과 실전에서 쌓은 공적이 있다면, 아스가르드에 대한 지식과 경험으로 전투 경험이 있는 실질적 용병 군단들을 지휘하고 거느리는 것도 가능할 터였다.
그리고, 즉 전력으로 써먹기는 힘들지만, 유연성이라고 할지 성장 가능성은 아직 젊은 미소녀 군단쪽이 우월하다고도 할 수 있었다. 총기를 사용하지 않는 전투는 검도 소녀나, 양궁 소녀가 더 나을 수도 있는 것이다.
경험해 본 바로는 엘프의 몸은 인간과 달리 이질적이니, 엘프 종족의 육체에 적응하는 것도 어린 쪽이 더 나을 터였다.
‘그리고 생각해보면 급한 불은 껐지. 시간은 충분히 벌었어.’
식량이야말로 최강의 무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당장 조제성을 통해서 건조식량부터 장기 보존식을 중심으로 아스가르드에 반입을 시작했다.
식량을 외부에서 들여오는 만큼, 식량 채집을 포기하고 엘프들을 모두 한 곳에 모아놓는데 성공했다.
집중된 만큼, 전력적으로도 강해졌을 뿐만 아니라, 현재 요새를 강화 건축하고 있었다.
어차피 식량이 남아도는 세상인 만큼, 이곳에서 수입하는 것만으로도 삼만 남짓한 엘프들은 배불리 먹일 수 있었다.
전투가 가능한 엘프들은 모두 군인으로 만들어서 훈련을 시키고, 요새를 만드는데만 집중했다. 식량을 수입하는 만큼 넓은 땅은 필요치 않았다.
대규모의 공성 부대가 오지 않는다면, 결코 공략할 수 없을터였다.
지금까지 프레이가 써온 전략은 완전히 무효화 되었고, 충분히 시간을 벌 수 있었다. 총기를 사용하는 것은 좀 더 훗날이 될 터였다.
‘지금으로선 내가 리더쉽과 실력을 갖출 때지. 노련한 용병은 되려 곤란해.’
아스가르드의 용병을 고용해서, 뭔가 배우는 것은 괜찮겠지만, 지구의 인간을 함부로 참여시키는 것은 위험했다.
“우선은 검사와 궁수만 참여 시키기로 하지.”
발키리에게는 구글이나 야후같은 일종의 조건부 검색 능력이 존재했다. 감정이 존재하지 않는 영혼은 마치 컴퓨터나 다름이 없었다. 아스가르드에서 만들어낸 정신의 컴퓨터라고 할까.
에고를 가진 아티팩트들과 발키리들은 그런 면에서 같은 뿌리를 가지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이들에게 부여한 조건은 구제 대상을 사랑할 것, 도움이 절실히 필요할 것, 신뢰할 수 있는 성격일 것 등등이 포함되어 있었다.
재능보다는 비밀을 지킬 수 있는가 없는가가 중요했다. 조제성의 리스트보다는 내심을 읽을 수 있는 발키리의 리스트가 더 신뢰가 가는 이유이기도 했다.
물론 발키리의 리스트는 발키리가 사람을 찾아내면, 조제성이 그들의 상황을 조사해서 만들어진 것이었다.
신용 조회까지 해서, 경제 상태까지 체크가 완료된 상태였다. 경제적으로 어려움이 있을 것, 씀씀이가 크지 않을 것 등의 항목도 기재되어 있었다.
검도 도장의 딸이자, 효녀인 한희연이 첫번째 섭외대상이었다. 고 2의 여학생이지만, 도장의 부진으로 경제적 어려움을 겪어 왔다. 학업을 계속하는데 어려움이 있었다.
성실한 성격으로 성적도 상위권이지만, 도장의 사범인 아버지가 중풍으로 쓰러지는 바람에 고등학교 학업도 포기해야 할 상황이었다.
아버지 중풍의 치료와 경제적 지원을 약속함으로써 그녀를 끌어들이는데 성공했다.
그리고 고 1의 양궁 소녀, 유연하. 양궁에 뛰어난 재능을 지녔던 소녀지만, 사고로 한 팔을 못쓰게 됨으로써 모든 것을 포기할 수 밖에 없었다. 양궁에 모든 것을 걸었던 그녀로서는 학업으로 복귀하는 것이 쉽지 않아서 자포자기한 상태였다. 집안은 홀어머니가 식당에서 일하는 것으로 살아가는터라 경제적으로 풍족하지 못한 상태였다.
경제적 지원과 팔의 원상 복귀를 약속하고 역시 계약을 성공시킬 수 있었다.
계약의 조건은 제 1 조건은 비밀 엄수였다. 이를 지키지 못하면, 그들이 받은 모든 혜택, 경제적인 것은 물론이고 아버지의 건강과 부활한 팔을 잃기로 되어 있었다.
“반갑습니다. 여러분을 인솔하게 될 박원기입니다. 최초의 계약자지요.”
“저는 리디아라고 합니다. 여신님의 종입니다. 여신님의 가호로 여러분의 건강을 책임지게 되었습니다.”
30대 후반의 조금 날카로운 인상의 여의사로 보이던 그녀가 아티팩트인 귀걸이를 풀자 거기에는 아주 젊고 아름다운 엘프로 변하는 모습에 희연과 연하는 숨을 삼켰다.
“여러분은 여러분의 재능을 살려서 여신님을 돕고, 저희 엘프들을 지키는 역할을 하게 됩니다. 그리고 인간들과 싸우게 될 것입니다. 아니, 인간들을 지옥같은 세상에서 구원하게 될 것입니다. 아버님의 치료와 박원기님의 치료는 점진적으로 진행될테니, 조금은 여유를 가지고 받아들여 주시기 바랍니다. 연하양의 팔은 어떤가요?”
“완벽해요.”
“대신, 당분간은 불편한 듯이 행동해 주시기 바랍니다.”
“이제 저희가 할 일은 무언가요?”
불안감을 감추듯 결연한 표정으로 한희연이 물었다. 유연하 역시 약간은 긴장된 모습을 감추지 못했다. 박원기는 미소를 지으며 앞으로 나섰지만, 얼굴 전체를 붕대로 감은 터라 그의 미소를 알아보는 사람은 없었다. 되려 그들의 긴장감이 조금 더해졌을 뿐이었다.
“여러분은, 아니 우리는 그저 게임을 하시면 됩니다. 저는 프레이야 길드의 길드장을 맡고 있습니다. 게임에서 렙업을 하시고, 그 다음엔 길드 사무소에서 프레이야 여신님이 계신 아스가르드로 이동하게 됩니다. 그리고 게임 캐릭터를 이용해서, 여신님을 위해 싸우시면 됩니다. 아, 한가지 만큼은 잊지 마세요. 우리는 미드가르드를 구하기 위한 용자가 아니라, 단순한 용병입니다. 아니, 외국인 노동자에 해당된다고 보시면 됩니다. 우선은 게임을 시작하지요.”
“저, 게임을 해본 적이 없는데요.”
“저도요.”
“걱정할 필욘 없어요. 게임은 여러분들에게 필요한 몸을 만드는 과정에 지나지 않습니다. 죽어도 죽지않는 육체를 만드는 것 뿐이에요. 전쟁터에 나가서 여러분이 죽으면 곤란하니까 말이지요. 물론, 죽는 일이 생겨도 여신님이 부활시켜주시겠지만, 게임 캐릭터라면 여신님의 힘을 빌릴 필요도 없지요.”
박원기는 초보자들에게 꼭 필요한 정보, 캐릭터 메이킹만 알려주었다. 이미 게임 내에서 그들을 이끌 강사는 구해뒀기 때문이었다.
“우선, 여러분들이 만들 캐릭터는 광전사입니다. 검사나 궁사가 아니고 광전사에요. 잊지 마세요. 그리고 들어가면 초보 마을 광장에서 만나는 겁니다. 엘프 종족 광전사니까 모두 같은 마을에서 시작할 겁니다. 잊지 마세요. 제 이름은 광전사 원기이니까 그 캐릭터를 찾으시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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