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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혀진 신의 세계-13화 (13/497)

13화

광전사 원기는 마을 광장에서 두 사람의 합류를 기다렸다.

“아, 광전사 원기님이시로군요. 반갑습니다. 블라길드에 길주를 맡고있는 네로라고 합니다.”

척 보기에도 고급스런 아이템을 줄줄 바르고 있는 사내가 다가와서 말했다. 외모는 평범한 편인만큼, 실제 외모를 사용하는 것으로 봐야 할 듯 싶었다.

‘나이는 30대 쯤 되나? 인상은 나쁘지 않은걸.’

“그런데, 두 분 더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만...”

“아, 예. 왠지 좀 늦는군요.”

원기는 캐릭터 만드는데 왜 이리 시간이 걸리는지 모르겠다는 생각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냥 기본 외모만 해도 제법 괜찮은 미소녀들인만큼, 많이 꾸밀 필요도 이유도 없어보였기 때문이다.

일단 게임에 들이는 시간이 아까운 만큼 빠른 렙업은 필수라고 할 수 있었다. 그리고 광렙에는 현질과 버스를 타는게 최고라는 생각이 들어서, 아예 확실하게 조제성을 이용해서 현질을 하기로 했다.

세명 모두를 하루 안에 30렙으로 만들고, 레벨업하면서 쓸만한 각렙당 좋은 아이템들까지 몽땅 준비해 주기로 되어 있었다.

“우선 광전사 원기님, 이 아이템들 받으세요. 그리고 몬스터 테이밍은 실드 타이거 희망하셨지요? 다른 분들은?”

“아, 다른 사람들도 무조건 실드 타이거입니다.”

“세분 다 같은 몹이면 편하긴 편하겠네요. 광전사에 실드 타이거라면 광폭화 전문인가요?”

“예. 패시브 스킬만 키울 겁니다.”

“몸빵만 셋이면, 조금은 어렵겠네요. 댐딜이 좀 있는게 좋은데,”

그때, 기다리던 두 사람이 나타났다. 나타난 두 사람의 이름은 윌리엄텔과 광검왕이었다. 그리고 둘 다 얼굴은 핸섬하지만 어울리지 않게 우락부락한 남자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얼굴만 엘프고 몸들은 오우거네.’

박원기는 좀 난감함을 느꼈다.

“저, 길주님. 죄송한데 한시간만 기다려 주시겠어요? 캐릭터 메이킹에 좀 문제가 있었던 것 같네요.”

박원기는 블라 길주 네로를 두고 광전사 윌리엄텔과 광검왕을 데리고 재빨리 길드 사무소로 갔다.

“무슨 문제라도 있나요?”

둘은 하나같이 물었다. 운동 하는 사람들은 근육의 중요성을 알고 있으니, 근육질 몸에 특히 근력에서 우월한 남성의 몸에 대한 동경이 있었다. 건강한 사람의 몸을 동경하던 박원기 역시 그 기분을 모르는 것은 아니었다.

‘보고 있는 내가 짜증나니...기껏 예쁜 애들로 골라준 발키리들의 성의를 생각해서라도 이럼 안되지.’

“일단 직접 체험해 보시면 될겁니다.”

박원기는 레벨 1인 상태로 셋이 함께 길드 사무소를 통해서 아스가르드를 향해 갔다. 미러는 아스가르드의 세스룸니르, 여신의 궁전으로 바로 이어져 있었다.

“우왓. 이거 굉장해요.”

윌리엄텔 유연하가 걸직한 목소리로 말했다. 게임 속에서는 대화를 일종의 텔레파시처럼 전달받는다. 마치 꿈속에서 들리는 목소리와 비슷했다. 내용이 전해지긴 했지만, 어떤 목소리로 들렸는지 애매모호한 것이다.

하지만 아스가르드에 오자, 확실하게 남자의 걸직한 목소리가 귀에 들려온다. 그것도 여고생 특유의 억양이었으니 그 이질감은 거슬리지 않을 수 없었다.

광검왕 한희연은 조용히 눈을 감고 몰려드는 감각의 폭풍을 맛보고 있었다.

“아, 원기군이로군요. 잘 오셨어요. 차라도 한잔 하실래요? 이왕이면 두 분들도 함께 오세요.”

세사람을 발견한 유혜서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거의 매일같이 조제성이 퇴근하긴 하지만, 역시 지구의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상대는 반가울 수 밖에 없었다.

“아, 그렇게 할까요. 두 분 다 이쪽으로 와서 차라도 한잔 하세요.”

원기는 그렇게 말하고 걸음을 옮겼다. 레벨 30이 완전한 일반인의 체력이라고 할 수 있었다. 그리고 레벨 1은 모든 스펙이 일반인의 삼분의 일정도였기 때문에 몸이 무거운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장비는 딱히 없지만 왠지 나른한 느낌이었다.

다행히도 시력이나 청력등은 레벨과 관계가 없었기 때문에 별 문제는 없었다.

레벨과 연동하는 능력은 방어력, 공격력, 근력, 민첩력이었다. 다만 스펙이 없는 능력은 자동으로 보통 인간에 맞춰지는 듯 했다.

게임 상의 포션은 게임에서 나온 캐릭터에게는 적용되지만, 미드가르드의 동물이나 엘프들에게는 그냥 맹물이었다.

그리고 게임상에서 먹던 음식은 미드가르드에서 먹어도 씹히는 느낌도, 맛도 전혀 없었다. 아이템 효과는 있지만, 설정에 없는 부분은 완전히 무시되는 것이었다.

“정말 새로운 느낌인걸.”

“아얏!”

윌리엄텔이 바닥을 구르면서 비명을 질렀다. 여자같은 비명인데 목소리는 묵직한 저음이니, 닭살이 돋았다.

“체격 차이가 있으니, 적응하기가 힘들겁니다. 그리고 화장실도 가야할테고 말이지요. 소변보는 방법 가르쳐 드려요?”

박원기는 찻잔을 들고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게임 캐릭터를 이용하는 거지만, 단순히 게임을 하는 것과는 다릅니다. 잘못하면 정체성에 혼란이 올지도 모르지요. 남자와 여자는 체내에 흐르는 호르몬도 다르다던데 말이지요. 혹시 엘프 몸으로 고기는 먹어 보셨나요? 맛이 아주 끝내줍니다.”

엘프의 후각과 미각은 인간과 확실히 달랐다. 과일은 물론이고 잡초에서도 다양한 맛이 느껴지는 반면, 고기는 정말 사흘 전에 먹은 것까지 다 토해내고 싶을 정도로 역겹고 끔찍했다.

고기를 안먹는 이유는 그저 미각적 차이에 지나지 않았다. 폼나서가 아니라 그저 맛있으니까 풀뜯어 먹는 거고, 활쏘고 사냥은 하면서도 고기를 안먹는건 그저 맛없고 역겨우니까 안먹을 뿐이었다.

특히 고기가 익는 냄새는 상당히 불쾌한 편이었다.

그래서 조제성의 가족이 사는 구역은 바람의 정령에 의해 철저하게 냄새 관리가 되고 있었다.

물론 원기 역시, 지금 냄새로 인한 불쾌감을 참고 있었다. 화장실 냄새와 비슷하게 역한 냄새가 방 안에 감도는 느낌이었다.

다만, 후각이 예민하다고는 해도, 엘프들 역시 익숙해지면 후각이 마비되는 것은 마찬가지였다. 시간이 지나면서 불쾌한 냄새는 곧 진정되어 갔다.

화장실 가야 한다는 이야기와 정체성의 이야기가 나오자, 그녀들은 서로를 바라보았다. 체격적인 차이에 적응해야 한다는 것도 심적인 부담이 될 것이 틀림없었다.

“어쩔 수 없네요. 캐릭터 다시 만들어야겠어요.”

한살이라도 연상이라고 광검왕 캐릭을 가진 한희연이 나서서 말했다.

“잘 생각하셨습니다. 사실 그 말투랑 목소리가 좀 매치가 안되서 거부감이 있더군요. 그리고 차 잘마셨습니다. 다음엔 좀 여유가 있게 찾아오겠습니다. 기다리는 사람들이 있어서요.”

원기는 그렇게 말하고, 거울을 향해서 발걸음을 옮겼다. 두 사람도 조금은 불안한 몸놀림으로 원기를 쫓아갔다.

“직업은 검사로 하면 안될까요?”

“저는 궁사가 좋은데요.”

“이곳에서 움직이는데는 여러분의 검술 실력과 궁술 실력이 도움이 될겁니다. 그런데, 훈련할 때 아픈 건 어떻게 하실 건가요? 좀 전에 넘어진 곳 아프지 않던가요?”

포션을 바르자, 금방 상처가 사라졌다. 게임 캐릭터의 우월성은 거기에서도 나타난다. 이쪽 세상에선 아무리 치료마법을 써봐야, 팔이 날아가거나 배가 찢긴 부상은 쉽게 낫지 않는다. 반면 게임 캐릭터들은 게임에서 등장하는 회복마법이나 포션만 사용하면 즉사 판정만 안난 상황이면 즉시 원래 몸으로 되돌아오는 것이다. 상대하는 쪽에선 좀비보다 더 골치아플 것이 틀림없었다.

“광전사에게는 광폭화라고 해서, 발동되면 일정시간동안 고통을 못느끼는 스킬이 있습니다. 그걸 이용해서 몸 쓰는 법을 배워둘 필요가 있는 겁니다. 익숙해 질 때까지 몇번을 죽어야 할지 모르니까요. 결정적으로 궁사는 있지만 검사라는 직업은 없어요.”

아쉽지만, 광폭화 포션 같은 것은 없었다. 레벨 30에 실드 타이거와 합체하는 기술까지 익히면 합체한 동안 광폭화가 지속되는 만큼, 나무타기 훈련이라든가, 전투 훈련을 고통 없이 할 수 있었다.

“쓸만한 엘프 궁사가 되시려면, 나무를 타는 것도 배우셔야 하는데, 훈련 중에 몇번 아니 몇백번씩 나무에 떨어질 것을 각오하려면 그것도 궁사로는 좀 어렵겠지요?”

“그렇겠네요.”

두 사람이 고개를 끄덕였다. 원기는 자연스럽게 두 사람에게 신뢰와 함께 지식적 우위를 확보할 수 있었다. 특별히 의구심을 품을만한 상황이 아니라면, 그들은 원기의 말을 듣게 될 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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