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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혀진 신의 세계-20화 (20/497)

20화

“원기야. 너 엘프 마을에서 한가지 이상한 사실을 깨닫지 못했냐?”

“음. 글쎄요. 잘 모르겠는데요.”

“잘 봐봐. 남자가 안보이지 않냐?”

“어라. 그러고 보니, 그렇군요. 이상하게 아이들만 많고...”

원기는 엘프 마을을 둘러보았다. 그가 알기로는 분명, 남녀 비율이 일대 일로 알고 있었다. 남성 중심의 다크엘프와 달리, 엘프들은 모계 중심의 사회였다. 쌍둥이 신이지만 남신인 프레이와 여신인 프레이야의 영향일지 몰랐다.

엘프들에게 남아있는 공격성과 진취성은 오로지 모성애에 기초한 것이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남성은 집안일과 육아를, 여성이 사냥 혹은 전투를 담당하고 있었다.

고기를 좋아하지는 않지만, 초식동물이 지나치게 늘어나면 숲이 망가지고, 육식동물이 지나치게 늘어나면 초식동물이 줄어들어 균형이 망가지기 때문이었다.

숲이 최대한의 생명력을 발휘하도록 관리하는게 그들의 일이었고, 때문에 사냥한 동물의 가죽으로 옷과 갑옷을 만들고, 육포를 만드는 것도 그들의 생활이었다.

엘프의 미각에 고기의 맛은 최악이지만, 식량을 헛되이 버리는 것은 용납되지 않기 때문에 최대한 고기맛이 안나게 건조시켜서 식량으로 사용하고 있었다.

원기의 눈에 보이는 엘프들의 절반은 미녀, 절반은 미소녀였다. 남자 엘프들은 정말 눈을 씻고 찾아봐도 안보였다. 분명 여성 엘프가 강하고 남성 엘프가 약하다고 들었지만 이건 좀 이상했다.

'전쟁 중이라서 그런가? 분명 부족 가운데서 도움이 안되는 남성 엘프들이 희생되는 경우가 많다고 듣기는 했지만, 이건 좀 심한데?'

“그게 말이지. 저 미소녀들 가운데 거의 절반 가까이가 남자더라고.”

수한의 말에 원기는 입을 딱벌렸다. 원기 역시 남자였던지라, 여자들이 안보였다면 이상하다고 여겼겠지만, 남자들이 안보이는건 그다지 신경을 안썼던 터였다.

여신의 모습을 너무 자주 보이는 것도 신비감이 떨어진다고 생각해서 황제를 비롯한 상위 신관들과만 최소한의 만남을 가졌다.

엘프 남성의 경우엔 마법 능력도, 신성 능력도, 육체 능력도 모두 딸린다고 ‘지식으로만’ 알고 있었기 때문에 안보여도 상관 없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아니, 쭉뻗은 멋쟁이 미남일거라고 막연히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에 굳이 만나서 열폭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 무시하고 있었다. 안만나면 안만나는데로 좋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쭉빠진 꽃미남 봐야 별로 기분이 좋아질 일은 없었기 때문이었다.

“야. 엘런. 우리 같이 목욕이나 하자.”

수한이 옆을 지나가던 미소녀에게 말하자, 그녀(?)는 흔쾌히 승낙했다. 원기가 알기로 엘프들은 혼욕의 관습은 없었다.

“예. 마침 빨래할 거리도 있었던 참이니.”

원기의 눈은 자연스럽게 그녀(?)의 가슴으로 향했다. 몸에 달라붙는 옷이 아니니, 가슴이 있는지 없는지 알기가 어려웠다. 풍만한 가슴은 아니라는 것만 알수 있을 뿐이었다. 게다가 엘프들은 여성도 모두 바지를 착용했다. 숲속에서 스커트 차림으로 생활할 수는 없기 때문에 당연한 거였다. 긴바지에 긴팔, 장갑과 신발도 필수였다. 짧은 스커트를 입기도 하지만, 적어도 바지 위에 입었다.

“그럼, 저 아이도...”

“내가 로리콘이 아니어서 정말 다행이었다. 혹시 미소녀라고 좋아하기라도 했었다간...저녀석 실제론 23살 남자다.”

“그거 최악이었겠네요. 그건 그렇고 저 아이랑 같이 목욕할 셈이에요? 범죄 같은데?”

“하하. 넌 오지마. 아무래도 얼굴이 붉어진게 안되겠다. 잘못하다간 인생 망친다. 그리고 다시한번 말해두지만 너보다 연상인 형이다. 저놈은 훌륭한 엘프 아저씨야. 미소녀가 아니라고.”

수한의 말에 원기는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사실, 원기는 엘프 여성들에게 그렇게까지 큰 관심은 없었기 때문이었다. 엘프들이 인간들을 싫어한다고 들었기 때문이었다.

원기는 사람들에게 정신적으로 상처를 꽤 깊게 받아서, 자신을 좋아하지 않는다고 생각되는 사람들과는 거리를 두고 싶어했다.

신기하게도, 수한은 성격덕분인지 역사적 지식과 통솔력을 살려서 엘프들에게 뛰어난 조언자이자 지혜로운 사람으로 존경받고 있었다. 벌써 한 엘프 여성과 제법 친밀한 관계를 구축한 상태였다.

엘프들의 군대 편제와 훈련에도 깊이 관여한 상태라서, 엘프군의 군사 역할을 하고 있었다.

“군사 선생님. 엘레니아 사령관님이 부르세요.”

가죽 갑옷에 장궁을 어깨에 맨 여성 엘프가 수한에게 다가와서 말했다. 그는 자신을 군사라고 칭하고, 자칭 호가 ‘공명’이라며 공명선생이라고 부르도록 했지만 그걸 지켜주는 사람은 없었다. 다만 참모 겸 부사령관으로서 '군사'라는 명칭은 자리잡은 듯 싶었다.

“아, 그래? 그럼 엘런군. 좀 있다가 냇가에서 보자. 뭐해? 넌 슬슬 돌아가야지?”

‘정말 무섭게 녹아드는군.’

원기는 미소를 지으며 수한의 뒷모습을 보았다. 역사 교사에 판타지 광이라더니, 엘프들의 사회에 아주 순식간에 적응한 상태였다. 조제성의 가족들을 비롯해서 다른 이들은 엘프들과는 꽤 거리감을 느끼는 편이었다.

엘프들은 지극히 공경하면서도 본능적이라고 해도 좋을 경계심을 가지고 있었다.

원기로서는 잘된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미소녀, 미녀의 모습을 하고 있지만, 리디아를 제외한 다른 엘프들은 모두 똑같아 보이는 그로서는 엘프들과 친밀한 동료가 있는 것이 나쁘지 않았다.

‘엘레니아 사령관이 수한이형하고 친한 엘프지? 엘런이 그 남동생인건가?’

원기는 수한의 연애사업을 떠올리자, 자연스럽게 한 여성의 모습이 떠올랐다. 바로 한희연이었다.

‘나 이미 변태가 된 건지도 모르겠군. 그렇게 날 두들겨 패고 수십차례 내 목을 친 여성에게 매력을 느낀다니.’

조금은 날카롭지만 진지하고 열정적인 그녀의 눈빛을 떠올리면서 원기는 쓴 웃음을 지었다. 그녀가 아니었다면, 전선 제일선에서 피를 뒤집어쓰고 상처를 입는 전사의 길을 택하지는 않았을 터였다. 일선에서 싸우는 그녀의 모습에 반해서, 그녀와 어깨를 나란히 하고 싸우고 싶었다.

‘그래. 이참에 제대로 된 이도류도 한 번 배워볼까.’

그는 로그 아웃을 하고, 침대에서 몸을 일으켰다. 이미 상처는 모두 회복된 상태였다.

‘이 몸도 단련해 둘 필요는 있겠지? 이도류를 배우는 김에 진짜 몸으로 그녀에게 배우는 것도 나쁘지는 않을 것 같군.’

전장에서 거구를 이용해서 클레이모어를 마구잡이로 휘두르는 것도 나쁘지 않았지만, 제대로 된 이도류를 배워두면 좀 더 대응을 잘 해볼 수 있을 터였다.

한희연과 유연하도 현재 이 저택에서 생활하고 있었다. 궁도와 검술을 연마할 수 있는 시설도 이 건물 내에 자리잡고 있었다.

조제성 회장도 비밀을 알고 있는 사람들이 편하다는 이유로 저택을 팔고 이 건물에 입주한 상태였다.

그리고 그가 검술도장으로 들어가려고 할 때, 한희연의 목소리가 들렸다.

“난 약한 남자는 질색이야.”

박원기는 그 순간, 심장이 덜컥하고 내려앉는 느낌이었다. 그는 조용히 발걸음을 돌려서, 방으로 향했다.

‘하아. 난 대체 뭘 기대한 거지. 왜 실망하는거야.’

그는 자신을 탓하며, 조용히 자신의 방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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