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화
“그런데, 너무 공격적으로 사업을 넓히시는거 아닌가요? 여신님과의 계약에 그런 건 없었던 것 같은데요.”
“그건 그렇지. 여신님의 계약이라는거, 사실은 지나치게 일방적이야.”
“불만이라도 있으신 겁니까?”
“아냐. 오해하지마. 여신님의 계약이 너무나 우리에게 유리하다는 거지. 우린 아주 약간의 기여만 할 뿐인데, 정말 많은 은혜를 받았다고 해야지. 로또 복권에 몇십번 맞아도 이렇게 운이 좋을 수는 없을 정도로 말이야. 특히 난 정말로 큰 은혜를 받았어. 자네들이 받은 은혜와는 비교도 안될 정도야.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신님은 내 사업에 지장이 없을 정도, 아니 오히려 내게 큰 금전적 이득이 될 만한 거래만을 넘겨 주셨지. 여신님께 불만을 갖는다면, 난 정말 배은망덕한 쓰레기에 지나지 않을거야.”
“그럼...”
“여신님께서는 우리에게 많은 재량권을 주셨지. 그리고 난 그걸 활용해서 여신님을 위해 쓰고 싶은 것 뿐이야. 여신님은 엘프들에게 저격총으로 무장시킬 준비를 하라고 말씀하셨지만, 그게 끝이라고는 생각되지 않아.”
“그럼?”
“만약, 오딘이나 로키가 총기를 발견했다면 어떻게 될까? 그는 틀림없이 이세계의 존재를 찾으려고 들겠지. 그리고 그들이 가장 먼저 찾을 이세계라면, 바로 그들이 떠난 이 현실세상일거야. 그렇게 되면 로키와 오딘 역시 이쪽 세상에 교두보를 찾게 되겠지. 당연한 수순이라고 봐. 이게 우리에게 있어서 그나마 가장 좋은 시나리오가 될거야.”
“그나마 가장 좋은 시나리오라는건...”
“그보다 더 나쁜, 아니 최악의 시나리오가 있다는 뜻이지. 이미 이쪽 세계에 오딘과 록키의 입김이 닿아 있을 수도 있다는거야. 어찌되었건, 이쪽 세계에서도 오딘과 록키 같은 악마, 아니 마신들과 겨루게 될 거라는 사실이야. 엘프들이 저격총으로 무장했는데, 갑자기 오딘 측에서 전차, 아니 드라군을 투입하면 어떻게 되겠나?”
“드!라!군!인건가요.”
심각한 이야기 끝에 농담으로 분위기를 돌리는 조제성의 말에 장수한도 미소를 지으며 받았다. 장수한 역시 납득할 수 있었다.
“재밌는건, 여신의 씨앗이라고 할지, 여신의 달걀이라고 할 수 있는 인간이 어떻게 해서 여신과 공존할 수 있는가였는데 말이지. 게임을 이용한 거였어.”
인간의 몸을 빌려 강신하는 경우가 아스가르드에 없지는 않았다고 했다. 하지만 그 경우에는 오랜 시간 머무르는 것은 불가능했고 몸을 빌린 인간에게는 치명적인 타격이 남는 경우가 많았다.
“게임이라면?”
“운명이라는 게임이지. 운명이라는 게임에 로그인해서 여신으로서의 모습을 보여주시는거라고 할까. 나도 블러드 라인 게임을 통해서 운명 세계의 이곳저곳을 방문해서 신들로 플레이하는 유저들과 만나봤지만, 프레이야 여신님처럼 특별한 모습을 보이는 경우는 없었어. 여신의 씨앗이 게임의 여신과 만나서 특별하게 현신하게 된 경우라고 봐야 할거야.”
“생각보다 많은 것을 조사하셨군요.”
“그래. 그래서 난 이미 운명 게임을 플레이할 수 있는 클라이언트 시스템을 미드가르드에 옮겨서 설치해놨고, 발전 설비까지 갖춰둔 상태야.”
“예? 왜 그렇게까지.”
“만약, 이쪽에서 컴퓨터를 쓸 수 없게된다면, 여신님의 씨앗이 현재의 육체를 벗어버릴 때까지는 여신님이 존재할 수 없다는 뜻이 되니까. 그리고 육체를 벗어버린다면, 존재 자체를 위해서 많은 신앙의 힘이 필요해지고, 그게 부족하면 여신님 자체가 사라질 수도 있다는게 문제지. 현재 우리나라의 경우, 전쟁 위협에 노출되어 있지. 그리고 일본은 불과 십수년 전에 엄청난 규모의 지진이 있었지. 그런 걸 생각하면, 어느쪽에서든 접속할 수 있는 시스템은 필요하다고 생각하고 있어.”
“그렇군요. 그건 그렇고, 삼위일체라는 말은 들어봤지만, 게임 아바타로 신과 인간을 공유한다는 건 정말 황당하군요.”
“일단, 블러드라인에 대한 권리와 스텝을 사들일 생각이긴 하지만, 온라인 게임 회사 인수가 쉽지는 않은 상황이야. 현재로서는 해외 운영권을 사들여서, 프로그램과 서버는 복제해서 구축한 상태지만, 게임을 디자인하고 수정할 수 있는 스텝은 쉽게 빼낼 수가 없더군. 지금으로서는 주식을 인수하면서 경영권을 빼앗는 작업을 하는 중이지.”
조제성의 말에 장수한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의 마음가짐에 반쯤 장난삼아 개입하던 자신이 부끄럽게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요새는 연애 사업에 열중하고 있었다.
“후후. 자네를 책망할 생각은 없어. 아니, 난 자네 연애를 지지하네. 자네가 엘레노아양과 맺어져서 자식도 얻기를 기대하고 있네. 그럼 자네도 날 이해할 수 있을거야.”
“그렇군요. 지킬 것이 있을 때, 진정한 사나이가 된다는 건가요.”
“그렇게도 말할 수 있겠지. 자네도 어서 빨리 어른의 세계에 들어서게나.”
조제성은 호쾌하게 웃으면서 장수한의 등을 두들겼다.
“그건 그렇고, 갑자기 왠 브랜드 사업이신 겁니까? 무기 산업에 손을 대시는 건 이해가 가지만...”
“그건 말이지...”
조제성이 관심없던 브랜드 사업에 뛰어들게 된 계기는 리디아가 만들었다. 미용 클럽에는 초상류 계층의 인물들이 모여들었지만, 그들이라고 해서 특별히 미적 안목이 탁월한 것은 아니었다.
그리고 그들이 가진 물건들 가운데는 남에게 선물받은 물건도 많았고, 뇌물로 올라온 물건도 많았다. 그리고 우연히 그 중 하나에 가짜 브랜드백이 들어와 있었다.
전문가도 한눈에 알아보기 어려운 물건이었다. 그리고 두 여성이 우연히 같은 디자인의 가방을 두고 자리를 비웠다.
그리고 종업원이 백을 전해주려고 했을 때, 리디아는 쉽게 두개의 백을 구분해서 두 여사에게 각각 전해주라고 말했다.
“먼저 나간 분 가방이 그 좋은 백이고, 나중에 나간 분 가방이 그 약해빠진 가방이야.”
리디아가 좋은 가방이라고 말한 것은 가짜 가죽으로 만든 가짜 브랜드 품이었다. 조제성은 엘프들이 가짜 가죽이나 비닐, 레쟈 등을 굉장히 고급품으로 여기고, 유리를 다이아몬드보다 귀하게 여긴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리디아는 프라스틱을 보면서 감탄을 금치 못했다. 가볍고 깨끗하고 편하고 튼튼한 이상적인 물질이라는 것이었다.
중요한 것은 어느쪽을 고급품으로 여기는가각 아니고, 엘프들이 품질을 정확하게 구분할 줄 안다는 것이고, 손재주가 인간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뛰어나다는 사실이었다.
대량 생산의 공장 생산품에 홀딱 빠진 엘프들에게 수공예품의 좋은 점을 설득하는 것은 쉽지 않았지만, 수공예품 제작을 의뢰한 결과 놀라운 수준의 물건이 만들어졌다.
아니, 조제성 역시 브랜드품을 볼 수 있는 안목은 없었다. 하지만 정말 고급품 속에서 살아온 극소수의 인간들은 그걸 알아볼 안목을 지닌 사람들이 있었다.
마치 동화속에 나온 몇십장의 이불 밑에 있는 콩 한쪽에 멍이든다는 공주님 같은 까다로운 족속들이 이 세상에는 존재하고 있었다.
“뇌전 그룹 아가씨께 좋은 물건이 있어서, 소개해 드리고 싶군요.”
“백인가요? 백이라면 백화점 갈때마다 몇 개씩 그냥 주는 물건 아닌가요? 그런걸 돈 주고 사요?”
“하하, 그런 물건들하고는 다릅니다. 한번 만져 보세요.”
“어, 정말 다르네. 이런 가방 처음 보네요. 확실히 다르네. 이런게 좋은 건가요? 몇천 원 하나요?”
‘음, 이 아가씨 안목은 있지만, 엘프들처럼 개념은 없는 건가.’
“음, 고작 몇천원 짜리는 아닙니다만, 아가씨한테 하나 드리지요. 회장님께 잘 좀 전해 주세요.”
조제성은 고작 몇천 원을 부르는 재벌 아가씨의 반응에 한숨을 쉬었지만, 안목이 있는 사람은 알아본다는 것을 확신하고 우선 소수를 생산해서 초고위층 몇 사람에게 선물하면서 디자이너들을 섭외했다.
엘프들의 후각을 이용해서, 불쾌감은 줄이고 청량감을 높인 향수을 조향하는 데에도 성공했다.
그리고, 희연과 연하를 이용해서 광고용 사진을 찍었다.
“들어본 적 없는 상표네요.”
“그냥 시험삼아 고가 브랜드품을 만드는 회사를 세웠어. 성공할지는 모르겠다만, 다수의 잡지에 내보낼 예정이다. 그럼 너희 얼굴도 알려지겠지. 그럼 너희가 모델 활동한다고 말하고 시간을 내도 별 문제는 없겠지.”
계획 자체는 단순했다. 의류 브랜드 시도, 성공하면 남아도는 엘프들(주로 잉여인 남자들)의 노동력을 살려서 경제력으로 전환하는 것이 가능해질 것이었다. 그리고 실패한다 하더라도, 희연과 연하가 모델 활동하는 것을 대외적으로 어필함으로써, 집에 경제적 지원이 가능해지게 될 터이고, 수업에 빠지고 게임할 시간을 벌 수 있게 되는 것이었다.
“모델이라니, 참 어색한데요. 언니는 어때?”
“이번 한 번 뿐이라니, 괜찮지 않을까? 듣보잡 브랜드인데.”
“음. 언니는 기대 안되는거야? 난 엄청 기대중인데.”
“글쎄. 기대가 크면 실망할 걸. 그리고 우리같은 체형이 모델로 팔릴 리가 있니? 먹어도 안찌는 건 좋지만, 아무리 굶어도 살이 안빠지는건 좀 곤란한데 말이야. 게다가 근육도 전혀 안붙고 있어.”
“아, 그건 진짜 곤란해. 나도 활 당기는 힘이 오히려 줄어들었어. 호흡은 안정되었지만. 여신님의 축복이라는 것도 좀 난처하네.”
그녀들의 체형은 극도로 날씬한 모델들의 체형과는 거리가 멀었다. 적당한 수준의 피하지방과, 고른 근육 근포 때문이었다.
“열심히 활이나 쏴. 잡념은 버리고. 난 레벨 60 만들었다.”
“에? 어느틈에? 언니도 끈질기네. 난 50렙 만드는 것도 지겨워 미치겠던데.”
“그게, 원기 오빠가 70만들었더라고. 날 이겨볼려고 아주 작정을 했던데. 자꾸 내 성질을 건드리고 있어.”
그렇게 말하는 희연의 얼굴이 왠지 즐거워보인다고 느낀 연하는 왠지 염장질을 당한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그때 리디아가 나타났다.
“죄송합니다. 여신님이 모든 계약자분들을 불러달라고 하셨군요. 가능한 빨리 모여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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