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화 *마법
유일신 종교는 영원 불멸의 신을 섬기는 종교를 의미한다. 그리고 영원하지도 불멸하지도 않는 북구신화의 존재들은 그 기준에서는 신이 될 수가 없었다.
그렇다고해서, 유일신 종교가 무조건 다른 종교의 신적 존재를 무시한 것은 아니다. 인간을 넘어서지만, 영원 불멸의 무한자에게는 미치지 못하는 유한한 존재, 그것을 천사와 악마로 부르고 편입시켰다.
그리고 북구 신화의 신들은 그런 면에서 본다면, 선보다는 악이었고 악마로 불리우게 되었다.
마법이라는 명칭은 말 그대로 악마의 힘을 빌려서 사용하는 술법이다. 오딘이 만들어낸 힘, 오딘과 계약한 자들이 빌려쓰는 오딘의 힘이 바로 마법이라고 할 수 있었다.
따라서, 마법은 신성마법과 일반마법으로 나뉜다. 신성마법은 악마(북구 신화의 신들, 특히 아스 신족과 거인족)의 힘을 빌려서 치료나 공격을 하는 마법을 의미했다.
북구 신화에서는 로키를 비롯한 거인족을 악마로 표현하기도 하지만, 북구 신화를 믿지 않는 이들이 보기엔 로키의 의형제인 오딘이야말로 악의 근원이며, 라그나로크란 악마들의 내분에 지나지 않는 것이었다.
프레이야 역시, 마법의 주인으로서 계약자들에게 마법을 제공할 수 있었다. 신관들이 사용하는 신성마법과 엘프들이 사용하는 정령술이 바로 그것이었다.
“프레이야님께 귀의하고 싶습니다. 저희를 도와주십시오.”
한 무리의 사람들이 프레이야의 신전 입구에서 바닥에 엎드려서 간청하고 있었다. 기사 둘과 신관과 마법사처럼 보이고 있었다.
그들은 풍요의 여신 굴베이그를 섬기던 이들이었다.
풍요의 여신 굴베이그는 아스-반 신족 전쟁의 계기가 된 여신이었다. 사람들에게 풍요로움과 평화를 제공한 신이었지만, 아스 신족들은 인간들이 나태해져서 싸우려고 들지 않는다고 못마땅하게 여겨서 전쟁을 일으킨 계기가 된 신이기도 했다.
인간들이 평화롭게 지내는 것을 바라는 반 신들과, 인간들이 노는 꼴을 용납하지 못하는 아스 신족의 성격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했다.
아스 신족들이 나태와 타락으로 부르며, 인간들은 풍요와 행복으로 부르는 여신이었다.
최고신 뇨르드와 함께 마지막까지 인간들의 신앙을 모았던 여신이었지만, 아스 신족의 집요한 공격에 굴베이그는 존재를 유지하지 못하고 사라져 버렸다. 하지만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굴베이그 여신의 씨앗이 소녀의 몸을 빌어서 존재하고 있다고 합니다. 그녀가 만약 죽어버린다면, 굴베이그 여신은 완전히 사라지겠지만 그녀가 죽기 전에 신자들이 어느정도 유지 된다면 그녀는 굴베이그 여신의 뒤를 이을 수 있게 됩니다.”
황제이자 대신관인 트리아가 나서서 원기를 비롯한 계약자들에게 알렸다. 굴베이그 여신의 가호를 잃은 그들은 신관의 백마법도, 마법사의 흑마법도 모두 잃은 상태였다. 더 끔찍한 것은 굴베이그 여신의 분신이랄지 본체라고 할 수 있는 세계수들이 시들고 있다는 것이었다. 이 아스가르드에서 인간들이 살아가기 위해선 세계수의 결계가 필수였다.
“용케 여기까지 왔군요. 다크엘프들을 뚫고.”
“희생이 적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굴베이그님의 마지막 은총 덕분이었습니다.”
기사는 그렇게 말하며, 부서진 갑옷과 검을 쓰다듬었다. 신의 힘이 깃든 아티팩트도 신을 상실하면 힘이 대폭 약해지지만, 아티팩트 자체에 깃들어 있는 힘으로 이적을 행할 수 있었다.
“요는 그 소녀로군요.”
“예. 공주님만이 저희에게 남은 유일한 희망입니다. 언젠가, 굴베이그 여신님도 반 신족의 나라에서 한 구석을 차지할 수 있게 해주신다면, 저희는 기꺼이 프레이야님의 백성이 될 것입니다.”
“인원은 얼마나 남은 겁니까?”
“다레인 성에 약 십만이 남았습니다만, 대부분 여인과 아이들 뿐입니다. 젊은이들은 전사하거나, 배교했습니다.”
굴베이그의 씨앗이 남아있다는 사실은 주위를 포위하고 있는 아스 신족에게 알려지지 않은 상태였다. 그렇기에 개종을 요구하면서 포위하고 있었다. 주인을 잃은 세계수가 말라가고 있으니 시간 문제라고 할 수 있었다.
‘굴베이그를 현실세계로 탈출시키는 것도 한 방법이겠군.’
보통은 신의 씨앗이 인간에 심겨질 경우, 인간과 함께 성장해서 일생을 마치고서야 신의 자리를 전승하게 되어 있었다. 적어도 수십년간은 그 신자들을 이끌 수 없게 되는 것이다. 엘프들에 비하면 인간들은 정신력도 신심도 약한 편이지만 인구수를 급격히 늘릴 수 있다는 점에서 이들을 거둬들일 필요가 있었다.
어차피 가장 중요한 식량 문제가 해결된 만큼, 세스룸니르에 수용할 수 있는 인원은 더 많았다. 십수만의 인구라면 적지 않지만 그리 많은 것도 아니었다.
“다레인 성까지 거울을 옮기는게 문제로군요.”
“우리가 가는 것 말고는 방법이 없을 겁니다.”
장수한의 말에 원기가 고개를 끄덕였다. 부활이 자유로운 게임 캐릭터들을 이용하는 방법 말고는 다크엘프들의 포위를 뚫고 나가는 것은 쉽지 않았다.
백 명 가까운 인원이 돌입 시도를 해서, 겨우 네명이 도착한 것이었다.
“제가 함께 가지 않으면 안됩니다. 성 가까이에 있는 마법 통로가 아니고는 다레인 성으로 들어갈 수 없습니다.”
마법사로 보이는 중년 사내가 말했다.
다레인 성은 아스 제국에 의해서 겹겹이 포위된 상태였다. 마법 통로를 이용하지 않고는 쉽게 들어설 수 없었다.
“여신님의 종으로서, 여신님의 권능을 쓸 수 있게 해주십시요.”
원기가 발키리를 통해 지시를 내리자, 발키리가 트리아 황제에게 원기의 뜻을 전달했다.
“오늘은 좀 쉬시고, 내일 더 이야기를 나누기로 합시다.”
원기를 비롯한 계약자들은 각자 전투 준비를 갖추기로 하고 로그 아웃을 했다.
“최소한 5일 간 로그아웃을 못하고 전투를 벌여야 한다는 거로군요.”
“장기간 로그 아웃을 못하는데 괜찮을까요?”
“일단 링거 주사와 리디아 전하의 치료면 육체를 최상의 상태로 유지할 수 있을 겁니다.”
형태는 거울이지만, 들고다니면서 사용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세계수가 만드는 결계 곧 성역이 아니면, 발동시킬 수 없었다. 프레이야 여신은 존재하는 그 장소가 성역화되지만, 전투용 캐릭터가 아니었다.
‘프레이야 여신이 부활 가능한지는 모르겠으니.’
운명 게임의 캐릭터인 프레이야는 단지 관찰만 가능하고, 전투를 벌일 수 없었다. 죽는 상황 자체가 설정되어 있지 않으니, 부활도 설정되어 있지 않았다. 함부로 모험을 걸 수는 없었다.
게임 캐릭터들은 HP는 줄지만, 상처를 입지 않는다. 하지만 이 세계에서 실체화된 게임 캐릭터들은 능력적인 면을 제외하면 인간과 거의 같았다. 팔 다리가 절단될 수도 있고, 목이 날아갈 수도 있다.
포션을 마시면 HP가 회복되기는 하지만, 잘린 팔이 되돌아오지는 않았다. 다만 죽어서 부활하면 멀쩡한 몸으로 돌아오는 조금은 기이한 상황이었다.
그렇기에 여신 캐릭터가 안전하리라는 보장은 할 수 없었다. 부활 능력이 설정되어 있지 않다는 점을 생각하면 더더욱 그러했다.
이동 중에는 게임 세계로 이동할 수 없으니, 로그아웃은 불가능했다. 그리고 죽으면, 게임 캐릭터의 장비이자 속옷인 게임 갑옷을 제외한 현실의 갑옷과 무기가 무조건 드롭되기 때문에, 파티가 전멸당하는 일은 있어선 안되었다. 결정적으로 마법사를 어떻게든 살려서 데려가야했다.
게임 캐릭터들은 죽으면 가까운 곳에서 부활 할 수 있지만, 마법사는 설령 발키리를 이용해서 살린다고 해도 세스룸니르에서 부활하기 때문이었다.
신관이 된 리디아를 통해서 확인된 사실이지만, 게임 캐릭터는 신관이나 마법사의 힘을 발휘하지 못했다. 육체에 링크가 있기 때문이었다.
“마법사가 마법을 쓸 수 있게 해야하는건가.”
원기는 여신 캐릭터로 로그인 해서, 마법에 대한 것을 알아봐야 한다고 생각했다.
‘역시 마법은 라스트 판타지의 소환마법이 최고지.’
라스트 판타지의 소환마법은 화려하기로 유명했다. 하지만 화려한 것에 비하면, 효과 자체는 보통 마법과 전혀 다를 바가 없었다. 거대한 용을 불러내서, 용이 나타나서 불꽃을 뽕 하고 쏘고 날아가버리는 것이었다. 위력 자체도 일반 화염마법보다 그다지 뛰어나지 못했다. 결국 비쥬얼만 죽여주는 비실용적인 마법이었다.
그래픽은 죽여주지만, 아무 쓸모없는 마법이라는 평가가 일반적이었다.
문제는 비쥬얼이었다. 게임하는 사람들에게는 조금 보다 보면 지치는 스킵하고 싶어지는 것이지만, 처음 보는 사람에게는 엄청난 공포가 될 터였다.
거대한 용이 나타나서 불꽃을 뿜는다. 그리고 그 열기로 사람이 죽는다면, 그 환각만으로도 엄청난 공포를 겪게 될 터였다.
‘환상과 마법의 조합이야. 마법량에 비해 위력은 떨어지겠지만 당하는 입장에선 엄청난 효과가 있겠지.’
프레이야로 로그인을 해서, 마법에 대한 것을 떠올리니 예상과는 조금 달랐다.
프레이야가 이미지한대로 마법이 만들어지고, 주문이 만들어졌다. 그리고 계약한 마법사는 평소에 기도를 통해서 프레이야에게 누적시켜둔 마나를 주문을 통해서 일거에 방출하는 것이 신성 마법이었다.
이것은 신관과 마법사가 모두 쓸 수 있는 것이었다. 프레이야가 생각한대로 마법이 구현되기는하지만, 소모되는 신성력의 양이 적지 않았다. 그리고 그 막대한 신성력의 통로가 되는 인간에게 부담이 가기 때문에 프레이야가 생각한 그런 마법은 적어도 신관과 마법사가 수십명은 필요했다.
‘뇌전 마법은 삼두룡 킹기돌이를 이용하자.’
화려한 금색 비늘을 가진 삼두룡이 하늘에서 나타나서 뇌전을 떨구면, 그걸 본 적들이 무슨 생각을 할지는 쉽게 짐작할 수 있었다. 전쟁에서 적의 사기를 꺾을 수 있다면, 신성력의 낭비는 감당할 수 있었다. 남용은 할 수 없다고 봐야했다. 따라서 신성마법의 대부분은 신의 허락없이는 발동시킬 수 없었다. 아니, 신이 사용하는 마법의 발사대로서 마법사나 신관들이 존재한다고 봐야 할 것이었다.
반면 일반적으로 말하는 마법은 마법진을 통해서 구현되는 마법이었다.
마법진은 일종의 마법 회로도였다. 세계수의 수액을 말린 가루는 신성력이 흐르기 쉬웠다. 전기가 흐르기 쉬운 전선과도 같았다.
수액을 말린 가루를 이용해서 마법진을 꾸미고 거기에 마법사가 신성력을 흘려 넣으면 신성력의 흐름을 통해서 '힘'이 발생된다.
마법진을 이용한 마법은 장기적으로 유지되며 효율성이 뛰어나다는 특성이 있었다. 환상마법을 통해서 비밀통로를 감추거나, 성벽을 강화하는 등의 효용이 있었다. 마법사란 이런 마법진을 연구하고 활용하는 이들을 의미했다.
‘내일 마법사 친구와 계약을 맺은 다음에 신관들을 불러 신성마법을 시현시켜봐야겠군. 기대되는걸.’
세련된 지구의 게임이 만들어낸 화려한 그래픽과 연출이 이쪽 세상에서 발현되면 어떨 것인가, 내심 기대하는 원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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