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잊혀진 신의 세계-31화 (31/497)

31화 *에인페리아의 전투

‘왠지 기분이 묘한걸.’

유연하는 복잡한 기분에 사로잡혀 있었다. 이전에는 인간형의, 아니 인간을 겨눈다는 것이 굉장히 부담스러웠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았다. 다크엘프들을 겨누는 그녀의 손에는 조금의 망설임도 없었다.

그렇다고 마음이 가벼운 것은 아니었다. 바로 그녀의 곁에 있는 이들 때문이었다.

천 명의 엘프 궁병대가 바로 그것이었다.

현실 세계에서도 수련을 거듭하고 있지만, 미드가르드에서도 궁술 수련은 거듭되고 있었다. 아니, 현실 세계에서의 수련은 현상 유지를 위한 워밍업 정도라면, 미드가르드에서 얻는 것은 굉장히 많았다.

게임 세계에서의 전투는 말 그대로 몸만들기를 위한 노가다에 지나지 않았다. 그래서 레벨 업이 조금 더딘 부분이 있었다.

반면 엘프들과 함께 하는 궁술 훈련은 대단히 큰 가치를 지니고 있었다. 그들에게 그녀가 알고있는 현실 세계의 궁술을 가르치고, 그들에게 엘프들 고유의 궁술을 배웠다.

그리고 그런 와중에 많은 정이 들었다. 주로 둘이서만 훈련을 하는 원기나 희연과 달리, 그녀는 많은 이들과 정이 깊이 들었다.

그리고 엘프들이 좋아서, 그들과 침식을 같이하길 좋아하는 장수한 역시 그녀 이상으로 엘프들에게 정이 들었다.

다크엘프들의 습격으로 부모를 잃거나 사랑하는 가족을 잃은 엘프들이 많았기 때문에, 그들의 사정을 들으면서 그들보다 더 분노하고, 그들을 대신해서 원한을 품게 되었다.

미워할 줄 모르고, 분노할 줄 모르느, 원한을 모르는 엘프들이 안타까우면서도 사랑스럽게 여겨졌다. 그들은 다크엘프들을 증오해서 전장에 나서는 것이 아니라, 소중한 이들을 지키기 위해서 싸우고자 할 뿐이었다. 이미 죽은 이들은 그저 가슴에 묻어둘 뿐, 그들을 위해 누군가를 해친다는 것은 그들에겐 있을 수 없었다.

그런 그들이 자신의 등 뒤에 있었다. 그녀는 죽어도 되살아나지만, 그들은 되살아나지 못한다. 만의 하나 실수가 생기면, 다시는 볼 수 없는 이들이 대거 생겨날 것이다.

프레이야 여신은 그녀들을 되살리고 싶어하지만, 그다지 여유가 많지 않다는 것은 그녀 역시 잘 알고 있었다.

사랑하는 동료들이 생겼기에 싸움에 대한 부담이 덜어지고, 사랑하는 동료들이 생겼기에 싸움에 대한 부담이 가중되었다.

‘마음을 가다듬자. 스킬시전. 가이드 비콘’

처음에 말로 직접 하지 않으면 스킬이 발동되지 않았지만, 이제는 머리속에서 한자 한자 또박또박 떠올리는 것으로 발동시킬 수 있을만큼 익숙해졌다.

익스플로젼 애로우를 실행한다고 생각해서 실행되는 것은 아니지만, 말을 하듯이 머리 속에 정확하게 명령문과 스킬명을 떠올리면 스킬이 시전되었다.

덕분에 스킬 시전때마다 생기던 딜레이는 대폭 감소된 상태였다.

패시브 스킬 위주의 희연과 원기와 달리 액티브 스킬의 비중이 높은 그녀와 수한의 경우엔 스킬 시전의 딜레이는 꽤 중요한 문제였다.

그녀가 가이드 비콘 스킬을 시전하자, 머리속에서 청명한 알람음과 비슷한 것이 울려퍼졌다. 알람음은 아니지만, 알람음처럼 느껴지는 스킬 발동음이었다. 그리고 그녀의 화살촉이 은은하게 푸른 빛을 발했다.

그녀는 하늘을 향해서 활을 치켜 들었다. 섬세하게 노려서 적의 임시초소 앞부분에 떨어지도록 화살을 쐈다. 화살은 정확히, 그리고 조용히 바닥에 꽂혔다.

“성공했어요.”

“그래. 그럼 슬슬 시작해 볼까.”

수한도 긴장한 기색이 역력했다. 자신들은 죽지 않는다고 해도, 게임과 달리 재시도가 불가능한 작전이었기 때문에 긴장감으로 배가 아파올 지경이었다.

그녀는 그리폰을 소환해 합체하고 하늘로 날아 올랐다. 그리고 그녀는 하늘에 올라서 적들이 많이 뭉쳐있는 곳을 향해서 익스플로젼 애로우를 발사했다.

쾅하는 폭음과 함께, 다섯 명의 다크 엘프들이 폭연에 휩싸였다. 물론 스킬에 의한 데미지는 없으니 멀쩡하겠지만 폭음과 폭연 덕분에 정신이 없을터였다. 그리고 나중에 자신이 무사하다는 사실을 깨닫더라도 운이 좋아서라고 생각할 가능성이 컸다. 폭발 자체가 아무런 공격력이 없다는 것은 생각하기 어려울 것이기 때문이었다. 동시에 다크엘프들이 야영용 잠자리에서 튀어 나와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 필사적이 되었다.

‘스킬시전. 일스플로젼 애로우.’

그녀는 다시 화살을 쐈다. 그리고 폭음과 함께 이번엔 일곱 명의 다크엘프들이 폭염에 휩싸였다. 그 효과와 소리 때문에 다크 엘프들은 뭉치지 못하고 사방으로 흩어지기 시작했다.

“모두 흩어져라! 그리고 상대를 찾아라!”

지휘하는 자를 보고 연하는 스킬을 쓰지 않고 화살을 날렸다. 게임 캐릭터의 파워를 최대한 살려서 쏜 강력한 화살, 하늘에서 소리보다 빨리 날아온 화살에 다크엘프 지휘관은 머리에 적중 당해서 그대로 고꾸라졌다.

“위다! 하늘에 적이 있다!”

동시에 화살들과 바람의 칼날이 그녀를 향해 쇄도했다. 화살들은 그녀에게 미치지 못했지만, 바람의 칼날들은 그녀를 향해 날아와서 그녀의 전신에 상처를 입혔다. 하지만 그녀는 침착하게 다시 한번 폭발 화살을 날렸다.

‘제발 움직여. 그만 공격하고.’

침착한 그녀의 화살공격과는 달리, 마음은 조급했다. 비행 지속시간이 얼마남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바람의 칼날 공격 때문에 날개가 손상되어 조금씩 고도가 낮아지고 있었다.

“숲속으로 흩어져라!”

다크엘프 레인저들은 재빨리 목책이 둘린 야영지에서 빠져 나오려고 들었다. 그것을 본 연하는 다시 폭발하는 화살을 날렸다. 장수한의 말대로 알멩이 없는 눈속임 기술이지만 적들을 컨트롤하는 것이 가증했다.

‘다행이야. 비행 지속시간 중에 움직여 줘서.’

“좋아. 다섯발 째다. 스킬 시전! 파이어 레인!”

약속된 다섯발 째의 폭발음을 기다리던 장수한이 가이드 비콘을 향해서 마법을 날렸다. 그리고 그 화염의 비는 목책을 빠져 나오려던 다크엘프들 앞에 쏟아졌다. 이미 폭발 화살로 적들의 도주로를 조종한 상태였다. 화염의 비를 보고 그 안으로 뛰어들 이들은 없었고, 결국 그들의 퇴로는 장수한이 예측한 곳으로 좁혀졌다.

“성공이다! 일제히 사격 개시!”

수한의 구령소리에 일제히 엘프들이 불화살을 발사했다. 숲을 소중히 여기는 그들이었지만, 엘프들을 더 소중히 여기는 여신의 뜻을 거스르지는 않았다.

불화살들이 쏟아지면서 사방에 산불이 붙었고, 땅속에 묻어놓은 폭약들이 폭발하면서 다크엘프들은 완전히 혼란에 빠졌다. 엘프들이 숲에 불을 지르리라고는 생각치 못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허둥지둥하는 그들을 향해 엘프들의 화살이 날아왔다. 조제성이 수배한 카본 복합재를 이용한 합성궁은 작은 크기에 비해 정확도가 높고, 사거리도 다크엘프들의 화살을 넘어섰다.

“빌어먹을! 모두 흩어져서 도망쳐라! 살아남아서 아군과 합류한다!”

다크엘프들의 외침을 들은 장수한은 한숨을 돌렸다. 이 소규모 전투의 승리는 예정된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가 두려워한 것은 엘프 궁병대를 노리고 다크엘프들이 필사의 돌격을 해오는 것이었다.

바람의 정령의 수호를 받으며, 민첩한 몸놀림으로 돌격해온다면 엘프 궁병대에 피해가 올 수 있었다.

‘연하 녀석은 무사한건가?’

비행지속시간 종료와 날개의 손상으로 숲에 추락하는 연하의 모습을 떠올리며, 수한은 쓴 웃음을 지었다. 꽤 높은 곳에서 추락하긴 했지만, 추락 데미지는 받지 않을 터였다.

“모두 후퇴한다.”

장수한은 그녀들에게 후퇴 지시를 내리고, 자신은 연하가 떨어진 방향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미라엣. 대체 무슨 일이지?”

“그렌인가. 적의 공격이다. 발톱을 드러낼 때가 올거라고 생각은 했지만, 생각보다 빨랐군.”

“좋아. 내가 나서지. 엘프들의 수를 확실하게 줄여주고 오지.”

“아니, 기다려. 저쪽은 양동 작전이야. 반 신족이 어떤 자들인지 잘 알지않나. 겨우 백명을 줄이려고 움직인다고? 저렇게 숲에 큰 불을 내고? 말도 안되지.”

성전사이자 신관인 미라엣은 득의의 미소를 지었다. 적을 죽이는데 쾌감을 느끼는 아스신이나 거인족과는 달리, 반 신족은 적이라고 해도 이유없이 죽이고 싶어하지 않았다.

원기는 반 신족과는 전혀 별개의 평범한 인간이었지만, 그가 반 신족인 프레이야의 마음에 든 것도 그런 성향이 있기 때문이었다.

그는 아군을 지키기 위해선 잔인해질 수 있지만, 목적없이 적을 죽이는 것을 좋아하지는 않았다.

다크엘프 백 여명을 죽이기 위해서 숲에 불을 지를리는 없었다. 미라엣은 그렇게 판단내렸다.

“아마도 굴베이그 왕국과 손을 잡을 생각이야.”

아스가르드에 와서 생긴 전통 중 하나는 신의 이름을 딴 국가의 건설이었다. 다만 엘프들은 인간들처럼 나라를 세우지 않았을 뿐이었다. 굴베이그 왕국은 여신을 잃음으로써 몰락의 일로를 걷고 있었지만, 나라로서 소멸한 것은 아니었다.

그들에게는 굴베이그 여신의 씨앗이 잠든 성녀가 희망으로써 존재하고 있었다. 또한 더이상 반 신족이 다스리는 인간의 나라가 존재하지 않았다.

반 신족을 섬기며 평화롭게 살던 이들은 설령 신의 가호를 받지 못한다 하더라도 아스 신족의 비극적인 질서아래 사는 것보다는 낫다고 믿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렇다면?”

“아마도 이건 밀정들을 돌려보내기 위한 양동작전이겠지. 너무 시끄럽고 요란해. 이 시간에 저런 폭음과 불꽃놀이라니.”

성기사 그렌은 그녀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가 생각하기에도 그녀의 예측이 옳다고 볼 수 있었다.

“적입니다. 숫자는 소수. 아군들과 교전을 벌이고 있습니다. 이곳에서 꽤 가깝습니다.”

레인저 하나가 달려와서 외치자, 그렌은 무기를 잡고 나서려고 했다. 하지만 미라엣은 다시 한 번 그를 불러세웠다.

“무슨 일이지?”

“너무 빨리 포착당했어. 신중하다못해 우유부단한 반신족이라면, 두번 쯤 이런 식으로 흔들 가능성이 있어.”

그리고 다시 한번 전령이 뛰어들어와서 그들에게 보고했다.

“적은 두 명과 야수 두 마리입니다. 일전에 전투를 벌였던 신의 전사들로 보입니다.”

“아아, 정말 반 신족들은 못말린다니까. 자기 자녀는 한명도 못죽게 두겠다는건가? 정말 사랑스럽기까지 하군.”

미라엣은 미소를 지었다. 다크엘프들은 본래 엘프에서 파생된 부족이었다. 그리고 프레이는 반 신족이었고, 사실 지금도 반 신의 하나였다. 그저 오딘의 밑에 있을 뿐이었다.

라그나로크때 아스 신족에게 반기를 든 다른 반 신족들과는 달리 자연도태를 자연의 섭리라고 보고 프레이는 오딘의 곁에 남은 것이었다.

반 신족으로서 아스 신족과 함께 살아갈 길을 택한 것이다. 그런 면에서 다크 엘프들은 반신족의 긍지와 아스신족의 냉혈함을 함께 지니고 있었다.

살아남기 위해선 무슨 짓이든 하지만, 불필요한 잔인함은 지니지 않은 것이 다크엘프족의 특성이자 긍지였다.

“어떻게 해야 할까?”

“답은 두가지야. 상대가 또하나의 미끼거나, 우리를 노린 자객이거나. 내가 알기론 상대는 고작 다크엘프 레인저 열 명도 상대 못할 실력이었어. 아마도 미끼라고 봐야겠지.”

“신의 전사인 에인페리아가 고작 열 명도 상대할 수 없다고?”

“그래. 반 신족 답게 쓸모없는 전사에게도 자비를 베푼거지. 한심하기 짝이 없어.”

그녀는 그렇게 말하면서 다크엘프 레인저들을 재배치하기 시작했다. 습격받는 다크엘프들을 지원하면서 경계망을 더욱 넓히는 방식이었다. 그것은 반 신족의 성격을 꿰뚫고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방식이었다.

“만약, 자객이라면 어떻게 되는거지?”

“그때는 그쪽에서 우리를 향해서 오겠지. 노릴 만한 상대는 우리 뿐이야.”

신의 전사 에인페리아라고 해도, 죽은 자리에서 부활하는 것은 아니었다. 신의 성역에서 육체가 창조되기 때문에 프레이의 곁에서 부활하게 되어 있었다. 한번 쫓겨가면 돌아오는데 수개월이 걸릴 터였다. 그 공백은 결코 작지 않았다.

“물론 가능성은 없어. 이미 오십 명 가량의 레인저를 보냈으니, 곧 미끼들을 처리했다는 보고가 올라올거야.”

미라엣은 미소를 지었다.

“실패인건가?”

상황이 이상하게 돌아간다는 것은 장수한, 유연하를 비롯해서 원기와 희연도 눈치챌 수 있었다. 병력의 집중이 전혀 이뤄지고 있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연하는 추락한 후에 자신을 노리고 다수의 다크엘프가 올 것에 대비했지만, 그녀를 노리는 다크엘프는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추락과 동시에 그녀가 사망했을 거라고 여긴 탓도 있고, 그녀의 수색에 돌릴 병력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장수한의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적들은 제자리를 지키고 있을 뿐, 그가 연하와 합류하는 상황을 저지하는 자들은 아무도 없었다.

그리고 혈투를 벌이는 한희연과 박원기 역시 의아함을 감추지 못했다.

“죽어라! 이 망할 자식들아!”

테러 피어의 위력은 담기는 감정에 의해서 좌우되었다. 원기는 욕설을 말에 섞을 때마다 효과가 배증되는 것을 느꼈다.

좀 더 맛깔나는 욕설을 할 수도 있었지만, 옆에 한희연이 있어서 그 이상의 표현은 하기 힘들었다.

욕설이 터질 때마다, 적들의 시선은 무의식 중에 원기에게 모였다. 그리고 그 순간마다 희연의 검이 적들의 목숨을 거둬갔다.

“너무 느려! 다 덤벼라!”

‘정말 느리군. 이렇게 바뀔 줄이야.’

일전의 전투에서 다크엘프 레인저들은 전광석화처럼 움직여서, 원기로서는 제대로 싸워보지도 못했다. 하지만, 민첩을 극대화한 희연과의 대결 덕분에, 상대의 움직임을 읽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너무 느리게 보였다. 견제 할 생각으로 휘두른 그의 대검에 다크 엘프가 속절없이 죽어나갔다. 나름대로 지형지물을 이용해서 싸우려고 들었지만, 그의 대검은 나무와 함께 다크 엘프들을 베어버렸다.

정글도의 짧은 리치와 민첩함은 나무와 함께 주변을 초토화하는 원기의 거대한 대검 앞에선 무력하기 짝이 없었다.

희연과 싸우면서, 크고 강력한 육체를 최대한 활용하는 전투 방식이 몸에 익은 덕분이라고 할 수 있었다.

“좀 힘을 빼서 싸워야 할거야. 그리고 포션 좀.”

다크엘프들이 사방에 흩어져 있는 탓에, 원기와 희연은 숨돌릴 틈을 얻었다. 게임처럼 포션을 클릭하면 마셔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포션을 마시는 동작을 위해선 잠시 무방비해질 수 밖에 없었다.

원기는 한희연을 돌아보았다. 그녀는 왼팔이 잘려 나간 상태였다.

‘저 상태에서도 대범하게 싸울 수 있다는게 참 대단해.’

원기는 그녀의 왼팔을 찾아오라고 은호에게 명령을 내렸다. 몬스터는 난전에서 그다지 쓸모가 없었다. 공격 대상을 무지막지하게 공격할 뿐, 방어나 회피를 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상대가 그리 많지 않을 때는 꽤 도움이 되었지만, 상대가 조금만 많아도 방어를 도외시한 덕분에 순식간에 사망판정이 떴다. 그나마 원거리 공격 유닛인 불여우는 불만 쏘면서 피해다니는 덕분에 꽤 쓸모 있었다.

‘그나마 이런 데서 도움이 되니 다행이군.’

은호는 곧 그녀의 잘려나간 왼팔을 물고 왔다. 피로 물든 붉은 건틀렛과 하얗게 빛나는 살결은 묘한 느낌을 불러일으켰다.

희연의 취향 덕분에, 그녀의 갑옷만이 아니라, 원기의 갑옷도 붉은 색이었다.

왼팔의 절단 면을 포션으로 씻고, 그녀의 어깨쪽에 붙여주었다. 그리고 그녀가 오른팔로 포션을 마시자 곧 왼손이 멀쩡해지고 상처도 회복 되었다.

게임 캐릭터의 위대함이라고 할만 했다. 원기 역시 자신의 상처에 포션을 부었다. 뼈가 드러날 정도의 상처도 곧 아물었다. 팔다리가 잘려 나가지 않으면 금방 회복되는 것은 장점이었다.

“실패한 것 같지? 어떻게 할까? 그들과 합류할까?”

다크엘프의 경계망을 빠져나가는 것은 쉽지 않았다. 그리고 다크엘프들 가운데는 뛰어난 에인페리아들이 있었다. 그들의 추격을 받게 된다면, 호위 레인저들은 고사하고 마법사를 살려서 탈출 할 수 있을지도 의문이었다.

“아니, 이럴 때는 머리를 치는게 상식이에요. 한번 시도해보지요.”

한희연이 잘렸던 왼 손을 툭툭 던지듯 휘둘러 보고는 투지를 발휘했다. 원기는 그런 그녀의 모습을 보면서 새삼 마음이 든든해지는 느낌을 받았다.

죽음의 골짜기를 간다 해도, 그녀가 함께라면 어깨를 펴고 나아갈 수 있을 듯 했다.

“그래.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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