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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혀진 신의 세계-32화 (32/497)

32화

“이대로 괜찮을까요? 아직도 소란이 그치지 않는 것 같은데?”

“아직 수색 명력이 철회되지 않았다.”

“하지만, 본진 쪽에서 불꽃이.”

“그렌님이 계신다. 우리가 가봐야 의미없어.”

“그건 그렇군요.”

다크엘프들은 불안감을 감추지 못하면서도 탐색을 계속하고 있었다. 그들이 믿는 것은 성기사 그렌과 성전사 미라엣의 존재였다.

“여기 적의 흔적이...컥!”

일단의 무리가 지나간 흔적을 발견한 다크엘프가 수색대의 대장에게 보고하려는 순간, 그의 목을 화살이 꿰뚫었다. 그는 별 소리를 내지 못하고 절명해 바닥에 쓰러졌다.

“무슨 일이냐? 적습?”

수색대의 대장도 돌아보려던 순간, 날아온 화살에 맞고 절명했다. 그리고 차례 차례로 곁에 있던 다크엘프들도 소리없이 날아온 화살에 쓰러졌다.

“계획과는 달라졌지만, 잘하면 레벨 유지하며 나갈 수 있겠네.”

유연하는 씁쓸한 표정으로 혼잣말을 했다. 장수한은 탈출하는 엘프 레인저들과 합류했다. 그녀는 혼자 남아서, 혹시 흔적을 발견하는 적들을 처리하는 임무를 맡았다.

아무리 엘프들이나 다크엘프들의 밤눈이 밝다고 해도, 숲속에서 소리없이 날아오는 검은 화살을 볼 수 있을 정도는 아니었다.

화살 등을 피할 때 청각에 의지하는 경향이 강한 다크엘프들에게 소리가 나지 않는 화살은 아주 강력한 무기였다.

계획대로라면, 달려드는 다크엘프 레인저들에게 몰매를 맞고 죽었어야 했지만 상대가 작전에 걸려주지 않은 덕분에 분산된 다크엘프들을 상대하게 된 것이었다.

‘전화위복이라고 해야 할지, 풍전등화라고 할지. 몰라. 한 놈이라도 죽일 수 있을 때 더 죽여두자.’

그녀는 고민하는 것을 멈추고, 숲속으로 조용히 녹아들 듯 움직였다.

“괜찮아?”

피를 흠뻑 뒤집어 쓰고 가쁜 호흡때문에 숨을 몰아쉬며, 원기는 희연을 돌아보았다. 이미 전신에 두른 장갑판은 대부분 날아간 상태였다. 포션으로 회복은 계속하고 있지만, 살점이 크게 날아간 부분은 회복되지 않았다. 왼손의 손가락도 두개가 날아간 상태에서 회복되지 않았다.

회복력을 향상시켜주는 회복 포션은, 회복안되는 상처는 회복이 안된다는 당연한 특성을 가지고 있었다. 다만, 통증은 많이 줄어든다는 것은 위안이라면 위안이었다.

“아직은 괜찮은 것 같은데.”

희연 역시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원기 이상으로 피를 뒤집어썼지만, 그녀의 몸에는 상처가 그다지 없었다.

원기가 탱커로서의 임무를 충실히 해냈기 때문이었다. 파티를 위해 헌신적으로 뛰어들어서, 적의 공격을 한 몸에 받아내는 탱커의 역할은 사실 정상적인 것은 아니었다.

게임에서는 고통을 느끼지 않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었다.

그런 탱커의 역할을 미드가르드에서 우직하게 재현한 원기의 정신력은 평범한 것은 아니었다.

다만, 원기 스스로는 그것이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 잘 모르고 있었다. 한희연이나 유연하같은 운동선수에 비해 자신이 열등하다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한희연은 원기의 등이 너무나 듬직하게 느껴지자, 살짝 혀를 찼다. 자신이 누군가에게 의지하는 것은 그녀가 바라던 미래상하고는 달랐기 때문이었다. 지기 싫어하는 그녀의 성격이 그녀에게 다시금 오기를 발휘하게 만들었다.

“넌 좀 쉬어. 내가 상대할테니.”

다시 나타난 다크엘프 레인저들을 맞으면서 그녀는 검을 다시 쥐었다.

‘검이 얼마 버티지 못하겠군.’

이미 두 자루의 야태도(노다치)가 부러졌다. 마지막 남은 한자루가 그녀가 들고있는 도(카타나)였다. 어새신 캐릭터가 민첩 캐릭터라고 하지만 레벨 40을 넘으면서 한희연의 힘을 넘어섰고, 레벨 60이 되면서 그녀 본신의 힘과는 비교할 수 없이 강했다.

그래서 그녀는 1미터가 넘는 야태도를 주무기로 사용했다. 하지만 격전 와중에 차례차례 부러졌고, 남은 것은 보조 무장으로 챙겨둔 한자루의 도 뿐이었다.

‘마음이 왠지 고요해지는군.’

은호와 불여우는 둘 다 죽어버린 상태였다. 몬스터 부활 마법은 테이머들에게만 있었다. 테이머가 아닌 그들은 30분이라는 쿨타임이 지나고 되살아나는 것을 기다릴 수 밖에 없었다.

그녀의 등 뒤에 지켜야 할 동료가 있다는 사실은 중압감이면서, 동시에 마음 든든한 것이기도 했다.

그녀는 언제나 명경지수와 같은 냉정함을 바탕으로 검을 휘둘러왔다. 하지만, 동료와 싸우는 와중에 심장에서 끓어오르는 무언가를 느꼈다.

‘마음은 심장에서 느껴지는 거라고 했던가.’

분명, 이성도 감정도 머리에서 느끼는 것일진데, 그녀의 심장은 뜨겁게 움직이고 있었다. 동시에 머리 속은 차분해졌다. 그녀의 머리 속에서 많은 것들이 지워지기 시작했다.

그녀와 검, 지켜야 할 것과 쓰러뜨려야 할 적, 그녀는 머리속을 비우고 검을 휘두르기 시작했다. 그녀가 어릴 적부터 휘둘러온 2척 조금 넘는 도(카타나)가 그녀를 이끌어 주었다.

‘아름답다.’

원기는 피튀는 살육극을 보면서, 단 한번도 경험하지 못해왔던 아름다움을 느끼고 있었다. 몸을 일으켜서 싸우고 싶은 마음도 있었지만, 그녀를 방해해선 안될 것 같다는 느낌도 강하게 들었다.

지금의 그녀와 검을 겨룬다면, 단 일검도 막을 수 없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지만, 분하다거나 하는 느낌은 들지 않았다. 그저 아름답다는 감탄과 동경의 감정만이 머리속에 맴돌고 있었다.

‘카메라가 있었다면, 정말 좋았을텐데...’

원기는 아쉬움을 감추지 못했다. 두고두고 되새기고 싶은 모습이었다. 생각해보면 말도 안되는 끔찍한 장면일지 몰랐지만, 그저 아름답게만 보였다. 아니, 성스럽게 보이기까지 했다.

그때 박수 소리가 들려왔다.

“굉장하군. 보고로 들었던 그 자들이 맞는건가?”

원기의 시선이 자연스럽게 박수 소리가 들려온 곳을 향하자, 화려한 갑주를 입은 다크엘프 둘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가볍게 봐도 백 명이 넘는 다크엘프들의 모습이 보였다. 슬슬 끝이 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갑주를 입은 다크엘프 레인저인가. 나름대로 미끼 작전은 성공한거라고 봐야 할려나.’

원기는 호흡을 골랐다. 숲속에서 다크엘프들이 갑주를 입었다면, 그 갑주가 평범한 물건일 리는 없었다.

‘그래. 이왕 칼맞는 거라면, 저런 놈을 상대하는게 낫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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