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잊혀진 신의 세계-35화 (35/497)

35화

, 그가 이 선택에 대해서 후회했는지는 알 수 없다.

“적들이 더 이상 쫓아오지 않는게 확실한 것 같군.”

장수한이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유연하와 한희연, 박원기는 각자 자신의 몹을 타고 걷고 있었지만, 피닉스는 탑승이 불가능한 몹이라 장수한은 다른 이들과 함께 걸을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는 별로 개의치 않았다. 그의 곁에는 그가 좋아하는 여성 엘프가 함께 걷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엘프 친위 성기사대 단장 엘레니아.

엘프 마을들은 전통적으로 촌장의 딸이 민병대의 대장을 맡게 되어있었고, 그녀의 어머니는 공작으로 선출된 촌장이었다. 황제가 된 트리아의 딸 리디아가 지구로 간 덕분에, 미드가르드의 엘프 군대에서는 가장 높은 지휘관이 된 경우라고 할 수 있었다.

“지금부터가 문제입니다. 공병 선생. 인간들 영역이 더 위험할겁니다. 그들은 교활하고 추악한 야수니까요.”

“공병이 아니고, 공명이라고 말씀드렸지요.”

“아, 죄송합니다. 공비영선생.”

되려 살짝 이상해졌다. 어감이 묘하게 들려서 장수한도 살짝 미간을 찌푸렸다.

‘이름을 잘못 지었나.’

장수한은 심각하게 후회하고 있었다. 마침 그가 군에서 공병으로 생활한 탓에, 그녀가 자신을 부를 때마다 삽자루를 들고 땅을 파야하던 시절을 떠올리게 되는 것이었다.

어린 엘프들은 조금은 까다로운 한국 발음도 곧잘 하는데, 성인이 된 엘프들은 가르쳐줘도 발음 교정이 안되는 경우가 많았다.

사실 그도 영어 발음이 교정이 안되어서 애먹었으니 당연한 것일런지도 몰랐다.

“인간들이라. 사실 저도 인간입니다만...”

“아, 그건 저도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공병선생과 그들이 같은 인간이라고는 생각되지 않습니다.”

엘레니아는 살짝 얼굴을 붉혔다. 그녀는 이미 장수한의 본체와 만난 적이 있었다. 문명인인 그는 야만인인 미드가르드인과는 많이 달랐다.

“란체르트님도 그렇지만, 반 신님들을 믿는 이들은 엘프들과도 교류가 가능합니다. 하지만 다른 이들은...”

부처의 자비, 신의 사랑, 지구상의 모든 종교는 사랑을 바탕으로 하는 종교들만이 남아있지만, 이곳에는 북구의 원시 종교들이 그대로 실존하고 있었다.

그나마 풍요와 평화를 추구하는 반 신족들이 인간들에게는 도움이 되긴했지만, 그때문에 거인족과 아스 신족의 집중공격을 받은 면도 있었다.

‘아, 젠장.’

그리폰의 탑승감은 정말 훌륭해서, 조금의 흔들림도 느껴지지 않았다. 하지만 유연하는 그게 별로 반갑지 않았다. 그녀의 손에 들린 태블릿 PC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 태블릿 PC에서는 인터넷 강의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은 박원기와 한희연도 마찬가지였지만, 데미지가 가장 큰 것은 유연하였다.

저녁에 야영할 때 공부한 내용을 한희연이 점검해주기로(?) 한만큼 딴청을 피울 수도 었었다. 공부랑 담을 쌓고 살아온 그녀였던 만큼, 공부는 고문이 아닐 수 없었다.

‘대학 수험도 칠 필요 없는데 말이지.’

유연하는 자신의 처지가 좀 처량했다. 조제성을 비롯한 장수한과 모든 이들의 결론은 여신과의 계약은 결코 가까운 시일내에 끝나지 않는다는 것이였다. 10년이 걸릴지, 20년이 걸릴지 몰랐다.

게다가 조제성도 장수한도 그냥 일생 계약이 유지되기를 내심 바라고 있었다. 그들이 그런 사실을 여신에게 알리자, 여신 역시 그들이 계약을 어기지 않는 한, 그리고 계약의 종료를 원하지 않는 한 계속 이어질 것이라고 언약한 바 있었다.

그걸 계기로, 조제성은 계약자들이 일생 경제적 문제를 걱정하지 않도록 배려를 해놓은 상태였다. 어차피 오랜 시간을 미드가르드에서 보내야 하는 만큼, 지구에서의 활동은 제한될 수 밖에 없었다.

물론 유연하 역시 이 계약을 끝낼 생각은 없었고, 일생을 보내게 될거라고 믿고 있었다.

문제는 유연하를 제외한 모든 이들이 공부에 대해서 양보할 생각이 없다는 사실이었다. 꽉막힌 한희연, 교사출신 장수한, 천재 기업가 조제성은 물론이고 학업을 중단해야 했던 박원기까지 공부는 필요하다는데 있어서 의견이 일치했던 것이었다.

결국 그녀는 투덜대면서, 태블릿 PC를 주시할 수 밖에 없었다.

[여신님. 다크엘프들이 숲에서 완전히 철수했다는 소식입니다.]

원기는 발키리의 보고를 들으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왜 그런 일이 일어났는지는 어느정도 짐작할 수 있었다.

아스 신족과 거인족은 서로 맹렬히 싸우고 있는 듯 보이지만, 서로가 서로를 필요로 하는 관계라고도 할 수 있었다. 마치 냉전시대의 미국과 소련이랄까 남한과 북한과의 관계와도 비슷했다.

내부에 불만이 생기면, 외부 위협을 이용해서 그것을 묵살하는 것이었다.

북구 신화 시절부터 오딘과 토르는 기본적으로 사이가 좋지 않았다. 처남 매부간, 혹은 부자간으로 그려지는 두 신의 가까운 관계와는 달리 서로를 마음에 들어하지 않았다.

반면 오딘과 로키는 서로의 입장차이에도 불구하고 죽이 잘 맞았다.

결국 거인족은 아스 신족이라는 적이 있기 때문에 로키를 싫어하면서도 로키의 지시에 따라 움직일 수 밖에 없고, 아스 신족 역시 마찬가지였다.

‘어디나 마찬가지군.’

정권을 유지하기 위해, 서로를 도발하고 증오를 부추켜서 자신의 과오를 덮고 불만을 묵살하는 그런 관계가 오딘과 로키의 관계였다.

‘서로 증오하면서 이토록 오래도록 싸워온 이면엔 그런 문제가 있을지도 모르지.’

원기는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그리스 신화나 북구 신화의 신들이 지나치게 인간적이라는 생각은 전에도 해본 적이 있지만, 이토록 신답지 못한 아귀들일거라고는 생각해 보지 못했다.

‘홍익인간’같은 소리를 떠들다간, 반 신족들과 마찬가지로 다구리맞고 멸망당할 터였다.

‘어쨌든 다행이긴 한데, 이 이야기를 어떻게 전하지?’

원기는 살짝 고민에 빠졌다. 그리고 그런 모습은 장수한도 볼 수 있었다. 그에게 발키리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지만, 태블릿PC를 보다 말고 고개를 끄덕거리다가 미소를 짓다가 고민에 빠지는 모습은 쉽게 발키리의 존재를 짐작하게 할 수 있었다.

그리고 엘레니아가 발키리의 움직임에 맞춰서 눈동자가 움직이는 것도 확인할 수 있었다. 이번 작전에 동원된 이들 전부가 프레이야의 신관이자 전사, 곧 성기사들이었기 때문이었다.

“신관들한테는 발키리가 보인다고 하셨지요? 혹시 다른 신의 발키리도 보이는겁니까?”

“예. 하지만 프레이야님의 발키리처럼 분명하게 보이지는 않습니다. 그저, 저 사람에게 발키리가 붙어있다는 것 정도는 알 수 있지요.”

장수한은 그 말을 듣자, 한숨을 내쉬었다. 아무래도 모르는 척하고 있을 수만은 없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그는 원기의 곁으로 다가가서 말을 걸었다.

“원기야. 너 여신이지?”

────────────────────────────────────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