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9화
“그러게, 왜 그딴걸 주워먹어서는! 레벨이나 떨구고!”
한희연은 지금이야말로 기회다라고 생각했는지 맹렬하게 쏘아 붙였다. 사실 수한과 원기는 먹을 수 있는 거였다면, 사람들에게도 나눠주고 계속 먹으면서 여행할 생각이기는 했다.
정말 맛 하나는 죽여줬기 때문이었다. 레벨 좀 더 떨어져도 한번 더 먹어볼까하고 말했다가, 엘레니아와 희연 두사람에게 수한은 쿠사리를 한번 더 먹어야 했다.
“독이 있는 건 아닌데, 존재 자체가 좀 다른 것 같아.”
“독이 아니라는건 무슨 뜻이지요? 먹고 죽었으니 독 아닌가요?”
“음, 그러니까, 의도한 독은 아니라는 거지. 이놈들이 독으로 널 공격하진 않았으니까. 껍질도 단단하니 굳이 독을 가질 필요는 없었지. 그래서 먹어도 될거라고 생각했는데, 아무래도 우리랑은 완전히 사는 세계가 다른 놈인 것 같아. 에어리언처럼.”
“에어리언이라, 외계생물인가요?”
“그래. 가능성은 없지 않지. 미드가르드가 어떻게 탄생한 것인지를 생각하면...”
“음, 여기가 외계 행성이라고 생각하세요?”
“그럴지도 모르지. 동차원의 머나먼 외계 행성일지, 이차원의 가까운 행성일지는. 비밀은 아마도 오딘이나 로키만 알겠지.”
“예. 제가 가진 프레이야의 지식에도 그 부분은 포함되어 있지 않았어요.”
폐병에 걸린 마을 사람들의 존재는 고민의 씨앗이기도 했다. 신전이 나름대로 정상화가 되기는 했지만, 신관이 없이는 곧 다시 성력을 잃게 될 터였다.
“여기에 이동 거울을 설치할 수는 없는건가요?”
“예. 공병선생님. 이곳은 2단계 성역이라, 적어도 3단계 중급 성역이 아니고서는 거울의 설치는 불가능해요.”
“3단계 성역으로 업그레이드는 안되나요?”
수한의 말에 엘레니아는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일단, 이곳을 업그레이드 하려면, 적어도 백명의 신관이나 만명의 신자가 필요해요. 엘프 신관들이 인간 신관의 두명분을 해낸다고 해도 턱없이 부족해요. 그리고 그정도 인원이 있다고 해도, 일주일 이상은 걸린다고 봐야 할거에요.”
“그럼, 거울로 이동시키는 것은 안된다고 봐야겠군요. 그렇다고 가뜩이나 귀한 엘프 신관을 하나 두고 갈 수도 없고.”
“모두 데리고 가지요. 그게 좋을 것 같은데요.”
원기의 말에, 수한은 한숨을 쉬었다. 엘레니아는 예상한 듯이 그냥 담담히 받아들였다. 그들이 섬기는 반 신들은 그런 존재들이었기 때문이었다.
“수레나 마차를 만들어야겠다. 이 사람들 다 옮기려면. 네가 마을을 돌아다니면서 닥치는데로 다 뜯어와라.”
게임 아바타라고 해도, 백골전갈들이 넘치는 속을 자유로이 오갈 수 있는 것은 오직 원기뿐이었다. 희연은 감히 접근조차 할 수 없었고, 연하와 수한은 양 다리를 한번씩 찝힌 다음, 비명을 지르며 도망쳤다. 그들의 얇은 다리는 집게에 걸리면 엄청나게 아팠다. 잘리거나 으스러지지 않은 것만해도 대단한 것이라고 할 수 있었다.
사람들은 마치 괴물을 보듯 원기를 보았고, 엘프 신관들은 안타까운 눈빛을 감추지 못하고 원기를 보았다.
원기 입장에선 걱정해 주는 것은 고맙지만, 별로 대단할게 없어서 멋적을 정도였다. 조금 걸리적 거리기는 했지만, 풀장에서 허리까지 오는 물에 몸을 담그고 걷는 정도의 느낌밖에는 오지 않았다.
집게로 집은 다음 누르고 비트는 느낌은, 마치 안마를 받는 느낌까지 들어서 조금 시원하기도 했다.
‘그래. 조금 더 아래. 바로 거기야!’
목공 기술을 가진 노인의 지도아래, 집을 뜯은 목재들을 이용해서 엉성하게나마 수레와 마차들을 만들었다. 물론 그것을 끌 짐승들은 따로 없었기 때문에, 소환한 몬스터들을 이용해서 마차를 끌게 만들었다. 총 네 대의 마차라서, 엘프들과 희연 일행이 탄 선두 마차는 원기가 끌기로 했다. 그녀들은 몸둘바를 몰라했지만, 신성력의 회복을 위해서라도 그들이 편히 가는 것이 필요했다.
마차 네대분의 성역을 유지하면서 길을 가는 것은 그리 쉽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간장과 여보? 그리고 정체모를 궁사 하나? 그거 재밌군.”
전쟁의 신 티르를 따르는 에인페리어 로나스는 재미있다는 듯 미소를 지었다.
“예. 다크엘프들이 그들을 놓쳤다고 합니다. 이대로 가면, 굴베이그 왕국에 합류해서, 그들과 계약을 맺게 될 가능성이 크다고 합니다.”
“일행의 규모는?”
“약 열명의 엘프들과 세 명의 에인페리어, 그리고 추가로 몇명 이라고 합니다. 엘프 숲에서 나온 이들은 도합 스물이 되지 않으며, 굴베이그 왕국측에서 눈에 띄는 전력 이동은 없었습니다.”
“좋아. 내 로나스 기사단의 위용을 보여주도록 하자.”
“천여명의 다크 엘프 레인저들이 동원되어 추적에 실패했다고 합니다만, 괜찮겠습니까?”
로나스는 보고서를 잠시 검토해 보고는 부관에게 던졌다.
“어차피 성역 밖에서 싸울 거라면, 인원은 한정되어 있다. 그리고 우리 기사들이 고작 엘프 찌끄래기 들과 비교가 된다고 생각하나?”
“그건 아닙니다. 도망치는 것과 숨는 것밖에 모르는 반 신족의 떨거지들과 백전의 용사들인 우리 기사단과는 비교가 될 수 없습니다.”
“그래. 이 간장이라는 놈은 멍청한 엘프 에인페리어도 제대로 당하지 못했다고 하는군. 여보라는 계집은 별 볼일 없었고 말이야. 멍청한 놈들이 방심하다가 화살에 맞지만 않았어도 이런 꼴은 안당했을 거다. 이런 놈들 상대라면, 우리 기사단이면 과분하고도 남지.”
백전연마의 학살자, 로나스는 의기양양한 미소를 지었다. 그가 직접 죽여온 숫자만 다섯자리 숫자가 넘어가고, 죽었다 살아난 숫자가 두자리 숫자를 넘어가는 유명한 에인페리어였다.
그리고 그의 기사단 역시, 잔인하기로 이름높은 최악의 기사단 중 하나로 유명했다. 살육귀 로나스와 그의 백에 달하는 분신으로 알려진 것이 로나스 기사단이었다.
그가 다크 엘프들을 우습게 보는 데는 그런 경력과 유명세가 있기 때문이기도 했다.
“오랜만에 좀 썰어보겠군. 짐승으로 변하는 에인페리어와 엘프들이라. 재미있겠는걸. 즉시 출진 준비를 서둘러라.”
그의 잔혹함과 살기는 티르에 대한 신앙심의 발현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는 존재하는 것 만으로 2등급의 성역을 반경 백미터 내에 발현시키는 상급 에인페리어였다.
그가 가진 검은 공간도 가른다고 알려진 참공검이었다. 공간을 가르는 그의 검은 어떤 방어구나 적도 갈라버릴 수 있다고 알려진 강력한 검이었다.
다만, 동급의 신기를 가지면 막을 수 있기 때문에 발뭉이나 그람(엑스칼리버)같은 최강의 무구로 꼽히지 못할 뿐, 그 유용도는 최고 수준으로 유명했다.
그리고 그의 갑옷은 모든 날아오는 무기를 막아주는 것으로 유명한 신기 ‘땅의 가호’였다. 화살은 물론이고 투석차에서 날아오는 거대한 바위에도 전혀 손상을 입지않는 병기였다.
그 외에도 그의 기사단이 가진 방패와 검은 신관들의 축복을 받은 무기들이었다. 전쟁의 신 티르를 섬기는 신관들이자 학살자, 그들이 동시에 티르의 성기사들이기도 했다.
“놈들은 도보로 이동하고 있다. 충분히 잡을 수 있다. 한 놈도 놓치지 말고 잔인하게 죽여버리는거다! 가자!”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