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화
“찾았다! 놈들이다!”
로나스는 힘있게 외치며 말을 몰기 시작했다. 원기 일행이 난민들과 함께 움직이느라 예상보다 늦어진 덕분에 굴베이그 왕국쪽부터 거슬러 찾아온 것이었다.
그가 힘있게 말을 모는 순간, 무서운 속도로 화살이 날아와서 그의 왼쪽 눈 앞에서 튕겨나갔다. 미처 볼 틈도 없이 투구의 왼쪽 눈을 노리고 날아온 화살은 그를 놀라게 만들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모두들 방패를 들어라! 얼굴을 가리고 길만 따라 돌격하는거다!”
그렇게 외치는 순간, 또 한발의 화살이 이번에는 목 부분에 와서 튕겨나갔다. 그는 이번엔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자신을 향해 날아오는 화살 따위는 아무 문제가 되지 않았다.
곧이어 무시무시한 기세의 화살이 다른 기사들을 노렸지만, 방패로 주요 부분을 가리고 아래만 보고 말을 달리는 그들을 잡을 수는 없었다.
신기에는 상성이 존재했다. 로나스는 상대가 신기를 가지고 있다고 확신했다. 이정도로 강력하고 이정도로 정확한 화살이 있을 리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런 신기라고 해도, 모든 날아오는 무기로부터 보호해주는 자신의 신갑에는 통하지 않았다. 상성이 최악인 것이다.
‘곧, 말을 노리겠군.’
그는 상대의 화살이 날아오는 것을 보는 즉시 검을 휘둘렀다. 그리고 그의 검에서 날아간 검기는 화살을 잘라버렸다. 아무리 그가 뛰어나도 무시무시한 기세로 날아오는 화살을 보고 맞출 수는 없다. 하지만 상대가 노릴 곳은 오직 말의 다리라고 확신했기 때문에 예측해서 잘라 버릴 수 있었다.
참공검에서 발해지는 검기가 미치는 범위는 15미터 가량, 실제로는 보이는 1미터30의 검에 덧붙여서 약 15미터짜리 보이지 않는 검날을 휘두르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것도 무엇이든 자르는 검날이었다. 그는 지금까지 이것으로 무수한 생명을 앗아왔다.
‘응? 빗나갔나? 신기 주제에?’
그가 의아하게 생각한 것은 화살이 조금은 엉뚱하게 지면에 꽂혔기 때문이었다. 다리, 혹은 말의 눈을 노릴거라고 생각했기에 화살을 도중에 쳐낼 수 없었다.
그리고 다음 순간, 화살이 폭발했다.
‘젠장, 이게 노림수인가. 폭발하는 화살까지 쏘다니 엄청난 신기로군.’
말의 배 부분에서 폭발한 탓에 말이 하늘로 떠올랐다가 무너지듯 땅에 떨어졌다. 그는 재빨리 몸을 굴러서 무사할 수 있었지만, 돌격 진형이 흐트러지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상대는 고작 엘프 궁수 십여명, 그리고 간장과 여보, 신궁을 든 저격수. 서두를 필요는 없지.’
“모두 말에서 내린다! 도보로 접근하라!”
아직 죽지는 않았지만, 죽은 것이나 다름없는 그의 애마를 생각하니 짜증이 났다. 더 이상 말을 잃을 수는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는 앞으로 나섰다. 화살이 또 하나 지면에 박히고, 이번엔 그 화살을 향해서 거대한 불덩이가 날아왔다.
‘마법? 정령술? 위력은 어떻게 되지?’
로나스는 신중하게 방어 자세를 취했고, 기사들 역시 방어자세를 취했다. 그리고 불덩어리가 폭발했지만, 그는 별 영향을 받지 않았다. 그리고 다른 기사들 역시 함성을 지르며 달리기 시작했다.
타격이 없진 않았지만, 그들 역시 티르의 신성력으로 보호받고 있기 때문에 전투에 지장을 받지는 않았다. 그리고 그들은 약한 모습을 보이면 진다는 것을 잘 알고 있는 정예들이었기 때문이었다.
로나스는 미소를 지으며 앞으로 나섰다. 전장의 흥분을 맛볼 차례였다.
“간장과 여보인가?”
그들을 향해서 뛰어 나오는 인원은 고작 둘, 하나는 여성 엘프, 하나는 엘프의 얼굴을 한 오우거였다. 여보라는 여성 엘프는 몸은 좀 날래지만, 별볼일 없다고 했다. 그리고 간장이라는 엘프의 얼굴을 한 오우거는 호랑이와 결합해서 반수가 되는 조금은 쓸만한 에인페리어라고 들었다.
그는 간장이 사정거리에 들어오는 순간, 간장을 향해서 참공검을 휘둘렀다. 위협이 되는 놈은 죽여두고 나머지를 희롱하듯 죽이는게 그의 전투 스타일이자, 즐거움이었다.
그 순간, 여보가 간장에게 무언가 알 수 없는 말로 외치고, 간장은 몸을 구르듯 피했다. 간장이 가진 검 한자루가 참공검에 두쪽이 났지만, 별 부상 없이 피한 것을 보자 로나스는 여보에 대한 판단을 조금 수정했다.
‘내 검의 간격을 본 건가. 조금은 싸울 줄 아는 놈, 아니 년이군.’
“엎드려! 아니 굴러!”
희연의 외침에, 원기는 망설임없이 바닥으로 쓰러지듯 굴렀다. 그리고 그의 등 뒤로 바람과 비슷한 것이 스쳐지나가고, 오른 손에 들고 있던 클레이모어가 반쪽이 나서 바닥에 떨어졌다.
“기사들하고 붙어! 저놈은 내가 맡을께. 기사들하고 떨어지지 말고 싸워!”
희연은 그렇게 외치며, 상대의 에인페리어, 학살자 로나스를 향해 몸을 날렸다. 원기는 그녀의 판단을 믿고 역시 기사들을 향해서 한자루 남은 크레이모어를 양손으로 들고 힘껏 휘둘렀다.
‘어라?’
그가 힘껏 휘두른 크레이모어에 엄청난 무게가 실렸다. 굉음과 함께 기사들의 몸통이 걸린 것이었다. 금속이 파열되는 소리와 함께 비명 소리가 함께 터져나왔다.
원기로서도 이런 경험은 처음이었다.
그가 크레이모어를 휘두른 상대는 희연과 다크엘프 레인저들 뿐.
그들을 향해 휘두르면 대부분 허공을 가르거나, 검 끄트머리에 일부가 스치는 정도였다. 물론 스치는 것만으로도 타격을 입힐 수 있었지만, 손에 느껴지는 감촉은 그다지 없었다.
하지만, 이번 일격은 달랐다. 혐오스럽고 소름이 끼치는 동시에 왠지 통쾌한 느낌이 들었다.
“죽고 싶은 놈들은 다 덤벼라!”
테라 피어를 발동시키면서 원기는 힘있게 외쳤다.
“안오냐? 그럼 내가 간다!”
외침소리와 함께, 원기는 호기있게 적진으로 뛰어들었다. 세 번의 거대한 횡베기에 8명의 기사가 목숨을 잃었다. 그리고 크레이모어가 부러지고, 남은 반토막도 휘어 버렸다.
“놈은 무기가 없다! 지금 죽여 버려라!”
“은호! 합체다!”
빈손이 된 원기가 은호를 불러서 합체했다. 그 순간, 가뜩이나 거대한 원기의 상반신이 부풀어오르면서 위압적인 반인반수로 변했다.
그 순간 적이 휘두른 모닝 스타가 그의 머리를 향해 날아왔다. 원기는 그것을 보고 머리를 살짝 피해서 어깨로 받았다.
어깨 장갑판에서 금속과 금속이 부딛치는 격타음이 들렸지만 그저 둔한 통증, 아니 약간의 압박감이 느껴졌을 뿐이었다.
‘백골 전갈이 찝는 게 차라리 더 아프, 아니 시원하겠다.’
원기는 여유를 찾았다. 그리고 거대한 손아귀로 적을 할퀴 듯이 휘두르자, 상대방의 갑옷과 살점이 찢겨나갔다.
원기는 묘한 고양감에 사로잡혔다. 다크엘프 레인저들에게 둘러싸여 미친듯이 두들겨 맞다가 죽던 때와는 완전히 달랐다.
다크엘프 레인저들은 힘은 약했지만, 원기보다 월등히 빨랐다. 그들은 갑옷의 틈에 예리한 정글도를 박아 넣었고, 갑옷이 찢겨나간 부분을 노려서 제 2, 제 3의 공격을 박아 넣었다.
발버둥치듯이 싸워서 그들의 일부를 죽이긴 죽였지만, 마치 늪에 빠져서 죽어가듯이 허무하게 발버둥을 치면서 죽어간다는 느낌이 강했다. 그것은 너무나도 끔찍한 악몽이었다.
그가 무기를 휘두르면, 상대는 가볍게 피하거나, 아니면 거목을 이용해서 피했기 때문에, 마치 거미에게 붙들려 죽는 벌레처럼 손발이 묶여 죽어가는 느낌이었다.
그런데, 이번엔 달랐다.
상대가 자신보다 느렸다. 이제까지 싸운 상대들 가운데 원기보다 느린 상대는 아무도 없었다.
원기가 휘두르는데로 다 맞아주는 상대는 없었다. 상대는 제법 튼튼한 중무장을 했지만, 원기가 두른 장갑에 비하면 종잇장이나 마찬가지였고, 원기의 힘캐릭터의 무지막지한 힘 앞에는 알루미늄 깡통만도 못했다.
북X신권에 나오는 권왕 라X우처럼 압도적인 힘으로 적들을 유린하는 그런 상황이 벌어진 것이었다. 은호와 합체하니, 그런 느낌은 더 강해졌다.
‘이 놈들이 정말로 그렇게 강한 건가? 다크엘프 레인저와 비교도 안될 정도로?’
원기는 의아함을 감추지 못했다. 전쟁의 신 티르의 기사단이 무섭다는 소문은 난민들을 통해서 귀가 따가울만큼 들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몇가지 점을 간과한 것이 있었다.
숲속에서의 다크엘프와, 말에서 내린 기사들과는 비교가 될 수 없다는 점이었다.
그리고 티르와 토르의 무투파 아스 신족과 오딘과 프레이를 비롯한 지략파 아스 신족은 사이가 좋지 않다는 사실이었다. 원래 반 신족 출신인 프레이의 성향처럼 다크엘프들은 쓸데없이 피를 보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들이 활약할 만한 무대가 별로 없었다. 적어도 그들의 암약은 대외적으로 드러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엘프는 인간에 비해 양적으로 떨어지지만, 질적으로 월등한 종족이었다. 원래는 비교 대상조차 아니라고 할 수 있었다.
‘희연이는 어떻게 되었지?’
원기는 잠시 눈을 돌려, 희연이 싸우는 곳을 향했다.
“여보야, 네가 내 상대냐?”
로나스는 쓴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잠깐의 교전으로 확신을 가질 수 있었다. 간장은 자신의 상대가 될 수 없었다. 몇번 썰어주면 금새 몇토막이 날 터였다. 화살 쏘는 에인페리어도 불꽃을 쏜 마법사도 자신에게는 아무 위협이 되지 않았다. 잠깐 멈춰서 말을 거는 틈에도 화살이 날아왔지만, 그냥 튕겨 나갔다.
간장이라는 둔한 거인과 실랑이를 벌이는 기사들의 고함소리가 들렸지만, 여보라는 계집은 그리 만만치는 않았다.
어차피 그의 검을 마음껏 휘두르려면, 난전을 피하는게 좋았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그와 여보만 좀 떨어진 곳에 자리잡게 되었다.
“누가 네 여보야?”
“네가 여보라고 하지 않았나. 그러니 여보라고 불러주는 것이다.”
“아, 그렇군. 그럼 내 동료는 뭐라고 하지?”
“간장이다.”
그 순간, 희연은 풋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관운장과 여포가 간장과 여보가 되었다는 사실이 황당했기 때문이었다. 공명선생이 공병선생이 된 전례가 있어서 고치고 싶어도 잘 고쳐지지 않는다는 것은 그녀로서도 쉽게 알 수 있었다.
“네가 로나스라고 했나? 그 무기 정말 멋지군.”
“그래. 네 년을 곧 잘게 썰어줄 무기다. 여보야. 각오해라.”
희연은 피식 웃은다음, 양 허리에 찬 검을 풀었다. 바닥에 장검 두자루가 떨어졌다. 그리고 등에 맨 두자루의 검도 풀었다.
남은 것은 왼쪽 허리에 찬 장검 한자루였다.
그리고 한 걸음 앞으로 조심스럽게 그리고 신속하게 움직였다. 그 순간 노린 것처럼 로나스가 참공검을 휘둘렀다. 희연은 그 보이지 않는 검의 궤적을 읽고 허리를 숙여 재빨리 앞으로 한걸음을 내딛었다.
‘빨라. 하지만 그걸론 힘들거다.’
참공검은 막을 수 없는 검격이고, 참격 범위가 15미터에 달했다. 제법 몸놀림이 빠른 이들이 피해가며 접근하려고 했지만 성공한 예가 없었다. 적어도 지금까지는.
그가 다시 검을 휘두르자, 희연의 모습이 순식간에 사라졋다.
‘이럴수가!’
그는 황급히 뒤로 돌아서면서 검을 휘둘렀다. 그리고 그 순간, 상대가 한걸음 물러서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어떻게 된거지?’
그가 당혹감에 빠져 있을 때, 희연은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스킬, 그림자 이동이 쓸모있다는 사실을 확인했기 때문이었다. 암살자 직업 특유의 스킬이었다.
로나스는 침을 살짝 삼켰다. 상대방은 생각보다 빨랐다. 그리고 약 3미터의 거리. 서투르게 휘두르면, 상대방에게 역습을 당할 수 있었다.
희연은 숨을 고른다음, 도의 손잡이에 손을 올렸다.
그녀의 주특기는 지금까지 원기를 상대로는 쓸 수 없었던 기술이었다. 바로 목찌르기.
2미터에 달하는 덩치를 상대로 그녀가 단련해온 목찌르기를 사용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로나스가 상대라면, 충분히 가능했다.
‘설마 검격까지 막지는 않겠지.’
화살을 막는 묘한 보호막을 떠올리면, 불안해 지는 것도 사실이었지만, 그녀로서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그녀는 기합성을 내지르면서, 검을 뽑아서 상대의 목을 찔러 나갔다.
“연하야. 지금 어떻게 된거냐?”
수한의 질문에 연하는 잠깐 생각하고는 말했다.
“지금까지 본적도 없는 160키로의 광속구에 상대 타자는 손도 못내밀고 삼진아웃당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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