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화
희연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상대의 기묘한 보호막은 소문대로 날아오는 병기에만 통용되는 듯 싶었다. 참공검, 15미터에 달하는 거리의 말도 안되는 무기는 그다지 두렵지 않았다.
15미터라고 하지만, 멀리 있으면 피하기 어렵지 않았다. 정말 무서운 것은 5-6미터 정도의 거리가 될 터였다.
그런데, 5미터 남짓한 공격거리를 가진 공격에 그녀는 이미 익숙해져 있었다. 바로 원기의 쌍검술이었다.
거대한 쌍검과 큰 덩치, 긴 팔까지 유효 사거리는 5미터를 넘었다. 물론 공격의 날카로움은 로나스가 약간 위였지만, 대신 원기의 공격은 쌍검이었다.
딜레이가 거의 없이 그녀의 움직임을 읽고 날아오는 원기의 공격에 비하면, 검 하나에만 집중해면 되는 로나스의 공격을 피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예상대로인가.’
로나스의 시체는 속옷만 남기고 모든 아이템이 사라져버렸다. 속옷을 입은 건장한 남자의 시체만이 남아있었다.
신기들은 주인이 죽으면 신기를 만든 신의 곁으로 돌아가게 되어 있었다. 설령 손에 넣는다 하더라도, 티르를 믿는 자들만이 티르의 신기를 사용할 수 있기 때문에 무용한 물건이었다.
‘부러지지 않는 무기라면 정말 좋은데.’
그녀는 살짝 아쉬움을 느꼈다. 일본도는 실제로는 전쟁용으로 어울리는 무기가 아니었다. 쉽게 부러지고, 잘 망가졌다. 장교용 부무장, 그게 실제 일본도의 실체였다.
권총처럼 전쟁에선 쓸모가 없지만, 소지하기 쉬운 무기.
서부영화에서도 주무기가 소총이 아니라, 권총인것은 그저 술집에 차고 들어가기 편하기 때문인 것이다.
그녀의 경우 이도류나 쌍검술을 익히지 않았으면서, 5자루나 검을 차고 다니는 것도 결국은 전투 중에 부러져 나갈 것을 각오한 때문이었다.
그녀는 자신이 풀어놓은 두 자루의 야태도와 태도를 주우러 가면서, 원기의 모습을 보았다.
‘저건 탱커가 아니라, 탱크구나.’
게임에서 몸빵해주는 캐릭터를 탱커라고 알고 있는 그녀였다. 그리고 그런 탱커의 역할을 원기는 지금까지 충실하고 완벽하게 해줬다. 하지만, 오늘의 전투에선 말 그대로 탱크였다.
적의 공격을 가볍게 씹어버리고, 적을 짓밟아버리는 공포였다.
합체는 풀렸지만, 그가 쓰러뜨린 기사들의 무기중 철퇴와 도끼를 들고는 마구잡이로 휘둘렀다. 적들은 공포에 질려 도망치기 시작했다. 그리고 도망치는 그들의 등에 연하가 날린 화살이 날아가서 꽂혔다.
정면이었다면 가슴의 호심경이 화살을 막아줄 터였지만, 등부분의 방어력은 그렇게까지 높지 않았다. 엘프들의 화살도 등부분에는 효과적이었다.
등 부분은 어깨의 움직임을 살리기 위해 노출된 부분이 많았다.
‘말만 타면 어떻게 도망칠 수 있다.’
이런 부질없는 희망이 그들의 전의를 빼앗았고, 변변한 저항도 못하고 죽음을 맞도록 만들고 있었다.
‘난 저렇게는 될 수 없어.’
희연은 씁쓸함을 느꼈다. 그녀가 동경하던 전사의 모습이 그녀의 눈 앞에 펼쳐지고 있었다.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고통받는 것을 개의치 않으며, 감정에 휩쓸리지 않고 동료를 위해 헌신하는 그런 전사의 모습이 그녀의 눈앞에 존재하고 있었다.
그녀 자신은 되고 싶어도 될 수 없는 존재.
인간은 모두가 맹수를 마음속에 품고 있다.
개가 사람을 물면, 개를 죽여버린다.
왜? 맹수가 인간을 사냥감으로 인식하는 것을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모든 인간 안에는 길들여져있지만, 흉폭한 맹수가 존재한다. 희연의 맹수는 이미 고삐를 풀고 세상에 나왔다.
검을 들고, 적을 죽이는 것에서 오는 즐거움을 그녀는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반면 원기는 그렇지 않았다. 우월감이 아닌, 의무감으로 동료를 지키기 위해 냉정함을 잃지않고 성실하게 싸워나가고 있었다.
스포츠는 경쟁이다. 말로는 자신과 싸운다고 말하지만, 남보다 뛰어난 자신을 발견하는 즐거움에 중독되지 않고는 그렇게 필사적으로 싸워 나갈 수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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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 저런 강력한 녀석을 단숨에...’
원기는 희연의 모습을 보면서 전율을 느꼈다. 수많은 다구리의 끝에, 그는 상대의 강함을 측정할 수 있는 감을 손에 넣었다.
자신보다 명백히 약한 기사들의 존재는 지금까지 느껴보지 못한 것이어서, 정확히 파악할 수 없었지만 상대해보자 곧 어떤 느낌인지 알 수 있었다. 그에게 있어서 기사들은 ‘전혀 위협이 되지않는’ 무해한 존재라는 느낌이었다.
그리고 로나스의 강함을 떠올리자 그는 전율할 수 밖에 없었다. 도저히 이길 수 없는 상대라는 느낌을 받았기 때문이었다.
희연을 상대할 때 그가 느끼는 것은 굉장한 위압감과 조그마한 승산이었다. 하지만 로나스에게서는 조금의 희망도 느껴지지 않았다.
무의미한 저항이 될 듯한 느낌이 강했다.
그런 그를 너무나도 가볍게 꺾은 것이었다.
‘그녀만 믿으면 되는건가.’
원기는 곧 마음을 비웠다. 희연의 지시는 정확했다. 수한의 작전은 전장을 크게 보고 짜는 전략적인 측면이 강한 것이라면, 희연의 지시는 코앞에서 벌어지는, 피부로 느껴지는 전투 속에서 내려지는 정확한 판단에 의한 전술적인 것이었다.
그리고 두 사람을 믿고 그 판단에 따라서 싸우는 것은 사실 기분 좋았다. 망설임 없이 머리를 비우고 눈앞의 적에만 집중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한 가지 확신을 얻었다.
지금까지는 다크엘프들을 상대하다보니, 게임 캐릭터의 강함을 알 수 없었다. 하지만 기사들을 상대해보고 확신할 수 있었다.
게임 캐릭터들은 강하다. 애니에 나오는 닌자급인 다크엘프 레인저들이나 극강의 에인페리어들과 비교하기는 어렵지만, 일반 인간들을 상대로는 초보자라도 충분히 강하다고 할 수 있었다.
‘계약자를 늘릴 필요성이 있어. 특히 신뢰할 수 있는 사람을 놀릴 필요는 없지.’
원기는 자신의 누나를 생각했다. 가족을 끌어들이는 것을 경계했지만, 이런 상황이라면 적극적으로 끌어들이는 편이 나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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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전히 무쌍이네. 무쌍이야.”
수한은 원기의 활약을 보면서 허탈한 표정으로 말했다. 하지만 그의 눈빛은 기대감으로 가득차 있었다.
수년 전 수십개의 씨리즈를 토해내다가 식상함 때문에 사라진 게임 시리즈 중 XX무쌍이라는 것들이 있었다.
일반 병사들이 허수아비라서 전장을 쓸어버리고 다니는 게임이었다. 리얼리티는 떨어지지만, 그가 아주 즐겨하던 게임 중 하나였다.
“이쪽 세계의 전투라는게 어떻게 진행되는지 알 것 같군.”
신기를 휘두르는 것만으로도 상식밖인데, 그 강함을 인정받아서 몇 차례 죽음을 겪고도 전장에 다시 투입된 용맹함과 천재성, 풍부한 경험을 겸비한 에인페리아들과 일반병들의 격차는 클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원기와 희연, 연하의 세 명은 그런 에인페리아들과 대등하게 싸울 수 있을 정도의 재능을 가지고 있었다.
지금까지 상대한 적이 다크엘프 레인저뿐이라, 수한으로서는 이 세상의 전투를 이미지하기가 어려웠다.
‘버프빨을 조금 받지만, 평범한 인간들과 급이 다른 몇몇 괴물들의 전장이군. 이제 좀 알 것 같다.’
만렙 캐릭터를 여럿 가지고 있지만, 수한은 원기나 희연, 연하처럼 싸울 수 없다는 것은 잘 알고 있었다.
‘역시 게임 캐릭터들을 좀 더 활용하는게 좋을 것 같군. 대충 어떤 식으로 싸워야 할지는 감이 잡혔어.’
그는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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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하는 별 생각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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