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화
짧으면 일주일, 길면 그 이상의 연속 접속.
원기가 사용하는 컴퓨터 단말은 헤드 셋으로 접속하는 방식이었다. 컴퓨터에서 가공된 정보를 뇌의 말단 신경에 간접적인 방식으로 전달하는 방식이었다.
따라서, 가상현실이라고 하지만, 컴퓨터가 꿈에 간섭하는 방식으로 접속하는 것이라고 해도 과언은 아니었다.
그리고 현재 원기를 비롯해서 게임을 통해 미드가르드에 간 사람들의 상태는 코마 상태라고 봐야 했다. 호흡및 심장박동, 기타 생명유지 활동은 이루어지고 있지만, 그 외에는 일종의 뇌사 상태나 다름이 없었다.
정상적으로 게임을 하고 있을때는 뇌파의 움직임이 있지만, 미드가르드로 떠나는 순간, 영혼이 빨려나간 것처럼 일종의 뇌사 상태에 이르는 것이었다.
조제성과 장수한은 이것에 대해서 많은 의견을 나누었고, 결론은 영혼이 게임의 데이터를 토대로, 미드가르드에 육체를 구성한다는 가설을 세웠다.
문제는 신진대사 활동이었다.
침대에 누워서 헤드셋만 썼기 때문에, 대소변을 비롯해 식사 문제가 생기는 것이었다. 하루만 방치해도 방광이 터질 수 있는 상황이었다. 영양가는 링거 주사로 해결한다고 해도, 소변을 위해 매번 삽관을 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하지만, 생각보다 간단한 해결책이 있었다.
바로 발키리의 활용이었다.
가사상태에 빠진 육체에 발키리는 저항없이 들어갈 수 있었고, 그들은 필요한 대사 활동을 할 수 있었다.
그리고, 컴퓨터가 연결된 헤드셋은 미드가르드에 들어간 후에는 떼어도 상관이 없었다. 헤드셋에 연결될 필요가 있는 것은 오직 미드가르드에서 게임 세계로 돌아올 때 뿐이었다.
게임 캐릭터로 현실 세계를 방문할 때에도 육체는 여전히 가사상태 그대로였다.
따라서 게임 세계에서 미드가르드에 가는 것을 잠정적으로 ‘업로드’, 미드가르드에서 돌아오는 것을 ‘다운로드’라고 불렀다.
리디아의 일과에는 가사상태가 된 이들의 육체를 돌보는 것이 포함되어 있었다.
발키리들의 판단 능력은 지나치게 기계적이라서, 인체를 돌보는데에는 좀 문제가 있었다.
건강 관리를 포함해서 리디아는 계약자들의 상태를 확인하고, 적절한 식사와 위생 관리, 건강관리 등을 해주어야 했다.
“그럼, 여보. 다녀올께.”
조제성은 유혜서에게 키스를 하며 포옹을 했다. 잠깐의 이별도 아쉬운 듯 그녀를 꼬옥 끌어안았고, 조은혜는 창피하다며 살짝 야유했다.
“나이 생각 좀 해요. 제발. 그리고 오는 길에 햄버거 좀 사다줘요. 그리고 어제 깜빡한 잡지들 좀 챙겨오고요. 엄마 부탁은 절대 안잊으면서, 제가 부탁한 건 맨날 까먹으니.”
“알았다. 당신은 뭔가 필요한 거 없어?”
“충분해요. 아니 차고 넘쳐요.”
유혜서는 미소지으며 말했다. 한번이라도 부탁한 적이 있는 건, 절대 떨어지는 일 없이 챙겨다 놓는 세심하다 못해 강박적인 남편이었다. 그런 그를 조금은 안스럽게 여기면서도 사랑스럽게 여기는 그녀였다.
조제성은 아쉬움을 숨기지 못하며, 거울을 넘어섰다. 탁한 서울의 공기가 그를 맞았다. 신전의 영향력으로 생기가 넘치기는 했지만, 성역의 등급 자체가 떨어지는터라, 기운이 빠지는 느낌은 여전했다.
그는 회사로 향하면서, 체육관에 들렸다.
아침 이시간은 리디아가 모두의 육체를 돌보는 시간이기도 했다.
그리고 체육관에서 그가 본 것은 원기의 몸을 안고 사교 댄스를 추는 리디아의 모습이었다. 지시를 완벽하게 수행하는 발키리인 만큼, 원기의(?) 춤은 아주 고상하고 유려했다.
춤이 끝날 때까지 조용히 감상하던 그는 춤이 끝나자 박수를 쳤다. 그리고 누가 보고 있다는 것을 눈치챈 리디아는 얼굴을 붉혔다.
“이건 어디까지나 전신 운동으로 하는 거에요. 온 몸의 근육을 사용하면서 신진대사를 좋게하기 때문에...”
“그렇군요. 한폭의 그림같이 멋진 모습이었습니다. 그건 그렇고...”
조제성은 주위를 살펴 보았다. 헬스용 자전거를 타고 있는 수한의 모습과 런닝머신을 달리는 연하의 모습이 보였다.
그리고 체육관 한쪽 구석에서 무릎꿇고 손들고 있는 한희연의 모습도 보였다.
“희연양의 몸은 대체...?”
“스트레칭이에요! 스트레칭을 하고 있어요.”
“그렇군요. 리디아전하께서 잘 관리해 주고 계시니 다행입니다. 그럼 저는 아침 회의가 있군요. 실례하겠습니다.”
조제성은 그렇게 인사를 하고는 미소를 지으며 자리를 떠났다. 그는 리디아의 인간적인 모습을 발견한 것이 마음에 들었다. 지나치게 절제되고 조용한 모습은 왠지 인간미가 없어서 걱정스럽기도 했기 때문이었다.
그는 리디아 황녀가 미드가르드와 현실을 이어주는 중요한 고리가 되어줄 것이라고 믿고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그녀가 원기에 대해서 연애 감정이라고 말하기는 좀 어려울지 모르지만, 그 씨앗을 품고 있다는 것이 만족스러웠다.
‘문제는 희연양이로군.’
조제성은 살짝 미간을 찌푸렸다. 그가 리디아를 응원한다고 해서, 여신의 뜻을 거스를 수 있다는 것은 아니었다.
‘수한군과 좀 더 이야기 해볼 필요가 있겠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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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하야. 너, 뭐 보고 있는거니.”
마부석에 앉아서 낄낄대며 태블릿을 보는 연하에게 희연이 물었다. 그녀의 공부 관리는 희연이 맡은 상태였다.
“하라고 한 곳까지 다 끝냈어. 그래서 그래.”
“정말? 확인해도 돼?”
“응! 확인해 봐도 돼.”
희연은 믿기지 않는다는 눈빛을 감추지 못하고, 연하의 수학을 점검했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중학교 수학도 제대로 다 못풀던 그녀가 고등학교 1년 과정을 다 풀었다고는 믿기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어라? 어떻게 된거지?”
의아함을 감추지 못하는 희연과 의기양양한 연하를 보면서 수한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역시. 그렇군. 게임 캐릭터의 지능이 학습 능력에도 영향을 미치는게 분명해.”
“그런가요?”
“원래 자기가 머리좋다고 믿는 사람은 잘 못느끼겠지만, 확실히 지능 수치에 의해서 머리 회전이 좀 나아지기는 했어.”
“어느 정도나 좋아진 건가요? 정말 두배, 세배로 좋아진 건가요?”
원기도 놀라서 질문했다. 하지만 수한의 표정은 그리 밝지는 않았다.
“음, 하드웨어 스펙은 좋아졌지만, 소프트웨어가 그대로니까. 별로 큰 차이는 없다고 봐야지. 연하처럼 발전의 여지가 많은 경우엔 도움이 될거야. 안그랬으면, 연하가 미드가르드어를 이렇게 통달할 수 있었겠냐.”
“확실히 그렇긴 하지요. 역시 그릇이 비어있어야 잘 차는 건가.”
희연과 원기는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했다.
“지금 나 칭찬하는거야? 왠지 아닌 것 같기도 하고.”
“역시 두배로 좋아지는 건 아니네요. 소프트웨어가 더 중요한게 맞아요.”
희연은 조금은 실망한 투로 말했고, 수한과 원기는 연하의 눈초리를 피해서 먼산을 바라보았다.
원기는 자신의 비약적인 발전의 원인을 조금은 알 수 있었다. 단련한 적 없으니 쓸모없는 버릇이 없었다. 몸을 사리는 법을 배운 적이 없으니, 몸을 사리지 않고 싸우는 법을 배울 수 있었다.
‘앞으로가 더 어려울지도 모르지.’
일행들은 순조롭게 굴베이그를 향해 나아갈 수 있었다. 티르 왕국 외곽의 발키리가 활동 가능한 지역에서 모아들인 정보에 따르면, 티르 왕국측은 굴베이그와 원기 일행의 합류를 두고 보기로 했다.
황폐한 지역에 대규모 병력을 투입할 수 없고, 대규모 병력 투입없이는 에인페리어가 세명이나 있는 일행을 공략하기 어렵다는 결론이 내려진 것이었다.
그리고 무적의 거인 ‘간장’과 광속의 검사 ‘여보’, 뇌전의 궁사에 대한 소문이 티르 왕국과 굴베이그 왕국에 퍼져 나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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