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7화
“야! 너! 거기 서봐.”
한희연은 시비조로 신근호를 불러세웠다. 그가 리더라는 것은 분명했는데, 한희연 일행을 보고는 피해가는 모습이 아무래도 걸렸기 때문이었다.
원기를 건드리지 않고, 지갑만 주고 돌아가는 모습도 황당했지만 희연 일행을 피해가는 것은 더욱 더 미심쩍었다.
그녀의 과격하고 고압적 말투에 반응한 것은 신근호가 아닌 그 주위의 동료들이었다.
“뭐야? 이 계집이 정신이 나갔나?”
“그만둬. 혹시 저 부르신 겁니까?”
신근호는 잠시 망설이다가, 그녀와 눈이 마주친 순간 마음을 정했다. 전부터 눈치보는게 특기이긴 했지만, 최근에는 한층 예리해져 있었다. 그리고 눈앞의 고압적 소녀를 볼 때 느껴지는 기분은 결코 심상치 않았다.
“그래. 너 대체 어떻게 된 놈이야?”
“어떻게 되었다니요?”
“너보다 나이 어린 계집이 이렇게 반말조로 말하는데 기분 안나빠?”
신근호는 소녀의 말에 정곡을 찔린 듯이 움찔했다.
“하하. 예쁘면 다 용서되요. 전 예쁜 아가씨만 보면 비굴해진답니다.”
신근호는 그렇게 만면에 미소를 지으면서 굽신거렸다. 희연은 살짝 손을 뻗어서 곁에 둔 PVC파이프를 손에 쥐었다. 가늘고 그다지 길지않은 PVC파이프를 위협적으로 느낄만한 사람은 별로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터였다.
하지만, 신근호는 흠칫하면서 한걸음 물러섰다.
‘대체 이 남자는 어떻게 된거지?’
감이 좋아도 보통 좋은게 아니었다. 한희연을 위협적으로 보는 사람은 거의 없다고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같은 무도를 하는 사람들도 쉽게 눈치채지는 못했다.
대체로 몸가짐보다는 얼굴과 몸매에 눈이가는게 본능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조금 더 시험해 볼까?’
한희연이 그렇게 생각하면서 앞으로 한 걸음 나서려고 할때, 갑자기 파출소 순경이 뛰어들어왔다.
“야, 너희들! 아가씨들한테 대체 뭐하는 짓이야?”
“아이, 시발. 짭새떴네. 우린 아무것도 안했어요. 길을 걸어가는 것도 죈가요.”
갑자기 신근호의 태도가 변하면서 건들대기 시작했다.
“이 새끼들이! 아직도 정신 못차리고 있어. 아가씨, 아니 학생들. 이자식들이 뭔가 피해라도 준거 있어?”
순경의 말에 희연은 할 말이 없었다. 시비를 건 것은 자신이었지, 상대가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아니요. 그냥 이야기만 잠깐 나눈 것 뿐이에요.”
“학생은 아직 어려서 잘 모르나 본데, 이자식들 정말 나쁜 놈들이야. 같이 어울리지 않는게 좋아요. 야, 이새끼들아. 이쪽으로 와. 행인들한테 시비 걸면 가만 안둔다. 이 학생들 근처에도 가지마.”
순경은 신근호와 그 패거리들을 끌고 가버렸다.
“대체 왜 그런 거에요?”
리디아가 묻자, 한희연은 대답할 만한 마땅한 변명거리가 없었다.
“그보다 우리도 쇼핑이나 하자. 전자제품 중에는 리디아 공주님이 신기하게 여길만한게 많아.”
‘사장 아저씨한테 한번 조사해보라고 하는게 좋겠지?’
희연은 핸드폰으로 찍은 신근호의 사진을 조제성에게 메일로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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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냐? 저 계집애들. 말려달라고 전화하고. 혹시 범죄랑 얽혀있냐?”
순경은 신근호에게 다가가서 물었다. 신근호의 위험감지 재능은 제법 쓸모가 있었다.
심각한 사고를 치지 않는데다가, 위험한 범죄자가 있으면 경찰에 몰래 찔러주는 등, 경찰들과 협조 관계를 잘 구축한 놈이기도 했다.
조폭들은 난폭하고 생각 없이 보이지만, 그건 그들이 만든 이미지이기도 했다. 그래서, 싸울 것처럼 아니 사람을 죽일 것처럼 보이면서도 누군가가 옆에서 말려주기를 내심 바라는 상황이 많았다.
매번 누굴 패고, 죽이고 했다간 정말 견적이 안나오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신근호의 단축 다이얼 1번은 용산 파출소였다.
공권력의 효과적인 이용은 그가 자랑하는 처세술 중 하나였다. 큰 사고만 안치면, 어느정도는 좋은 관계를 이어갈 수 있었다.
“그 학생들 한번 조사해 볼까?”
“음, 아무것도 안나올 것 같아요. 위험하다는 감은 있지만, 범죄와 얽힌 느낌도 없어요. 게다가, 형님을 볼 때 조금도 동요하지 않은걸 보면, 깨끗하거나 아니면 빽이 든든하거나 일겁니다. 제가 보기엔 둘 다일 가능성도 크지요.”
“그래? 그래도 한번 조사해 보는게 나쁘진 않겠지. 그건 그렇고 예쁘장한 아이들인데 네가 그렇게 쫄았다는게 이상하다.”
“그건 좀 그렇지요? 요즘들어 왠지 감이 좋아진 건지, 강해진 건지. 눈만 봐도 꼼짝을 못하겠더군요.”
“그건 그렇고, 출동비는 어떻게 할 셈이냐?”
“물론 계산해 드려야지요. 어제 주차장에서 외제차 턴 놈들, 누군지 아세요?”
신근호는 경찰에게 뜨내기 양아치가 저지른 범죄 단서를 넘겨주었다. 익명의 제보로 라이벌을 제거하면서 공권력에 기생해서 살아가는 것이 그의 처세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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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전설.
일종의 근거없는 괴담과도 같은 것들이었다. 그리고 최근 하나가 추가되었다.
“너 도둑질하는 유령소녀 소문 들었니?”
“아니.”
“편의점에서 알바하는 사람이 우연히 유령을 봤데. 카운터로 한 여학생이 물건을 들고 계산 안하고 나가더래. 그런데, 카운터를 지키는 동료가 마치 학생이 안보이는 것처럼 지나가는걸 그냥 보고만 있었다는거야. 그래서 편의점을 나가는 학생을 잡으려고 불렀는데, 그 아이가 갑자기 들고있던 빵을 던졌데. 그래서 놀라서 빵을 받고 봤더니, 여자가 감쪽같이 사라졌다고 하더라고. 헛것을 봤나 했는데, 손 안에는 빵이 남아 있었데.”
“헤에. 어느 학교 교복인데?”
“우리 학교 교복이래. 그래서 우리학교에서 죽은 유령일거라는 소문이 퍼졌어.”
“우리학교 개교한지 몇달도 안됐는데? 죽은 사람 있었냐?”
“음..그도 그런가?”
몇몇 청소년을 통해서 퍼져나가던 소문은 내용이 뒤바뀌어서 프레이야 국제학교에 들어오려다가 못들어온 여학생이 자살했다는 내용으로 바뀌었다.
그래서 원통해서 교복을 입고 거리를 배회한다는 소문이었다.
“사장님. BEF, 생체 에너지 필드의 부작용에 대한 보고가 올라와 있습니다.”
“부작용? 어떤 형태의 부작용이지?”
“부작용이라고는 해도, 사이드 이펙트, 일종의 부가효과라고 해야 할겁니다. 일부 학생들 가운데, 특수한 능력을 발휘하는 이들이 생겨났습니다.”
“특수한 능력?”
“예. 편의점에 나타난 유령 소녀의 소문입니다만, 현재 저희가 확보해 둔 상태입니다. 소녀의 능력은 일종의 투명인간이 되는 것이었습니다.”
“투명인간? 그게 가능한가?”
“물론 물리적으로는 불가능합니다. 그녀의 경우, 한번에 한사람에 한해서 자신의 모습을 인식하지 못하게 하는 것이 가능합니다. 게다가 자신을 보고 있는 사람에게서 자신의 모습을 지우는 건 불가능합니다.”
“아, 그래서 빵을 던진건가?”
“예. 그 소문은 알고 계셨군요. 일시적으로 눈을 뗄 수 밖에 없게끔 만들고는 자신의 모습을 지우고 도망간 겁니다. 편의점 카메라와 거리에 설치된 카메라에는 그녀의 행적이 고스란히 남아있습니다.”
“어떻게 되었지?”
“지금 무서워서 떨고 있지요. 자신에게 초능력이 있다는 사실을 나름 감추려고 했던 모양입니다만, 절도 장면과 능력 사용에 대해 밝혀진 다음부터는 해부만 하지 말아달라고 애원중입니다. 안심시키려고 해도 믿어주질 않더군요.”
“만화나 영화를 너무 봤군.”
조제성은 쓴 웃음을 지었다. 물론 소녀에게 위해를 가할 생각은 없었지만, 그렇다고 이대로 세상을 멋대로 활보하게 둘 수도 없었다.
생체 에너지 필드.
이것은 조제성이 사원의 신성력을 적당히 이름붙인 것이었다.
학교와 병원(대외적으로는 미용센터) 꼭대기에 생체 에너지 필드 발생장치를 장착했다고 부하들에게 거짓으로 알린다음, 그 작용과 부작용을 조사하라고 알려 둔 상태였다.
그리고 그는 신근호라는 양아치 두목에 대한 신상 정보를 손에 든 상태였다. 공교롭게도 그의 집은 학교와 병원의 중간 지점에 자리잡고 있었다.
“부가효과란 말이지. 혹시 그걸 알아낼 방법은 없나?”
“일단, BEF에 대한 규명이 먼저입니다만, 성과가 있었습니다. BE, 우리가 말하는 생체 에너지를 측정하는 장비가 만들어질거라고 합니다. 그걸 이용하면, 좀 더 피험체를 특정하는데 도움이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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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수능력을 각성한다고요?”
원기는 황당함을 감추지 못했다.
“에인페리어가 아닌 일반인이 성역에서 특수능력을 얻게된다는 소리는 들어 본 적이 없습니다.”
원기의 말에 조제성 역시 고민에 빠졌다. 최근들어 특수 능력에 각성한 학생들이 조금씩 나오고 있었다. 다만 그 능력들은 상당히 보잘것 없는데다가 자각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학원과 병원을 철저히 감시하고 있기 때문에 미리 발견한 것에 가까웠다. 특히 정신계 능력이 전부이고, 물리적 능력은 전무에 가까웠기 때문에 환청이나 환각으로 여기는 이들이 대부분이었다.
“아마도 굴베이그님의 영역을 얻게 되면서 부터가 아닌가 싶습니다만.”
조제성의 말에 원기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여신 캐릭터로 접속을 거의 안해서 확인하지는 못했지만, 굴베이그 신전에서 신관들의 개종서약을 받을 때 무언가가 속에서부터 우러나오는 것을 느낀 것은 사실이었다.
‘여신으로서의 급이 올라간 듯한 느낌이긴 했지.’
“리디아 황녀전하께서는 어찌 생각하시는지요?”
“제가 받고 있는 은총이라면, 그다지 변화가 없습니다만 엘프만이 아닌 인간들에게 미치는 영향은 커졌다고 보여집니다.”
“그렇군요. 인간들을 신자로 받아들인 결과인 걸까요.”
“그렇다고 해도, 어째서 에인페리어가 아닌 인간들이 이능을 갖게 되었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리디아는 조심스럽게 말했지만, 약간의 불만스러움을 감추진 못했다. 그녀에게 있어서, 프레이야는 엘프들만의 여신이었기 때문이었다.
원기는 게임 캐릭터로서의 여신과는 별도로, 여신으로서의 여신이 성장했다는 사실을 떠올렸다.
“잠시만 기다리세요. 캐릭 갈아타고 올께요.”
원기는 그렇게 말하면서 컴퓨터로 향했다. 여신 캐릭터를 쓰기 위해서였다.
‘아, 이런 경우에는 갈아탄다고 해서는 안되는 거였나.’
원기는 쓴 웃음을 지었다. 어느샌가, 게임 캐릭터의 자신과 현실에서의 자신이 갖는 비중이 비슷해져 있었기 때문이었다. 아니, 여신 캐릭터가 갖는 의미는 이미 현실의 자신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커져있다고도 할 수 있었다.
책임을 져야할 존재들이 늘었다는 것은 부담스럽지만, 자신을 간절히 필요로하는 이들이 많다는 사실은 지금까지 겪어본 적이 없는, 아주 큰 기쁨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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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라, 이 게임 AI가 좋아진건가? 오늘은 게임이 잘되는데?”
전략 시뮬레이션 게임, 스타 트루퍼스를 하던 호철은 기분이 좋아졌다. 오덕, 그것도 주로 밀리터리 오덕인 그는 알피지나 FPS보다는 전략시뮬레이션 게임을 좋아했다.
하지만 타이핑이 느리기로 유명할 정도로 손재주가 없기 때문에 실시간 게임은 심각할 정도의 발컨이었다.
유닛에 대해선 잘 알고 게임도 즐기지만, 생초짜를 상대로도 연전연패해서 초보자 리그에서 놀고 있었다.
적의 개떼 초글링을 상대로 마린 부대를 싸우라고 보냈는데, 마린 부대가 교묘하게 학익진을 펼치면서 초글링들을 괴멸시키고 있었다. 보통 어택땅도 허겁지겁 찍는 그가 컨트롤을하면 마린들은 나란히 줄서서 가다가 죽게 마련이었다.
“그래. 인공지능이 이정도는 되어야지.”
실제로는 마우스를 끌어다가 클릭한 번 한 것이 고작이니, 마린들의 움직임은 비정상적인 것이었다. 하지만 그는 그것을 그저 새로 패치한 덕분이라고 믿고 있었다.
유명한 게임황제를 능가하는 마이크로 컨트롤이 이루어지고 있었지만, 그는 자각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리고 결국 전투는 제대로 병력을 생산하지 못한 탓에 묵사발로 깨졌다.
“에이. 젠장. 아무리 AI가 좋아져봐야, 상대방도 똑같으니 의미가 없네.”
그는 투덜거린 다음, 방으로 돌아가서 잠이 들었다. 그에게 일어난 엄청나지만 작은 기적을 알아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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