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9화
‘게임 캐릭터의 능력이 내 능력이 된다고? 그리고 그 힘을 이용해서 암흑가를 장악하라?’
신근호는 골똘히 생각에 잠겼다. 그리고 조제성에게 반문했다.
“무슨 말씀인지 잘 모르겠군요. 암흑가를 장악한다는 건, 죄를 저지른다는 건데 천사가 그걸 보고 있을거 아닙니까?”
“그게 뭐 어떤가? 자네가 뽑힌 건, 자네가 나쁜 짓에 재능이 있기 때문인데.”
“여신님이 그런 걸 원하신단 말입니까?”
“아, 자네가 이상하게 생각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군. 미드가르드의 신들은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그런 신들은 아냐. 사랑이나 자비를 근본으로 하는 신들이 아니지. 프레이야님은 좋은 분이긴 한데, 인간들처럼 실리적인 선택을 할 줄 아는 분이기도 하지. 적어도 법에 얽매이는 분은 아니야. 그리고 악은 악으로 대처하는 것이 좋다는 내 판단을 받아들이신 지혜로운 분이기도 하지.”
“댓가로 소원을 이뤄주신다는 겁니까? 어떤 소원이든?”
“설마. 어떤 소원이라도 이루실 수 있다면, 나같은 것이나 너같은 놈을 필요로 하시겠나? 안타깝지만 들어주실 수 있는 소원은 한정되어 있다. 우선 내가 가진 모든 재산은 여신님의 것이나 다름없지. 따라서 내가 지불할 수 있는 정도의 돈이나, 돈으로 해결 가능한 것들이 있겠고, 그 외에 여신님의 능력으로 가능한 것, 병을 고치거나 죽어가는 사람을 살리는 것, 영혼이 육체를 떠나기 직전의 죽은 자를 살리는 것이 있겠지. 아, 돈은 네가 일한 만큼만 줄거다. 후하긴 하겠지만, 돈낭비는 안해.”
신근호는 그다지 오래 생각에 잠기지 않았다.
“제 동생을 구해주실 수 있는 겁니까?”
“그정도야 별 것 아니지. 다만 배신과 비밀 누설은 용서치 않는다. 네게는 언제나 감시역이 함께 하게 될거라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될거다. 네가 여신님께 충성을 다하면 그분께선 그 이상의 것도 베풀어주실테니 기대해도 좋겠지.”
조제성은 그렇게 말하며 신근호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았다.
“여신님은 자네에게 용사가 되라는게 아니야. 자넨 세상을 구할 구세주나 용사가 아니지. 그저 노동자일 뿐이야. 그리고 여신님은 나쁘지 않은 고용주시지. 충분한 보상이 주어질거다. 금전적으로도 말이지. 잘 생각해 보고 결정해도 되겠지만, 너무 시간을 들이면 난 자네에게 실망할걸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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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기는 여신의 몸으로 리디아를 찾아 보았다. 그가 신전에 들어선 순간, 신전의 성역 레벨이 순간적으로 상승하면서 제단 속에 있는 코어가 찬란하게 빛나기 시작했다.
위와 아래로 뻗어 나가는 어찌보면 핏줄과도 같고, 어찌보면 나무 줄기나 뿌리와도 같은 형상.
세계수라는 이름에 어울리는 모습일지도 몰랐다. 천(天)과 지(地)를 이어주는 존재라고 할까.
모든 신전에는 세계수라고 부르는 코어가 존재하고 있어서, 인간이 제공하는 신앙을 모아서 해당하는 신족에게 전달하는 역할을 하고 있었다. 그와 동시에 나무가 산소를 공급하듯, 신전 주변에 생명의 기운을 불어넣는 역할도 하고 있었다.
“여신님. 오셨습니까.”
리디아는 원기의 존재를 알아채고 황급히 고개를 숙였다.
“그냥 평소처럼 편하게 대해. 모르는 것도 아니면서 뭘 그래.”
원기는 그렇게 말하면서 미소를 지었다. 하지만 리디아는 내심 큰 동요를 일으키고 있었다.
아는 것과 느끼는 것은 제법 큰 차이가 있기 때문이었다. 누구나 자신이 언젠가는 죽을 것이고 언제 죽을지 모른다라고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병원에서 당신 죽습니다라고 들으면 쉽게 받아들일 수 없는 것과도 마찬가지였다.
원기의 입에서 자신이 여신이라고 듣는 것과 여신의 입에서 자신이 원기라고 듣는 것 사이에는 생각보다 큰 차이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녀의 동요를 눈치채지 못하고 원기는 자신의 관심사인 스테이터스 창을 보았다. 리디아에게도 각성되어 있는 능력이 있었다.
선명한 붉은 물음표.
어떤 내용인지 보려고 들자, 자연스럽게 내용이 흘러들어왔다.
‘인간을 대상 한정으로 조금이라도 베푼 것이 있으면, 최소한 몇 배의 보상을 강제적이면서 자발적으로 받아낸다. 엘프사랑 능력자는 대상외.’
원기는 순간적으로 좀 황당하게 느껴졌다.
‘이게 대체 뭐지? 기브 앤 테이크인가? 준만큼 받아낸다?’
그렇게 생각한 순간, 물음표가 기브 앤 테이크로 바뀌었다. 하지만 기브 앤 테이크로 보기엔 좀 문제가 있었다. 준 만큼이 아니라, 최소한 몇 배로 받아낸다는 것이었다. 그것도 강제적이면서 자발적이라는 표현이 문제였다.
‘이건 되로 주고 말로 받는 능력이라고 해야 하지 않나?’
곧 기브 앤 테이크가 되로 주고 말로 받는 능력이라고 바뀌었다. 하지만 역시 어색했다. 그때 어느 만화에 나온 유명한 말귀가 떠올랐다. 등가교환의 법칙.
‘그래, 이건 등가교환이 아니라 배가교환이다.’
곧 능력은 최종적으로 ‘배가교환’이라는 말로 바뀌어 있었다.
‘이거 엄청난 능력인데? 대체 왜 드러나지 않은거지?’
원기는 의아하게 생각했다. 너무 엄청난 능력이라서 표가 안날래야 안날 수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의외로 답은 간단했다. 리디아가 인간에게 무언가를 베풀기를 싫어했기 때문이었다. 베풀지 않으니, 몇배로 돌아오는 댓가도 없을 수 밖에 없었다.
실제로는 학교와 병원의 건설에, 리디아의 신성치료를 받은 상류 계층들이 자발적으로 미친 듯이 지원을 했다. 다만, 워낙 뛰어난 미용효과가 있기 때문에, 조제성을 비롯해 어색하다고 여기지 못했을 뿐이었다.
이 능력이 깨어난 계기는 리디아가 인간을 좋아하지 않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야만스럽고 폭력적인 인간이 만들어낸 이 문화적이고 문명적인 세계에 감동했기 때문이기도 했다.
싫은 인간이, 이렇게 평화롭고 번영한 세상을 이루고 살아간다는 것에 마음 깊숙한 곳에서 질투를 느낀 것이었다. 잘사는 놈들이 좀 더 내놔야 한다는 그런 억하심정같은 것이 그녀의 마음 속에 자리잡았기 때문에 그 강렬한 질투의 염원이 능력으로 나타난 것이었다.
문제는 리디아가 인간에게 뭘 해주고 싶은 마음이 극히 없기 때문에, 배가교환의 능력이 빛을 발하지 못하고 있었다.
‘이 능력을 알려 주는게 좋을까, 입 다무는게 좋을까?’
원기는 살짝 고민했지만, 굳이 알려줄 필요도 입을 다물 필요도 안느껴졌다. 안다고 해도 인간에게 베푸는 걸 그리 좋아서 할 것 같지는 않았기 때문이었다.
다만, 리디아가 황제가 된다면, 그때는 이야기가 달라질 지도 몰랐다. 백성들에게 베푸는 황제의 작은 포상이 최소한 몇 배의 충성으로 되돌아올 터였다.
‘다들 한 두개의 능력만 눈뜨기도 힘든데, 어째서 희연만 여러 능력이 동시에 눈을 뜨려는 거지?’
원기는 의구심을 품고, 다시 한번 연무장에 향했다. 그러자 거기엔 활을 쏘는 연하만 남아있었다.
“아, 안녕하세요. 여신님. 오랜만에 뵙네요.”
공손하면서도 천진난만한 미소를 지으며 살갑게 인사하는 연하였다.
“희연언니는 요새 만화랑 만화영화, 게임, 무협소설, 판타지 소설에 푹 빠졌어요. 수련 시간도 엄청 줄었어요. 대체 어떻게 된건지.”
연하의 말에 원기는 이상함을 느꼈다. 같이 수련하거나, 학교에서 공부할 때의 그녀 모습을 생각하면 말이 안되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한 두개라면 모를까, 한꺼번에 푹 빠진다는 것도 말도 안되었다.
“검강? 이런게 있으면 좋긴 좋겠는데. 다음 전투신은 어디야?”
그녀는 판타지 소설을 읽지도 않고 전투 장면을 묘사한 곳만 찾았다. 애니메이션이나 만화책, 게임도 마찬가지였다. 그녀가 관심을 갖고 있는 게임은 블러디라인같은 온라인 게임이 아니라, 대전 격투나 액션게임이었다.
게임 캐릭터의 능력은 인간을 확실히 넘어섰다. 민첩 위주의 캐릭터라지만, 도적 캐릭터의 힘도 건장한 남자의 두 배를 넘어갔다. 넘치는 능력을, 인간의 능력을 넘어선 능력을 십분 활용하기 위해서는 인간의 무술만으론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던 것이다.
그래서 그녀는 상상력의 결합물인 만화, 애니, 게임, 소설을 두루 섭렵하고 있었다.
‘정말 성실한(?) 성격이로군.’
원기는 거실에서 큰 TV앞에서 애니메이션을 돌려가면서 책을 찾아보는 그녀를 보면서 감탄을 금치 못했다.
“공중을 차고, 점프할 수 있다면 굉장히 좋을텐데.”
도적 캐릭터의 엄청난 도약력은 실제 전투에서 크게 도움이 되지 못했다. 도약은 기본적으로 땅을 차고 위로 나아가는 것인 만큼, 입체적인 공격도 힘들고, 틈이 많았다.
그녀가 안타깝게 여기는 순간, 원기는 그녀의 미각성 스테이터스가 빛을 발하면서 물음표로 변해가는 것을 발견했다.
“에이. 저런 능력이 말이 될 리가 없고, 다른 걸 찾아볼까.”
그렇게 말하는 순간, 빛이 사라지면서 다시 미각성으로 되돌아 왔다.
그녀는 다시 애니메이션을 빠르게 뒤로 돌리면서, 책을 뒤졌다.
“소드 마스터라. 이런게 있으면 고생 안하지.”
그 순간, 그녀의 스테이터스 중 하나가 살짝 빛을 더했다.
‘욕심 많은 아가씨네.’
원기는 그렇게 속으로 말하며 돌아섰다. 그녀에게 지금 본 것을 알려준다면, 당장이라도 한두 개의 능력은 눈을 뜰 터였다. 하지만 그렇게 되면 다른 능력들이 각성할 가능성은 줄어들 것이라는 사실을 직감적으로 깨달았다.
‘나도 그녀를 본받아서 이것 저것 좀 파 봐야겠는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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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가 미친 것 아닌가?”
전쟁의 신 티르는 짜증스럽게 말했다.
“저희도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현재 북쪽 평원에 존재하는 그녀의 신전들이 전부 파괴된 상태입니다. 평원의 절반이 이미 황무지화 되어버렸습니다. 다만, 이유는 짐작이 갑니다.”
“그걸 모르는 놈이 있을까.”
티르는 혀를 차면서 말했다. 신전 파괴를 통해서 얻는 것은 분명했다. 바로 전쟁을 위한 진격로를 차단하는 것이었다.
평범한 인간 신관이 발하는 성역은 고작해야 반경 오미터 정도의 것이고, 그나마도 한시간 유지하면 용하다고 할 수 있었다.
신성력을 극대화한 에인페리아라면 십여명 정도의 규모를 간신히 지키면서 이동할 수 있을 터였다.
문제는 북쪽 평원이 없다면 수십만에 달하는 구 굴베이그령에 살던 인간들이 먹고 살 방법이 없다는 거였다. 북쪽에는 삼림이 조금 있고, 그 위로는 바다밖에는 없었다. 바다에 신전을 짓고 살 수 있는 것은 인어족 뿐이라서, 바다의 활용은 거의 불가능했다.
“멸망을 각오한 건가? 아니면 다른 생각이 있는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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