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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혀진 신의 세계-50화 (50/497)

50화

“여신님께서 베푸신 소중한 식량이다. 모두들 원하는데로 가져가라. 내년에 또 이 이상으로 좋은 양식을 주실 것이다!”

엘프 여궁사들이 호위해서 가져온 식량들이 굴베이그령에 아낌없이 뿌려졌다. 사람들은 욕심을 내서 가지고 싶은데로 가져갔지만, 일부러 그것을 방치했다.

식량이지만, 육류는 전혀 없었다. 그리고 좋은 곡물은 하나도 없었다. 대부분 사료용 옥수수와 대두, 밀과 귀리, 감자 등이었다.

조제성은 이 곡물들을 확보하기 위해서, 호주에 지사를 설립하고 대규모 농장을 건설했다. 그리고 소 30만두를 기르겠다고 국가에 신고한 상태였다.

미국의 소 사육두수는 약 1억두, 호주는 약 3000만두에 달한다. 그런 만큼 조제성이 설립한 30만두 농장은 그리 대단할 것이 못되는 것이다.

미국이 아닌 호주를 선택한 것은, 호주산 소고기를 국내에 수입한다는 명분을 내세우기 위한 것과 넓은 대륙, 적은 인구와 교통망 덕분에 사람들의 시선에서 좀 더 자유롭다는 것 때문이었다.

인간 십만명을 위한 식량과 잡화는 엄청난 비용과 자원을 소모하지만, 소 십만두 아니 오만두 가량을 위한 사료는 그다지 큰 부담이 되지 않을 뿐더러, 사람들의 시선을 끌지도 않았다.

“가축 사료용 곡물이라니, 좀 안스럽군요. 밀이나 고기가 좋지 않았을까요?”

원기는 조금은 미안한 감을 감추지 못했다. 하지만 조제성은 고개를 저었다.

“저게 딱 좋습니다. 고기는 충분히 보존하기도 힘들 뿐만 아니라, 서민층들까지 고르게 돌아가지도 못합니다. 좋은 밀이나 고기라면 아마도 상류층에서 가로챌겁니다.”

조제성의 말에 여제 트리아도 동의를 표시했다.

“저들은 지금까지 굶주려왔습니다. 먹기 위해서 일하고 살아왔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에요. 사실 저희 엘프들도 마찬가지고 말이지요. 여신님의 세상에 사는 소들이 부러울 정도입니다.”

그녀의 말에 원기는 잠시 입을 다물었다. 풍요와 소비의 시대를 살고 있는 지구와 달리, 이곳은 전란의 시대를 살아가고 있었다. 만성적인 식량부족 때문에, 농사를 져서 식량으로 세금을 내고 남는 식량으로 빠듯하게 목숨을 이어가는 그런 세상인 것이었다.

조제성의 판단은 일견 냉혹해 보였지만, 지나친 변화는 세상을 혼란으로 몰고갈 뿐이었다. 아니, 막대한 사료의 방출만으로도 굴베이그령은 이미 혼란에 빠진 상태였다.

뼈빠지게 일하지 않고도, 배불리 먹고 살 수 있다는 사실이 그들을 완전한 혼란에 빠뜨린 것이었다.

“역시, 군대를 만드는게 좋지 않았을까요? 모든 인간들을 군대에 입대시키고 그 보수로 식량을 나눠주는 편이...”

조제성은 조심스럽게 말을 이어갔다. 여신 상태가 갖는 카리스마는 원기에 대해 잘 아는 사람들이라해도 극복할 수 없을만큼 큰 위력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원기도 회의 같은 상황에선 여신의 모습으로 참여하는 것을 피하고 있었다.

“저도 그건 고려해 봤습니다만, 그건 식량을 빌미로 강제하는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자발적으로 이 나라를 지키고 싶도록 하는게 제가 원하는 것입니다. 시간은 걸리겠지만, 바른 길로 가는게 좋다고 봅니다.”

조제성의 십만양병설은 매력적인 부분이 있었다. 당장 대규모의 군대를 가질 수 있었지만, 그보다는 문화와 산업쪽에 더 치중해야 한다는 것이 원기의 생각이었다.

“그건 그렇고, 미드가르드와 지구 사이의 교역은 어떻게 되나요? 적자가 지나치게 큰 건 아닌지 모르겠군요.”

굴베이그령의 인간들은 엘프들과 달라서, 노동력의 가치가 그다지 높지 못했다. 미소녀와 구별이 안가는 외모의 엘프 남성들(아저씨와 할아버지들 포함)은 섬세한 감각과 느긋한 인내심으로 한땀한땀 멋진 브랜드물품을 생산해낼 수 있었다.

여성엘프들은 사명감과 굳건한 의지를 가지고 주어진 임무들을 충실히 해내는 훌륭한 군인과 경찰의 역할을 해내고 있었다. 더불어 사냥꾼의 역할 역시 충실히 잘해주고 있었다.

훌륭한 모피와 가죽들을 손에 넣을 수 있었기 때문에 꽤 큰 경제적 가치를 창출해 내고 있었다.

사료용 곡물 대신에 신선한 과일들을 제공받고 있기는 하지만, 그 몇백배의 경제적 가치를 창출하고 있었다.

“브리싱가멘의 수익은 엄청난 편입니다. 가방, 외투만을 주로 취급하지만, 하루 백 개 이상은 만들어내지 못하기 때문에 경매에서 하나당 수천만원 이상의 수익을 올립니다. 과일은 물론이고, 사료값 정도는 비교할 만한 가치도 없습니다. 그리고 광산 개발만 잘 되면, 이쪽 인간들도 제값을 하겠지요.”

조제성의 말에 원기는 조금은 마음이 무거워졌다. 사실 이쪽 세상의 인건비는 엄청나게 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가축사료만도 못한 식량을 위해 일년 내내 뼈빠지게 일하고 그나마도 변변히 먹지 못해서 굶주리는 이들이었다. 시급 100원 정도라고 해도 엄청나게 감사하며 일할 사람들이었다.

그렇다고 해도, 그들의 노동력을 착취한다는 것은, 광산일에 투입한다는 것은 마음이 편할 수가 없는 것이었다.

“광산 일이라면, 드워프들이 기쁘게 받아들일 겁니다. 그들은 어차피 땅 속이 아니면 마음이 편치 못한 이들이니까요.”

“드워프들?”

“예. 여신님께선 아스 신들에게 비밀로 드워프들을 보호하고 계셨습니다.”

트리아 여제의 말에 원기의 머리 속에 드워프들에 대한 정보가 떠올랐다.

브리싱가멘이라는 보물을 바치고 프레이야에게 몸을 요구해서, 프레이야가 몸을 내주고 브리싱가멘이라는 목걸이를 얻었다는 신화속 이야기였다.

그리고 그것에 분노한 오딘이 프레이야에게 드워프들의 섬멸을 요구했고, 프레이야는 전쟁을 일으켜 그 드워프들을 섬멸하는 것으로 이야기는 끝난다.

하지만 원기의 머릿속에 떠오른 내용은 그것과는 좀 달랐다.

아스 신족에게 강제로 사역당하던 드워프들의 일부 부족이 아스 신족으로 편입된 반 신족인 프레이야에게 귀순했고, 프레이야는 그것을 받아들였다. 그리고 그 감사의 표시로 여신에게 목걸이를 제공한 것이 드워프들이었다.

하지만 그것을 알게된 오딘은 아스신족답지 못한 변절행위라고 비난하면서, 귀순한 드워프를 전멸시키라는 명을 내린 것이었다.

그리고 프레이야는 그들을 대외적으로 전멸시켰지만, 몰래 두 일족의 드워프들을 다수 살려준 것이었다.

물론 아직도 그들은 숨어서 살고 있었다. 만약 프레이야의 휘하에 드워프들이 숨어서 살고 있다는 사실이 밝혀 진다면, 분노한 오딘의 군세가 프레이야의 모든 것을 파멸시키려고 달려들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렇군요. 분명 드워프 일족들이 있군요.”

드워프들은 인간과 달리 탁 트인 공간을 싫어한다. 아스 신족의 오랜 박해 때문일지도 모르지만, 그들은 비좁은 공간에 있을 때 안심하는 성향이 있다. 마치 고양이와도 비슷할지 몰랐다.

봉지만 보면 몸을 집어넣고, 좁은 구석에서 휴식을 취하는 고양이처럼 드워프들은 땅굴 속에서 보다 안심할 수 있는 존재였다. 폐소 공포증과 반대되는 광장 공포증을 과반수의 종족이 앓고있는 특이한 존재들이 바로 드워프였다.

“이미, 왠만한 광산은 그들이 개발했을 겁니다.”

“이런, 그럼 인간들의 쓸모가 더 줄어드는군요. 정말로.”

조제성은 씁쓸한 표정으로 말했다. 원기는 그의 기분을 이해 못하는 것은 아니었다. 사실 원기 역시 미드가르드의 인간들은 꽤 정이 안가는 편이었다.

엘프들에 비하면, 정말 꾀죄죄한 야만인에 지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굴베이그의 영토에 있는 인간들이 이정도라면, 과연 다른 곳의 인간들은 얼마나 끔찍할지 상상도 하기 싫어질 정도였다.

뿌리깊은 차별과 신분 의식 덕분에, 왕족이나 귀족들의 잘난 척도 정말 마음에 들지 않았다.

원기는 굴베이그 여신이 존경스럽기까지 했다. 이런 인간들을 어찌 사랑할 수 있었을지 의아했기 때문이었다.

“조선소 건설은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쪽 인간들을 활용하는 것은 무리입니다.”

조선소.

이것은 조제성이 야심차게 준비하는 일대 프로젝트 중 하나였다. 유조선, 혹은 항공모함급 거대 함선이라면, 신전을 짓는 것이 가능했다. 아니 세계수가 뿌리내리는 것이 가능했다.

실제로 오딘의 거성 발하라는 마치 라퓨타처럼 하늘을 떠서 움직이는 거대한 궁전이었다. 움직이는 속도는 느리지만, 거대한 성역과 함께 움직이기 때문에 만약 움직이게 되면 터전을 버리고 도망가는 것 말고는 방법이 없었다.

“문명을 끌어들이는 것은 조심스럽게 접근하지 않으면 안되니, 어쩔 수 없지요.”

방주처럼 유사시에 백성들을 태우고 도망갈 수 있는 거대한 함선을 건조하는 프로젝트가 바로 조제성이 추진하는 아크 프로젝트였다. 그것을 위해서 그는 현실 세계에서 조선 사업에도 손을 뻗고 있었다. 물론 성공한다고 해도, 실제로 함선이 건조되는 것은 빨라도 십수년 후가 될 터였다.

호주에 농장과 사료공장 건설을 하러 비행기를 타고 호주로 건너온 노동자들이, 자신들도 모르는 사이에 미드가르드로 옮겨져서 조선소와 양계장 등을 건설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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