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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혀진 신의 세계-53화 (53/497)

53화

엘프 수송대 궤멸 사건이 일어나자 곧 취해진 것은 모든 엘프 수송대의 귀환이었다.

성역 3랭크 이상이 되는 신전으로 모여들어서, 엘프의 희생이 늘어나지 않도록 방비하는 것이었다. 가능하면 세스룸니르까지 완전 철수하도록 지시를 내렸다.

식량의 배급은 과도할 정도로 충분히 이루어졌기 때문에 적어도 3개월 이상의 시간을 벌었다고 할 수 있었다.

그리고 굴베이그의 사신단을 펜릴에게 떠나 보냈다. 이미 펜릴과 조공 관계를 어느정도 유지해온 만큼, 경험자들이 존재하고 있었다. 엘프들만큼 신뢰할 수도 없고, 유능하지도 않지만 그만큼 안심이 되는 것도 사실이었다.

공격 목표를 잃은 에인페리어들은 곧 인간들의 민가들을 습격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것은 결과적으로 그리 나쁜 것만은 아니었다. 사람들을 모아들이기 쉬워졌던 것이었다.

반은 산적, 반은 무법촌이었던 곳들이 주로 공격을 받게된 것이었다. 대부분의 양민들은 이미 식량 배분 덕분에 신전 가까운 곳으로 모여들었다.

하지만 인간들이라 해도 피해가 계속되는 것을 막아야 할 필요는 있었다.

연하는 지금까지처럼 엘프 궁수대와 훈련을 계속하면서, 티르의 에인페리아들을 추적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희연과 원기는 각자 인간 기사대와 전사대를 이끌고 에인페리아들의 추적에 임했다.

굴베이그의 군대들은 엘프들에 대한 그릇된 인식을 가지고 있었다. 아니, 인간들의 전반적인 인식이 그러했다.

용맹을 최대의 미덕으로 삼는 이 세상에서, 쓸데없이 피를 보기 싫어하는 엘프들은 겁장이에 약골이라고 생각하는 것이었다.

그 덕분에, 인간을 아득히 뛰어넘는 전투 능력 자체를 제대로 아는 사람들이 극히 드물었다.

그리고 엘프를 얕잡아보는 인식 탓에 기사들은 처음에 희연을 얕잡아보았지만, 그녀의 날카로운 검에 뜨거운 맛을 몇번 본 후에는 순종적이 되었다.

그리고 원기가 맡은 전사대는 싸움을 좋아하는 직업 전쟁꾼들로서, 군대라기보다는 바이킹의 집단과도 같았다. 그 때문에 제압하는데 꽤 오랜 고생을 하지 않으면 안되었지만, 매에는 장사가 없다고 원기의 고통을 조종하는 기술에 어느정도는 제압이 되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었다.

에인페리어 희망자는 많았지만, 쓸만한 인물들은 많지 않았다. 제대로된 교육을 받지 못한 이들이라, 제대로 믿고 맡길만한 자들은 거의 없었다.

그리고 그것은 한편으로는 다행한 일이라고도 할 수 있었다.

다른 신들의 에인페리어들의 기본 사고방식이 인간보다는 오크에 가깝다는 뜻이기 때문이었다.

조제성과 장수한은 엘프들을 위한 기본 장비 선택을 위해서 많은 논의를 나누었고, 그 결과 선택된 장비가 스페스너츠 나이프였다. 냉전당시 소련에서 개발되어 특수부대에 지급된 이 단검은, 강력한 스프링으로 날을 발사하는 단검이었다.

그리고 이 획기적인 단검은 단검술을 쓸 줄 아는 많은 서방 특수부대원들을 허무하게 저세상으로 보낸 무기이기도 했다.

스페스너츠 나이프와 리볼버를 부무장으로 갖췄지만, 주무장은 여전히 장궁이었다.

바람의 가호를 받는 그들은, 주변의 바람을 조종할 수 있었기 때문에 장궁 자체의 정확도나 위력이 가중되기 때문이었다. 기본적으로 돌격 소총을 상회하는 관통력과 사거리를 지니고 있었다.

피스톨이나 더블배럴과 달리 저격용 소총은 적에게 넘어가면 피해가 큰만큼, 장궁을 활용하는 것이 안정적이라고 할 수 있었다.

그리고 아직까지는 그저 먹기 까다로운 약자 정도로 존재하는 것이 좋았기 때문이었다.

일거에 쌓아둔 힘을 방출해서, 적어도 전체 세력의 삼분의 일 정도는 차지해야 했다. 하지만, 문제는 인구였다. 아무리 힘을 쌓아두었다가 폭발시킨다고 해도 십수만 정도의 인구로 이 대륙의 삼분의 일을 제압한다는 것은 불가능했다.

눈치를 보면서 야금야금 커나가는 줄타기를 해야 한다는 것이 문제였다. 특히 보통 게임과 달리, 인구수의 증가는 아주 느리고 점진적이었다.

엘프들의 확보는 새로 태어나는 엘프들을 제외하고는 방법이 없었다.

인간은 나름대로 유민들을 흡수하거나, 고아원을 통해서 전쟁 고아들을 키우는 것으로 확보해 나갈 수 있는 희망은 있었다.

현세의 고아 등을 미드가르드로 보내는 것은 잠시 고려된 적은 있으나, 너무 비인도적인 처사라고 판단되어 기각되었다. 내전으로 심각한 아프리카의 전쟁 고아라고 해도, 미드가르드의 삶의 수준에 비하면 좀 더 낫다고 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가축이 먹는 사료만으로도 행복해 할 수 있는 세상이니, 그런 곳에 아무것도 모르는 고아들을 던져 놓을 수는 없었다.

(물론 일부 ‘매니아’들이라면 주로 미소녀처럼 보이는 미소년(미중년?) 엘프들이 돌봐주는 고아원에 가는 것만으로도 행복하다고 여길 지는 모르지만)

전사대, 기사대, 그리고 가장 소중한 전력인 엘프 궁병대를 이끌고 에인페리아들의 수색을 벌이는 와중에 블러드 라인의 대규모 업데이트가 이루어졌다.

서버 자체에 존재하던 몬스터 인공지능 프로그램을 삭제하고, 초 고성능 최신형 슈퍼 컴퓨터에 군용으로 검토되는 전투용 프로그램을 인스톨한 것이었다.

그 결과 게임 속 몬스터들은 아주 지랄같이 진화했다.

블러드 라인은 완벽한 가상현실 게임이 아니기 때문에, 컨트롤 자체가 좀 단순한 편이었다. 한희연이 움직인다고 해도, 단순한 검격을 적의 약점에 넣는 수준이었다.

그런데 몬스터는 야성에 가까운, 무시무시한 전투 본능으로 플레이어를 노리고 공격해 왔다. 당연히 패치 후에 비난이 쏟아졌다.

[시파, 이거 하라고 만들어 놓은 게임이냐!]

[오크 조낸 무섭다]

[오크 무섭다니 고수신가 보네요. 전 토끼만 봐도 간이 떨어지는데]

[해도 해도 너무한다. 동렙은 커녕 저렙 몹도 못잡겠다]

[닭 잡아 보셨어요? 3차원 입체기동의 무서움을 뼈저리게 느끼실 겁니다. 나 30렙인데 3렙 닭한테 쪼여죽었어요. HP700이라서 700번 쪼여죽었어요.]

하지만, 비난과 반대로 동접자들이 마구 늘어났다.

일부는 공포 게임 매니아들이었다. 특히 밤시간에 숲속에 들어가면, 뛰어난 인공지능의 몹들이 유저들이 대처하지도 못하게 죽여버렸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어려운 몹을 잡는게, 레벨업보다 더 재밌다는 사람들도 많아졌다. 3렙짜리 닭을 잡으려면, 닭의 움직임을 읽고 미리 예측해서 휘두르지 않으면 안되었다. 닭이 있는 곳을 보고 때리는 식으로 쫓아다니면 만렙 캐릭이라고 해도 죽을 때까지 쪼이고 쪼여 죽는 길 밖에는 없었다.

획기적 난이도, 그 차별성이 화제가 되어서 많은 이들이 블러드 라인을 시작하게 된 것이었다. 특히 공포를 즐기는 사람들은, 어떤 몬스터에게 어떤 식으로 죽임을 당하는가를 즐기는 경우도 많았다.

어떻게든 늑대에게 죽지않고 숲 깊숙히 들어가서, 뱀파이어에게 당할 것인가를 공략해 놓은 것도 있을 정도였다.

순수하게 전투를 즐기는 사람들도 많았다.

레벨 10짜리 들개 한 마리를 잡는데, 레벨 15캐릭 세 명이 파티 플레이로 20분 가량 걸리는 경우도 많았다. 물론 저렙 몹이라 공격력이 형편없어서, 전투가 길어지게 되는 것이다.

5마리 들개떼는 최소 동렙 20명 이상이 레이드를 가지 않으면 못잡는 것으로 알려졌다.

테이밍한 몬스터의 인공지능이 고도화되긴 했지만, 유저와 손발이 맞지 않아서 제대로 써내는 사람들이 별로 없었다.

스킬을 정확한 타이밍에 자유자재로 구사하는 몬스터에 비하면, 스킬 발동을 유저가 하는 테이밍 몬스터는 약할 수 밖에 없었다.

그런 관계로 만렙 캐릭을 갖고 있는 사람들은 오히려 바보 취급을 받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새로 시작해서 차근차근 전투를 거듭해서 레벨을 쌓아가는 사람들이 스타덤에 오르고 있었다.

그리고, 개인보다는 파티로 유명해지는 경우가 많았다. 호흡이 맞는 세 명 이상의 파티가 아니면, 순조롭게 몹을 잡는 것이 어려웠기 때문이었다.

블러드 라인이 갑작스럽게 화제성을 갖고 유저들이 대량으로 늘어나자, 블러드 라인을 인수한 조제성이 경제 기사에도 등장하게 되었다.

“세상 참 모를 일이로군요. 이게 히트치리라고는...”

조제성 역시 허탈한 표정으로 혀를 찼다. 물론 히트 친 것이 나쁠 이유는 없었다. 전투 훈련용으로서 뛰어난 역할을 하고 있었다.

지금 게임에서 만렙을 이루는 사람이 나온다면, 그는 틀림없이 미드가르드에서도 날고 뛸 것이 틀림없기 때문이었다.

희연의 전투 감각, 혹은 원기의 경험 축척 정도의 것이 없고서는 정상적인 게임 플레이는 요원했다.

강적을 상대로 마치 한몸처럼 협력 플레이가 가능한 유저들이 대거 육성되고 있는 상황은 꽤 바람직했다.

“그건 그렇고, 인공지능 패턴이 대체 몇개가 있는 겁니까?”

장수한은 조제성에게 물었다. 고작 인공지능 패치로 게임이 이렇게까지 바뀔 줄은 몰랐기 때문이었다.

닭용 인공지능 패턴과, 개용 인공지능 패턴, 고양이용 인공지능 패턴이 다 달랐다. 게다가 동렙 닭이라고 최소한 5개 이상의 패턴이 있어서 전투를 벌일 때마다 달랐다.

결국 테이밍 몹의 인공지능도 유저의 전투 패턴과 상성이 존재하고 있었다.

“그게, 학습형 프로그램을 사용해서, 패턴이 증가하게 되어 있다고 하는군. 확실히 비싼 놈을 쓴 보람이 있어. 테이밍 몹들도 주인의 전투에 맞춰서 인공지능이 성장하도록 되어 있다더군.”

“배보다 배꼽이 큰 거 아닌가요?”

“적어도 컴퓨터는 그렇지.”

실제로 신규 인공지능을 위한 컴퓨터는 블러드 라인 서버의 성능, 용량을 몇 백배 이상 능가하는 물건이었다.

블러드 라인의 인기를 보고 따라하려는 회사들도 있었지만, 결국 좌절했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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