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잊혀진 신의 세계-55화 (55/497)

55화

“에인페리어에 의한 피해가 계속 되고 있습니다. 이대로는 곤란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트리아 여제는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아무래도 조제성이나 장수한처럼 원기를 친밀하게 느끼기는 어려운 듯 싶었다. 아니, 친밀하게 여겨서는 안된다고 느끼는 듯 했다.

친밀하다는 것은 경외감을 희석시키는 면이 있으니 당연한 것일 수도 있었다.

“뒤를 쫓는다는게 그리 쉽지는 않군요. 우리 쪽 전력은 사실 이동이 쉽지 않습니다.”

원기와 희연, 연하는 사람들이 에인페리어로 알고 있었다. 하지만 실제로는 에인페리어가 아닌 게임 캐릭터로, 에인페리어에는 못미치지만, 필적하는 전투력을 지니고 있을 뿐이었다.

기본적으로 에인페리어는 신관을 가볍게 능가하는 신성력을 가지고 있어서, 랭크 1의 성역을 늘 동반하기 때문에, 성력의 공백지역을 다니는데 어려움이 없었다.

반면에 게임 캐릭터들은 전투력은 에인페리어에 필적하고 부활도 가능하다는 점에서 비슷하지만, 성역을 갖지 못하기 때문에 공백지역을 자유롭게 다닐 수는 없었다.

진공은 아니지만, 30분 정도 지나면 호흡에 지장이 올 뿐 아니라 백골전갈을 비롯한 공허의 생물들의 방해를 받기 때문이었다.

원기는 데미지를 전혀 안받고 지날 수 있지만, 연하와 희연에게는 쉽지 않았다.

결국 신관을 동반해서 이동해야 하는데, 신관 역시 잃기엔 아까운 고급 인력임에는 변함이 없었다.

희연의 성기사대, 연하의 엘프 궁수부대를 제외하면 에인페리어들을 추적하는 것조차 불가능했다. 그리고 성기사대도 엘프 궁수대도 단독으로 조우하면 피해가 클 것이 분명해서 몸을 사리게 되니, 에인페리어들을 추적하는 것이 쉽지 않았다.

“역시, 전문가가 필요할 것 같습니다. 대테러 전문가를 고용하면 적의 움직임을 예측할 수 있을 겁니다. 미리 예측하고 준비해서 상대하는 것이 현명합니다. 솔찍히 지금 이대로라면, 추적에 성공해도 승리한다는 보장이 없습니다.”

조제성이 단호하게 말했다. 그리고 그것은 원기도 공감하는 것이기도 했다. 블러드 라인에서도 그랬지만, 연하는 원거리 저격에 특화되어 있었다. 대규모 군대와의 전투에서 엄청난 가치를 갖지만, 소규모의 특수부대와 근접 전투에서는 큰 도움이 되지 못했다.

아니, 왠만한 적을 상대할 때라면 큰 도움이 되겠지만, 기량이 상식을 초월한 적들을 상대로 한다면 쉽지 않았다.

결정적으로 방어력이 문제가 되었다. 티르의 에인페리어 중 하나는 모든 날아오는 무기를 방어하는 아티팩트를 지녔다.

물론 그정도는 아니지만, 성기사들 역시 화살을 막아주는 갑옷이나 방패 정도는 갖추고 있었다. 당연히 에인페리어들도 마찬가지였다.

“엘프 게이머 양성 계획은 어떻게 되어가지요? 그들을 완성시키면 대응할 수 있지 않을까요?”

트리아 여제가 장수한을 향해 물었다. 그녀의 질문에 조제성이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블러드 라인이 현세에서 성공적이지만, 미드가르드에 효과적이라고 하기는 어려웠다.

현재 대부분의 플레이어들이 레벨업은 포기하고, 저렙에서 재미있게들 놀고있었기 때문이었다. 유터보 같은 동영상 사이트에 올라오는 영상들 대부분이 닭잡는 영상, 개잡는 영상, 약먹은 농부와 싸우는 영상들이었다.

특히 닭은 상당한 고난도 몹으로, 닭 100마리를 잡으면 얻을 수 잇는 치킨슬레이어는 꽤 인기있는 호칭이었다.

오거는 커녕, 오크도 넘사벽으로 여기는 상황에서 만렙 만들기라는게 가능할지 의문이었다.

“꽤 순조롭습니다. 만렙까지는 두달 정도는 걸릴 듯 합니다.”

“뭐라고요?”

놀란 것은 조제성만이 아니었다. 원기도 놀라움을 감추지 못하고 장수한을 쳐다 보았다. 두 달에 만렙이라면, 엄청난 속도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사실 저도 놀랐습니다만, 기본적인 엘프들의 능력이 워낙 뛰어났습니다. 공격적이지 않아서 몰랐는데, 회피 기술은 그야말로 엄청나더군요. 리디아도 그렇게 뛰어나리라고는 예상 못했습니다.”

“그도 그렇군요.”

은연중에 엘프들의 역량을 지나치게 낮게 봤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엘프들은 생존을 위해서 숲속에 몬스터들을 풀어놓고 살아온 것이었다.

오우거, 트롤, 오크 등의 몬스터들이 숲 속에 우글대고 있었다. 그런 속에서 그들은 식량을 채집하면서 살아온 것이었다. 몬스터들을 죽이는 기술은 일부의 전사들만 가지고 있었지만, 몬스터들을 피하는 기술은 모두가 숙달된 상태였다.

게임 속의 몬스터는 실존하지 않는 존재, 그들을 대상으로 엘프들은 전투 기술을 터득해 나가고 있었다. 기본적으로 숲을 자유자재로 헤치고 다니면서, 몬스터들의 공격에서 자신을 지킬 수 있는 탁월한 운동신경이 있기 때문에, 게임과 함께 순조롭게 성장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 뒤에는 장수한의 충실한 서포트가 있었다. 비록 운동신경은 뛰어나지 못하지만, 게임에 대한 이해도가 높은 만큼 패치 후의 상황에 대한 적응도도 뛰어났다.

엘프들의 특성을 읽고, 적절한 직업적 배치와 파티 플레이를 통해서 버스는 무리지만, 광렙으로 유도할 수 있었던 것이다.

“두달이라면, 에인페리어 문제를 해결하는데는 도움이 안되겠군요.”

“식량 문제가 생각보다 더 커졌습니다. 민심에 악영향도 나오기 시작했군요. 귀족들과 부자들이 문제입니다.”

조제성은 그렇게 말하면서, 혀를 찼다.

굴베이그 령에 풀어놓은 식량의 양은 사실 삼개월치를 넘어섰다. 일부 지역의 일부 사람들만 한달치를 배급받았을 뿐이었다.

문제는 부자들이 그 배분된 식량을 사들였다는 것이었다. 어차피 엘프들이 또 오면 또 나눠줄 것이라고 생각한 사람들이 부자들에게 식량들을 싼 값에 팔아치웠다. 그 결과 부자들의 창고는 식량으로 가득찼다.

그리고 엘프들의 식량 배송이 끊기자마자 서민들은 먹을게 떨어져서 굶기 시작했다. 하지만 부자들은 식량을 내어놓지 않을 뿐만 아니라, 서민들이 굶고 있는데도 엘프들이 몸을 사릴려고만 든다는 식으로 여론을 조성했다.

“솔찍히 식량을 나눠주려다가 엘프가 한명이라도 죽는 일이 생기느니, 굴베이그의 인간들이 몽땅 굶어죽는게 낫다는게 제 판단입니다.”

조제성이 냉담한 표정으로 말했다. 순식간에 악화된 여론은 냉철한 조제성까지도 분노하게 만들었다.

“잘해준다고 꼭 좋아지는 것은 아니지요. 되려 악화된 예가 많습니다. 인간은 어리석은 존재이니. 당근만으로는 안됩니다. 채찍도 필요하지요.”

장수한이 분개해서 말했다.

“채찍이라면 어떤 걸 말씀하시는거지요?”

원기가 묻자, 장수한은 의미심장한 표정을 지으며 조제성을 보았다. 조제성은 헛기침을 하고는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사실, 이런 수단을 취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해 왔습니다만, 알다시피 굴베이그 왕국의 귀족들은 법으로 처벌할 수는 없습니다. 그들이 우리 구호품을 빼돌리고 백성들을 굶겨 죽여도, 우리는 그들의 행사에 간섭할 수 없습니다. 그 조건으로 그들은 프레이야 제국의 지휘하에 들어온 것이니까요. 그래서 말씀드리는 겁니다만, 우리에겐 조금 하드한 버젼의 일지매나 쾌걸 조로가 필요한 겁니다. 그리고 적절한 인재도 있지요. 신근호 그친구 제법 쓸만하더군요.”

“암살입니까? 그건 좀 곤란한데요.”

원기는 조심스럽게 말했다. 편한 해결책처럼 보이지만, 결코 좋은 방책은 아닌 것이다.

“죽여버리는게 편하긴 합니다만, 죽이지 않고 납치하는 것도 나쁘지 않지요. 원양 어선에 일자리가 많습니다. 그리고 무인도도 몇개 구입해 놓은 상태입니다. 이쪽 세계에 와있으면 그들은 무력할 뿐이지요. 남반구에 무인도를 하나 구입해서 개척 사업에 투입해도 됩니다. 고생좀 시키면 사람이 되겠지요. 인도적이지는 못하지만, 그들을 해결하지 못하면, 당장 수많은 사람들이 죽어갈 겁니다. 외부의 적도 버거운데, 내부의 적을 끌어안을 수는 없지요.”

“일정 기간 사회에서 격리해 둔다는 것에 대해선 저도 찬성입니다.”

트리아 여제도 단호하게 말했다. 그녀는 이런 민감한 문제에 대해서는 의견을 모으는게 중요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렇군요. 처우 문제는 좀 더 고려해 보는게 좋을 것 같습니다. 연금이라고 하나요? 어느정도 자유가 보장되는 생활 정도는 제공하는게 좋을 듯 합니다.”

원기가 동의로, 굴베이그 왕국령의 귀족들의 운명이 결정되었다. 서민들을 굶기고, 엘프들과 인간들을 이간질하는 자들을 방치할 수는 없었으니 당연한 것이었다.

“그럼, 저는 영국에 다녀오도록 하지요. 생존과 추적의 전문가를 구해야 할테니까요.”

“영국이요? 왜 영국이지요? 미국쪽이 더 좋지 않을까요?”

원기로서는 현재도 테러와 전쟁을 벌이고 있는 미국쪽 특수부대가 가장 뛰어난 전문가로 생각되었기 때문에 그렇게 질문을 던졌다.

“영국에는 SAS가 있고, 그들은 추적과 서바이벌에 있어서 가장 뛰어나다고 일컬어집니다. 그들의 전투 교리는 엘프들의 군대를 조련하는데 쓸모가 있을 겁니다. 그리고 충분한 대 테러전 경험도 있습니다. 자폭을 위주로 하는 현대 테러와 달리, 구 IRA의 테러는 좀 더 전략적이고 전술적이었습니다. 폭발물을 들고 뛰어드는 간단하고 효과적인 방법에 익숙해진 요즘 테러범들과 대테러 부대와 달리, 좀 더 고도의 수싸움을 많이 벌여왔지요. 전투에 특화된 여타 국가의 특수부대 보다는 좀 더 효율적이라고 생각됩니다. 여러가지로 조건에 맞는 사람도 확보되었습니다. 다만 접선하기 전에, 제 눈으로 확인해 보고 싶습니다. 사람보는 눈에는 자신이 있으니까요.”

조제성은 자신감을 비추며 말했다.

‘조만간 그쪽 능력이 눈을 뜰지도 모르겠네요.’

원기는 그렇게 생각하며 누나를 떠올렸다. 누나 승희는 게이머로서는 완전히 꽝이었다. 평범한 여대생이 무기를 들고 싸우는 데 쉽게 적응할 리가 없었다.

그녀는 레벨 10이 되는데로 아바타를 가지고, 조제성을 도와서 일하기로 되어 있었다. 현대 지식을 가지고 있으며, 신뢰할 수 있는 인물은 꼭 필요한 것이었다.

그리고 원기가 여신이 되어서, 그녀에게서 발견한 능력은 바로 ‘돈’에 관련된 능력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원기의 가슴을 아프게 만든 것이기도 했다.

부모님의 보험금과 유산이 있어서, 금전적으로 부족하지 않다고 생각해왔다. 하지만, 원기를 돌볼 책임이 있는 그녀로서는 걱정이 안될 수가 없었던 것이었다.

원기의 일생을 돌 볼 각오를 해야만 했던 그녀는 병원비를 비롯해서 앞으로 무엇을 하며 동생을 돌보며 살아갈지를 진지하게 고민했던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원기가 치료를 받고난 다음에도 계속되었다. 그녀는 조제성의 변덕으로 원기가 치료를 받았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언제 지원이 끊길지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부모님과 같은 사고가 언제 또 일어날지 모른다고 걱정했다.

부정적인 사고 방식이 몸에 밴 것이었다. 그러면서도, 강한 책임감으로 원기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이든 해줄 각오가 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 결과 각성된 능력이 ‘필요한 곳에 필요한 만큼의 돈을 쓴다. 일체의 낭비와 새는 돈을 용납치 않는다. 장부를 보면 돈의 흐름이 한눈에 들어온다.’는 것이었다.

원기는 그 능력에 ‘근검절약’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왠지 미안하고 가슴이 아파지는 능력이기도 했다.

‘특수 능력에 대해서, 사람들에게 알리고 적극적으로 개발하도록 유도하는게 좋을지, 그냥 저절로 각성하게 둘지 좀 생각해 봐야겠다.’

────────────────────────────────────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