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6화
“야, 팔자 좋은 모델씨. 얼굴잊어 먹겠다.”
“너 안오는 사이에, 학급이 하나 늘었다. 한 학급 통째로 엘프녀들이다.”
원기가 등교하자, 찬균과 호철이 반겨 주었다. 예상대로라고 해야할지, 엘프들의 학급을 창설하자마자 엘프녀 소리를 듣고 있었다.
‘오히려 안전할지도 모르지.’
“요새 컨디션이 좋은 것 같아. 컨트롤 실력이 꽤 늘었다. 승률도 조금 올랐어.”
호철은 신이나서 최근의 게임 라이프를 떠들기 시작했다. 실제론 컨트롤 실력은 조금도 늘지 않았을 뿐 아니라, 오히려 더 떨어지고 있지만 그는 자각하지 못했다.
자각할 수 있을만큼 컨트롤이 좋지 못했다.
“그건 그렇고, 너 SAS라고 알고 있냐? 추적과 서바이벌이 특기라고 하던데.”
원기는 밀리터리 오타쿠인 호철에게 물었다.
“아, 그 곰잡아먹는다는 아저씨가 나왔다는 곳?”
찬균 역시 SAS에 대해서 들어본 듯 답했다.
“어이어이, 요새 그 아저씨가 유명하긴하지만, SAS는 미국 특공대와는 비교가 불가능한 역사를 가진 최고의 특수부대야. 영국은 옛날부터 식민지가 많아서, 특수부대의 역사가 길지. 아프리카 부족이랑 아메리카 인디언이랑 아시아까지 전 세계 구석구석까지 게릴라전이란 게릴라전은 다 치러온 악의 근원이라니까.”
세계 각지에 식민지를 경영해온 영국은 세계 각지의 트러블에 대처하기 위해서 대규모의 병력을 파견할 수는 없었다. 따라서 소규모로 대처할 수 있는 특수부대의 양성은 불가피한 것이기도 했다.
아시아, 아프리카, 호주, 인도, 중동, 아메리카, 그들의 정복욕에 유린당하지 않은 지역이 없었다. 그리고 그 모든 곳에서 적응하고 살아남을 수 있는 게릴라전 능력은 세계 최고라고 할 수 있었다.
“그렇게 대단한건가.”
“영국이 지금까지도 특수부대만큼은 세계제일로 유명하지.”
호철은 단호하게 말했다. 밀리터리 매니아인만큼, 신용해도 좋을 듯한 정보였다.
“그건 그렇고, 엘프반 여학생들은 어때? 특이한 점 없어?”
“음, 특이한 점이라. 너무 개성이 없다는 점일지도. 난 구별이 잘 안되더라. 리디아 공주님 정도는 알아보겠는데.”
찬균의 말에 호철도 고개를 끄덕여 동의를 표했다. 사실 그럴 수도 있는 것이, 뚱뚱함도 삐쩍 마름도 일종의 개성이라고 할 수 있었다. 덧니도 없고, 턱이 들어가거나 나오지도 않았다. 눈이 지나치게 작지도, 지나치게 크지도 않았다.
소위 개성이라고 할 만한 곳들이 돌출되기 힘든 것이다. 게다가 엘프들의 숫자도 턱없이 적은 상태에서 수백년을 이어오니 모두 형제 자매나 마찬가지였다.
모두가 닮을 수 밖에 없었다. 공장에서 찍어낸 바비인형들처럼 한결같이 비슷한 모습이다보니, 쉽게 구분이 안가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좋다고 기웃거리는 애들 많던데...”
“아직 한국말도 제대로 못하는 애들인데, 무슨 재미가 있다는 건지. 난 취미생활을 공유할 수 있는 상대가 아니면 어울리고 싶은 생각 없어.”
“마법소녀 선호하는 취미생활에 어울려줄 여자친구가 있겠냐?”
“밀리터리 매니아는 있고?”
“어이어이, 너희들 자해하는 취미있냐? 적당히해라. 보고있는 내가 슬퍼지려고 그런다.”
엘프반 여학생들은 별 문제없이 학교 내에 정착한 듯 싶었다. 꼬셔보고 싶어하는 남학생들이 제법 있는 듯 싶었지만, 말부터 통하지 않으니 쉽게 접근할 수 없었다.
여신과 원기가 같은 존재라고 아는 것은 고위 신관들을 제외하면, 리디아와 제성, 수한 뿐이었다. 새롭게 지구로 넘어온 60명의 소녀들은 전부 원기의 정체에 대해서 몰랐기 때문에, 한국어를 배우는데 들이는 노력이 부족했다.
현재 장수한이 한국어를 가르치고 있었다. 엘프사랑이라는 특수 능력 덕분에 엘프들이 그를 따르고 있긴하지만, 인간에 대한 거부감 탓에 다른 계약자들도 쉽게 다가서긴 쉽지 않았다.
원기의 정체가 일찌감치 드러난 것이 전화위복일 수도 있었다. 원기의 존재를 알게 된 엘프 고위층들은 적극적으로 인간을 받아들이기로 마음먹었기 때문이었다.
“그건 그렇고, 요새 블러드 라인이 인기라는데, 너희는 안하냐?”
원기는 찬균과 호철에게 물었다. 둘 다 게임을 꽤 좋아하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자신과 가깝기 때문에 뭔가 능력에 눈을 떴을지 몰랐다.
“아니, 난 몸쓰는 게임은 영 아니야. 지시를 내리고 병력을 갖춰서 전쟁하는 게임이 좋아.”
“음, 나도 마찬가지라고 해야 하나. 여자 꼬시는 게임이 좋아. 미소녀야 말로 궁극의 목표지.”
“어이, 궁극의 목표라더니, 전번에 용산에선 나만 떼놓고 가지 않았냐? 모처럼 미소녀 세 명이랑 함께 있었는데.”
신근호와 만나던 날, 리디아와 희연, 연하는 우연히 만난 것처럼 원기 일행에 합류했다. 남자 셋, 여자 셋이니 짝이 맞는다고도 볼 수 있었지만, 호철과 찬균은 원기를 떼어놓고 둘만 따로 살게 있다고 도망쳐 버렸다.
“여자는 전쟁이랑 똑같은 거야. 모니터 안에서 볼 때는 신나고 좋은데, 모니터 밖으로 꺼내놓으면 악몽이지.”
“오오, 찬균이 넌 역시 내 영혼의 벗이다.”
“나, 너희랑 어울리는 거 좀 생각해 봐야겠다.”
원기는 머리가 지끈거리는 것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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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제성은 영국행을 위해 전세기에 올라탔다. 무역쪽 일을 한다지만, 외국으로 나갈 일은 많지 않았다. 하지만 사업이 다방면으로 확대된 지금으로서는 해외에 나갈 일이 급증했다.
‘그룹 차원에서 소형 제트기를 구입하는 것도 나쁘진 않을 것도 같군. 아니, 나쁘지 않은게 아니라 꼭 필요한 일일지도 모르지.’
금, 은, 귀금속은 미드가르드에서는 그리 비싸지 않았다. 가격이 의미를 가지려면, 그 가격에 사주는 사람이 존재해야 한다.
먹는 것만으로 근근히 살아가는 미드가르드에서 금 1키로는 밀 1톤의 가치를 갖는다. 밀 1톤은 지구 시세로는 약 50만원 가량, 금 1키로는 지구시세로는 약 5000만원 정도 된다는 점을 생각하면 엄청난 차이가 있다.
하지만, 밀이 부족해서 굶어죽는 사람이 속출하는 세상에서 밀 1톤이라는 것은 엄청난 가치를 갖는다. 반면, 사주는 사람이 적은 귀금속은 가격이 싸게 거래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오랜 세월 전쟁을 벌여온 탓에 전략 물자인 식량을 사고파는 것도 힘들었던 만큼, 귀금속이 대량으로 쌓여 있었다. 엘프들조차 여차할때 필요한 것을 사기 위해서 귀금속을 모아두고 있었다. 물론 제대로 거래가 된 적은 거의 없었다.
대량의 식량이 미드가르드로 전달되는 만큼, 귀금속들이 지구로 이동하는 상황에 대해 불만을 갖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그리고 굴베이그 왕가의 보물창고와 엘프들의 보물창고의 현재 주인은 여신 프레이야인만큼, 역사적 가치가 있는 극히 일부를 제외하고는 전부 지구로 반출된 상황이었다.
넘쳐나는 자금을 묵혀둬서는 안되었다. 조제성은 빠르게 다양한 사업에 뛰어들었다. 그리고 공격적으로 다양한 업체들을 사들였다. 그 가운데 국내외의 무기 제작업체와 기계 제작업체등이 포함되어 있었다. 다른 업체들은 반쯤은 물타기라고 해도 과언은 아니었다.
그러다보니, 낭비가 심할 수 밖에 없었다. 아무리 유능하다고 해도, 조제성 혼자서 급격하게 벌려놓은 사업체들을 모두 제대로 관리할 수는 없었다.
급하게 이뤄진 인수이다보니, 사원들의 심리도 극도로 불안하고 회사에 대한 애정이나 충성도도 부족했다.
‘정말 다행이야. 그렇게 편리한 능력이 있었다니.’
원기는 조제성에게만 그 특수능력에 대한 사실을 알렸다. 좀 더 능력들의 각성 추이를 보면서 알리는게 좋다는 판단 때문이었다.
그리고 조제성은 박승희를 자신의 비서를 맡겼다. 물론 학생이었기 때문에, 비서 아르바이트를 하는 형식이 되어 있었다.
박승희에게도 그녀가 가진 능력이 무엇인지 알려주었다. 그녀는 처음엔 믿기지 않는 듯 했지만, 곧 침착하게 받아들였다. 이미 엘프와도 만났고, 조제성이 달고다니는 발키리도 보았기 때문에, 더 이상은 놀라기도 힘들었다.
곧, 그녀는 장부를 검토하면서 그녀가 가진 능력의 위력을 보여주었다. 단순히 장부가 어긋난 것만을 보는 것이 아니라, 돈이 새는 곳을 여지없이 짚어냈고 추가로 투자가 부족한 곳을 짚어내는 능력까지 있었다.
‘말이 근검절약이지, 필요한 곳에 필요한 만큼 돈을 쓰는 거야말로 사업가의 꿈이 아닌가.’
조제성은 의자에 등을 기대며 쓴 웃음을 지었다. 물론 그녀의 안목은 어디까지나 특수능력에 의한 것이었다. 그녀는 더 투자해야 한다는 부서에서 대체 뭘 연구하고 어떤 일을 하는 지도 모른다. 낭비를 줄여야 한다는 곳에서 얼마나 많은 실업자가 발생하게 될지를 모른다.
‘사업의 근본은 인간이지. 그리고 내겐 인간을 보는 안목이 있어. 그리고 그 힘을 간절히 원해.’
조제성은 기도하듯이 눈을 감고, 자신에게도 능력이 눈뜨기를 기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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