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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혀진 신의 세계-57화 (57/497)

57화

갑자기 사장 비서(아르바이트)로 채용된 박승희는 회사 내에서 주목의 대상이 되기에 부족이 없었다.

실리적이고 대담한 인사로 유명한 조제성이지만, 인사에 있어서 신중함이 결여된 적은 없었다. 그런데, 갑자기 실무 경력이라고는 눈꼽만치도 없는 철모르는 여대생이 사장 비서로 중용된 것이었다.

당연히, 사장의 애인이 아닐까하는 의혹이 따를 수 밖에 없었다. 게다가 단순히 비서실의 일원이 되어 아르바이트를 하는 정도가 아니라, 회사 내 모든 자료를 열람할 수 있는 권한과 자료 보고를 요구할 수 있는 권한까지 받았다.

그리고는 아예 그녀에게 사장실까지 내어놓고는 조제성이 영국으로 출발한 것이었다.

조제성은 아직까지 사장 명함을 달고 있었지만, 급속한 성장과 인수합병으로 다수의 회사를 거느린만큼, 그룹 총수라고 할 수 있었다. 그리고 회사의 모든 장부와 기밀 자료를 열람할 수 있다는 것은 엄청난 권력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아무리 애인이라지만, 저럴 수 있나?”

“혹시 스폰서 따님 아니야? 갑자기 자본이 꽤 많이 유입된 것 같은데.”

“그렇다고 해도, 저건 아니지 않을까?”

“회사 분위기가 어수선해졌군. 사장이 머리가 좀 어떻게 된게 아니고서야.”

회사의 분위기가 어수선해지는 것은 당연하다면 당연할 수 있었다. 인수한지 얼마 되지 않는 회사들과 사원들이 많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곧 분위기가 어수선한 정도가 아니라, 쑥대밭이 되는 것을 깨달았다.

“응? 여기 계산이 좀 이상하네요. 이쪽 관련 계좌정보하고 장부좀 가져와 주세요.”

“어라? 이곳도 좀 이상해요. 돈이 부족해야 하는데, 이거 가지고 될까요? 계획서좀 가져다 주시겠어요?”

“응?”

“어라?”

“저기요.”

“죄송한데요.”

그녀가 한번씩 고개를 갸우뚱 할때마다, 아랫 단계에서는 대규모 폭탄이 터지기 시작한 것이었다. 횡령, 유용, 부실, 이중장부 등등의 사건이 순식간에 터져나오기 시작했다.

그녀가 한번 고개를 갸웃거릴 때마다 경찰, 검찰, 변호사가 한무리씩 오가는 사태가 벌어지자, 사원들은 아예 전율을 느꼈다.

게다가 사건이 벌어지지는 않아도, 그녀가 빨간색 파일 박스에 담아두는 파일들이 문제가 벌어졌다.

단기적이든 장기적이든 이익이 되지 않는 사업분야와 부서들이었다. 그리고 그것을 비서실장을 비롯해 자료를 들어나르는 이사들과 부장급들이 흘낏보고는 외부로 정보가 새나가기 시작했다.

“야, 우리 부서 빨간 박스에 들어갔다든데.”

“큰일났다. 다른 부서들도 총체적 난국이라든데.”

“부서가 사라져도, 짤리진 않을거야. 그룹이 점점 커 나가는데.”

“하긴 그래. 쥐벼룩 같은 도둑놈들도 다 짤려나갔는데.”

“그래도, 부서가 이렇게 되면 인사상 좋은 일은 없겠지?”

“뇌물이라도 써야 하는거 아니야? 어떻게 줄이라도 대볼 수 없나?”

“사장 애인이라든데 뇌물이 통하겠어?”

“사장 돌아오면 칼바람이 불 것 같지?”

“여대생이라고 들었는데, 저건 뭐 귀신이네, 귀신이야.”

조제성이 애초부터 이끌어온 주력 회사에서는 상대적으로 문제가 적었을 뿐만 아니라, 조제성에게 충성해온 유능한 인재들이 많아서 분위기가 긍정적으로 나아갔다.

그녀가 찾아낸 부정이나, 부실 사업은 그들도 어느정도 느끼고 있었기 때문에 그들은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허허, 사장님이 뭘 믿고서 사업을 이렇게 벌이시나 했더니만...”

“어디서 저런 인재를 특채한 건지 모르겠군.”

“사업도 잘 모르면서, 장부만 보고 저런 걸 찾아낸다는게 말이 되나? 천재란 족속들이 원래 저런가?”

“글쎄요. 어딘가에서 특별히 양성한 아가씨가 아닐까요? 최근에는 자금 유입도 변화되었고...”

“모르지. 사장이 미리 다 확인해 놓은 것일지도...”

“하긴 그게 가능성이 더 높겠군요.”

사원들은 기대와 불안에 가득차서 조제성의 귀환을 기다리게 되었다. 그녀가 분류해 놓은 정보들이 어떻게 요리될 지는 그들로서도 쉽게 판단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박승희의 존재는 조제성의 카리스마를 한층 더 높이는 효과를 불러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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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그정도일 줄은 몰랐군. 그건 그렇고, 그렇게 많은 재정이 새고 있었던 건가? 승희양이 욕을 먹을 수도 있겠군.”

조제성은 비서실장에게 보고를 받으며 미소를 지었다. 회계에 재능이 있는 사람들도 많았지만, 역시 특수 능력은 다르긴 다르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업가에겐 완전히 도깨비 방망이나 다름 없겠군.’

박승희에게 사업할 재능은 없어보였지만, 그녀의 도움을 받는다면 대부분의 사업가들이 성공할 수 있을 듯 했다.

“일단, 그녀가 알아내서 확보된 재원은 전부 보너스로 사원들에게 나눠준다고 발표하게. 그리고 내년 연봉은 일괄적으로 10% 올려준다고 알리게. 이 모든게 그녀의 공이라는 사실도 알려주고.”

그녀가 잠깐 사이에 만들어낸 흑자가 10%에 달했다. 물론 그녀가 계속 일을 한다고 해도, 지금처럼 큰 효과는 나타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적어도 조금씩은 더 나아질 것이 분명했다.

그렇게 생각하면, 새로 생긴 재원만큼 인건비로 돌려도 나쁘지 않을 터였다. 인수 초기인만큼, 인재가 가장 중요한 시기였다. 물론 박승희가 파악해 낸 기생충들까지 배려할 수는 없었다.

조제성의 지시가 사내에 알려지자, 사내의 분위기는 금새 호전되었다. 부정을 저지르는 상사들이 짤려나가고 임금이 오른다는 것은 성실하게 일해온 사람들에겐 최고의 보상이 되었다.

“아직 조금 더 걸릴 듯 하니, 자네가 승희양을 도와주게.”

그가 찾아온 사람은 외진 섬에 살고 있었다. 배편으로 가려니, 며칠에 한 번꼴로 배가 있기 때문에 헬기를 준비시켰는데, 마침 날씨가 좋지 않아서 며칠째 호텔에서 대기 중이었다.

그는 한숨을 쉰 다음 비서가 가져온 신문들을 두루 살펴보았다. 인터넷으로 기사를 찾아보는 것은 자세하지만, 두루 살펴보지 못하는 결함이 있었다. 특정 관심사나 자극적인 사건에 집중되기 때문에 사업가로서는 꼭 필요한 정보를 놓치기 쉬웠다.

종이 신문을 전부 훑어 본 다음, 체크해 둔 기사들을 인터넷에서 좀 더 자세히 확인하는게 그의 스타일이었다. 그리고 보이스 레코더는 그럴 때 제법 도움이 되었다.

“영국에서 신규 대형 원자력 항모를 개발한다라...”

조제성은 눈에 띄는 기사를 발견하고는 보이스 레코더에 녹음하기 위해서 혼잣말을 했다. 원자력 잠수함이나 원자력 항모는 그리 쉽게 손에 넣을 수 있는 물건이 아니었다.

운용할 수 있는 재력이 있는 나라도 드물지만, 제대로 된 원잠이나 원자력항모를 만들 수 있는 나라는 더 적었다.

조제성은 그 두 나라로 미국과 영국을 꼽았다. 프랑스에도 드골이라는 원자력 항모가 있지만, 그다지 완성도가 높지 않고 사고도 많았다.

최근 프랑스에서 신형 원자력 항모 ‘나폴레옹’을 건조한다는 발표가 있자, 영국에서 발끈해서 자신들도 원자력 항모 ‘넬슨’을 건조한다고 발표한 것이었다.

물론 양국 모두 재정이 그렇게 여유가 있지는 않은만큼, 원자력 항모 건설은 말만 나오고 중간에 프로젝트가 사라질 가능성이 컸다. 하지만 이렇게 매스컴에서 나온 이상, 실제로 함이 진수되지는 않더라도 기술 개발은 시작했을 가능성이 컸다.

“소형 원자로라. 하나 있으면 좋겠지만.”

조제성은 눈을 감고 생각에 잠겼다. 그는 바쁘게 움직이는 사람이고, 그 때문에 서두르는 듯이 보이지만 실제로는 먼 앞날까지 염두에 두는 타입이기도 했다.

그는 자신이 이미 한국인보다 프레이야 제국인에 가깝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아직은 보잘 것 없는 도시국가 수준도 안되지만 성장 가능성은 대단히 크다고 할 수 있었다.

지구와 미드가르드의 문명 차이를 생각하면 더욱 그러했다.

그리고 엘프와 프레이야가 아주 마음에 들었다.

트리아 여제를 비롯한 엘프들은 단호하고 냉철한 면도 있지만, 기본적으로 이성적인 대화로 분쟁을 풀어나가고자 하는 면이 강했다. 그렇기 때문에, 대화로 그들을 납득시키기가 대단히 쉬웠다. 말이 통하는 상대인 것이다.

그리고 여신의 존재도 마음에 들었다.

객관적으로 보면 어른스럽고 조금은 얌전한 고등학생이지만, 여신답게 인명의 소중함을 알고 있었고, 그러면서도 단호함을 가지고 있었다. 신중함은 타고난 것이라고 해도 과언은 아니었다. 미숙한 점은 있지만, 그것은 자연스러운 것일 뿐만 아니라, 오히려 좋은 점도 많았다. 여신은 인재를 활용할 줄 아는 것이다.

조제성이나 장수한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그들의 의견을 받아들이며 책임을 나눌 줄 알고 있었다.

타인의 유능함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 줄 아는 그런 리더였다. 그렇기에 조제성은 프레이야 제국에 뼈를 묻을 각오를 가지고 있었다.

‘사실 예기치 않은 죽음을 걱정할 필요도 없으니.’

조제성은 애처 유혜서와 며칠째 못만난 것이 아쉽긴 했지만, 전처럼 초조하게 걱정이 되지는 않았다. 자신이 죽든, 그녀가 죽든 여신이 무사하고 그(그녀?)의 신뢰를 잃지 않는한, 무사히 되살아 날 수 있기 때문이었다.

‘백년 해로는 기본적으로 확보한거지.’

따라서 조제성은 오십년 아니 백년을 내다보고 계획을 잡고 있었다. 현대 문물을 너무 빠르게 수혈하면, 미드가르드에 엄청난 악영향이 미친다. 점진적으로 해나가야 하는 것은 분명했다. 그러나 점진적이라고 해도 미리 준비해 놓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의 차이는 컸다.

지금 미드가르드의 한적한 곳에 숨겨놓고 건설하고 있는 조선소도 그러했다. 지금처럼 비밀리에 조금씩 건설한다면 적어도 십년은 가볍게 넘길 것이었다.

조선소라고 하지만, 어선이나 미드가르드의 전선같은 소형 선박이 아닌 신전을 건설 가능한 적어도 유조선급의 거함을 건조할 수 있는 거대 독을 건설할 생각이었다.

‘20년에서 30년 후를 생각한다면, 원자력 함선을 건조하는 것도 불가능은 아니겠지.’

60명의 엘프 학생들 이외에도 미드가르드에서 한국어를 배우는 엘프 어린이들이 많았다. 그리고 한국어가 능숙하게 되면, 그들을 한국의 초등학교에 넣고 대학까지 보낼 준비를 하고 있었다.

‘좋아. 원자력 함선을 개발하는 곳을 들려보자.’

발키리는 유령과 비슷한 면이 있어서, 산업 스파이로 쓰기에는 굉장히 좋았다. 그들은 한 번 본 것을 잊지않고 기억할 수 있었다. 그리고 미약하지만 물리적인 힘도 쓸 수 있었다.

다만 USB메모리같은 것을 들고 갈 수는 없었다. 가벼워도 지속적으로 힘을 사용하는 것은 무리가 컸다. 약한 힘을 1분 정도 사용하는 것이 고작이었다.

키보드를 잠깐 두들기거나, 작은 물건을 잠깐 움직이는게 한계였다.

그리고 서류나 모니터를 살펴보는 속도는 인간과 비슷했다.

‘중심 기술자들이 누구인지 확인해 두는 정도만으로도 충분하겠지. 운이 좋으면 설계도 같은 것을 보고 올 수도 있을테고.’

그는 핵항모 개발에 관련된 정보를 관심있게 찾아보기 시작했다. 중심 기술자들 가운데 두각을 나타내는 자가 있다면, 기회를 봐서 여신의 힘으로 포섭할 수 있을지 몰랐다.

물론 원자력 관련 기술자들은 은퇴해도 국가에서 관리하지만, 여차하면 죽는 순간, 영혼을 끌어와서 미드가르드에서 새로운 몸으로 살도록 만들 수도 있는 것이었다.

거대 함을 몇년 이상 연료 보급없이 움직일 수 있게 만드는 소형 원자로는 미래의 프레이야 제국에는 꽤 큰 도움이 될 터였다.

“사장님. 헬기가 수배되었습니다. 어서 움직이시지요.”

“이런 시간이 벌써 그렇게 된건가?”

제성은 전SAS대원을 만나기 위해 호텔 옥상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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