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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혀진 신의 세계-58화 (58/497)

58화

그는 대체 어디서부터 일이 잘못되었는지 도무지 알 수 없었다.

그는 후회따위는 하고 싶지 않았다.

그가 해온 선택 가운데, 잘못된 것은 아무것도 없다고 생각한다.

과거에 그가 한 선택은 그 시점에서는 지극히 당연한 것이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지금 그는 미칠듯한 후회의 바닷속 깊은 곳에 가라앉고 있었다. 알콜은 그 뼈저리는 후회의 고통을 눈꼽만큼 식혀주는 약발 안받는 진통제에 지나지 않았다.

그는 아일랜드 출생이었다.

그리고 IRA의 테러에 동의하지 않았던 그는 SAS에 입대하여 IRA의 대 테러 작전에 셀 수 없이 참전했다. 테러로는 평화도 미래도 얻을 수 없다는 것이 그의 신념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의 노력으로 많은 테러가 미연에 방지되었다고 그는 자부할 수 있었다.

그리고 1994년 마침내 신페인당이 전면 휴전을 선언함으로써 그는 승리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 휴전은 결코 끝이 아니었다.

IRA의 강경파들은 대외적 테러를 자제했지만, 광기와 분노에 사로잡힌 이들은 사적 보복을 위해, 자신들의 기술을 사용했다.

그리고 그 대상에 그와 그의 가족들이 포함되어 있었다.

북아일랜드 출신으로써 IRA의 테러를 방해한 변절자, 그렇게 낙인찍힌 그는 북아일랜드 자치정부가 수립되기 직전, 그의 집이 그의 눈 앞에서 폭발하는 모습을 지켜봐야만 했다.

그리고 그 사고로 부인은 사망하고 당시 여섯 살이던 딸은 심한 화상과 함께 영원히 빛을 잃었다.

대외적으로는 가스 폭발사고로 봉합되었다. 테러행위라는 것은 누가 봐도 분명했지만, 당시의 사회적 분위기를 고려해서 테러라는 사실을 감춘 것이었다.

그는 미칠듯이 분노했다. 그는 테러범들을 체포하고 제압하고 고문하는데 누구보다 압장섰다. 그는 정의의 수호자가 아닌 광기의 복수자가 되었다.

군은 그런 그를 말리기보다는 적극적으로 이용했다.

그리고 2001년 IRA는 완전 무장해제를 선헌했고 북아일랜드 평화협정 이행으로 나아가게 되었다.

그리고 그는 SAS에서 포로에 대한 가혹행위 등의 이유로 불명예 제대를 당했다. 전범으로 기소되지 않은 것만 해도 다행이라고 생각하라는 군사법정의 판결이 있었지만, 한마디로 개소리였다.

그들도 자신들의 묵인하에 전범행위가 있었다는 사실을 인정할 수는 없을테니까.

그는 결국 세상에 좌절하고 자살을 기도했다.

하지만, 얼굴에 큰 화상을 입고, 실명한 딸 아이가 그를 세상에 붙잡아 주었다.

그리고 지금에 이르렀다.

‘왠 놈들이지?’

정기적인 연락선이 도착할 시간이 아닌데, 못보던 몇 명의 사내가 시야에 들어왔다.

‘동양인들인가.’

그는 조금은 경계심을 늦췄다. 그다지 효과는 없었지만 딸의 치료를 위해서 많은 돈을 써왔다. 설령 덧없는 짓이라고 해도 유명한 병원과 의사들을 찾아다니며 많은 돈을 썼다.

부족한 돈은 용병일을 해서 벌어들였다. 그가 활동한 것은 주로 아프리카였다. 자폭 테러를 벌이는 중동의 방식엔 그다지 대책이 없지만, 아프리카의 게릴라들이나 반군을 상대하는 데에선 SAS의 게릴라전 능력이 진가를 발휘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술과 후회와 나이가 몸을 좀먹기 시작했다. 그리고 결국 그는 산비탈에서 굴러떨어져서 심하게 무릎관절을 상했고, 용병 생활도 그렇게 접을 수 밖에 없었다.

‘전장에서 총알에 맞아 뒤지는 편이 더 나앗을지도 모르지. 쓸데없는 주정뱅이 폐인 하나가 늘어나는 것 보다는...’

다만, 그 경우에는 금전적으로는 양호하지만, 그녀가 의지할 믿을만한 사람이 없다는 문제가 있었다.

어차피 해볼만한 치료는 다 해봤기 때문에 그는 딸과 함께 섬에 들어와 살게 되었다. 다리가 조금 불편한 주정뱅이와 실명한 처녀가 무인도에서 살 수는 없었다.

결국 그는 어부들이 수십가구 살고 있는 섬에 자리를 잡은 것이다. 술집이라고 차려놓기는 했지만, 장사보다는 살림집에 가까웠고 매상은 대부분 그 자신이 올리고 있었다.

주점의 피아노에서는 술집에 어울리지 않는 클래식이 울려퍼졌다. 딸 클레어가 낮시간에 가끔씩 연주하는 것이었다. 주점 안에는 딸과 그 말고는 아무도 없었다.

그는 테이블 밑에 둔 그의 애총 브라우닝 하이파워에 손을 얹었다.

그가 주로 경계하는 것은 아일리쉬계 백인과 아프리카 흑인들이었다. 용병일이라는 것이 합법적이라고 해도 일의 내용은 지저분한 일들이 많았다. 그리고 더러우면 더러울 수록 급여는 좋았다.

그리고 그만큼 원한도 깊을 수 밖에 없는 것이었다.

아시아 인들이 다가오자, 그는 조금은 어깨의 힘을 풀었다.

가운데 있는 정장을 빼입은 사내는 뭐랄까, 사자와도 같았다. 원하는 것을 당당하게 만인이 보는 앞에서 약탈할 수 있는 그런 자였다. 아주 극소수의 진정한 강자.

하이에나처럼 조금이라도 더 얻어내기 위해 상대의 틈을 노리며 배회하는 무리들과는 달랐다.

그리고 주위에 있는 자들은 명백히 경호원들이었다. 그것도 무기를 가져본 적이 없는 자들이다. 몸은 잘 단련되어 있지만, 살기가 느껴지지 않았다. 게다가 총에 대한 경계가 제대로 되어 있지 않았다.

‘중국인은 아니로군. 일본? 한국? 둘 중 어딘가로군.’

치안이 좋고, 총기의 걱정을 그다지 하지 않아도 되는 나라 출신이라는 것은 쉽게 알 수 있었다.

‘저런 자가 날 찾아올 이유가 있나?’

그는 퇴물 용병이었다. 지식보다는 경험이 많았다. 경험을 지식화 해서 누군가에게 전해줄 말 솜씨도 부족했다.

다리를 저는 퇴물 용병이 할 수 있는 일은 별로 없었다.

“크리스 맥케이씨. 당신과 계약하고자 찾아왔습니다.”

“무슨 일로 찾아왔는지 모르겠소. 내 이름을 알고 있다면, 내 처지도 알고 있을텐데. 헬기까지 동원해서 찾아올만한 가치는 없소.”

“흠, 그거야 내쪽 문제지요. 당신쪽 문제는 내가 무얼 제공할 수 있는가가 아닐까?”

크리스는 술기운이 달아나는 것을 느꼈다. 아까와는 다른 의미의 긴장감이 찾아왔다. 눈앞의 사내는 확실히 사자였다.

“무엇을 제공할 수 있다는 겁니까.”

“당신이 가장 원하는 것. 당신 딸의 완치가 되겠지.”

크리스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눈앞의 사내는 허언을 하지 않는다고 그의 오랜 경험이 말해주고 있었다.

“제가 뭘해야 합니까?”

“뭐든지. 대신 자네 딸의 완치와 보호를 약속하지.”

“알겠습니다.”

그는 단호하게 답하고 즉시 자리에서 기립했다. 그런 그의 모습을 본 조제성은 흡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그의 선택이 잘못되지 않았다는 것을 확인했기 때문이었다.

사실 그를 계약자로 선택한 데에는 사적인 감정이 포함되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가족을 소중히 여기는 사내. 그리고 폭탄 테러로 부인을 잃고 딸이 심한 상처를 입었다는 사실이 조제성의 마음을 움직였다.

그의 행적을 서면으로 살펴보는 것만으로도, 그의 고통과 갈등을 이해할 수 있을 듯 했기 때문이었다.

“그러지 말고 앉게. 술은 잘 못하지만, 술 한 잔 함께 나누고 싶군. 이야기도 좀 나눠보고 싶고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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