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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혀진 신의 세계-59화 (59/497)

59화

“윽, 머리가 깨질 듯 아프군.”

조제성은 머리를 감싸쥐고 몸을 조금 일으켰다. 심장 박동에 맞춰서 머리가 시큰시큰거려왔다. 마침 머리맡에 냉수가 놓여 있었다. 조금 미지근했지만, 꽤 마실만 했다.

‘원효대사도 숙취가 있었던 건 아니겠지. 스님인데.’

조제성은 그렇게 쓰잘데 없는 생각을 하면서 몸을 일으켰다. 을씨년한 방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한쪽 소파에 누워 자고있는 크리스 맥케이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주정뱅이 홀아비의 방이지만, 방은 의외로 깨끗했다.

‘딸이 청소를 해주는 모양이군.’

가볍게 한잔 하고 헬기로 호텔에 돌아갈 예정이었는데, 이야기를 조금 나누다가 보니 정신을 못차리도록 취한 듯 싶었다.

폭탄 테러에 의해서 부인을 잃은 심정, 병실에 누워있는 처자의 모습 등의 이야기를 꺼낸 순간, 조제성의 마음에도 과거의 그 순간이 떠올라서, 크리스를 얼싸안고 눈물을 펑펑 흘리면서 정신없이 술을 퍼부었다.

‘중요한 것은 역시 가족이지.’

그렇게 생각하는 순간, 마음 속에서 무언가가 터져오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여보? 왜 당신이 내 눈앞에 보이지요?]

머리 속에서 유혜서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조제성에게도 유혜서의 모습이 선명하게 눈에 들어왔다. 그녀는 잠자리에 들려고 하는 듯 했다.

“그러게. 어떻게 된걸까?”

조제성도 내심 당황했다. 분명 눈앞에는 크리스의 방안이 보이는데, 동시에 유혜서의 모습도 보였다. 미드가르드에 있는 여신의 궁, 세스룸니르에 있는 그녀의, 아니 그녀와 자신의 침실이었다.

그리고 그 순간, 조제성은 깨달았다.

바로 이능력의 각성이라는 사실을.

여신의 눈으로 보면, 아마 이 능력의 실체를 알게 될터였지만 조제성은 굳이 확인하지 않아도 어떤 능력인지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인재를 보는 눈 따위는 솔찍히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이었다.

머리로는 ‘인재를 보는 눈’같은 능력이 눈을 뜨기를 바란다고 스스로에게 열심히 암시를 걸었지만, 마음 속에선 절실하게 그런 능력 그리 필요하다고 느끼지 않았다.

그저 ‘있으면 편하고 좋겠네’정도의 마음가짐이었다.

반면 늘 유혜서를 보고 느끼고 대화를 나누고 싶다는 마음은 정말로 절실했다. 특히 간밤의 술자리에선 그녀가 멀쩡히 살아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녀에 대한 그리움이 너무 간절하게 사무쳐서 견디기 힘들 정도였다.

지금도 거의 매일 같이 꾸는 악몽이었다.

그녀는 죽어서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고, 자신은 빈껍데기가 되어 집안 구석에서 넋을 놓고 있는 꿈.

여신을 만나서 그녀가 살아난 것이 전부 꿈이었다는 식으로 꿈을 꾸는 것이었다.

조제성은 미소를 지으며 유혜서와 대화를 나눴다.

“이런 피곤하겠는걸. 그만 편히 자.”

[후훗. 저도 잠이 잘 올 것 같네요.]

그렇게 말하고, 그녀는 곧 잠이 들었다. 조제성은 잠든 그녀의 얼굴을 물끄러미 보고 있었다. 편안히 잠든 그녀를 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그는 세상 모든 것을 얻은 것처럼 만족할 수 있었다.

신선놀음에 도끼자루 썩는 줄 모른다고 했던가, 너무나 평화롭고 행복해서 시간도 공간도 모든 것이 사라져버린 듯 했다.

‘이 능력이야말로, 진정으로 내가 원하던 여신님의 축복이로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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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잘먹었습니다.”

“입맛에 맞으셨는지 모르겠어요.”

클레어는 조제성을 대접하는게 사실 부담스러웠다. 보디가드를 데리고 다니며, 헬기를 자가용 대신에 사용하는 부자였기 때문이었다.

눈이 보이지 않는 그녀였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뭔가 대단한 사람이라는 느낌을 강하게 받을 수 있었다.

“애정이 담긴 가정요리만큼 호화로운 식사는 없지요.”

조제성은 진심을 담아서 단호하게 말했다.

“그리고 숙취에 시달리는 주정뱅이에겐 더할 나위 없네요.”

실제로 그녀가 끓인 아일리쉬 스튜는 무를 좀 많이 넣은 듯, 시원한 느낌이 들었다. 아시아 사람이 먹기에 베이컨과 감자등을 많이 사용하는 아일랜드 음식은 느끼하기 쉽지만, 그녀의 스튜는 술을 많이 마시는 아버지를 생각한 듯, 꽤 시원하고 좋았다.

“이사 준비는 언제 끝날 것 같나? 나랑 같이 비행기로 가는게 편할텐데.”

“그리 오래 걸리진 않을 겁니다. 오늘 중에 다 정리할 수 있습니다.”

크리스는 담담히 말했다. 클레어의 치료를 위해서 이곳 저곳을 전전한 경우가 많았기 때문에 실제로 짐은 별로 없었다.

“그래? 그럼 내일 헬기를 보내지. 내일 오후 비행기로 같이 가는게 여러모로 편할거야.”

크리스가 연상인데다가, 간밤의 술자리에서 의기투합해서 같이 울고불고 했지만 조제성과 크리스의 관계는 변하지 않았다.

서로가 어떤 식으로 관계를 맺는게 중요한지 잘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크리스에게 있어서 조제성은 직속상관과 비슷한 존재였다.

마음적으론 가까워져도, 공적 관계는 확실하게 갖는 것이 편하다는 것을 둘 모두 오랜 경험으로 알고 있는 것이었다.

“그럼, 난 먼저 가보도록 하지. 내가 있으면 짐싸는데 방해가 될테니 말이야. 클레어양. 왠만한건 다 새로 사면 되니까 간편하게 챙기도록 하세요.”

“호텔로 모시면 되겠습니까?”

“아니, 도버로 가주게.”

영국은 중위도 지역으로 편서풍이 부는 나라이기도 했다. 따라서 혹여 사고가 발생하더라도 영국 국내에 대한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서 동해안쪽에 비밀리에 건설된 원자력 연구 시설이 존재하고 있었다.

한두 번 발키리를 들여보낸다고 해서, 엄청난 성과를 올리리라고는 생각할 수 없었다. 돌아다니는 도청 도촬 카메라라고 봐야 했다. 다만 핵심 연구원들 정도는 파악할 수 있을 터였다.

정말 중요한 연구가 한창 진행중이라면, 몇 달 정도 상주하면서 발키리로 상시 감시를 할 수도 있지만, 그러기엔 얻은 정보를 효과적으로 활용할 인재도, 적당한 사용처도 없었다.

‘어차피 내일까지는 할 일도 없으니.’

조제성은 도버에 자리잡은 전망좋은 호텔에 내린 다음, 렌트용 스포츠카를 빌려서 드라이빙을 가장해서 비밀 연구소에 접근했다.

발키리의 이동 범위는 약간 제한적이었다. 우선 프레이야의 성역은 어디든지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었다. 그리고 계약자와 붙어다니는 것은 언제든 가능했다.

계약자 자체가 어느정도 신성력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었다. 물론 자신에게 붙어있는 발키리에게 명령을 내릴 수 있는 것은 원기를 제외하면 조제성과 장수한 뿐이었다.

그리고 계약자가 성역과 관계없는 곳에서 발키리를 사용할 경우, 반경 1키로 내에서 사용할 수 있었다.

원기의 경우, 여신일 때는 반경 약 일백키로 정도를 사용할 수 있고 원기 자신일 경우엔 수십미터가 고작이었다.

다행히 연구소에서 적당히 떨어진 지점에 주차장이 딸린 카페가 있었다.

“일단 연구실을 좀 둘러보다가 퇴근 시간이 되면, 입구에서 사람들을 잘 살펴봐. 경비원들이 정중하고 신중하게 대하는 사람들이 있을거야. 검문에 그다지 신경쓰지 않는 사람들을 눈여겨 봐둬.”

조제성은 그렇게 말하고 발키리를 들여 보냈다. 사실 위험한 산업 스파이 행위지만, 가진 능력을 유효하게 활용하지 않는 것은 바보라고 생각하는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었다.

사실 사회지도층이라는 사람들의 사고방식이라는 것이 그러했다. 그렇기에 모든 국가들이 ‘도적길드’를 하나 혹은 여러개씩 끌어안고 있는 것이 아니겠는가.

‘자기 앞마당에서 도적질 하다가 호텔 종업원에게 걸려서 국가망신시킨 멍청이들도 종종 있긴 하지만...’

그들이 욕을 먹은 것도 도덕성 보다는 무능함 때문이었다.

[예상외의 사태가 발생했습니다. 위험도가 높다고 판단됩니다.]

보내자 마자, 발키리가 급히 돌아왔다. 그는 카페에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을 알기에 핸드폰을 꺼내들었다. 그래야 혼잣말을 해도 의심받지 않기 때문이었다.

“무슨 일이지?”

[연구소 주변에 성역이 존재했습니다. 돌파하지 못하고 튕겨나왔습니다.]

“성역? 원자로를 개발하는 연구소에?”

[성역을 유지하는 신관은 성역에 침투하고자 하는 발키리를 알아챌 수 있습니다.]

“어느 신인지는 알 수 있나?”

[그건 서로 알 수 없습니다. 프레이야님이 아닌 다른 신의 성역이라는 것만 알수 있습니다. 상대도 마찬가지입니다.]

“빌어먹을.”

그는 재빨리 커피를 마시고 자동차를 급히 몰아서 런던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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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대 발키리가 침입했다고?]

“예, 그렇습니다.”

[미드가르드에서 온건가?]

“그렇겠지요.”

[대체 어느 틈에 들어온거지? 원자력 항모 기술을 노린건가?]

“아마 그럴 것으로 생각됩니다.”

[용의자는 어떻게 되었나? 특정할 수 있나?]

“최근 원자력 항모 개발에 관심을 가진 이들을 대상으로 조사하고 있습니다. 다만 신문에 난지 얼마 되지 않아서, 꽤 많은 이들이 관심을 보인 것으로 압니다. 개중에는 최근 런던을 방문한 아시아 사업가도 있습니다.”

사내는 컴퓨터 모니터에 뜬 조제성의 프로필을 보면서 말했다.

[아시아? 아시아에 미드가르드와 이어지는 통로가 뚫린 건가?]

“그건 무리라고 봅니다. 본격적인 악마 숭배자들은 아시아에는 거의 없으니까요. 젊은 녀석들이 겉보기로 흉내만 내는 정도이니. 우리가 조사한 바로는 이 아시아 사업가는 무기 사업에 관심을 갖고 아프리카쪽 진출을 고려하는 듯 합니다. 용병 쪽에 관심을 갖고 영국을 방문한 것 같습니다. 최근 무기회사 인수합병에 관심이 많은 평범한 사업가로 보입니다. 돈되면 무기라도 취급한다는 속물일 듯 싶군요.”

[그럼 따로 대상이 있는가?]

“일단 프랑스쪽에서 많은 접근 시도가 있었습니다. 프랑스쪽을 좀 조사해 봐야 할 듯 싶습니다.”

[수고해주게. 미드가르드에서 넘어온 존재가 있다면 반드시 멸절시켜야 하네.]

“알겠습니다. 반드시 찾아내서 제거하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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