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잊혀진 신의 세계-60화 (60/497)

60화

조제성은 황급히 한국에 연락을 했다. 그리고 긴급 화상회의를 열게 되었다. 그 덕분일까, 트리아 여제도 게이트를 통해서 지구에 발을 들이게 되었다.

“정말 놀라운 세상이로군요. 다만 공기는 많이 탁하네요.”

“그 점만큼은 부정할 수 없군요. 하지만 이렇게 자유롭고 풍요로운 세상은 미드가르드에선 꿈도 꿀 수 없지요. 정신적으로는 좀 빈곤할지 모르지만 언젠가 미드가르도 이 세계 이상으로 물질적, 정신적으로 풍요로운 세상을 만들 수 있을거라고 봐요. 적어도 수백년은 걸리겠지만.”

원기는 여신 캐릭으로 접속해서 회의에 참석했다. 여신 캐릭을 사용하는 것은 이젠 꽤 자연스러워졌다. 예전에 비하면 식견도 비약적으로 높아졌고, 몸가짐도 의연하고 우아해졌다.

원기의 미드가르드에 대한 이해가 깊어지면서, 자연스럽게 흘러들어오는 여신의 지식도 꽤 늘어난 편이었다.

지식 자체도 인격에 영향을 주는 면이 꽤 큰지라, 원기는 여신 캐릭을 사용할 때의 자신과, 평상시의 자신 사이에 갭을 꽤 느끼게 된 것도 사실이었다.

물론 그것은 꼭 나쁜 것은 아니었다. 여신다운 여신, 자신다운 자신을 어느정도 양립할 수 있게 되었다는 의미도 될 수 있었다.

원기와 여신이 같은 존재라는 사실을 알고있는 이들도, 원기일 때와 여신일 때를 어느정도 구별해서 대하는 것이 자연스러워지고 있었다.

조금 크고 정갈한 회의실의 모니터에 조제성의 모습이 비춰졌다.

“말씀하신대로라면, 미드가르드의 잡신들 중 적어도 하나는 이 세상에 존재한다는 이야기로군요.”

원기, 아니 프레이야의 말에 모두의 안색이 어두워졌다.

“원잠같은 국가 차원에서 중요하게 여겨지는 무기를 개발하는 연구소가 성역이라는 것을 생각하면 무시무시하군요. 그런데 좀 이상하지 않습니까? 현대 문명을 손에 넣은 놈이 있다면 이미 통일이 되었어야 정상이 아닐까요?”

장수한이 의문을 표시했다.

“글쎄요. 적어도 오딘이나 로키는 전쟁을 끝내고 싶은 마음이 없을 겁니다.”

트리아 여제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전대 여신들도 그렇게 생각한 것 같군요.”

프레이야도 여신들의 지식들을 떠올리면서 말했다.

“이 세계에서는 전쟁은 수단에 지나지 않지요. 되도록 전쟁은 피하고 싶어하는 것이고요. 설령 전쟁에 미친 듯한 독재자들이라고 해도, 전쟁없이 무혈로 승리하는 것을 원하지요. 하지만 오딘이나 로키는 말 그대로 전쟁과 투쟁의 신이에요. 전쟁 그 자체가 그들의 목적이라고 볼 수 있을 겁니다.”

“최악이로군요. 저질이라고 해야 할까요.”

장수한은 눈살을 찌푸렸다. 오딘이나 로키는 정말로 질이 안좋았다. 차라리 나폴레옹이나 징기스칸, 히틀러 같은 이들이 나았다.

이들은 탐욕스러운 정복자이지만, 전쟁 자체를 원한 것은 아니었다.

로키는 변덕쟁이에 쾌락주의자였다. 자신의 즐거움을 위해 일관성 없이 인간들을 극한 상황에 던져 놓고 즐기는 극악의 쾌락범죄자라고 할 수 있었다.

오딘은 싸움이야말로 인간의 본성이라고 믿고, 영원히 끝나지 않는 전쟁을 주재하는 주재자였다.

따라서, 그는 승리를 통해 전쟁을 끝맺는 것을 원치 않았다. 오딘이야말로 마음만 먹으면 미드가르드를 통일할 기회가 얼마든지 있었다. 하지만 그렇게 되면 세상은 평화로워지고 모든 미드가르드의 백성들을 책임지고 돌봐야 한다.

그건 오딘이 바라는 것이 아니었다. 전쟁을 통해서 죽이고 약탈함으로써 충족되는 그 무엇이 오딘의 양식이었다.

“현대 무기들을 손에 넣고도, 사용하지 않았을 가능성이 있다는 이야기로군요.”

“오딘이나 로키라면 충분히 가능한 이야기입니다. 다른 하급신들이라면 있을 수 없는 일이지만 말이지요.”

프레이야는 전대 여신들의 지식을 통해 재삼 확인했다. 미드가르드의 양대신, 오딘과 로키를 제외한다면 다른 신들은 그저 필사적으로 싸우고 있었다. 오딘과 로키의 손바닥안에서 놀고 있는 것에 지나지 않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나름대로 자신들의 역량을 최대한 발휘하며, 자신들의 백성들을 번영시키고자 했다.

“아직 확실한 것은 아무것도 없는 듯 합니다. 제가 생각하기엔 오딘이나 로키는 아닐 것 같습니다.”

조제성의 말에 모든 이들의 시선이 모니터로 쏠렸다. 그리고 조제성이 입을 열기를 기다렸다.

“오딘이나 로키가 수천년이나 지구와의 통로를 유지하면서 아무짓도 저지르지 않았다는게 믿겨지지 않습니다. 여신님의 힘을 생각한다면, 이쪽 세계에서 추종자들을 모아서 거대 종교를 만들어 전쟁을 일으켜도 이상할게 없습니다. 아니 전쟁을 일으키지 않는다는게 말이 안되는 거겠지요.”

프레이야는 그의 말에 잠시 생각에 잠겼다.

평범한 한국의 일개 학생으로 자라온 만큼, 신을 자처하는 것도 신자를 만드는 것도 불가능했다. 저항감이 클 수 밖에 없었다. 그가 생각하기에도 미드가르드의 신들은 인간을 넘어서는 존재이긴 하지만, 한낱 정신 생명체(피조물)에 지나지 않았다.

하지만 미드가르드의 영적 존재들은 자신들이 신이라고 굳게 믿고 있었다. 그리고 신자들을 늘려나가는데 망설임이 없었다.

그런 점들을 생각하면, 지금의 상황은 의문점이 많았다.

전대 여신들의 지식을 바탕으로 트리아 여제의 경험, 장수한과 조제성의 추측을 통해서 이야기를 나눠봤지만 사실 뾰족한 답이 나오진 않았다.

확실한 것은 미드가르드의 신 중 최소한 하나가 이 세상에 존재한다는 사실 뿐이었다.

가능성이 높은 추측은 세 가지였다.

첫째는 오딘이나 로키가 이 세상에 마련해 둔 교두보이며, 여차할 때 동원하려고 마련해 둔 비장의 무기라는 것이다.

둘째는 최근 미드가르드에서 이쪽 세상으로 통하는 통로를 발견하여, 점차 세력을 확장 중이다.

그리고 가능성이 적은 것으로는 라그나로크 당시에 이쪽 세상에 남아있던 미드가르드의 신이 있었다는 것이다. 가능성이 별로 없다고 생각되는 이유는 미드가르드의 신들은 신자들을 끌어모을 혹세무민의 수단이 있기 때문이었다.

죽은 자들의 영혼을 잠시 억류할 수 있고, 육체를 만들어서 그 영혼이 다시 머물 수 있게 만들 수 있는 것이다.

그걸 생각한다면, 충분히 신자들을 확보할 수 있었다. 평화와 사랑, 자유와 평등을 이야기하는 그리스도교에 의한 종교 혁신은 막을 수 없었겠지만, 어느정도의 신자를 확보하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만은 아닌 것이다.

종교적 가치를 외면하고, 현세적 가치만을 추구하는 현대라면 더욱 더 커나갈 수 있었다. 그리고 그런 신, 혹은 신들이 남아있었다면 그리스도교가 그렇게 순식간에 서구 세계를 장악할 수는 없었으리라는 것이 장수한과 조제성의 공통적인 의견이었다.

“확실한 것은 첫번째가 되었건, 두번째가 되었건 우리도 현세에서의 힘을 키워나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또 한가지, 최대한 우리의 존재를 노출시키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겠지요.”

조제성이 종합하듯 말했다.

“그건 그렇고 골치아프게 되었군요. 엘프들을 저격총으로 무장시키는 계획은 어떻게 되는 겁니까?”

장수한이 답답함을 감추지 못했다. 현재 조제성이 내정을, 장수한이 엘프들을 중심으로 군사면을 맡고 있었다.

전쟁사, 특히 중세 전쟁사에 대해 잘 알고 있고, 게임에서는 법칙을 쉽게 잘 파악하고 이용할 줄 아는 두뇌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조제성만큼의 천재성을 발휘한다고는 할 수 없었지만, 군사면에서 믿고 맡길 수 있었다.

“만약 그랬다간, 오딘이 핵잠함이나 스텔스 폭격기를 날릴지도 모른다는게 문제지. 다만 더블 배럴 장총 정도는 현재 드워프들이 만드는 것이니 괜찮지 않을까?”

조제성이 호주에 대규모 농장을 가지고 있는 만큼, 질소 비료를 빼돌리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그리고 질소 비료는 굉장히 질좋은 화약 연료였다.

화약의 재료중 가장 귀한 것이 초석, 곧 질산칼륨이었다. 그리고 질산칼륨은 질산암모늄 비료로 충분히 대체될 수 있었다.

“화약과 장총까지만 시도하는 걸로 합시다. 펜릴에게 가져다 줄 조공도 필요한게 사실이니. 티르와 전쟁하도록 유도할 수만 있다면 당분간 시간을 벌 수 있을 겁니다.”

“가장 부작용이 작고 효과적인 수단은 엘프들의 교육입니다. 엘프 남성들도 훈련만 하면 총기류와 기계류는 다룰 수 있을 겁니다. 첨단 무기가 있어도 다룰 줄 아는 인재가 없으면 무용지물이지요.”

장수한은 중동전을 떠올리면서 자신있게 단언했다. 오일머니로 고가의 전투기와 전차를 대거 사들인 중동 국가들이 무기의 질과 양에서 딸리는 이스라엘에게 형편없이 깨진 것은 아주 유명한 일이었다.

오딘이나 로키가 사람을 사람으로 안보는 만큼, 인재 양성 면에선 틀림없이 문제가 있다고 볼 수 있었다.

“중요한 것은 우리를 얼마나 노출시키지 않고 힘을 모을 수 있는가 하는 겁니다. 여러분들도 그 점을 잊지 말아주십시오.”

“알겠습니다. 여신님.”

조제성은 통신을 끊고 한숨을 쉬었다. 너무 정보가 적었다.

‘그렇다고 무턱대고 알아보려고 드는 것도 위험하지. 이런 어느새 해가 뜨기 시작했군. 어떻게 할까?’

조제성은 잠시 망설이다가 피식 웃었다. 어차피 곧 한국으로 귀국할텐데 굳이 시차에 적응할 필요는 없었다.

그리고 잠시 후, 헬기가 도착하고 맥케이 가족이 찾아왔다.

“아, 자네. 딸아이를 치료하려고 이모저모 애쓴 것으로 아는데, 기적처럼 어떤 병이든 치료하는 사람들 이야기는 들어본 적이 없나?”

“예. 기적을 일으킨다는 치유사들의 소문은 많이 들었습니다. 실제로 절 직접 찾아온 사이비들도 많았습니다. 그런 작자들에게 속을 만큼 어리석지는 않습니다.”

용병들은 미신이나 징크스를 잘 믿지만, 동시에 의심도 많은 자들이었다. 전장에서 살아남기 위해선 사람보는 눈이 필수적이었다.

클라이언트의 변덕 하나로 떼죽음을 당하는 일도 많았기 때문이었다.

그도 그런 하이에나 같은 족속들을 알아보는 것만큼은 자신이 있었다.

“하긴 그렇군. 그런 자들이 없을리가 없지.”

“개중에는 좀 황당한 소문도 많았습니다. 인디아나 존스 영화가 히트를 친 덕분인지, 사람들을 즉시 치유시켜주고 영생을 준다는 성배에 대한 소문도 있었지요.”

“나도 그 영화는 좋아했지. 그런데 그런 소문이 돌았나? 웃기긴 웃기는군.”

“예. 제 부하 중에 한 명이 직접 자기 눈으로 성배를 이용해서 잘린 팔을 되살리는 자들을 봤다고 술먹을 때마다 떠들곤 했지요. 그래서 별명이 허풍선이 광신도였습니다.”

“그래? 그거 재밌군.”

조제성은 그의 말을 머리속에 담아 두었다. 대게 그런 소문은 자기 눈으로 직접 봤다는 식으로는 말하지 않기 때문이었다.

누구한테 들었다, 친구 누가 봤다는 이야기가 일반적이었다.

‘그건 그렇고, 성배 타령이라니. 어처구니 없긴 하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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