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3화
총사대의 복장은 장수한의 의견을 반영해서 최대한 눈에 띄는 원색으로 만들어졌다.
고성능의 총기가 대량 보급된 후에는 군복의 색상은 위장색으로 변했다. 적의 눈에 최대한 띄지 않는 것이 군복으로서의 가장 중요한 조건이 되어버린 것이다.
하지만, 고성능 총기가 보급되기 전에는 병사의 사기가 가장 중요했다. 고성능 화기가 잔뜩 보급된 다음에는 왠만한 용기가 없으면 도망가는 것도 쉽지 않아서, 나름 열심히 고개를 땅에 쳐박고 총질을 하게 되는 만큼 사기의 중요성은 과거만큼은 크지 않았다.
반면, 적들과 근접한 거리에서 칼부림을 하는 상황에선 사기만큼 중요한 것이 없었다.
아군이 잔뜩있다는 것은 그만큼 아군의 사기를 높여주고 적군의 사기를 떨구는 효과가 있다.
그렇기에 1차 세계대전까지는 군복이 화려할 수 밖에 없었다. 이 시기까지 군복은 위장색이 아니라, 경계색을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있었다.
무당벌레의 배색인 붉은 색과 검은 색의 조합은 극히 눈에 잘 띄는 색이고 세련된 색으로 영국 근위병들이 지금까지도 입고 있는 색깔이기도 했다.
반대로 프랑스군은 파란 상의에 빨간 바지를 입었는데, 1차 세계대전까지 이 화려한 복장을 했던 탓에 프랑스군의 피해가 유독 컸다는 이야기가 있다.
기병대의 경우엔 1차세계대전 말기까지 화려한 복색을 하고 전투에서 병사들의 사기를 북돋는 역할을 했다.
“트렌치코트는 좀 시기 상조인 것 같아서, 망토로 하긴 했는데.”
장수한이 조금 아쉬운 듯한 표정으로 말했다. 조제성은 장수한의 취미 생활에 대해서 잔소리를 하긴 했지만, 역사적 상식을 토대로 여러가지로 궁리해서 내놓는 의견들은 타당한 면이 많아서 조제성 역시 장수한의 의견을 대부분 따르는 편이었다.
“왠지 순식간에 중세 판타지에서 근대로 넘어온 것 같아요.”
“오빠말이 맞아. 내 활 솜씨도 갑자기 의미가 팍 죽어버린 것 같아. 이제 활은 의미없는거야? 희연 언니의 검술은 어때?”
“글쎄. 난 아직 검술이 쓸모 없어질 것 같지는 않아. 에인페리아들에게 총알이 안통할 수도 있으니까.”
“결국 인간 역사를 바꿔온 건 전쟁이고, 무기니까. 당연한 것일지도 모르지. 그래도 연하의 그 장거리 저격 능력은 큰 의미가 있지. 물론 이 장총으론 무리지만. 아직은 네 활이 훨씬 더 강력하고 스킬도 쓸수 있으니 연사가 가능한 유탄발사기가 나오지 않는 한은 네 활솜씨는 여전히 가치가 있어.”
장수한은 연하를 달래듯 말했다.
“원기야. 난 함께 못가니까, 네가 최고 통솔자가 되는거다. 함께 가는 화물들을 잘 지켜야 한다. 여차하면 폭파시키고. 리디아 전하. 전하께서도 이 리모콘을 가지고 계세요. 이게 안전핀입니다. 뽑고 누르면 마차안의 탄약과 장총은 모두 폭발하게 됩니다. 원기군도 리모콘을 가지고 있으니, 혹시 원기군이 죽으면, 그때 리디아님이 마차를 폭파시키시면 됩니다.”
적의 에인페리아가 아직 잠복중이었다. 마을들을 공격하는게 큰 의미가 없다고 생각되었는지, 잠시 잠잠해진 상태였다. 하지만 식량 수송을 개시하자 습격당하는 식량 수송대가 발생했다.
물론 수송대에는 엘프가 한명도 없었지만, 인간 신관도 중요할 뿐 아니라, 인간을 소모품으로 생각한다는 불평불만이 은근히 깔리고 있었다.
티르는 식량 문제를 악화시키기 위해서 고의로 굴베이그 난민들을 추방했다. 추방당한 난민들은 결국 굴베이그 왕국으로 돌아오지 않을 수 없었고, 식량 문제의 해결이 좀 더 급박해졌다.
물론, 식량 문제만 잘 넘긴다면, 인구 증가가 반드시 나쁜 것은 아니었다.
“얘. 리디아. 너 왜 가슴을 쓸데없이 키운거야? 마치 인간같아서 천박해 보여.”
근위 총사대 부장, 레이니가 말을 걸었다. 리디아가 황제의 딸로 황녀가 되었다고 하지만, 엘프들은 그다지 의식하지 않았다. 세습 황제가 선출된 것도 아니고, 그런 상하 의식은 별로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총사대는 각 대별로 대장 외에 부장을 선임하고 있었다. 각 대의 대장들과 대원들 사이에는 종족의 벽이라는게 존재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원기가 여신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는 것은 신관들 뿐이었다. 연령적으로 신관이 될 수 없었던 총사대원들은 그 비밀을 알지 못했다.
그리고 원기만이 아니라 조제성, 장수한, 그리고 트리아 여제등이 효과적으로 조언을 하면서 정체를 감춰주고 있기 때문에 그녀들은 신관이 된 다음에도 원기의 정체를 알아낼 가능성은 거의 없었다.
조제성과 장수한이 대외적으로 일처리를 하는 것도 원기의 정체를 감춰주기 위한 것이었다.
물론 원기가 아직은 배울게 많은 것도 한 몫을 하고 있었다.
“혹시, 저 인간이 마음에 든거야? 저 오거같이 생긴 추악한 괴물?”
엘프들에게 원기의 근육질 거구 캐릭에 대한 평가는 최악이었다. 나름대로 잘생긴 얼굴에 조금 근육이 심하게 붙은 것 같기는 해도 취향에 따라서는 꽤 좋아보일 수도 있었다.
사실 여자들보다는 남자들에게 인기있을 외모이기는 했다.
하지만 그것은 인간의 기준이고, 엘프의 기준으론 가장 우락부락한 엘프의 범주가 바로 그녀들이었다.
A-컵 정도되는 브라의 필요성 여부가 의심스러운 호리호리한 몸매가 그들이 생각하는 엘프로 봐줄 수 있는 최대치인 것이었다.
TV에 나오는 호리호리한 미남 배우도 그들에겐 오크 수준의 야만인 취급을 받았다.
“레이니. 너무 그러지 마. 3번대 애들은 나름 매력있다고 그러더라.”
“걔네들은 몬스터 좋아하는 애들이니 그렇지. 코만도라는 야만인이 그렇게 좋은가. 난 람보만 봐도 기분이 나빠지던데. 변태들.”
영화를 비롯한 문화의 힘은 정말로 대단한 것이어서, 근육질 남자를 이성으로서 좋아하는 것은 아니지만, 괴수로서라도 좋아하는 엘프들이 생겨난 것은 엄청난 일이었다.
그녀들에겐 아놀드라던가 스텔론이라던가는 고질라나 킹콩, 에일리언이나 프레데터 같은 영화의 비인간 주인공들과 별로 다를 바는 없었지만, 적어도 호의를 품게 된 것만 해도 엄청난 진보였다.
“일단 대장들은 여신님의 계약자 들이야. 너도 장수한 선생님은 좋아하지 않아?”
“아, 그분이야 귀 짧은 엘프니까 그렇지.”
무시무시한 이능 ‘엘프사랑’의 위력이었다. 그들은 장수한을 인간이 아닌 엘프의 하나로 받아들이고 있었다.
그 때문에 엘레니아와 장수한이 사귀는 것에 대해서 별로 어색하게 여기는 이들은 없었다. 물론 엘프들은 짝있는 상대에 대해서는 이성으로서의 관심을 갖지 않지만,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상당한 호의를 가지고 있었다.
물론 장수한 역시 엘프들에 대해 그 이상의 호감을 갖고 있었다.
“그건 그렇고, 1번대 대장한테 호감이 있는 건 맞는건가 보네? 그 인간이 인간 여자처럼 가슴 큰 게 좋다고 해? 너 크기 조종한 거 보니 2번대, 3번대 대장들보다 좀 더 큰 것 같은데?”
“큰게 좋다고는 하지 않으셨어.”
“아하. 어느쪽이든 니즈에 응하시겠다. 머리 썼네. 현실에서도 같은 반이니 작은 쪽이 좋으면 그쪽을 마음에 들어할 것이다?”
“쓸데없는 잡담은 그만하고. 애들 분위기는 어때?”
“음. 서부극 시대라면 쌍권총 정도는 차게 해줘야 되는게 아니냐고 불만들이 있지만, 늘 그렇듯이 시키는데로 잘들 하지.”
엘프들은 상하 서열 의식은 강하지 않지만, 책임자 혹은 지휘자가 있으면 고분고분하게 시키는데로 잘 따르는 것도 특징 중 하나였다.
만약 그런 부분이 없었다면, 험난한 숲속에서 살아갈 수 없을 터였다.
적극적이나 능동적으로 누군가를 괴롭히거나 해치려는 성향은 거의 없지만, 자기를 비롯한 무리를 보호하려는 보호본능은 상당히 강해서, 과잉방어를 서슴치 않는 특성이 있었다.
따라서 흔히 알려진 것보다는 호전적인 면이 있었다. 원래 모성본능이라는 것이 그런 부분이 있다.
왠만한 동물은 인간을 습격하지 않지만, 새끼를 거느린 어미들은 광폭한 것과도 같았다.
“생각보다 강력한 무기들을 좋아하네요.”
“나도 그건 의외였다.”
람보 선호하는 1번대와 코만도 선호하는 3번대는 모두들 힘에다가 많은 스탯을 부여했다. 이유는 중기관총이 멋있다는 이유였다.
특히 3번대의 다수가 좋아하는 무기는 개틀링포였다.
“지구와 연결된 세력이 누구이고, 어느정도 지구에 세력이 있는지 확인할 수 있다면 좋겠군요. 하지만 이쪽에서 탐색하다가 역으로 걸릴 수도 있으니.”
원기가 답답함을 살짝 감추지 못하자, 장수한이 어깨를 두들겼다.
“제성 형님을 믿고, 잘 다녀와. 펜릴이라는 놈이 어떤 놈인지 직접 두눈으로 확인하고 올 기회니까. 교섭은 리디아전하에게 맡기고. 아, 그러고보니 리디아 전하가 너한테 마음이 있는 것 같던데?”
“하하. 설마요. 제가 여신이라고 생각하니까 신경쓰는 거에요. 엘프들은 형만 좋아하는데. 희연이도 연하도 겉도는데 저라고 별 다르겠어요? 신기한 동물보듯하면 다행이고, 오물보듯 꺼리는 애들도 많더라고요. 그런데도 별로 안미워보이는 걸 보면, 예쁘게 생겨서들 그런가?”
“그렇지? 원래 이쁘면 다 용서되는거야. 이 세상을 수십억 엘프로 꽉 채우는게 내 꿈이다.”
“잘해 보세요.”
원기는 그렇게 웃으며 말해주고는 출발신호를 보냈다. 원기 자신을 포함해서 64명의 인원은 많으면 많다고 할 수 있는 인원이었다. 그런 그들을 인솔하는 인솔자로서의 기분은 그리 나쁘진 않았지만 책임감이 느껴지는 것도 사실이었다.
수송용 대형 마차가 두 대, 말이 70마리나 되니 확실히 규모가 컸다. 하지만 캠핑이나 소풍을 가는 것처럼 설레이는 기분이 드는 것도 사실이었다.
“그럼 일주일 후에 봐요.”
“그래. 잘 다녀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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