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잊혀진 신의 세계-65화 (65/497)

65화

“굉장해. 리저드 나이트들이 이렇게 무서울 줄은 몰랐어.”

희연은 상기된 표정으로 말했다. 60마리의 리자드 나이트가 총공격을 해왔으니, 당연했다.

실력도 실력이지만, 초기 보스이자 가장 공들인 보스다운 임팩트있는 외모는 적으로 돌리면 살벌하기 짝이 없었다.

예전엔 솔로 플레이로 간단히 잡던 몹이지만, 지금은 레벨 10짜리 플레이어들이 공대를 구성해서 가까쓰로 잡는 최악의 몹이었다. 마법이나 스킬은 없지만 레벨 당 기본 스펙과 외모는 최고 클래스였다.

레벨 30까지 공들여 키운 리자드 나이트가 60마리이니, 전력으로 따져도 결코 간과할 수 없는 수준이었다.

“예전엔 몬스터들이 바보 같아서 별 쓸모 없었는데, 지금 보니 30짜리들도 장난이 아니네. 블러드라인의 몬스터나 NPC들을 이쪽 세상에 데리고 오면 엄청난 전력이 되지 않을까?”

희연은 약간의 흥분을 감추지 못하며 말했다. 운동을 좋아하는 소녀 답게 스릴을 즐기는 부분이 있었다.

‘아니, 공포영화를 즐기던가?’

원기는 피식 웃으면서 고개를 저었다.

“유감이지만, NPC들은 이 세상에 데려다 놔도 아무 쓸모가 없어.”

“왜?”

“걔네들은 지능이 없거든. 그냥 배경에 지나지 않는 것들이야. 너 식당에서 밥먹는 NPC가 다른 일 하러 가는 거 본적 있어?”

원기의 반문에 희연이 뭔가를 알아차린 듯 했다. 다만, 명확하게 이해하지는 못했다.

블러드 라인의 시간은 현실과 똑같은 24시간이었고, 낮과 밤도 똑같았다. 다만 3개의 대륙으로 나뉘어 있어서, 오전 12시에 오전 12시인 대륙이 있고, 오전 8시인 대륙과 오후 4시인 대륙이 있었다. 그리고 경도에 따라서 세부적으로 시간이 나뉘었기 때문에, 낮 시간에 밤시간 플레이를 하고 싶으면 게임속 행성 반대편으로 이동해서 게임하면 되도록 되어 있었다.

식당에서 밥먹는 NPC는 아침에 식당이 문을 열면 나타나서 줄기차게 밥을 먹다가, 밤에 식당이 문을 닫으면 사라진다.

거리에서 길을 걷는 NPC는 줄기차게 길을 걸으면서 오가다가 밤이 되면 사라지는 것이다.

“내가 읽은 게임 소설에서는 NPC들이 말도 하고 생각도 하고...”

희연은 자신이 가진 게임적 능력과 인간을 초월한 능력을 효과적으로 활용하기 위해서 다양한 판타지, 무협 소설과 게임 소설들을 섭렵한 바 있었다.

“그건 뭐, 인공 영혼인거지. 감정도 있고 자유의지도 있고 생활도 하는. 적어도 현재 존재하는 게임 중에는 그 수준의 물건은 없어. 게임 속에서 그렇게 인간처럼 반응하는 인공지능이 있다면, 철인 아톰이나 안드로이드들이 쏟아져 나왔어야지. 한명 분의 자유의지나 감정은 커녕 의사소통도 제대로 안되는데, 수억명 분을 게임 속에서 구현한다는건 적어도 현용 기계로는 불가능해.”

“그럼 NPC들이 말하거나 움직이는건....”

“프로그래머들이 다 지정해 둔데로만 움직이는거야. 내가 하는 운명이라는 게임도 마찬가지지. 백성들의 숫자, 만족도, 행복, 충성도 등은 모두 숫자로 정해져 있어. 그래서 내가 마을로 내려가 보면, 인구 숫자에 맞춰서 NPC가 적당히 형성되서 호감도에 맞춰서 적당히 정해진 말들을 떠드는 것에 불과해. 엄청 허무하지만 그래도 난 그게 좋았지.”

원기는 그렇게 말하면서 조금은 침울해졌다. 그런 허무함에도 불구하고 운명이라는 게임에만 매달렸던 기억이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만약 운명속 게임의 백성들이 정말 희노애락을 갖고 생활하는 존재들이었다면, 허무한 느낌은 들지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그 순간, 원기는 깨달았다.

이 세계가 그때의 자신이 꿈꾸던 허무하지 않은 세계라는 것을.

가족의 안위를 위하는 조제성이나, 엘프라는 종족이 그저 좋은 장수한과는 달랐다. 엘프들이 말을 잘듣고, 유용한 종족이라지만 원기는 인간들을 좋아했다.

때로는 배신하기도 하고 때로는 타락하기도 하고, 그러면서도 서로 돕고 사랑할 줄 아는 그런 인간들 자체를 좋아했다.

‘난 지금까지 대체 뭘 생각해 온거지?’

이들은 게임상 NPC처럼 단지 숫자에 지나는 존재가 아니었다. 하나 하나가 각자 소중한 삶을 가진 존재였다. 그리고 이 세계의 주인들이기도 했다.

장수한과 조제성은 믿고 맡길 수 있는 인재들이었다. 이 세계의 주민들이 어떻게 사는지, 그리고 어떻게 행복하게 만들 수 있는지를 돌아볼 시간 정도는 만들 수 있을 터였다.

“그럼 몬스터의 대군이나, 군대 같은 건 어떨까?”

“그건 인공지능상 무리야. 몬스터들이 적과 아군을 식별할 수 있을 것 같아?”

“게임 상에서는 식별 하는 것 같은데.”

“게임상에는 플레이어인지, 아군인지 적군인지가 모두 지정되어 있으니까 가능하지. 이쪽 세상에 와서는 그게 불가능해. 쟤네들이 적과 아군을 판단할 지능이 있을까? 겨우 테이머의 명령을 알아듣는게 한계인데? 몬스터 잘못 사용하면 아군들을 죽일거야. 주인이 공격하는 적, 주인을 공격하는 적 정도만 구별할 수 있을걸. 그래서야 한 마리 조종하는게 한계지. 그나마도 난전이 되면 안통할테고.”

“그럼, 지금 전투도 위험한 거 아냐?”

“아, 그렇지는 않아. 플레이어들끼리는 파티를 맺을 수 있으니까. 그리고 공대를 조직할 수 있고. 같은 파티, 같은 공대원은 아군으로 인식할 수 있으니까 적어도 아군 뒤통수를 치진 않지.”

“그럼 공대 최대인원인 백 명이 한계겠네.”

“그렇지. 네가 말한 것들은 이미 초기에 제성 사장님이랑 수한형이랑 같이 이야기가 되었던 거야. 너랑 연하는 게임하고 안친하니 그런 내부사정까지는 모르지.”

장사꾼 흉내내는 NPC와 장사꾼의 구별은 게임의 내부 구조를 모르는 사람들은 쉽게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기도 했다.

게임 속에서 생활하는 것 처럼 보이는 NPC들은 실제로 생활하는게 아니라, 지정된 연기를 반복하는 병풍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또 카레 시간이로군. 질리지도 않나. 엘프들 고기 정말 좋아하네.”

희연이 식사 준비하는 모습을 보면서 쓴 웃음을 지었다. 전투 훈련이 끝나고 사냥꾼 복장으로 갈아입은 엘프들 몇이 활을 들고 사방으로 떠났다. 군복은 너무 눈에 띄기 때문에 사냥에 쓸 수는 없었다.

“난 풀만 넣은 풀국보단 고기가 듬뿍 들어간 카레가 낫다. 물론 돌아가면 당분간 카레는 쳐다도 안볼 것 같긴 하지만. 그건 그렇고 연하 넌 사냥 안나가냐?”

“포기에요. 그냥 쉴래요.”

연하는 며칠 간 엘프들과 함께 사냥을 나갔다. 활 솜씨는 그녀가 최강이었지만, 사냥은 활솜씨로만 되는 것은 아니었다. 숨은 동물들을 찾아내기 위해서는 눈썰미도 필요하지만, 동물들을 추적하는 능력과 생태를 이해해야 했다. 그리고 연하는 활솜씨를 제외하면 숲에서의 이동 능력, 은신능력, 동물을 찾아내는 능력 모두가 바닥이었다.

처음엔 오기를 좀 부렸지만, 곧 그럴수록 자존심만 더 상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엘프들의 동물 사냥은 야영에서 쓸 저녁식사를 준비한다는 의미도 있지만, 야영지 주변을 정찰하는 의미도 있었다. 꽤 넓은 반경을 수색하는 만큼, 대규모로 야습을 받을 염려를 줄일 수 있었다.

‘문제는 적이 소수 정예라는 거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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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번대 소속 엘프 티레이는 쓰러진 암사슴의 목을 쳤다. 그리고 사슴의 목을 등에 짊어진 배낭에 넣었다.

이미 몇차례의 카레 테스트 결과 사슴의 뇌가 꽤 카레에 어울리는 재료라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이었다. 희연이나 연하가 알면 난리가 났을지 모르지만, 모르는게 약이었다.

물론 몸통을 버릴 생각은 없었다. 하지만 그녀의 목표는 사냥만이 아니었다. 적어도 앞으로 4-5키로 가량은 더 정찰을 하고 돌아올 필요가 있었다.

돌아와도 사슴 몸통이 남아있으면, 가져가겠지만 야생 동물이 먹게 된다면 어쩔 수 없는 것이라고 여겼다. 그래서 가장 맛있는 부위인 머리를 챙긴 것이었다.

‘누구지?’

“여, 안녕.”

티레이는 한 인간 여성이 걸어오는 것을 발견했다.

‘인간? 왜 아는 척 하는 거지?’

그녀는 경계하려고 활을 들었지만, 자세히 보니 상대는 적이 아니었다. 아군이었다.

‘엘프였네. 몇번대 소속인지까지는 기억 안나네.’

그녀는 활을 내렸다. 자신이 왜 상대를 인간이라고 생각했는지 기억하지 못했다. 남서쪽 방향으로는 자신 말고는 정찰을 오지 않았다는 사실도 떠올리지 못했다.

“본대에 합류하려고 하는데, 방향을 잊었어. 어느쪽이지?”

그 순간 티레이는 정신을 차렸다. 엘프들은 결코 숲에서 길을 잃지 않는다.

“넌 누구지?”

그녀는 활을 던졌다. 상대는 이미 활로 상대할 거리가 아니라는 사실을 판단하고 선택한 행동이었다. 동시에 사냥용 정글도를 휘둘렀다. 하지만 상대의 동작은 그보다 빨랐다. 상대는 재빨리 그녀의 뒤로 돌아가서 티레이의 목을 땄다.

“뭣 때문에 실패한거지?”

“엘프가 숲속에서 길을 잃지 않는다는건 상식이다.”

무뚝뚝해 보이는 거구의 사내가 모습을 드러내며 말했다.

“에? 그런거야? 정말 재미없는 놈들이네.”

장난기와 요염함을 존재 자체로 표현하는 듯한 여자가 재미없다는 듯이 말했다.

“어쨌든 이런 식으로 죽여 나가면 되는 거지? 먼저 죽일 건 리디아 황녀인가? 엘프 주제에 황녀라니 웃기고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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