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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혀진 신의 세계-67화 (67/497)

67화

“홀드!”

엘프들이 하나같이 소리를 맞춰서 외쳤다. 그러자, 리자드맨들이 배치한 자리에 꼼짝하지 않고 섰다.

제 자리를 지키면서 공격범위에 들어오는 적을 무조건 공격하는 명령이었다. 물론, 이 ‘적’이라는 것은 ‘파티 혹은 공대원’외의 모든 것이 된다.

“사격 진형을 갖춰라!”

리디아의 지시에 따라서, 엘프들이 2인 1조로 자리잡았다. 한 명은 앞 열에, 한명은 후열에 서서 앞 열의 엘프가 시체들을 겨누었다.

장수한이 만든 진형이었다. 엘프 둘에 총 세 자루. 한명이 쏘고 왼쪽에 내려놓으면서 오른쪽 총을 들어올려서 겨눠서 사격한다. 그 사이에 뒷열 엘프는 자신이 장전한 총알을 앞열 엘프의 오른쪽에 놓고, 왼쪽에 내려놓은 총을 집어들어 장전하는 것이다.

장전에 시간이 걸리는 머스킷 총을 사용하던 시기의 전술을 조금 바꾼 형태라고 볼 수 있었다. 어차피 단발 장총이라, 장전에 걸리는 시간을 감안해서 만든 것이었다.

연하는 그런 엘프들의 모습을 흘낏 보고는 적을 향해 활을 겨눴다.

그녀의 표적은 오우거와 트롤 같은 대형 몬스터였다. 멀리서 지켜보고 있는 에인페리아 두명도 그녀의 사정거리 내에 들어오긴 했지만, 그녀는 무시했다. 가능한 효과적으로 대형 몹을 솎아내는게 그녀의 임무였다.

“익스플로젼 애로”

그녀는 짧게 스킬명만 외치고, 화살을 날려보냈다. 정확히 화살에 명중한 오우거의 시체는 뒤로 넘어갔고 그 뒤로 폭발했다.

좀비는 불에 약하다는 것이 일반적으로 알려진 상식 비슷하지만, 실제로는 불에 약한 것은 아니다. 불에 대한 저항력은 보통 인간과 비슷하거나 오히려 강하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다만 불에 약하다는 것은, 여타 공격에 강해졌기 때문에 그렇게 말해지는 것 뿐이었다. 좀비는 베고 찌르는 것에 대해서 상당히 강한 내성을 보이게 되는 것이다. 반면 불에는 그다지 내성이 생기지 않으니 상대적으로 불에 약하다고 할 수 있었다.

그리고 에인페리아가 일으킨 시체들은 좀비처럼 강인한 것은 아니었다. 충격을 입거나 부상을 입으면 곧 움직이지 못하게 되었다.

“발사!”

엘프들이 일제히 사격을 가하자, 가까운 시체들부터 머리에 총알 구멍이 생기면서 일제히 실끊어진 인형처럼 늘어졌다. 상대적으로 피해가 적은 소와 말등 짐승형 시체들이 리자드 나이트들과 격돌했지만 리자드 나이트들은 굳건하게 꼬리로 땅을 딛고 방패로 돌진을 막아낸 다음 곡도인 팰시온으로 짐승형 시체들을 난도질했다.

“아무래도 네가 움직여야 할 것 같다.”

그리날은 시체들이 쓰러지는 모습을 보면서 눈살을 찌푸렸다. 리자드 나이트의 장벽을 넘지 못하고 차례대로 총에 쓰러지는 시체들의 모습을 보면, 이대로는 아무런 피해도 주지 못하고 시체들이 쓰러질 수 있었다.

물론 시체들의 전력 따윈 그다지 염두에 두고 있지 않지만, 엘프들을 남김없이 죽이기 위해선 꼭 필요하다고 볼 수 있었다.

승리를 위해서라기 보다는 학살을 위한 도구라고 할 수 있었다.

“알겠소.”

중갑을 걸친 에인페리아가 거구를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의 능력은 생명력 강화였다. 뼈가 단단해지며, 가죽이 질겨지는 특성을 갖고 있었다. 든든한 중갑에 단단한 골격, 질긴 피부는 전장에서 적의 공격을 무시하고 적진을 돌파하는데 큰 역할을 했다.

그가 무시무시한 기세로 돌진하는 모습을 연하가 발견하고는 활을 겨눴다. 마침 오우거와 트롤 등 위협적인 몬스터의 시체들이 더이상 눈에 띄지 않던 참이었다.

그녀는 관통력이 가장 뛰어난 뇌전의 화살을 힘껏 날렸다.

빠직!

파란 섬광을 발하면서, 그녀가 날린 화살은 상대 에인페리아의 앞에서 튕겨 나갔다. 일종의 실드가 그의 앞에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은 쉽게 알 수 있었다.

‘뚫을 수 있는 실드이긴 하지만...’

전에 등장했던 에인페리아 로나스처럼 날아오는 무기 완전 무효화의 최상급 아티팩트는 아니었다. 충분히 여러발 맞추면 데미지를 줄 수 있는 타입의 보호막이라고 할 수 있었다.

프로토스의 보호막처럼, 시간이 되면 회복되지만 데미지가 누적되면 사라지는 종류의 아티팩트였다.

하지만 연하는 미련을 버렸다. 몇 발 혹은 몇십 발이 필요할지 모르는 상대보다는 그녀가 제거할 수 있는 적들이 더 많았다.

쾅!

굉음과 함께 리자드 나이트 다섯 마리가 공중에 붕 떠서 나가 떨어졌다. 그리고 그 가운데 두 마리는 즉시 사라져 버렸다. 동시에 시체들은 에인페리아의 뒤를 따라서 리자드 나이트들을 지나쳐서 엘프들에게 쇄도했다.

“산개하라!”

리디아는 그렇게 외치며, 지휘용 검을 허리에 차고 장총을 집어 들고 몸을 날렸다. 에인페리아가 엘프들의 진형을 덥쳤지만, 엘프들은 모두 몸을 피했다.

엘프들의 무서움은 무시무시할 정도의 기동성에 있었다. 소리로 장애물의 파악이 가능한 그들은 귀를 쫑긋쫑긋 움직이면서 백스텝으로 에인페리아의 돌진을 피했다. 그와 함께 장총을 장진하고는 겨냥해서 에인페리아를 향해 집중 사격을 했다.

‘정말 멋지군.’

원기는 감탄했다. 원기의 레벨은 엘프들보다 훨씬 높지만, 저렇게 상대 코앞에서 뒷걸음질치면서 장전하고 면상에다가 총알을 쏴대는 짓은 도저히 꿈도 꿀 수 없었다.

엘프들의 기예라고도 할 수 있었다.

보호막은 순식간에 사라지고, 총알이 그의 면상에 쏟아졌지만, 그의 얼굴가죽을 뚫고 상처를 입히는 총알은 없었다.

눈에 맞으면 어떨지 모르지만, 과연 에인페리아도 눈만큼은 손으로 보호하며 달리고 있었다.

‘굉장하군.’

원기는 엘프들에게 분산해서 다른 타겟을 공격하도록 지시한 다음, 거구의 에인페리아와 맞섰다.

쿵!

코뿔소처럼 지축을 울리며 달려오던 에인페리아의 기세는 과연 무서웠지만, 원기의 힘이 더 위였다.

바닥에 긴 선을 그으면서 3미터 가량 밀렸지만, 상대를 멈추는게 가능했다. 키는 원기가 더 컸지만, 몸무게는 상대가 훨씬 많이 나갈 듯 했다.

“크아아!”

“괴물처럼 울부짖지는 말아줘. 어차피 난 힘겨루기를 할 생각은 없어.”

그렇게 말하면서 원기는 상대의 노출된 팔꿈치의 뼈 위를 힘껏 눌렀다. 그리고 그 순간 무시무시한 비명 소리가 전장에 울려 퍼졌다.

‘또 한건 했군.’

희연은 내심 미소를 지었다. 그녀는 무시무시한 기세로 시신들을 베며 상대방의 리더로 보이는 창잡이 에인페리아를 향해 달려 들었다.

“왔군. 프레이야의 개. 여보. 난 티르님의 위대한 창. 그리날이라고 한다.”

“아, 젠장. 또 여보야? 차라리 희연이라고 불러.”

“히언? 그게 네 진짜 이름인가?”

“그래. 명함 교환할 것도 아니니, 시작해 볼까.”

희연은 재빠르게 상대의 우측 하단을 노리고 낮게 움직여 들어갔다. 레스링의 태클을 하듯 낮게 지면을 미끄러지듯 움직였다. 하지만 상대의 창이 그녀의 목을 노리고 날아오자, 희연은 검을 뿌려서 창을 걷어내며 몸을 피할 수 밖에 없었다.

쨍.

그녀는 손에서 느껴지는 감촉으로 검에 금이 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일본도의 가장 큰 단점, 부러지기 쉽고 깨지기 쉽다는 사실이었다. 그녀는 잠시 망설였지만, 곧 과감하게 칼을 던져 버렸다. 금이 간 칼로 싸울 상대는 아니었다.

어차피 검은 등에 두자루, 허리에 두자루 남아 있었다. 다섯 자루를 늘 상비해서 싸우는 만큼 여분은 충분했다.

다시 호흡을 고르고, 틈을 노려서 희연은 신속하게 상대의 머리를 노리고 하늘로 뛰어 올랐다. 목을 노린 그녀의 일격이었지만, 그리날은 침착하게 창대를 이용해서 막고, 그녀의 심장을 향해서 창날을 찔러왔다.

파삭!

희연은 절묘한 타이밍으로 손잡이 부분을 이용해서 창날의 공격을 쳐냈다. 하지만 그와 함께 손잡이 부분이 부서져 나갔다.

‘이런, 이번에도 또 못쓰게 되어 버렸군.’

날은 무사해도 손잡이 부분이 으스러진 이상, 이번 전투에서 사용하기는 무리였다. 그녀는 힘껏 휘둘렀다. 그러자 검날이 상대방을 향해 무서운 기세로 날아갔지만, 그리날은 머리를 살짝 비틀어서 가볍게 피했다.

‘무시무시한 여유로군.’

희연은 검이 두개째 날아가자, 긴장감을 갖게 되었다. 허리에 찬 검집은 모두 셋, 이번에 두자루가 날아가서 검집만 남은게 둘이었다.

등에 찬 검은 코타치, 그녀가 사용하는 카타나보다 짧고 가벼운 검이었다.

재 격돌.

이번에도 검이 부서졌다. 그리고 희연은 확실히 깨달았다. 상대방은 고의적으로 자신의 무기를 노리고 있었다.

“변변한 아티팩트가 없는 에인페리아의 비극이지. 안그런가?”

그는 깔끔한 마스크에 묘하게 어울리는 교만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티르를 모시는 에인페리아 중 최강을 자랑하는 만큼 자연스러운 자부심이라고 해도 좋을 터였다.

‘하지만 실력은 그리 뛰어나지 않아.’

희연은 냉정하게 평가했다. 상대의 창술은 분명 뛰어나지만, 최고라고 하기엔 뭔가 부족했다.

그리고 그 이유는 간단했다. 뛰어난 라이벌, 숙적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었다.

일본 검도에서 역사에 남은 유명한 검사들이 많지만, 실제로 그들이 현대의 대회에 참여한다면 대부분 초반 예선 패퇴일거라고 보는 이들이 있었다.

그 이유는 과거의 인물들은 자기 지역에서 무적을 자랑했지만, 노는 물이 좁았다. 전국 각지의 천재들이 매년 한자리에 모여서 대회를 벌이는 그런 것이 가능할 리가 없었다.

결국 현대에 들어와서 무술은 엄청나게 발전한 것이라고 볼 수 있었다. 적어도 기교 면에서는 엄청난 발전을 했다.

에인페리아로 수백년을 살아왔다고 해도, 노는 물이 수준이 얕은 것으니 발전하기가 쉽지는 않았을 터였다.

그리고 객관적으로 볼때, 에인페리아의 능력은 만렙 캐릭보다 조금 떨어지는 수준이었다.

그리고 만렙 캐릭은 자신이 원하는데로 스타일에 맞춰서 스펙을 분배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었다. 희연의 스피드도 기교도 상대보다 월등히 위였다. 하지만 창이라는 무기의 장점, 긴 사정거리와 아티팩트로서의 강력함이 겹쳐지니, 희연으로서는 쉽게 공략할 수가 없을 뿐이었다.

‘제대로 부딛칠 수가 없으니, 방법이 없군.’

“그럼, 이번엔 내가 가지.”

그리날은 미소를 지으며 앞으로 뛰어들며 횡으로 창을 휘둘렀다. 희연은 부득이하게 마지막 남은 코다치를 이용해서 창을 밀어내고 교묘하게 공중제비를 해서 몸을 피했다.

하지만, 결국 마지막 코다치도 부서져 버렸다. 남은 것은 비장의 무기로 남겨둔 카타나 한자루 뿐이었다.

‘역시 생각대로야.’

상대의 창에는 무기 파괴의 능력이 부여된 것이 틀림없다고 희연은 판단했다. 창날도 아니고 창대와 닿았을 뿐이었다. 그녀는 최대한 힘을 죽여서 도를 보호하며 부드럽게 움직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무기는 더이상 쓸 수 없는 물건이 되어버렸다.

‘무협 소설에선 나뭇가지에도 기를 불어넣어서 상대의 검을 잘라버리던데.’

그녀는 심한 아쉬움을 느꼈다. 대단히 예리하지만 그만큼 섬세해서 자칫하면 잘 부러져 버리는 무기를 사용하는 검사의 비애라고도 할 수 있었다.

‘검기든 검강이든 좋으니, 내 검을 보호해 주기만 한다면...’

그녀가 망설이는 순간, 다시 무시무시한 기세로 창의 연속 공격이 들어왔다. 희연은 피하는 것이 무리라는 사실을 직감하고 검을 뽑아서 상대의 공격을 막았다.

캉!

왠지 듣기 좋은 음색이 울려퍼졌다. 도가 깨져 나가는 그런 소리와는 달랐다. 희연은 자신의 검을 바라보았다. 검에서 순백의 빛이 발해지고 있었다.

“호오. 이제보니 제법 좋은 아티팩트를 가지고 있었군.”

그리날은 그렇게 여유있는 듯이 말했지만, 안색은 그리 밝지 못했다. 이미 수차례 검을 나눈 사이였다. 서로의 역량을 모른다면, 그것은 거짓말이었다.

“그러네. 그리고 넌 죽었네?”

희연은 그렇게 말하고는 그리날을 무자비하게 다져놓았다.

“아, 안심해. 칼등치기야. 죽이진 않아. 득템해야 되거든.”

그리날은 득템이라는 말을 처음 들었지만, 그 의미는 대충 알 수 있었다. 그녀가 노리는 것이 죽음의 창이라는 사실이었다. 그의 눈은 절망으로 물들었다. 그는 이를 악물고 말했다.

“그 무기는 내가 아니면, 쓸 수 없는 무기다. 어리석은 것들.”

“뭐, 그럼 방에 장식이라도 해둘테니까, 그것까지 걱정해줄 필요는 없어.”

그녀는 그렇게 말하며 창을 집어들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엘프들의 손실은 당장 보이는 것이 없었다. 전력질주보다 빠르게 백스텝을 밟으며 총질해대는 모습을 보니, 피해가 날 상황은 아닌 것으로 보였다. 리자드 나이트들은 절반 이하로 줄었지만, 여전히 몸빵이랄까, 장애물 역할은 충실히 해주고 있었다.

그리고 적의 터프한 에인페리아는 그 터프함때문에 아직도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원기는 질렸다는 감정과 안쓰럽다는 감정을 함께 느끼면서 그가 까무러치기만 기다리고 있었다.

‘끝났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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