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8화
희연은 자신에게 일어난 일이 정확히 무슨 일인지 알아내길 바랐다. 소설처럼 소드마스터가 된 것이라고는 생각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녀는 특별한 호흡법도 배워본 적 없고, 내공이나 마나 같은 것을 느껴본 적도 없었다.
그런 능력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은 했지만, 생길거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그녀는 나뭇가지를 하나 손에 들었다. 곧 은은한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기운을 빼는 느낌으로 집중력을 푸니, 곧 빛이 사라졌다.
‘검에만 적용되는 것은 아닌 것 같은데.’
그녀는 빛을 발하는 나뭇가지로 눈 앞에 보이는 가는 나무 줄기를 후려쳤다. 나무는 흔들리긴 했지만 잘리지는 않았다.
‘음, 확실히 소설에서 보던 검기 같은 건 아냐. 그냥 빛만 나는 거 아닐까?’
그녀는 그렇게 생각하며, 나뭇가지를 휘어 보았다. 생각보다 많이 휘어졌지만 꺾이지는 않았다.
‘호오. 생각보다 질긴데?’
좀 더 힘을 줘서 휘게 만들자, 곧 뚝 부러졌다.
‘완전히 무적으로 만드는건 아닌 것 같네.’
그녀가 손에 쥔 물건을 빛나게 만드는 능력은 보기엔 살벌하지만, 실제로는 그냥 빛이 나는 것에다가 내구력이 상승했다는 사실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녀는 죽음의 창을 왼 손에 쥐었다. 그리고 오른 손에 쥔 나뭇가지로 톡 건드렸다. 그러자 나뭇가지가 바스러져버렸다.
죽음의 창은 티르의 손에 의해서 강화되면서, 무구건 방구건 닿는 것에 치명타에 가까운 데미지를 주는 특성을 가지고 있었다.
그녀는 다시 나뭇가지를 쥐고 이번엔 빛을 발하게 만든 다음, 죽음의 창과 부딛쳤다. 그러자, 나뭇가지는 멀쩡했다.
몇번 더 힘껏 부딛치자, 결국 나무는 꺾이고 말았다. 하지만 그 꺾이는데 필요한 정도의 타격은 죽음의 창이나 보통 나무토막이나 큰 차이가 없었다.
‘무기에서 발현되는 빛은 무기 자체의 성질을 바꾸거나 위력을 높이지는 않는군. 대신에 무기의 내구도를 올려주고, 무기를 파괴하는 종류의 신성력이랄까, 특수 능력이 통하지 않게 하는 건가?’
희연은 새롭게 눈을 뜬 자신의 특수능력이 대단히 마음에 들었다. 일본도는 펜싱검보다는 실전적인 성능이 뛰어나기는 하지만, 근본적으로는 결투용 무기에 가까웠다.
연철과 강철을 섞어서 장인이 공들여 만든 예술품으로서, 내구성 자체를 극한까지 올렸다고 일컬어졌다.
하지만, 지나치게 날카롭고 얇다는 한계는 벗어나지 못했다. 제대로 쓰면 후라이팬도 자르지만, 빗맞으면 생각보다 쉽게 부러지는 한계가 있었다.
갑옷을 입은 기사를 상대할 때, 의외로 칼이 망가지기 쉽다는 점이 희연의 고민거리였다. 하지만 이제 그 고민거리는 해결된 것이나 다름없었다.
적어도 세네 배 이상 무기의 내구도가 올라갈 것이고, 죽음의 창처럼 무기를 파괴하는 아티팩트에도 견딜 수 있을 터였다.
“후훗.”
그녀는 무의식 중에 살짝 소리를 내서 웃었다.
“아주 좋아 죽는구만, 좋아 죽어. 남들은 탄피 줍고 있느라 정신 없는데 말이야.”
원기는 멀리서 희연을 보면서 피식 웃었다. 깨달음이랄건 없지만, 모처럼 자각한 능력이니 감각이 잊혀지기 전에 능력을 재확인해둘 필요는 있을 터였다.
“음, 이정도 챙겼으면 되지 않아요?”
연하가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 진형을 갖추고 적과 싸울 당시에는 장전수들이 탄피들을 모조리 챙겼다. 덕분에 사용한 탄피의 삼분의 일 정도는 찾을 필요도 없었다. 하지만 진형이 흩어지고 산개하면서 탄피가 이곳 저곳에 흩어질 수 밖에 없었다. 전장 이곳 저곳에 시체가 널려있는 상황에서 탄피를 챙겨야 하는 것은 고역이 아닐 수 없었다. 가장 안좋은 점은 널린 시체가 갓만들어진 따끈따끈한 것이 아니라, 부패상태가 아주 다양한 시체들이라는 사실이었다.
레어부터 웰던까지 아주 골고루 있어서, 냄새도 단지 지독할 뿐 아니라, 아주 풍부했다.
“얼마나 못찾은거지?”
“다섯 발 정도에요. 엘프들 참 대단하네요. 너무 우등생스러워서 짜증날 정도에요.”
연하는 그렇게 말하며 투덜댔다. 지나치게 성실한데다가 고분고분한 그들의 수동적인 진지함은 나름 스포츠 소녀로 권위적인 사회에 길들여진 연하마저 불편하게 만들 정도였다.
“어쩌겠냐. 탄피 회수는 중요한 작업인걸.”
원기는 어깨를 으쓱거렸다.
금속탄피의 제작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 적어도 이 세계에서 만들 재주가 있다면, 드워프 정도였다. 물론 원기 일행이 가진 것은 드워프제보다 훨씬 뛰어난 공장제(그것도 중국산)이었다.
AK-47에 사용되는 7.62미리 탄에 질소 비료를 기본으로 제작한 저질 탄약을 집어넣은 것이 현재 사용하고 있는 장총이었다.
7.62미리 탄은 AK-47덕분에 세계 각지의 암시장에서 구하기 가장 쉬운 탄환이기도 했다.
탄피가 있으면 화약을 채우고 다시 총알로 재생시킬 수 있었다. 총알 생산이 거의 불가능한 미드가르드에선 탄피 하나를 분실하면, 총알 한발로 되돌아 올 수 있는 것이다.
군대에서 탄피를 철저히 관리하는 것도 그때문이다. 미군들이야, 총알 회수할 필요가 별로 없다. 어차피 민간에도 총알이 넘쳐나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새어나간 탄피가 민간에서 범죄용 총알로 재생될 우려가 없지 않기 때문에 필사적으로 탄피관리를 하는 것이다.
“한 시간만 더 탐색한다. 4번대, 아니 근위총사대는 정찰겸 새로운 야영지를 확보한다.”
다섯 발 정도의 탄피라면 무시해도 되겠지만, 할 수 있는 만큼은 찾아보는게 나을 거라고 판단한 원기는 그렇게 명령을 내렸다.
날은 이미 어두워졌지만, 엘프들의 밤눈은 상당히 밝아서 탄피 정도는 찾을 수 있었다.
그때 원기의 눈에 이상한 것이 들어왔다. 엘프 몇이 시신을 마차에 싣는 것이었다. 젊은 여성의 시신과 오우거의 시신이었다. 뭔가 이유가 있을거라는 생각이 머리를 스쳤지만, 왠지 그 이유를 모르고 지나쳐서는 안될거라는 느낌이 등골을 스쳤다.
“잠깐만! 왜 그 시체들을 챙긴거지?”
“이 시체들 가운데 제일 신선해서요. 사냥팀이 급히 귀환해서 저녁 재료가 부족하거든요.”
근위 총사대 엘프는 아주 담담하게 말했다. 시신에 대한 존중 같은 건 전혀 개의치않는 그들이었지만, 이건 시신의 존중 문제를 살짝 넘어섰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단, 인간과 공존하기 위해서, 규칙을 내린다. 절대 인간과 닮은 이족 보행 포유류와 몬스터는 먹지 않는다. 인간들은 인간을 잡아먹는 것을 극히 혐오스럽게 생각하니까.”
“인간이 인간을 먹는게 이상한가요?”
엘프가 이상한 듯 반문했다. 원기는 순간적으로 할 말을 잃었다. 미드가르드에선 인간이 인간을 잡아먹는 경우가 없지 않았다. 아니 적지 않다고 말하는 것이 옳을 것이다.
중국에서도 난세의 시기에 인간의 육고기를 흔히 먹었다고하는 이야기가 나온다. 난세를 살았던 공자가 인육을 즐겼다는 이야기도 그래서 나온 것이기도 하다. 실제로 좋아했는지는 모르지만, 먹을게 없고 여러 나라로 나뉘어 전쟁을 벌이던 시기이니, 부득이하게 인육을 먹었을지도 모른다.
미드가르드의 비참함은 중국이나 일본의 난세보다 심하면 심했지, 덜하지는 않았다. 굴베이그 왕국에서도 인육을 먹는다는 소리가 있었다.
‘카레를 가르쳐주니, 엘프도 인육을 먹게되는건가. 이건 좀 아니군.’
“프레이야님은 엘프가 엘프나 인간, 몬스터의 고기를 먹는 것을 원치 않으실거야. 나는 그렇게 확신한다. 그러니 이번 임무가 끝나고 여신님께 물어볼테니 그때까지 모든 몬스터, 그리고 인육및 이족보행 포유류를 먹는 것을 금한다.”
원기는 그렇게 말하며,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아무리 사람을 죽이는데 익숙해 졌다고해도, 저도 모르는 사이에 인육 카레를 먹는다는 것은 상상만해도 끔찍했다.
‘중이 고기맛을 알면 빈대도 남아나질 않는다더니.’
원기는 고개를 설레설레 저으며 희연에게 다가갔다.
“덤벼라 소드마스터 야마토, 난 실은 한번만 찔려도 죽는다!”
“재미없어. 그리고 나도 인터넷은 보거든?”
희연은 미소를 지으며 몸을 일으켰다. 어느정도 빛나는 검의 성질은 파악한 상태였다. 그녀는 손잡이만 남고 부러진 칼을 손에 들었다. 그러자 부러진 칼날 자리에 빛이 나면서 빛나는 검이 되었다.
“마치 광선검 같군.”
“그렇지? 한번 받아볼래?”
희연은 광선검으로 원기를 찔렀다. 원기는 깜짝놀라서 으악하고 비명을 질렀다. 연하를 비롯한 엘프들의 눈길이 원기를 향했다. 빛나는 검이 원기의 등을 뚫고 나타나 있었다.
“놀랐니?”
희연이 웃으며 말하자, 원기는 가슴을 쓰다듬었다. 아무런 느낌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등에 나타난 검날도 그냥 모습만 나타났을 뿐이지 실제로는 가슴에도 등에도 상처는 없었다.
“어떻게 된거지?”
희연은 빛나는 검 위에 손을 올렸다. 빛나는 검은 손등을 관통해서 여전히 빛나고 있지만, 희연에겐 상처따윈 없었다.
“그냥 모양이야. 특별히 공격력 같은 건 없어.”
희연은 부서진 검을 힘껏 던졌다. 희연의 손을 떠난 검은 잠시 빛을 유지했지만, 곧 사라졌다.
“반경 30미터 정도? 그리고 2초 정도 손에서 떨어져도 유지가 되고, 무기의 내구력을 높여주는 효과가 있어. 무기의 성질을 바꿔주거나 자체적인 공격력은 없네. 그리고 지금 막 깨달은 건데, 정신력을 많이 소모하는 탓인지...졸음이...오..네.”
희연은 갑자기 앞으로 쓰러졌다. 원기는 당황해서 희연을 안아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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