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화
“어떻게 된거야?”
희연은 의아한 듯 원기에게 물었다. 리디아도 영문을 잘 모르는 듯 싶었다. 대부분의 주요 정책은 트리아 여제를 비롯해서 조제성, 장수한, 그리고 박원기의 4인 회의에서 결정되고 있었다.
리디아는 자신에게 ‘배가교환’의 능력이 있다는 사실을 잘 모르고 있었다.
엘프 사랑 능력자와 엘프를 제외한 모든 인간 한정으로 배 이상의 댓가를 받아내는 능력이었다.
‘인간의 폭이라는게 생각보다 넓은 것 같네. 늑대인간도 그렇고. 언데드나 뱀파이어도 인간의 범주에 들어가려나?’
능력 설명 자체가 프레이야 여신, 곧 원기가 이해하기 쉬운 방식으로 묘사되고 있었다.
“우리가 저자세로 나가니까, 굳이 압박할 필요가 없다는 거지. 늑대들은 자기가 보스라고 생각하면, 아랫것들을 생각보다 잘 돌봐주는 법이야.”
“그런 거였나요?”
“그래. 그래서 무조건 줄 수 있는데로 주자고 한거야.”
리디아는 조금 석연치않지만 납득한 것 같았다. 적어도 그 이상은 들을 필요도 없고, 그저 믿고 받아들여야 한다고 여기고 있었다.
리디아의 능력은 굉장히 놀라운 것이기는 하지만, 약점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아니, 약점이라고 하기보다는 너무나 간단한 대비책들이 있었다.
기본적으로 주고 받는 관계에서 발생하기 때문에, 리디아에게 아무것도 ‘받지 않으면’ 문제가 해결된다.
외교 석상이라면, 리디아말고 다른 사람으로 대체하라고 요구하면 끝이다. 만약 상대가 리디아의 능력을 알고 있다면 그 요구에 응하지 않을 수는 없다.
‘리디아에게 하는 명령이나 부탁도 주고 받는 것에 포함되는 것 같기도 하고.’
상당수의 에인페리아들이 특수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이상적으로 만들어진 육체, 그리고 넘치는 신성력, 그 외에 부가적으로 존재하는 특수 능력이 에인페리아들을 특별한 존재로 만들어 주는 것이었다.
물론 에인페리아 이외에도 성기사, 사제 등은 육체 단련과 신성력, 그리고 드물게 눈뜨는 특수 능력을 갖출 수 있었다.
트리아 여제는 세스룸니르에 존재하는 최고 여신관이었고, 리디아 역시 그녀의 뒤를 이어 프레이야의 신관이 될 존재였다. 그런만큼 그녀 역시 능력에 일찍부터 눈떴을 가능성이 컸다.
원기가 굴베이그 여신의 신도들을 손에 넣으면서 특수능력을 확인할 수 있는 능력을 얻었을 뿐, 바람을 읽는 연하의 능력도 꽤 일찌감치 눈을 뜬 것이다.
‘그날 밤의 일도, 생각해보면 리디아의 능력이 작용한 것 같군.’
희연에게 채였다고 생각했던 그때, 화풀이할 생각도 있었지만 엘프로 하렘을 꾸미겠다는 생각이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엘프 삼천궁녀라는 것도 뭐 상상해보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그리고 그 첫번째 대상이 리디아가 되었다. 하지만 그녀가 그의 말대로 옷을 벗는 순간, 급격히 마음이 변했다. 그녀를 아껴줘야 한다는 마음이 들어서, 황급히 그녀에게 다시 옷을 입게 해줬다.
‘음, 여신 상태는 몰라도 평상시의 내 경우에도 영향은 있다고 봐야 할까.’
은연중에 엘프 중시의 정책을 펴게 되는 것도, 그리고 그것에 대해 다른 모든 이들이 호의적으로 나오는 것도 그 때문일 수도 있었다.
어찌되었든 리디아에게는 그 능력을 비밀로 해두기로 마음 먹었다. 어떤 능력의 소유주가 있을지 모르는 세상이다. 외교관으로 적의 마음을 읽는 놈이 나오지 말라는 법도 없었다.
물론 마음을 읽는 놈이라도, 리디아의 능력을 눈치 못챈다면 게임은 끝나는 것이었다. 본인이 모르는 편이 실제로는 능력의 활용도를 높일 수 있다는 판단하에 리디아 본인에게 알려주지 않았다.
그리고 펜릴 왕국에서 ‘분양’받은 사냥부대는 대단히 파격적이라고 해야할지 상식을 초월하는 존재였다.
늑대 인간이라기보다는 개과의 수인족이라고 봐야 할 것이었다. 전투적 성향은 떨어지지만 순응적이고 명령을 잘 따르는 존재들인데다가 암컷 10마리, 수컷 10마리로 이루어진 부대였다.
혈통 개량으로 능력이 강화된 녀석들이라, 평상시가 짐승형인 녀석들이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모조리 중성화 처리를 받은 녀석들이었다.
수컷의 반항기나 발정기에 탈영하는 등의 사고를 방지하며, 펜릴 왕국의 중요한 재산인 수인족이 적국에 넘어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것으로 알려져 있었다.
발정기가 존재하는 동물들의 중성화는 인간의 거세와는 달리, 그다지 스트레스가 크지 않으며 긍정적인 작용이 많다고 하지만 지구에서 넘어온 이들에겐 충격이 아닐 수 없었다.
특히 받아온 사냥부대의 면면이 전부 10살을 조금 넘는 소년, 소녀라는 사실이 더욱 충격적이었다. 능률, 효율 등을 위해선 얼마든지 이런 비정상적 처치가 가해질 수 있다는게 놀랍다면 놀라웠다.
물론 늑대인간의 경우, 중성화를 거치지 않으면 혈기를 못이겨서 살인 및 식인, 혹은 강제적 번식행위를 저지를 수 있다는 것을 생각하면, 나름대로 배려해 준 것일 수도 있었다.
‘골치 아픈 과제가 생겼군.’
펜릴왕국과의 교섭은 성공적이었지만, 미드가르드의 야만성을 더욱 실감한 원기와 일행들의 고민은 더욱 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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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기야. 내가 알려준 장전수와 사수 분리 방식은 어땠냐?”
장수한은 원기의 모습을 보자마자 달려와서 물었다.
“예? 아, 뭐. 나쁘지 않았어요.”
가까운 신전에서 게이트 미러를 통해 세스룸니르에 도착하자마자 반겨준 것은 장수한의 질문 공세였다.
후장식 소총이라 단독으로 쏠 때는 총알을 장전하고 사격하는데 걸리는 시간은 평균 2초에서 3초 가량이었다. 자동 탄피 배출이 없어서, 시간이 조금 걸렸다. 장전수를 따로 두면, 1초 정도면 바로 사격할 수 있었다.
백명이라면 동시에 100발을 발사, 그리고 초당 50발 정도씩 쏠 수 있었다. 딜레이 없이 지속적으로 총을 쏜다는 느낌은 나쁘지 않았다.
“거 봐요. 효과적이었다고 하지 않습니까.”
미드가르드어로 장수한이 옆에 있는 사내에게 말했다. 원기는 그가 누군지 곧 알아챌 수 있었다. 새롭게 일원이 된 SAS출신의 사내인 크리스 맥케이였다.
“그건 좀 다르지요. 확실히 효과적이 아니라면, 쓰지 않는게 낫습니다.”
크리스 맥케이는 장수한의 방식, 2인 1조로 장전수와 사수를 나누는 방식이 오히려 화력을 줄이는 거라고 주장했다.
동시에 쏟아지는 총알이 100발인 쪽이 절반인 50발로 좀 더 자주 쏟아지는 것보다 효과적이라는 거였다.
장수한은 단위 시간당 총알 수를 생각하면 3초에 250발을 쏟아 붓는게 3초에 200발 쏘는 일제 사격방식보다 효과적이라고 주장했다.
장전하느라 총을 내려다 볼 필요 없이, 적의 움직임을 관찰하면서 총만 들어서 쏠 수 있다는 점에서, 효과적 사격에도 도움이 된다는게 장수한의 주장이었다.
“이러니까, 동양인들은 곤란하다는 겁니다. 삼국지를 너무 봤어요. 전술은 최대한 간단한 편이 효과적이고 리스크가 작습니다. 복잡하면 복잡할 수록 유연성이 줄어들고 위험도는 커져요. 실패 확률이 높은 작전은 좋은 작전이 아닙니다.”
“무슨 소립니까. 예전부터 장전수와 사수를 구분하는 방식은 많이 쓰여왔습니다. 오다노부나가도 그렇고 레드코트들도 그렇고.”
“오다노부나가는 장전수와 사수를 구별하지 않았어요. 레드코트들도 그렇습니다.”
“오다노부나가의 경우는 화력을 분할해서 딜레이를 줄여나간 전법을 썼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그걸 말하는 거에요.”
“화승총의 딜레이는 분단위고, 지금 가진 총은 초단위의 딜레이입니다. 분단위 딜레이는 적이 접근할 수 있지만, 초단위의 딜레이로는 그런 짓은 못해요. 복잡한 재주를 부려서 효과가 있는지 없는지도 모른다면, 자원과 시간의 낭비에 지나지 않습니다.”
크리스 맥케이는 장수한과 열띤 논쟁을 벌였다. 둘 다 말하고자 하는 바는 화력의 집중임에 틀림없었다. 단위 시간당 화력이냐, 일제 사격의 화력이냐가 문제였다.
“그럼 수고들 하세요. 전 돌아가서 쉬렵니다.”
원기는 논쟁을 벌이는 두 사람을 뒤로 하고 로그 아웃을 위해 게임 세계로 가는 거울을 향했다. 그때 조제성이 다가왔다.
“문제가 좀 있네. 이거 좀 봐줬으면 좋겠군.”
원기는 무슨 일인가 싶어서 조제성의 손에 들린 물건을 보았다. 그것은 원기 역시 잘 알고 있는 총인 AK-47이었다.
“무슨 문제가 있지요?”
“드워프의 손으로 만들어진 걸세. 그들의 기술을 너무 우습게 봤어.”
조제성은 드워프들에게 총기의 생산을 맡겼다. 그리고 그들의 총기를 점검해왔다. 사실 그들이 만든 장총은 그리 좋은 물건이 아니었다. 아름답게 디자인되고 장식되었지만, 총으로서의 성능은 좀 아니었다.
그런데, 어떤 드워프 하나가 선반과 비슷한 물건을 만들어서 총신을 드릴을 이용해서 깎았다. 손잡이를 돌리는 핸드 드릴 같은 물건이라 조제성은 대수롭지 않게 여겼는데, 장총의 명중률이 비약적으로 상승했다.
드워프의 뛰어난 감각으로 연마하고 나니, 총알의 오차 범위가 극도로 작게 변해버린 예술품과도 같은 총신이 만들어졌다.
놀란 조제성은 선반을 만든 드워프를 빼돌리고, 절대 선반을 사용하지 않도록 드워프들에게 지시를 내렸다.
그리고 선반을 만든 드워프에게 AK-47을 보여주고 한번 만들어보라고 말했다. 드워프는 간단히 AK-47을 분해해 보고는, 대장간에서 부품들을 뚝딱거리고 만들어서 조립했다. 그리고 만들어진 것이 바로 원기에게 제공한 AK-47이었다.
“과연 드워프들의 물건이로군요. 아주 예쁘게 장식이 새겨져있네요.”
원기는 묘한 표정으로 바라보면서 총을 살펴보았다. 이음새 같은 부분이 정말 정교하게 잘 맞아떨어져 있었다.
원기는 조금 총을 만져본 후에 표적을 향해서 총알을 쐈다. 좋은 눈, 단련된 육체 그리고 긴 호흡은 원기에게 명사수 수준의 명중률을 보여주게 만들었다.
‘조금 무겁지만 반동은 생각보다 작아. 총소리도 작고.’
그리고 표적지를 바라보자 총알은 바람이 바뀐 마지막 발을 제외하고 전부 표적지 가운데 모여있었다. 마지막 발도 거의 표적 중앙이었다.
“굉장하군요.”
“굉장하지. 문제는 그거야.”
조제성의 한숨을 원기는 이해할 수 있었다. 장총을 보고 AK-47수준의 돌격소총을 만드는 것은 불가능하다. 하지만 AK-47 수준의 돌격소총을 보게 되면, 그에 맞먹는 소총을 만드는 것이 불가능하지는 않을 것이다. 잘못해서 AK-47 그 자체가 적의 손에 들어가면, 적들은 AK-47을 양산할 수도 있는 것이다.
간단하고 단순한 구조, 투박하지만 내구성있는 부품으로 만들어진 AK-47은 정비도 쉽지만 만들기도 쉬워서 아프리카의 대장간에서 만들어질 정도였다.
기적의 예술품이라고 말해도 과언은 아니었다.
“좀 더 조심하지 않으면 안되겠군요. 그래서 그 드워프는 어떻게 하지요?”
“어차피 이렇게 된 것이니, 지구로 보내서 이것저것 가르쳐 보기로 했다. 일단 프레이야 여신에 대한 신앙심이 깊으니 비밀을 누설할 염려는 없지. 드워프 노예가 이쪽 저쪽에 많다는 걸 생각하면 돌격소총 수준의 물건은 노출시켜선 안될거야.”
“저도 동감입니다. 일단 좀 쉬고 싶네요. 이쪽에서의 여행은 좀 피곤해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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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옷, 이거 멋진 놈이 나오는걸.”
찬균은 인터넷 검색창을 보면서 미소를 지었다. 마법소녀 매니아인 그의 취미 중 하나는 피규어 수집과 촬영이었다.
그리고 피규어 수집하는 사람들의 가장 큰 고민은 가격과 공간이었다. 돈도 돈대로 들지만, 진열할만한 공간이 충분치 못한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 사고 싶다고 다 살 수는 없었다.
“이거 원형사도 유명한데다가, 회사도 좋은 곳이네. GSC라. 그런데 왜지?”
찬균은 컴퓨터 화면을 보면서 눈살을 찌푸렸다. 왠지 후광이라고 해야 할지, 오우라 같은 것이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최근에 나타난 현상 중 하나였다.
피규어를 사들일 때, 문제가 되는 것은 바로 완성도였다. 완성도가 높은 물건은 사람들이 사들여서 품절이 되어버린다. 그렇게 되면 신품은 커녕 중고도 구하기 힘들어지고, 가격은 세배 이상으로 뛰어버린다.
10만원 정도 하던 피규어가 30만원을 가볍게 넘기는 물건들이 생긴다. 물론 찬균은 프리미엄을 주면서까지 피규어를 사지는 않는다. 용돈은 많이 받는 편이지만, 프리미엄을 지불하면서까지 살 마음은 없었다. 대게 그는 프리미엄이 붙기전에 산다.
그리고 프리미엄이 붙었다고 팔지는 않는다. 오히려 프리미엄이 붙지 않는 물건이나, 헐값이 되어버린 물건을 팔고는 했다. 소장 가치가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어느날 부터인가, 그의 눈에 묘한 후광같은 것이 보였다. 값이 올라갈 피규어에는 왠지 밝은 빛의 후광이 보였다. 떨어질 물건 주위에는 왠지 모를 어두운 빛이 보였다.
물론 그 능력 덕분에 돈을 벌지는 못했다.
어차피 프리미엄이 붙을 만한 물건들은 다 살 예정이었기 때문이었다.
“에이, 젠장. 기대하던 물건인데...그래도 예약 해야 하나.”
그는 프리미엄이 붙지 않을 피규어를 보면서 낙담했다. 그가 좋아하던 팬시 마미의 피규어였기 때문에 사지 않을 순 없었다. 꼭 살 물건인만큼 프리미엄이 붙을 퀄리티로 나오길 간절히 기도했는데, 실망스러울 뿐이었다.
그의 눈에는 피규어 외에도 다른 많은 것들, 물건들만이 아니라 사람들에게도 후광과 비슷한 것들이 보였다.
하지만, 그는 관심이 없어서 무시해 버렸다. 그에게 있어서 이 후광은 선물의 가치를 박스를 뜯기 전에 살짝 보여주는 정도의 그다지 쓸모없는 능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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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이라, 정말로 이 아시아 지역에 악마의 추종자가 있을런지 모르겠군.”
“확률은 그리 높진 않지만, 일단 1급 용의자들 가운데는 조제성이라는 자가 마지막이야. 조사해 볼 필요는 있지.”
“무기는 언제 도착하지?”
“배편으로 오고 있으니, 우리보다 1주일은 늦게 될 것 같군.”
“무기 없이 탐색하는 건 그리 달갑지 않은걸. 현지에서 조달하는 건 안될까?”
“성검없이 에인페리아를 죽일 수는 없다. 아니 되살아나는 걸 막을 수 없다고 해야겠지. 놈들은 자유자재로 인간을 되살릴 수 있는 악마다. 제대로 숨통을 끊지 않으면 안돼.”
“물론 그건 알지만, 총 한자루 없이는 불안해서 말이야. 밖을 걸어다니기도 힘들다고.”
“참아. 이곳엔 현지 지원 조직도 없어. 그리고 적이 이곳에 있을 가능성은 극히 희박해. 그냥 동양 여행이나 왔다고 생각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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