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잊혀진 신의 세계-71화 (71/497)

71화

그리스도교는 유일신 종교로 널리 알려져 있다. 실제로도 그렇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다신교적 측면이 없다고 할 수 있을까?

그리스도교의 역사를 본다면, 실제로는 많은 다신교적 전통들과 타협을 해온 측면이 있었다.

많은 타종교의 신들을, 천사 혹은 악마로서 교리 안에 받아들인 것이었다.

자신들만의 신을 바라는 이들을 위해서, 수호천사나 수호성인이라는 개념을 받아들였다.

물론 시간이 지나고 신앙이 정립되어 가면서, 많은 천사들이나 악마들은 무의미한 존재가 되어 잊혀져 갔고, 절대 유일신을 믿는 종교로서 다른 종교의 사람들을 흡수해서 동화해 나갔다.

종교 개혁 후 개신교가 이런 모든 것을 다신교적 미신이며 우상 숭배라고 배격한 것도 그런 역사가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신’을 ‘천사’ 혹은 ‘악마’로 다운그레이드 시켰다는 오해다. 그리스도교에 있어서 ‘신’은 절대자라고 할 수 있다.

세상에서 제일 높은 산은 몇개인가?

누구나 하나라고 대답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그리스도교나 유대교, 이슬람교에서 말하는 신은 ‘유일 절대자’를 말하는 것이고, 여타 종교에서 말하는 신은 ‘인간을 초월한 자’를 말한다.

특히 동양의 무속에서 ‘신’이란 것은 아주 하찮은 존재까지도 포함하는 것이다.

영적 가축, 혹은 영적 화초까지도 신으로 불렀다. 영적인 모든 존재를 동양에서는 ‘신’이라고 부른 것이다. 인간의 정신까지도 하나의 신이니, 죽은 자를 신으로 섬기는 것은 당연한 것일지도 몰랐다.

변소를 지키는 신이 있고, 아궁이를 지키는 신이 있다. 이들을 특별히 공경한다기 보다는, 가축이나 화초를 돌보듯이 돌보는 정도가 일반적이었다. 개를 키우면 도둑을 쫓아내 주겠지 하는 정도의 생각인 것이다.

그리스 신화의 신이나, 북구 유럽 신화의 신들은 결코 절대자도 아니며 세상의 창조자도 아니다. 외계인도 신이라고 믿고 싶으면 신이되고 개나 소나 너구리, 여우, 까마귀도 신이라고 믿고 싶으면 신이 되지만, 그리스도교에서 말하는 신은 될 수 없었다.

그래서 이들 가운데, 인간을 명백히 초월하는 존재 들은 ‘천사’ 혹은 ‘악마’로 받아들여졌다.

그리고 반 신들은 자신들이 절대자가 아님도, 이 세상의 질서에 속한 피조물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도 잘 알고 있었다. 물론 아스 신족이나 거인족에게 뒤떨어지지 않는다고 자신하고 있었다.

그러니 그들은 ‘신’을 자처할 수 있었고, 자신들을 신으로 인정하고 있었다.

그리고 방랑을 떠난 반족의 신 오드는 그리스도교를 접했다. 평화를 가르치는 유일신 종교.

인간 이상의 지혜와 지식을 가졌으나, 결코 인간을 초월한 지식을 가지지 못한 그는 그리스도교의 교리에 감화되어, 개종하게 된다. 그리고 그는 반 신족의 곁으로 돌아가지 않았다.

그리고 천사 중 하나의 이름을 얻게 된다.

‘메타트론’, 인간의 번영을 기원하는 치천사의 으뜸으로 꼽히는 천사의 이름을 얻고, 그는 그리스도교 내에 자리를 잡고, 로마의 권력층을 감화시켜 일순간에 그리스도교가 그리스 신화, 북구 신화를 말 그대로 ‘신화’로 전락시키고 새로운 세상을 만드는데 일조했다.

그리고 나서 문제가 생겼다.

그리스도교의 골수 신자들은 정말로 깊은 신앙심을 가지고 있었다. 그들은 신을 위해서 자신의 모든 것을 버릴 수 있는 사람들이었고, 자신에게 닥쳐온 병마도 신이 마련해 준 시련이자 운명이라고 받아들이는 사람들이었다.

수도원에서 신의 뜻만을 헤아리고 신의 뜻에 모든 것을 맡기고자 하는 이들, 그들이 드러나지 않지만 그리스도교를 존속하게 해 온 가장 강력한 힘이었다. 종교 개혁을 일으킨 프로테스탄트가 분열과 혼란을 거듭해 왔지만, 가톨릭은 변함없이 보수적이지만 한결같은 모습을 지켜온 것에는 그들의 역할도 크다고 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런 중심축의 신앙인들은 오드, 메타트론의 힘을 달갑게 여기지 않았다. 혹세무민의 힘이라고 여긴 것이었다.

물론, 이 시점에서 오드가 그것에 분노하고 뛰쳐나갔다면 이야기는 달라졌을지 모른다.

하지만, 오드 역시 진심으로 개종한 상태였고, 그는 교회의 결정을 존경과 순명의 정신으로 받아들였다.

혹세무민이 되지 않도록, 그 힘을 철저히 감추고 혹여 돌아올 지 모르는 아스 신족과 거인족이라는 악마들과 싸우는데 온 힘을 기울일 것을 맹세했다.

그리고 오드의 힘에 취해서, 변질된 신심을 보이던 자들을 휘하에서 축출했고, 그들은 이단으로 심판받게 되었으며 그 죄가를 치르게 되었다.

그 후, 오드는 자신의 정신적 수명이 한계가 왔다는 것을 느끼고, 새로운 씨앗을 만들었다. 그리고 그 씨앗 또한 수도원에서 자라며 충실한 신앙인으로서 자라났고 그런 그에게 오드의 좌, 메타트론의 역할이 맡겨졌다.

그렇게 몇 대를 거듭하면서, 오드의 이름은 물론, 메타트론의 이름조차 일부 문헌에만 남을 정도로 잊혀졌다. 그리스도교의 일부로서 그림자로서 존재해 왔을 뿐이었다.

거인 족의 헬이 부리는 뱀파이어, 펜릴이 부리는 늑대인간, 오딘을 섬기는 마녀 등이 그들의 퇴치 대상이었다.

물론 그 치유의 힘과 불사의 힘을 내심으로 원하는 고위 성직자들이 있긴 했지만, 그런 힘을 요구할 수 있을만큼 뻔뻔하지는 못했다. 그들 자신의 존재 이유를 부정하는 것이나 다름 없기 때문이었다.

혹세무민의 우려가 있다고 철저히 부정되면서, 오직 미드가르드의 존재들을 말살하기 위해서만 존재하는 사냥개, 그것이 메타트론과 그의 사도들인 ‘템플 나이트’의 존재 의의였다.

“로이드. 아무래도 헛다리 짚은 것 같은데?”

“흠. 예상대로라고 해야 하나.”

50대의 사내 로이드는 어깨에 힘을 뺐다. 조제성의 회사에도 집에도 성역의 흔적은 보이지 않았다.

“내 눈에도 별 이상한 건 안보이는군. 며칠 관광이나 하다 가지. 레이나가 좋아하는 그룹 콘서트나 보러 갈까?”

“그거 좋은 생각이네. 나도 로이드처럼 진실을 꿰뚫어보는 눈 같은게 있으면 좋을텐데.”

십대 후반의 소녀 레이나가 웃으며 말했다.

“너도 조만간 탤런트를 받을 때가 올거다. 조바심 낼 필요는 없어. 아직 정식 기사가 되긴 이르니까.”

로이드의 말에 레이나는 입술을 삐쭉 내밀었다.

“그리고 난 너처럼 3d영화를 볼 수 없단다. 아깝지 않냐?”

로이드는 웃으며 레이나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레이나는 견습기사이기 이전에 그의 딸이었다.

“그건 좀 아까울지도 모르겠네.”

“꽤 아깝단다. 눈속임이라는거, 나쁜 것만은 아니거든. 의외로 많은 눈속임이 즐거움을 위해 쓰여지고 있지.”

로이드의 진실을 보는 눈은 모든 마법이나 환상을 뚫고 실체를 볼 수 있는 능력이었다. 마법이나 환상 뿐만 아니라 인식장애를 일으켜서 자신을 못알아보게 만들거나 타인으로 착각시키는 능력자까지 모두 꿰뚫어 볼 수 있었다.

그리고 그런 로이드의 눈이 갑자기 위화감이 드는 존재를 발견했다.

“인간의 귀가 아니군.”

화장이나 분장까지 한눈에 알아볼 수 있는 그의 눈에 인간이 가질 수 없는 뾰족하고 긴 귀가 보였다.

“엘프라니, 그것도 한 둘이 아니군.”

“엘프? 엘프가 있어? 아, 저 유러피안들?”

레이나는 살짝 자신의 귀를 만졌다. 그녀의 귀는 조금 뾰족하고 길었다. 그녀는 쿼터엘프였다. 그리고 그녀의 어머니가 하프엘프였다.

반신족 오드의 백성이자, 메타트론의 사도가 된 이들의 혈통이라고 할 수 있었다.

“진짜 엘프야? 난 한번도 본 적 없는데. 그게 저렇게 많아?”

그녀의 어머니가 하프 엘프라고 했지만, 외할아버지와 외할머니는 둘 다 하프엘프였다. 하프엘프나 쿼터엘프는 드물게 존재하지만 순혈의 진짜 엘프는 사라진지 오래되었다.

“어차피 변질된 종족이다. 반족은 모두 아스신족으로 변절한지 오래야. 엘프들이라고 해도 우리 적에 지나지 않아. 그건 그렇고 저렇게 숫자가 많다니. 너무 늦은건가?”

로이드는 혀를 찼다. 최악의 경우에는 대량살상병기를 사용해야 할지도 몰랐다. 대체 얼마나 큰 구멍이 미드가르드와 이쪽 사이에 뚫렸는지 알 수 없었다.

“정보가 필요해. 조제성이라는 자를 잡아와야겠다. 녀석은 에인페리아임에 틀림없어.”

발키리를 부리는 자가 에인페리아일 것임에는 틀림없었다. 그리고 성검 그림리퍼는 그런 이들의 영혼을 강제로 회수해서 부활할 수 없게 만드는 신기였다.

“불멸자 사냥, 아니 전쟁을 벌이게 될 듯 싶군.”

그는 레이나의 어깨를 살짝 감싸 안았다. 생각처럼 잘 안풀리게 된다면, 대량살상 병기가 사용될 터였다. 인식장애 특급 능력자인 함장이 탄 원잠은 어떤 방법으로도 발견할 수 없다고 알려져 있었다.

센서가 원잠을 탐지해도, 센서를 보는 이가 인식할 수 없게 만드는 최악이자, 최강의 능력자였다.

그리고 그 원잠에서 발사되는 무기는 말 그대로 대량 살상용 전략병기였다. 핵탄두가 될 수도 있고, 화학 탄두, 혹은 세균 탄두가 될 수도 있었다. 추종자를 말살시키지 않는 한, 세계가 멸망할 수도 있다는 인식이 만든 명백한 과잉방어 수단이었다.

최근 일이백년간 인류의 발전은 미드가르드와의 격차를 엄청나게 벌려놓은 상태이기 때문이었다.

절대 강자 미국이 이라크에 설레발치다가 막상 까보니 뼈다귀만 앙상하더라, 하는 것과도 비슷했다.

하지만 다 죽여놓고, ‘알고보니 별거 아니더라’라는 것이 이미 죽어간 자에게 얼마나 큰 위안이 될 수 있을지는 의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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