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3화
FPS, 일인칭 슈팅 게임의 약칭이다. 총기를 사용하는 인기 게임, 많은 이들이 몰두하는 게임이기도 했다.
그리고 가끔 특수부대에서도 워게임 훈련을 위해 사용하기도 했다.
물론 문제는 있었다.
협동 작전의 묘를 살리는 면도 있고, 팀의 호흡을 맞추는 면도 있어서 꽤 도움이 된다고 할 수 있었다.
다만, 게임이 갖는 특성상, 긴장감이 부족했다.
특히 FPS에서 사용되는 전투 방식은 말 그대로 ‘목숨 아까운 줄 모르는’ 방식이었다.
상대방을 빠르고 확실하게 제압할 수 있는 작전, 그리고 동시에 병력 소모율이 큰 작전들이 주로 사용되었다.
제대로 된 지휘관은 별로 좋아하지 않는, 아니 끔찍하게 싫어하는 방식이었다.
‘그리고 난 엄청나게 좋아했었지.’
복수심에 넘치던 시기를 떠올리면서, 크리스 맥케이는 씁쓸한 감정을 느꼈다. 클레어의 회복으로 조금은 어깨가 가벼워졌고, 정신도 차렸지만 광기는 아직 마음속 깊은 곳에 남아 있었다.
목숨은 하나, 따라서 병력을 소모해 나가는 것보다는 병력을 온존해 나가는 것이 일반적이고 상식적인 작전 수립 방식이다.
하지만 FPS에서는 그런 부분이 결여되어 있었다. 지나치게 과감하고 우군의 손실을 꺼리지 않는 작전들이 대부분이었다.
지금의 맥케이가 평범한 특수부대를 지휘한다면, 택하지 않을 그런 작전들이었지만, 그가 지휘하는 부대는 FPS의 과감한 작전으로 부족한 부대였다.
엘프 게이머 군단이었다.
원기를 제외한 엘프 총사대 전원이 현재 위치를 잡고 대기중이었다.
‘무장은 좀 마음에 안드는군.’
주 무장이 특수부대에 알맞는 서브머신건이 아니라, 투박하고 무거운 돌격소총은 AK-47들이었다. 소드오프에 소음기를 달았다고는 해도 건물 내에 돌입해서 전투를 벌이기에 어울리는 장비라곤 할 수 없었다.
그나마 연하를 위해 저격용 라이플이 한 정 배치되어 있었다.
‘그건 그렇고, 적외선을 맨눈으로 볼 수 있는 종족이라니, 정말 특수부대를 위해 존재하는 것 같군.’
야시경이 필요없이, 어둠 속에서도 적아의 구별이 가능하고 뛰어난 청각을 이용해서 연막속에서도 사격할 수 있는 괴물들이 게임 캐릭의 비정상적인 신체 능력까지 소유하고 있었다.
작전을 짤 수 있는 범위가 너무 커져서 상상력의 빈곤을 실감하고 있었다.
도적계 최고 직업인 어새씬 절반, 인트루더 절반으로 만들어진 부대라서 은신 능력들에 암살 능력들까지 골고루 갖추고 있었다.
조제성을 완벽하게 납치했다고 믿고있을 적들이 불쌍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미니 맵에 파티창을 통해서 조제성의 위치가 정확하게 파악될 뿐만 아니라, 녹화 및 온라인 방송 기능을 통해서 조제성이 보고 듣는 모든 것들이 공유되고 있는 상태였다.
산속의 폐병원이라는 상황은 엘프들에겐 더할나위 없이 유리한 전장이라고 봐도 좋았다.
원기와 장수한, 트리아 여제는 현재 온라인 길드방에서 조제성과 함께 파티 회의중이었다.
물론 거기에는 자신이 파티에 화상채팅으로 참가당하고 있다는 사실도 모르는 로이드가 게스트가 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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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 더 이상은 해 줄 말이 없는건가. 너무 피곤하군.”
“글쎄. 물이라도 좀 주겠나? 요깃거리도 좀 필요한데.”
“이렇게 나오면 곤란해.”
“어쩔 수 없지. 고문이라도 해보는게 어떤가?”
조제성은 태연하게 말했다.
“자네가 할 말은 아냐. 그리고 난 헛수고는 별로 하고 싶지 않군.”
로이드는 고개를 저었다. 상대의 눈빛을 보면, 고통에 꺾일지 알 수 있었다. 두려움이 눈 속에 있다면, 아마 시도했을 것이다.
하지만 조제성의 눈에는 두려움은 커녕, 미움도 분노도 존재하지 않았다.
매에는 장사 없다고 말하지만, 그건 틀린 소리였다. 100의 고통을 맛본 사람은 100전후, 혹은 그 이상의 고통을 과도하게 두려워 하게 되기도 한다. 하지만 20이나 30의 고통에는 동요도 하지 않는다.
육체가 줄 수 있는 고통의 한계가 10이라면, 그 고통으로부터 피하고 싶어하는 도망가고 싶어하는 인간은 그 고통을 스스로 몇배로 부풀린다.
하지만 무표정하거나 미소짓는 인간은 10의 고통을 줘도 10의 고통으로 혹은 그 이하로 만들어버린다.
그 경우, 고문은 상대의 의지를 더욱 강하게 만들고, 반감을 키우는 역할 밖에는 할 수 없다. 상대방에게 두려움을 끌어낼 수 없다면, 고문은 자기 만족 정도 밖에는 되지 못한다.
“가족 이야기나 해볼까. 아마도 자네 가족이 자네가 악마에게 굴복하는 계기가 되었을 듯 싶군.”
로이드는 조제성에게서 이야기를 끌어내기 위해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던지기 시작했다. 그가 입만 연다면 진실의 눈을 이용해서 진실의 파편들만 끌어모으면 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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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 저 로이드라는 사람, 꽤 괜찮은 사람으로 보이는군요.”
“저게 다 심문 수법이야.”
“저도 그렇게 생각됩니다. 여신님.”
“일단 저 분위기를 보면, 아직은 들어갈 필요는 없어 보입니다. 그건 그렇고 아스 신족이나 거인족하고는 관계 없는 것 같아 보이는군요. 혹시 반 신족이 아닐까요?”
“글쎄요. 아직은 모릅니다. 아스신족이나 거인족의 교활함은 결코 녹녹치 않으니까요.”
[음. 함부로 신용해서는 안된다는 것에는 동의합니다만, 이친구 왠지 이야기가 통할 것 같군요. 정보를 좀 더 주고 받아야 할 듯 합니다만 괜찮을까요?]
조제성이 파티 채팅으로 의견을 제시했다.
역심문, 상대방에게 잡혀서 어떤 질문을 던지는가로 상대방의 의도를 읽는 수법이지만, 자연스럽게 얻을 수 있는 정보는 한정되어 있었다.
“어떻게 할까요? 상대는 진실을 읽는 능력자인데.”
진실을 읽을 줄 아는 능력자라는 것은 꽤 까다로운 교섭상대라고 할 수 있었다. 거짓정보를 섞어서 물을 타는 것이 안되는 것이다.
물론 장점도 있었다. 이쪽에서 진심을 보이면, 상대가 그 진심을 알아줄 수 있었다.
진심을 알아줄 수 있는 상대라는 것은, 역으로 매력적인 부분도 있었다.
[악인도 아니고, 교활한 자도 아닙니다. 그리고 미드가르드와 연결점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조제성은 그렇게 확신했다. 그도 그럴것이 상대가 알고 싶어하는 것 가운데 하나가 미드가르드의 현 상황이었다. 그는 조제성의 몸에서 나온 물건들 가운데 마도와 현대 문명이 혼합된 것이 없는지 찾고 있었다.
핸드폰을 철저히 분해시킨 것이 그 증거 가운데 하나였다.
미드가르드의 현 상황을 알고 있다면, 핸드폰을 건드릴 기술 수준은 안된다는 것을 알고 있을터였다.
트리아와 장수한의 얼굴을 쳐다보았지만, 그들은 뭐라고 의견을 내놓지 않았다. 전적으로 원기에게 달렸다고 판단한 것이었다.
‘고마우면서도 고맙지 않군.’
원기는 결단을 내렸다.
“모든 판단은 사장님께 맡깁니다. 알아낼 수 있는 만큼 알아내고, 교섭할 수 있다면 교섭하세요. 맥케이씨에겐 대기 명령을 내려놓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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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아, 그래. 가족보다 더 중요한 건 없지. 내 딸아이가 말이야.”
“잠깐, 자네 가족만 그렇게 자랑하긴가? 내 딸은 지금 견습기사야. 견습기사가 얼마나 대단한 건지 아나?”
조제성이 조금씩 입을 열기 시작하면서, 로이드와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 그리고 로이드와의 대화를 통해서 꽤 많은 정보를 얻게 되었다.
조금 지나서는 로이드가 아예 술을 가져왔다.
그리고는 심문용 테이블에 놓고는 서로 술을 나누면서 수다를 떨기 시작했다. 팔불출 대결이 시작되면서 중요한 대화로 이어지지 않은 덕분에 트리아 여제를 제외한 장수한과 원기는 자리를 비우고 자러 갔다.
정보를 흘려도 좋다고 허가는 받았지만, 조제성은 아주 조심스럽게 중요도가 극히 낮은 정보들을 조금씩만 흘렸고, 로이드도 마찬가지였다.
낮에는 심문을, 밤에는 술을 마시면서 팔불출 배틀을 벌이면서 시간이 사흘을 경과했다.
“자네도 참 대단하군. 왠지 내가 자네에게 설복당한 듯 하네.”
“그런가? 난 자네처럼 진실을 알아채는 눈은 없으니까.”
“아뭏든 다행이야. 자네를 가족 품에 돌려보낼 수 있을 듯 하군. 교섭 여하에 따라 달라지겠지만, 일단 기사단 본부에 보고는 해 보겠네. 다만, 쉽지는 않을 거야.”
“나도 잘 아네. 사람들은 불안 요소를 말살하는 쪽을 선호하지. 특히 보수적이고 안정지향적인 사람은.”
“그래. 게다가 젊은 놈들이 문제야. 네 녀석도 젊긴 하다만. 우리쪽엔 혈기가 넘치는 놈들이 많아.”
“잘하면 그 혈기를 미드가르드에서 풀 수 있을지도 모르지.”
“핫핫핫. 자네랑 이야기하다보면 정말 놀랍다니까. 기분은 좋아지는 대신 홀랑 다 벗겨갈것 같군.”
“무슨 소린가. 난 자네들에게 미드가르드를 복음화 할 수 있는 선교의 기회를 제공하려는건데.”
“‘복음화’라니, 기분 좋을 소리를 하는군.”
그리고 그때 심문실로 한 사내가 들어왔다. 키가 2미터는 될 듯한 거구의 사내였다. 불꽃과도 비슷한 붉은 머리칼은 마치 갈기와도 같았다.
‘아니, 마치 왕관처럼도 보이는군.’
“어떻게 되셨습니까?”
“아, 네이슨 자네로군. 내가 간단히 정리해 놓은 정보일세. 이 친구는 반 신족인 프레이야의 협력자야. 미드가르드에서 아스족과 거인족 두 마족들과 대립해서 엘프들을 지키기 위해 싸우고 있다는 군.”
“호오, 그렇습니까? 재밌군요.”
네이슨은 재빠르게 보고서들을 넘겼다.
“미드가르드에 선교하고 사람들을 해방시켜 복음화 시킬 수 있는 기회라. 멋진 이야기로군요.”
“물론이지. 평화가 제일 아니던가.”
푸욱.
날카로운 칼날이 천과 살점, 뼈를 가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동시에 의자에 앉아있던 조제성이 피를 뿜었다.
“자네. 무슨 짓인가!”
로이드는 소리쳤다. 어느틈에 그의 허리춤에서 성검 그림리퍼를 뽑아서 조제성을 찌른 것이었다.
“복음화가 필요한건, 미드가르드가 아니라 지금 이 세상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까? 이 기회에 메타트론님의 존재를 세상에 알리고 불신자들의 눈을 뜨게 만드는게 낫지 않을까요? 미드가르드라, 그런 보이지 않는 곳에서 싸워봐야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자네. 설마...”
“예. 로이드님께선 순교자의 역할을 좀 맡아주셨으면 좋겠군요. 가치있는 평화는 가치있는 싸움 끝에 오는 법입니다.”
네이슨의 손에서 강렬한 화염이 불타올랐다. 그리고 잠시후 거대한 폭발이 심문실을 덥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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