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잊혀진 신의 세계-76화 (76/4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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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긴 아픈데 어디가 아픈지 모를 때가 있다.

레이나는 아버지의 유해와 함께 영국으로 일시 귀국하기로 결정했다. 어머니에게 아버지의 사망 소식을 어떤 얼굴로 알릴지를 생각하니 그녀의 시름은 더욱 깊어졌다.

억지로라도 미소를 지으며 강한척을 하는게 좋을지, 아니면 그녀의 품에 안겨서 슬픔을 터뜨려야 할지도 잘 몰랐다.

로이드는 아빠이기 이전에 선배이자 친구와도 같은 존재였다.

“같이 못가서 미안하게 되었구나.”

네이슨이 그녀를 위로하며 말했다. 젊은 기사들의 우상이자, 레이나에게도 동경의 인물이었던 네이슨이었지만 로이드의 죽음 앞에선 그다지 빛을 발하지 못했다.

아니, 로이드야말로 레이나의 동경이자 이상이었음을 자각하게 된 것이라고 할 수 있었다.

그래도, 한가지는 확실했다. 네이슨은 의외로 다정하고 배려깊은 신사라는 사실이었다.

“고마워요. 하지만 네이슨님에겐 하실 일이 있으시니 지금까지 신경써주신 것만으로도 감사드려요.”

“무슨 소리야. 우린 모두 한 가족이나 마찬가지인데. 한가지는 약속하지. 네가 돌아올 때, 내가 널 위해 전장을 마련해 주마. 아버지의 원수를 갚을 수 있도록.”

“기대할께요.”

슬픔과 복수심, 분노를 포함한 많은 감정이 그녀의 마음 속에서 요동치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강렬한 슬픔이 그녀를 지배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녀가 느끼기에도 지금은 슬픔에 자신을 맡겨도 좋을 시기였다. 장례식이 끝나고 이곳으로 돌아올 즈음에는 분노와 복수심에 몸을 맡겨도 좋을 터였다.

그녀는 약간의 현기증을 느꼈지만, 머리를 흔들며 이를 악물고 공항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대부분의 짐은 이미 다른 기사단원들이 챙겨서 영국으로 보낸 상태였기 때문에 소지품은 손에 든 가방 하나가 전부였다.

그녀가 티켓을 발급받기 위해서 창구로 향하고 있을 때, 사람들이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인기 연예인이라도 나타난건가?’

그녀는 만사가 귀찮게 느껴져서 사람들의 반응을 무시하고 창구로 걸어가려고 했다. 하지만 사람들의 시선이 자신이 있는 쪽, 정확히는 그녀의 뒷쪽을 향하는 것을 보고는 뒤를 돌아 보았다.

그리고 그녀는 순간적으로 숨이 막히는 것을 느꼈다.

너무나 아름다운 스튜어디스가 그녀쪽으로 걸어오고 있었다. 예쁘거나 귀엽다는 느낌은 들지 않았다. 그런 표현은 불경스럽게 느껴질 정도의 완벽한 미모였다.

그녀가 다가올 수록, 그녀에게서 느껴지는 느낌은 말로 표현하기가 어려웠다.

‘성모님? 아니 천사님이야. 마치 천사님을 보는 느낌이야.’

인간적이고 모성적인 거룩함보다는 비인간적이고 아름다움에 치중된 듯한 경외감이 느껴졌다.

그리고 그 스튜어디스의 눈이 그녀와 마주쳤다.

“괜찮으세요? 안색이 안좋아보여요.”

유창하지만 북구 유럽의 악센트가 느껴지는 영어 발음이었다. 그와 함께 그녀는 레이나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왠지 따뜻한 느낌이야.’

모성적인 느낌은 아니지만, 그녀의 품에 안겨서 한바탕 울고 싶어지게 만들어지는 여성적 포근함이 있었다.

“괘, 괜찮아요.”

그녀는 사양하려고 했지만, 순간 복부에서 심한 통증이 느껴졌다. 마치 칼로 배를 쑤시는 듯한 강렬한 통증이었다.

“악!”

“이쪽으로 오세요. 이쪽에 의무실이 있어요.”

그녀는 스튜어디스의 부축을 받으며 의무실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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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한 자는 특별해지길 원하고, 특별한 자는 평범함을 원한다.

‘그 말이 틀림없는 것 같아.’

원기는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프레이야와 만나기 전, 프레이야를 물려받기 전의 그는 지금과 같은 생각을 하리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그는 세상에서 버림받은 존재나 다름없었고, 쓸모없는 밥만 축내는 존재나 다름 없었기 때문이다.

그때의 그는 자신이 좀 더 가치있는 특별한 존재가 되길 바랐다.

그리고 지금은 자신을 좀 더 평범하게 대해주길 은연중에 바라고 있었다.

특히 프레이야를 사용중에 그런 느낌이 강했다.

프레이야는 이미 자신의 분신이랄까, 자신의 반신이나 다름없이 느껴지고 있었다. 프레이야를 사용하는 시간은 적었지만, 마음 속으로 느껴지는 프레이야에 대한 감정은 원기라는 인격에 필적할 만큼 커진 상태였다.

프레이야의 기억이 녹아든 효과일 수도 있었다.

프레이야 역시 원기 자신이라는 생각이 강해지면서 약간의 괴리감이 생겼다.

프레이야에 대한 시선이 부담스러운 것이었다. 좀 더 평범하게 대해줬으면 하는 마음이 드는 것이다.

그래서 농담도 하고, 격없이 굴어보려고 했지만, 역효과만 강해진 감도 들었다.

그리고 사실, 평범해서는 안되었다. 더 특별해져야만 했다. 그것이 그에게 주어진 의무이자 책임이었다. 그에게 의지하는 이들이 있는 한, 그는 더 특별해지고 더 현명해지고 더 강해지지 않으면 안되는 것이다.

평범함이 주는 홀가분함과 자유는 더이상 바라서는 안될 포기해야만 할 대상이었다.

‘잃고 보니 평범함이라는것이 얼마나 좋은지를 깨닫게 되는군.’

스튜어디스 복장을 입고, 조금은 현대식인 헤어스타일을 하니, 꽤 세련된 느낌이 들었다. 하이힐도 문제가 되진 않았다. 이미 수업시간에 많이 신어본 탓이었다.

‘이정도면 완벽한 스튜어디스인가?’

레이나를 포획하는 포인트는 공항이었다. 무기를 갖기도 어렵고, 사람이 많으며 그때문에 방심하기 쉬운 장소였다.

정보를 담당하던 로이드였기에 기사단원의 얼굴들은 대부분 알고 있었다. 네이슨의 차에서 그녀가 내리는 것을 확인하고 로이드가 사인을 보냈다.

프레이야는 그 사인을 받고 작은 캐리어를 끌며 그녀를 향해 걸어갔다. 그리고 장수한이나 조제성을 비롯해 많은 이들이 걱정하던 부분을 실감할 수 있었다.

쏟아지는 시선이 문제였다. 공항 안에 있는 거의 모든 이들이 프레이야의 모습을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이봐, 저 스튜어디스. 우리 극동 항공 유니폼이지?”

“저런 미인이 있었나?”

“글쎄. 본 적 없는데.”

지나가던 극동항공 파일럿들이 그녀를 보며 수근수근 이야기를 나눴다.

“우리 회사에 저런 미인이 있었니?”

“없어. 신규 채용 소리도 못들었어.”

“가짜인거야?”

“설마. 바로 들통나고도 남지. 광고 찍는거 아냐?”

“아, 그렇겠다. 영화일지도 몰라. 요새 스폰 들어가면 종종 나온다며”

“로맨스 영화일까?”

“그렇겠지. 액션에는 안어울릴 것 같아. 설마 스폰주고 비행기 추락하는거 찍을 리는 없을테고.”

프레이야는 엘프와는 달리 귀가 특별히 좋지는 않았다. 하지만 주변에서 벌어지는 대화는 엘프보다 더 확실하게 알아들을 수 있었다. 엘프가 알아들을 수 없는 귓속말이나 혼잣말까지 듣는다기보다는 인식할 수가 있었다.

귀가 밝다기보다는 게임 캐릭터의 능력상 주변에서 벌어지는 대화를 자동으로 인식한다고 봐도 좋았다.

‘이거 완전히 망했다고 봐야 하나?’

프레이야는 내심 긴장했지만, 곧 마음을 진정시켰다. 이런 일이 한두번 있었던 것도 아니었다.

프레이야로 나서면, 사람들의 시선이 눈이 따가울 정도였다. 하지만 늘 그래왔듯이 말을 걸어오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었다. 누구도 평범하게 대할 수 없는 특별한 외모와 카리스마 때문이었다.

‘생각보다 좀 힘들어지겠는걸.’

프레이야는 살짝 한숨을 쉬었다. 희연이나 연하는 틈틈히 찍은 사진과 광고가 의외로, 아니 엄청난 히트를 치는 바람에 지금은 함부로 나다닐 수 없게 되어버렸다.

그녀들의 얼굴을 알아보는 사람이 많으니, 이런 작전에 쓸 수 없었다. 그리고 레이나를 도구 없이 사람들 보는 앞에서 제압하는 것은 원기의 특수능력이 필요했다.

‘이거 운이 좋았군.’

레이나를 발견한 프레이야는 내심 미소를 지었다. 그녀의 안색은 초췌하기 짝이 없었다. 당연하다면 당연한 것이었다. 프레이야는 그녀에게 다가가서 어깨에 손을 얹으며 물었다.

“괜찮으세요? 안색이 안좋아 보여요.”

그렇게 말하며 프레이야는 레이아의 어깨 부분을 지그시 눌렀다. 통각이란 생각보다 엉성한 부분이 있어서, 반드시 아픈 부분에 작용하는 것이 아니었다.

심장병이 복통으로 느껴진다던가, 담낭염등의 원인으로 복통이 일어난 것이 심장에 대한 압박감으로 느껴지는 것과도 같았다.

그리고 레이나는 프레이야의 예상대로 심한 복통을 느꼈다. 그리고 그 복통의 원인이 어깨에 올려진 상냥한 손이라고는 생각치 못했다. 심한 복통으로 인해 몸이 쳐지는 것을 본 프레이야는 나머지 한쪽 손으로 그녀를 부축하면서 마찬가지로 통각을 자극했다.

‘수한이형 말대로 이거 완전히 북두신권 비공찌르기가 되어가는걸.’

군중 속에 끼어있던 장수한이 재빨리 나서서 프레이야의 가방을 들어주면서 의무실 쪽으로 안내했다.

프레이야는 그녀의 신경을 압박했던 것을 살짝 풀어주면서 부축을 받으면서 제 발로 걸어가도록 유도했다. 제 발로 유도하는데로 걸어가기는 해도, 통증때문에 딴 생각을 할 수는 없도록 조절했다.

‘왠지 좀 미안한걸.’

그렇게 레이나는 로이드가 기다리는 공항 의무실로 ‘제발로’ 걸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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